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10년 전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공공분양 아파트에 당첨됐다가 취소된 주부 A씨)
“세대주만 (청약을) 넣어야하는데 시어머님이 그냥 신청하셔서 당첨됐다가 포기했어요. 아까워죽겠네요.”(수원 한 민영아파트에 청약을 넣은 주부 B씨)
“동생하고 3년 넘게 같이 살고 있는데 동생은 부양가족으로 계산이 안 되네요.”(인천 부평 청약을 기다리고 있는 회사원 C씨)
한 번 당첨되면 수억원을 벌 수 있는 청약. ‘최고의 재테크는 청약’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청약 당첨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올해 서울 청약 평균 경쟁률은 99대1(부동산114 기준)로 역대 최고치이며, 인천과 경기도는 세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청약 당첨이 하늘의 별따기지만, 그 엄청난 당첨의 행운을 누리고도 ‘부정 청약’으로 당첨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청약 제도를 모르고 무턱대고 청약을 넣었거나, 부양가족을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고 신청하는 사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 해 청약 당첨자의 11%가량이 부적격 당첨으로 발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청약 당첨자수는 15만8606명. 이 중 부적격 당첨자는 11.4%인 1만8163명에 달한다. 2018년에는 20만 명 중 9.4%가량이, 2017년에는 18만 명 중 11%가량인 2만여 명이 청약에 당첨되고도 ‘부적격 사유’로 취소됐다.
올해도 부적격 당첨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일반 청약을 진행한 수원 영통자이는 부적격 당첨자가 속출해 3가구가 ‘줍줍(무순위 청약)’ 대상으로 나왔다. 예비 당첨자 3배수(300%)까지 뽑았으나 예비에서도 부적격자가 발생해 이번에 무순위 청약까지 나왔다. 지난 2월 인기리에 청약을 마감한 매교역 푸르지오SK뷰에서는 전체 분양 가구의 13%가량이 부적격자였다. 이 가운데 계약 포기에 따른 미계약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이 청약가점, 무주택 여부, 해당지역 우선공급 신청 오류 등에 따른 ‘부적격’이었다고 알려졌다.
공공분양 과천제이드자이에서도 전체 분양 647가구 가운데 무려 22.7%에 이르는 147가구가 당첨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포기했다. 지방에서는 대구광역시에서 분양된 ‘봉덕2차 화성파크드림’의 전체 물량 403가구 중 20.8%인 84가구가 부적격 당첨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첨 기회 날리고 청약 제한까지
전문가들은 청약 경쟁률이 치열한 상황에서 ‘묻지마 청약’은 소중한 당첨 기회를 날리고 청약 제한까지 받으므로 꼼꼼하게 알아보고 청약을 넣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적격 청약’이 발견된 후 별다른 고의성이 없었다고 소명해도 구제받지 못한다. 일단 부적격 당첨자로 처리되면 ‘수도권 및 투기·청약과열지역 1년, 수도권 외 6개월, 위축지역 3개월’ 동안 다른 분양주택 당첨이 제한된다. 평생에 한 번 당첨될까 말까한 귀중한 청약의 기회를 개인의 부주의로 놓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부적격 당첨의 이유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청약제도가 복잡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실수하는 유형은 꼼꼼히 숙지해놔야 ‘부적격 당첨’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민영주택의 부적격 당첨 현황’을 보면, 전체 부적격 판정 1만1344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유는 청약가점 오류로 무려 73.7%(8362건)를 차지했다.
청약가점은 ▲무주택 기간(2~32점) ▲부양가족(5~35점) ▲청약통장(1~17점)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총 84점 만점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무주택기간, 부양가족 등을 규정에 맞지 않게 ‘과다 계산’해서 당첨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실수하는 유형은 재당첨 제한(9.1%), 특별공급 횟수 제한(7.3%) 등이다. 공공주택의 경우 소득기준과 관련된 부적격 당첨이 많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집계한 ‘2015~2019년 주택 유형별 부적격 판정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급한 LH 공공주택에서 발생한 부적격 판정 건수 1만786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유는 소득기준을 벗어난 경우로 전체의 23.1%(2494건)였다. 주택이 있으면서 청약한 경우가 21.6%(2327건)였고, 과거 당첨 사실이 있는 경우가 21%(2271건)로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문제였다.
▶무주택 기간 산정 실수 많아
부적격 청약 유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점제 주요 평가 중 하나인 ‘무주택 기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청약 제도가 인정하는 점수보다 더 후하게 점수를 책정하고 있다. 미혼은 만 30세 이상부터 무주택 기간을 산정한다. 35살 직장인 A씨가 34년 내내 무주택이었으니 만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계산이 된다. A씨는 만 30세부터 무주택 기간을 인정받으므로, 4년만 무주택 기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청약 가점 만점(84점) 중 최대 항목(35점 차지)인 부양가족은 어디까지 인정될까. 부양가족 산정의 기본은 신청자 본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부양가족은 0명일 때부터 5점을 주고 있다. 신청자가 4인 가족이라고 분양가족 ‘4명’을 체크해서는 안 된다. 또 형제와 동거 중일 경우에 등본상 형제가 기재돼 있더라도 부양가족이 아니다. 부양가족은 세대원으로 등재된 사람들이다. 직계존속(나의 부모님, 배우자의 부모님)은 주민등록상 3년 이상 등재돼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 직계 비속은 미성년자 자녀, 30세 이상 미혼자녀가 주민등록상 1년 이상 등재돼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 단 등본에 등록된 세대원이라도 무주택자가 아니라면 제외되므로 이 부분도 유념해야 한다.
재당첨 제한 기간 오류도 많이들 실수하는 부분이다. 청약을 아무런 제한 없이 무한히 당첨가능하게 한다면 소수의 사람이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청약은 한 번 당첨된 사람은 특정 기간 동안 재당첨되지 못하도록 ‘제한’ 기간을 둔다.
재당첨 제한기간은 현재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는 주택,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은 주택규모와 상관없이 당첨자 발표일로부터 10년이고, 청약과열지역에서 공급되는 주택은 7년이다. 그 외 지역 중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서 공급하는 전용 85㎡ 이하 주택 당첨 시 5년, 85㎡ 초과 주택 당첨 시 3년이며, 과밀억제권역 외의 지역에서는 85㎡ 이하는 3년, 85㎡ 초과는 1년이다. 재당첨 제한기간은 청약 전 청약하고자 하는 주택의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과거 주택의 당첨사실로 인한 재당첨 제한 등 청약제한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감정원 청약홈 마이페이지를 통해 상시 확인 가능하다.
신혼부부·다자녀부부 등 특별공급은 평생에 한 번만 당첨될 수 있다. 한 번 당첨이 됐다면 그 다음번에 신청해서 당첨되면 부적격 당첨으로 처리된다.
▶세대주 요건도 꼭 확인해야
세대주 요건도 꼭 확인하자. 투기과열지구나 청약과열지역에서는 1순위 청약자격을 세대주로 제한하고 있다. 배우자나 자녀와 같은 세대원이 청약하면 청약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런데 최근 청약과열지역으로 추가된 지역의 경우 사람들이 “이전에 세대원이었어도 청약을 했다”면서 모르고 세대원으로 청약을 해 당첨된 뒤 부적격 청약으로 걸러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수원은 2·20 대책 전까지는 비청약과열지구여서 유주택 가구원도 청약이 가능했지만 대책 이후 청약과열지구로 분류돼 무주택 가구주가 청약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4월 청약을 받은 영통자이는 조건이 바뀐 것을 모른 이들이 덜컥 당첨됐다. 주부 양 모씨는 “시어머니가 무주택 가구주가 아닌데 옛 조건인 줄 알고 신청했다가 당첨돼 취소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가 수시로 추가되기 때문에 청약을 넣기 전에 우리 동네가 청약과열지구에 해당되는지 꼼꼼히 확인해야한다”고 조언했다.
투기과열지구와 청약과열지역 등 규제지역 내에서 공급하는 주택은 무주택 세대주에게만 일반공급 1순위 자격이 부여된다. 사실상 수도권은 대부분 1순위 해당지역에서 청약이 마감되므로 무주택 세대주 자격은 1순위 청약의 기본 요건이다.
그런데 비조정지역인데 조정지역으로 변경된 경우, 당해 지역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과거처럼 1주택 소유주인데도 청약을 넣는 경우가 있다.
또한 공공분양, 특별공급 모두 주택 세대 구성원(본인 포함 세대원 모두 무주택자)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는데 주택을 소유한 사실을 간과하고 ‘무주택 세대 구성원’ 자격으로 청약을 넣는 경우가 많다.
신혼부부 특공의 경우 혼인신고일부터 모집공고일까지 무주택이어야 하나 ‘2018년 12월 11일 전 기존주택을 처분하여 모집공고일 현재 무주택기간이 2년을 경과한 경우 예외적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 2순위 자격으로 청약이 가능하다. 또한 2018년 12월 11일 이후 공고한 주택에 청약하여 당첨된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갖고 있어도 유주택자로 간주되니 분양권 등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유의하여 청약하여야 한다.
▶당해요건 획득 거주기간 중요
당해요건을 획득하기 위한 거주기간도 중요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16 대책의 후속조치로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및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내 우선공급대상자 거주요건 기간을 현행 1년 이상에서 최소 2년으로 강화했다. 서울, 과천, 광명, 성남 분당 등 투기과열지구뿐 아니라 성남 위례, 하남 미사·감일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모두 해당한다. 당초 수도권 아파트 1순위 거주기간은 1년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과천·서울 등 인기 지역 청약을 노리고 위장전입이 극성을 부린다는 지적이 제기돼 지난 4월부터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및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내 우선공급대상자 거주요건은 최소 2년으로 연장됐다. 만약 이 지역에서 청약을 할 때 2년을 못 채웠다면 1순위 ‘당해’가 아니라 ‘기타’로 분류된다. 만약 해외 출장이 많거나 최근 해외 출국 경험이 있다면 1순위 당해요건 적용 여부를 꼼꼼히 살펴봐야한다.
현행법상 국외 체류 기간이 연속으로 90일을 넘었거나 연중 절반가량인 183일을 넘은 경우 ‘장기체류자’로 분류된다. 이 경우 국내 해당지역에 주민 등록이 돼 있더라도 청약 시에는 기타지역 거주자로 신청해야만 한다. 그나마 이전에는 장기체류자 기준이 연속 30일이었다가 단순 해외 출장만으로도 부적격자가 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규정이 소폭 완화된 것이다. 기타지역 청약은 당첨 확률이 희박하므로, 사실상 국외 체류 기간이 연속 90일을 넘거나 연중 183일을 넘은 경우 그 해는 청약을 포기하는 셈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시점부터 거주요건 2년을 채워야한다는 얘기다.
청약을 준비 중인 직장인 박 모 씨는 “해외 출장이 잦아 몇 번만 다녀와도 국외 거주기간 183일을 넘기니, 청약했다 낭패를 볼 뻔했다”고 했다.
민간분양에서는 1순위 당해자격 요건으로 해당지역 거주 2년 요건을 채우면 되지만, 공공분양은 ‘당해 거주기간’에 따라 점수가 차등화되므로 해외 거주 경험을 더욱 꼼꼼히 살펴봐야한다. 최근 공공분양 마곡9단지에서는 9년 전 어학연수를 다녀온 기간을 ‘당해 거주기간’ 계산 때 빼먹어 탈락한 경우도 나왔다.
이 사람은 “신랑(신청자)이 9년 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었는데 그 기간이 거주기간에서 제외되는 줄 몰랐다. 거주기간 가점이 깎여 (다자녀) 특별공급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다자녀 특공 ‘해당 시도 거주기간’ 배점 기준에 따르면 10년 이상 거주 시 15점, 5년 이상~10년 미만은 10점을 받는다. 이때 해당 지역에 계속 거주해야 하는데 국외에서 계속 90일 초과한 경우, 국외에 거주한 전체 기간이 183일을 초과한 경우는 ‘계속 거주기간’에서 제외한다. 귀국한 시점부터 다시 ‘연속 거주기간’을 산정한다.
특별공급을 준비 중이라면 소득요건 확인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전체 당첨자 중 22%나 부적격 당첨이 쏟아진 과천제이드자이에서도 대부분 탈락자들이 소득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경우였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공공분양인 만큼 소득·재산 기준이 있었는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 대거 당첨이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공공분양은 소득요건과 자산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과천제이드자이 입주자 모집공고를 보면, 생애최초 특별공급은 무주택자면서 소득이 4인 가족 기준 622만원 이하(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의 100%)여야 한다. 또한 건물과 토지를 합쳐 2억1550만원 이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가지고 있는 자동차 가치 역시 2764만원 이하여야 한다. 신혼부부·다자녀·노부부 특별공급은 재산 기준은 동일하되, 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의 120%다.
이때 소득은 모집공고일 기준 받고 있는 세전 소득이며. 만약 육아 출산 휴직 중 청약신청이면 정상급여 기준으로 한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통장 내역을 확인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직장인은 연말정산에서 나오는 금액을 가지고 확인을 하자. 건강보험공단에 보험료를 납부할 때 건강보험료도 급여에 따라서 차등이 되기 때문에 보험료 기준 소득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청약에 대한 규칙과 질서를 담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법 제정 이후 총 140여 차례 바뀌었다. 매년 서너 번씩 바뀐 셈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열 번 넘게 바뀌었다. 약자에 우선권을 준다는 취지, 공정하게 운영해야한다는 주장 등을 담아 청약제도가 계속 바뀌고 있어서 청약 실수요자들은 꼼꼼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소중한 기회를 날릴 수 있다.
올해 개편된 한국감정원 청약홈을 자주 들어가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전에는 금융결제원 청약 사이트인 ‘아파트투유’에서 아파트 청약을 신청할 때 청약자는 거주지, 주택 소유 여부, 과거 2년 내 가점제 당첨 여부 등을 직접 확인해 기입했다. 그러나 청약 업무가 한국감정원으로 이관되고 청약 업무가 청약홈으로 통합되면서 청약홈은 청약자가 본인과 세대원의 주택소유 여부와 기간, 재당첨 제한 여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개편됐다. 예컨대 수요자는 청약홈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도 본인과 세대원의 주택 소유와 관련해 건축물대장,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주택분), 재산세관리대장 등을 한눈에 확인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