정부 부동산 규제로 전셋값>매매가격 역전 현상도… 매수심리 잠잠하지만 지방서 ‘갭투자’ 조짐
이선희 기자
입력 : 2020.10.30 11:00:01
수정 : 2020.10.30 11:00:17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집값보다 전셋값이 더 높아졌어요. 서민을 위한 법이라는데 오히려 더 불안하네요. 나중에 ‘깡통전세’ 되면 어떡하죠.”
지난 10월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직장인 박 모 씨(39)는 인근 전셋집을 알아보다 아파트 전셋값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양주 호평마을 신명스카이뷰하트 아파트는 399가구인데 전세 매물은 달랑 2건이었다. 이 중 전용 84㎡는 전세 호가가 3억8500만원이다. 지난 6월만 해도 2억6000만~2억9000만원이었는데 3개월 만에 전셋값이 1억원 이상 뛴 것이다.
이곳은 지난 8월 3억3000만~4억원대에 거래됐는데 이제는 전셋값이 집값보다 더 비싸게 역전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들이 불안해하면서도 전세 매물이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한다”고 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법이 개정된 후 임대차 시장이 매물품귀와 전셋값 급등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셋값이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집값에 육박하거나 매매가를 뛰어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주택가격 5억원대 이하 매물이 많은 수도권 지역에서는 전세 품귀로 전셋값이 매매가를 추월한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파주 해솔마을2단지월드메르디앙(84㎡)은 전셋값이 2억2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이 아파트 실거래가는 2억1500만원인데 전셋값이 더 높은 것이다. 경기도 김포 신안아파트(59㎡)도 매매가는 1억7300만원대인데 전세는 1억8000만원을 넘는다.
목동 일대 아파트 단지
▶서울 곳곳, 전셋값이 매매가격 육박
집값이 크게 올라 집값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낮은 서울에서도 전셋값이 오르면서 전셋값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곳이 나오고 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청구3 아파트는 전용 85㎡의 최근 실거래 기준 1개월 평균 매맷값이 5억8700만원이지만 전셋값은 5억2500만원으로 전세가율이 89.4%에 달한다. 통상 서울 전세가율은 50% 후반~60%대인데 서민들이 주로 사는 서울 소형 아파트나 중소형 아파트에서도 전세가율이 치솟으면서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법 때문에 전세 씨가 말랐고 전세가 몇 달 만에 1억5000만원 이상 오른 곳이 많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전세 폭등’인데 향후 공급 물량도 적어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했다. 구축보다 전세가가 높은 신축 아파트는 수도권 대부분 단지가 전세가만으로 분양가를 뛰어넘었다. 서울 서초·개포에서는 분양가와 전셋값이 비슷하고, 논현과 신길 지역에서는 전세가 더 비싸다. 당초 신축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이 된 데다 신축 선호 현상과 전세 매물 감소로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입주 때 전셋값이 이미 분양가를 넘어서는 아파트가 속출하는 것이다.
5월 준공된 은평 응암동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은 2569가구 규모인데 7·10 대책으로 전세는 내놓자마자 불티나게 거래되고 있다. 통상 입주 1년 차 아파트는 ‘입주폭탄’이나 ‘전셋값 하락’을 겪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아파트는 7월 9일 646개였던 전세 매물이 한 달 만에 약 82% 감소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이 아파트 전용 59㎡ 전세는 4억원대였다. 그러나 가장 최근 거래된 가격은 5억4000만원이고 호가는 6억원 이상이다. 2017년 분양 당시 59㎡ 공급가격이 4억7000만원이었는데 전셋값이 급등해 집주인은 입주 시 전세금만으로 대출을 갚고도 남는다.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7월 중순만 해도 5억원이었는데, 그 뒤로 집주인들이 2000만원, 3000만원씩 계속 올렸다”며 “원래 입주장에서는 전세 물건이 많이 나와 값을 올리기 힘든 게 보통인데 물건이 다 빠지고 오히려 대기자들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 신축 아파트는 최근 한 달 사이 전셋값 수억원이 단숨에 오르면서 전셋값이 분양가를 넘어선 곳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사당 신축 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법으로 전세 시세라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전했다. 양도세 비과세 요건인 ‘거주 2년’을 채우기 위해 집주인들이 실거주하면서 전세 물량이 줄어든 데다 7·10 대책과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품귀를 빚으면서 집주인들이 일주일 사이에 3000만원, 2000만원씩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면목동 사가정센트럴아이파크도 7·10 전후로 전세 매물이 77%가량 감소했다. 4억원 후반대~5억원에 분양된 전용 59㎡는 6억원에 전세가 거래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두 달 전만 해도 4억5000만원이면 들어갈 수 있었는데 7·10 이후로 집주인이 마음이 달라졌다”면서 “지금은 시세가 없다”고 전했다. 5억7000만원에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매물은 집주인이 마음을 바꿔 6억원으로 가격을 인상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곳은 2017년 분양할 때 고분양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단지인데 그사이 집값이 상승하고 정부 대책 탓에 전셋값이 이렇게 올라버려 전세만으로 잔금을 다 채우고 시세차익까지 누리는 로또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면목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양도세 비과세(거주 2년) 요건을 채우려고 상당수 집주인이 실거주를 택하면서 전세 물량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 앞으로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집주인이 의무적으로 입주해야 한다니 신축 전세는 씨가 마를 것”이라면서 “신축 아파트는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처럼 부르는 게 값이 되고 급등한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릴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매매가가 높은 강남 아파트도 전셋값이 분양가를 뛰어넘는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래미안리더스원(서초우성1차 재건축)’ 전용 84㎡는 2018년 9월 16억1000만~17억3000만원에 공급됐는데 현재 전세가격은 15억원이다. 강남구 ‘논현아이파크’는 전셋값이 분양가를 넘어섰다. 2018년 3월 전용 47㎡를 8억1400만원에 분양했는데 현재 전세가격은 8억5000만원 수준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값만으로 분양가를 갚고도 취득세 같은 세금까지 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면서 “워낙 입지가 좋아서 수요가 많아 전세 매물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설명했다.
▶매수세는 주춤한데 전셋값이 갭투자 부추겨
양도세, 취득세, 보유세 등 전방위적 규제로 매수세가 주춤한 사이 이번에는 전셋값이 오르면서 정부가 그토록 터부시하던 ‘갭투자’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실제 매매가가 낮은 지방을 중심으로 전세가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갭투자가 몰리는 양상이다.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 ‘아실’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내 갭투자 증가 지역 1~4위는 경기 김포·파주·화성·시흥 순으로 모두 5억원 이하 아파트가 밀집한 수도권 지역이다. 김포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실투자금이 적게 들어가니까 김포는 교통 호재와 발전 가능성을 보고 갭투자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비조정 지역인 지방은 세금 규제·대출 규제를 피해 공시가 1억원 이하 아파트에 갭투자가 집중적으로 몰리고 있다.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매매가가 저렴한데 임대 수요는 늘고 임대 물량이 줄면서 자기자본을 단 1원도 들이지 않고 집을 매매하는 ‘갭투자’가 성행하는 것이다. 전남 광양 성호2차는 전용 39㎡ 매매가격이 5900만원인데 전세는 7200만원대다. 집을 사고 전세를 놓으면 1300만원을 더 받는 구조다.
정부가 취득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를 강화했지만 지방은 비조정지역으로 세금 규제에서 비켜간 점도 갭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취득세의 경우 조정지역 2주택 또는 비조정지역 3주택 해당 주택 취득 시 8% 세율이 중과되지만 지방의 공시가 1억원 이하는 취득세 중과가 배제돼 1~3%의 기본세율이 적용된다. 또한 시세 1억원 이하 지방 아파트들은 공시가가 5000만원 이하여서 여러 채를 소유하더라도 종부세 부담이 없다.
예를 들어 광양 성호2차 아파트 전용 39㎡를 10채 소유해도 총 공시가가 6억원 이하로 종부세가 비과세된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월세 가격도 올라 소형 평수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50만원이 가능한데, 수익률이 좋기 때문에 외부 투자자들이 10채씩 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런 ‘역전세’는 향후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 집값이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 집을 팔아도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현실화할 수 있다. 정부 규제와 세 부담 상승, 경기침체, 코로나19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조차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수심리 다시 자극할 수도
지금은 매매가가 낮은 지방을 중심으로 갭투자가 몰리고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 전셋값이 끝없이 오르고 있어 수도권 ‘갭’차이가 줄어들면 다시 매수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이 내년 이후까지 장기화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재계약에 나서는 세입자가 늘면서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3기 신도시 등 청약을 기다리는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의 불안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올가을 전세 공급이 평년 대비 20~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본다. 서울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사철에 전세를 구해 나가고 들어오고 하면서 물건이 돌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병목 현상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실제 전세수급 지수는 악화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전세 수요 대비 공급량을 나타내는 ‘전세수급지수(100을 넘을수록 공급 부족)’가 지난 9월 187.0을 기록해 최근 3년 내 최대 수치를 나타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의 경우 내년엔 입주물량이 줄고 보유세 부담 등을 이유로 임대차 수익을 높이려는 임대인들이 늘 것으로 보여 전세가 인상 압박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전셋값이 계속 오르려는 시점인 데다 매매가격의 경우에는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의해서 안정되고 있어서 일부 입주 물량이 많았거나 입지적으로 열세에 있던 지역에서는 깡통전세의 우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세 품귀와 전셋값 폭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10월 18일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 부동산에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연봉 1억원 맞벌이도 신혼 특공,
생애최초 특공 받는다
그동안 소득 조건이 맞지 않아 신혼부부 특별공급과 생애최초 특별공급의 기회를 놓쳐온 사람들도 특별공급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정부가 공공·민영주택 특별공급을 신청할 수 있는 소득 요건을 완화해서다. 연봉 1억원 맞벌이 부부도 앞으로 신혼부부 특공과 생애최초 특공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내년 하반기부터 시작될 3기신도시 사전청약을 시작으로 수도권 대규모 공공 분양에 맞벌이 대기업 부부들도 특별공급 기회를 얻게 됐다.
정부는 10월 14일 신혼 특공, 생애최초 특공 소득기준 완화를 발표했다.
신혼 특공 소득 기준은 민영주택·공공주택·신혼희망타운에서 모두 확대된다. 신혼 특공 민영주택은 소득 구간이 낮은 우선물량(75%)과 소득 구간이 높은 일반공급(25%)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이번에 우선물량을 70%로 줄이고 일반공급을 30%로 확대했다. 소득 기준이 완화되는 물량은 이 일반공급 30%에 해당한다. 원래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20%(맞벌이 130%) 이내에 해당해야 청약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기준이 140%(맞벌이 160%)까지 확대된다.
3인 이하 가구일 때 세전 소득으로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40%는 월 778만원, 160%는 월 889만원이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각각 연 9336만원, 1억688만원이다. 고용노동부 소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30대 정규직 월평균 소득은 362만원, 40대는 408만원이다. 40대 부부가 정규직으로 맞벌이를 한다면 816만원을 버는데, 40대 부부도 앞으로는 특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부부 중 한 명은 대기업에 다니고 한 명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도 청약을 신청할 수 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 월평균 소득은 569만원이고 300인 미만은 322만원인데 이를 합하면 891만원으로 완화된 소득 기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신혼 특공 공공주택도 소득 기준이 확대됐다. 또 정부는 신혼 특공 공공주택 일반공급 물량(30%)에 대해서는 추첨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원래 공공주택은 자녀 수,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납입 횟수 등을 점수화해 점수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린다. 하지만 앞으로 신혼 특공 공공주택에서 일반물량은 100% 추첨한다는 얘기다.
생애최초 특공도 소득 기준이 완화된다. 생애최초 특공은 우선공급·일반공급 구분 없이 공공분양은 소득 100% 이내, 민간분양은 130% 이내를 적용해왔다. 맞벌이 부부에게 주는 혜택도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생애최초 특공도 신혼 특공처럼 우선공급 70%와 일반공급 30%를 나눠 분양한다. 국토부는 내년 1월까지 법령 개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초 모집 공고를 신청하는 단지부터 완화된 소득 요건이 적용될 전망이다. 내년 7월부터 예정된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에 더 많은 실수요자가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가점 낮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최근 청약 경쟁률이 치솟으면서 가점이 낮거나, 자녀가 없는 세대는 ‘청약 당첨’의 가능성이 요원하다며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7월에는 평생 집을 소유한 적 없는 사람이라면 지원할 수 있는 ‘생애최초’ 특공을 민간 분양 아파트에도 도입했다.
생애최초 특공은 자기 집을 소유한 이력이 없는 기혼 무주택 가구가 대상이다. 가점을 따지지 않고, 추첨으로 당첨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청약 가점이 낮은 실수요자도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정부는 7·10 대책에서 민영주택은 이전까지 생애 최초 특공 대상이 아니었지만, 앞으로는 공공택지에선 분양 물량의 15%, 민간택지는 분양 물량의 7%를 공급하고, 공공주택은 기존엔 특공 공급이 전체 물량의 20%였지만, 25%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렇게 생애최초 특공이 늘어났지만 소득기준이 낮아 맞벌이 부부들이 지원할 수 없다는 원성이 높아지자 정책 발표 3달 만에 소득기준도 대폭 완화한 것이다.
국토부는 “신혼 특공 소득기준이 완화되면 무주택 신혼가구의 92%가 특공 청약자격을 얻게 된다”며 “기존 대비 공공분양은 8만1000여 가구, 민영은 6만3000여 가구에 특공 기회가 새롭게 주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신혼부부 및 생애최초 특공 모두 2인가구는 ‘3인가구’ 소득을 적용받는다. 국토교통부는 월평균 도시근로자 소득 통계 확인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서, 한국감정원 청약홈에 가구인원에 따른 소득을 게재할 예정이다.
특별공급에 적용되는 소득은 공공분양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하며, 민간분양은 전년도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기준으로 한다. 각각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홈택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