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100억원짜리 매물 ‘한남더힐’ 어떤 단지길래… 코로나에도 나 홀로 상승, 올 초보다 16억원 올라
홍장원 기자
입력 : 2020.05.28 16:12:52
수정 : 2020.05.31 07:44:04
코로나19발 경기하락으로 주택 시장이 급락하는 가운데 시세가 수십억원을 넘는 초고가주택 시장에서는 반대로 호가를 더 올려 제시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수백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슈퍼 리치’ 계층을 타깃으로 불황 국면에도 여전히 ‘배짱 영업’이 통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아울러 서울을 대표하는 한남더힐에서 시세 100억원짜리 매물이 등장하면서 한남더힐을 둘러싼 오랜 사업 역사가 또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남더힐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대학교 부지에 건립된 고가 아파트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민간임대아파트로 건립됐다가 분양 전환했다. 2009년 임대 분양 당시 보증금만 최고 25억원에 달했지만 청약 경쟁률이 4.3대1을 기록하고 각종 유명인들이 청약에 참여하는 등 인기를 끈 단지다.
지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으며 서울 시내 초호화 럭셔리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전용 240㎡ 펜트하우스 84억원 거래기록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한남더힐’ 전용면적 240㎡ 펜트하우스가 최근 시세 100억원 가격표를 달고 부동산 매물로 등록됐다. 거래가 성사된다면 한남더힐 거래 사상 금액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지난 1월 전용면적 244㎡ 아파트가 84억원에 거래된 게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이번에 매물에 올라온 펜트하우스와 유사한 평형은 올해 1월 73억원에 계약서가 오간 바 있다. 올해 1월 이후 본격적인 코로나 국면이 펼쳐진 것을 감안할 때 불황에도 시세표를 전 계약 대비 27억원이나 높게 써 붙인 매물이 접수된 것이다. 이번 계약에 정통한 주택거래 업체 임원은 “기존 소유주가 본인이 아파트를 살 때 지불한 금액에 소정의 시세차익을 얹고 내야 할 세금 일부까지 고려해 시세를 정한 것으로 들었다”며 “현 집주인이 초고가 주택을 전담하는 몇 곳의 중개 업체에만 알음알음 팔아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남더힐은 대표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꼽힌다. 뒤로는 매봉산이 있고 앞에는 한강이 흐른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한남더힐은 ‘영구음수(靈龜飮水)’의 길지로 꼽힌다. 신령한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태의 명당을 뜻한다. 그래서 항상 돈이 넘쳐흐르고 재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다수의 연예인과 재벌가가 이곳을 집터로 정하곤 한다. 최근에는 배우 소지섭이 신혼집으로 한남더힐을 선택하면서 또 한 번 인기 몰이를 하기도 했다. 배우 안성기, 한효주, 이승철 등이 한남더힐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가 중에서는 구광모 LG 회장,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등이 한남더힐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이 한남더힐 본인 지분을 공동소유 중이던 부모에게 증여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진은 지난해 10월 이 아파트 전용면적 206㎡ 아파트를 부모와 공동명의로 매입했다. 당시 거래가액은 42억7000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은 당초 이 아파트 지분 35%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공동소유자인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17%, 18%씩 증여했다.
게다가 진은 지난해 7월 한남더힐의 다른 한 채를 더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진의 부모와 진을 통틀어 한남더힐을 두 채나 매입한 셈이다. 진의 한남더힐 사랑이 입증된 셈이다.
지난 4월에는 코로나19 정국을 뚫고 한남더힐이 경매시장에서 낙찰되며 화제를 끌기도 했다. 서울서부지법에서 4월 말 진행된 경매에서 한남더힐 전용면적 173㎡ 4층 물건이 38억8110만원에 낙찰된 것이다. 낙찰자를 포함해 두 명이 경매에 참여했는데 차순위자는 최고가보다 약 1600만원 적은 액수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전국에서 진행된 아파트 중 단연 최고가였다. 당시 감정가(36억4000만원)보다 7% 비싼 가격에 낙찰됐다.
한남더힐은 과거 단국대 부지였다. 단국대가 대학을 한남동에서 경기도 용인시로 이전하면서 땅이 나왔고 이 자리에 아파트를 지어 대박이 난 것이다. 하지만 한남더힐이 지금의 명성을 갖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20년 가까이 표류하며 사업이 여러 번 엎어지기도 했다.
발단은 무려 30년 전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단국대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건국대·동국대·단국대 등 소위 ‘3국대’ 중 하나로 꼽히며 탄탄한 내실을 자랑했던 학교가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결국 남은 것은 알짜배기 땅밖에 없었다. 결국 대학을 용인으로 이전하면서 땅에 아파트를 지어 부채를 털기로 했다. 한마디로 시행을 통해 돈을 벌고 남는 돈으로 용인 땅을 산 뒤 차액만큼을 부채상황에 사용하겠다는 ‘고육지책’인 셈이었다.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렀던 단국대가 대학의 핵심인 ‘서울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이사를 갈 수밖에 없던 급박한 상황이 조성됐던 셈이다.
그래서 1994년 시행사인 세경진흥 주도로 조합아파트 건립사업으로 첫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이 무렵 이 일대가 싹 고도제한구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예상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었다. 애초 목적은 고층으로 지어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었는데, 첫 단추부터 어그러지니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때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됐다면 지금 한남더힐 자리에는 노후화된 일반 아파트가 남았을 것이다.
설상가상 1997년 IMF외환위기가 닥치며 사업은 공중에 흩어졌다. 시행사인 세경진흥은 물론 극동건설 등 시공사, 신탁회사인 한국부동산신탁이 모두 부도를 맞았다. 그러면서 누가 어디에 어떻게 돈을 변제해야 하고, 누가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받아야 하는지 모든 권리관계가 공중에 떠버렸다. 받을 회사도 줄 회사도 모두 사라져버린 셈이니 사업이 복잡하게 꼬인 것이다.
그러다가 2003년 우리은행이 PF를 담당하며 3000억원을 넣기로 했다. 단국대 등과 다시 사업을 추진했지만 복잡한 권리관계를 풀 방도가 없어 결국 무산됐다.
사업이 다시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자 ‘내가 받을 돈이 얼마가 있다’며 권리를 주장하는 법인이 여러 곳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후 2005년에 시행사인 공간토건과 포스코건설이 다시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후퇴를 하고 말았다.
결국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은 2005년 하반기가 되어서였다. 사업이 첫발을 뗀 지 무려 10년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금호건설이 2005년 사업권을 따내며 사업에 시동이 걸렸다. 금호건설은 단국대 용인캠퍼스 신축 공사를 따내고 단국대 부지 터 사업권까지 따냈다. 한마디로 단국대 새집을 지어주고, 헌집에 새 아파트를 지어주는 사업 모두를 따낸 것이다. 이로써 사업 불확실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최초 사업이 부도난 이후 1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복잡했던 권리관계도 상당부분 단순화됐다. 시간이 지나면 채권의 권리가 일부 소멸되고 권리를 주장하던 주체들도 자기 몫을 일부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금호건설은 이 자리에 지금의 한남더힐 모습을 설계했다. 600가구 규모 초고급 빌라 단지를 조성하기로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사업은 또 위기를 맞는다. 이번에는 ‘분양가상한제’였다. 당초 금호건설이 고급 빌라로 콘셉트를 잡은 것은 고도제한 등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수익을 내려면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산임수 천혜의 조건을 살리면 단지에 스토리를 입힐 수 있었다. 마침 유엔빌리지 등의 등장으로 한남동에 ‘고급’ 이미지도 심어져 있을 때였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가 걸리면 이 모든 계획이 원점에서부터 엉키게 된다. 그래서 금호건설과 시행사인 한스자람(단국대)은 분양가상한제를 피할 요량으로 사업을 서둘러 제도 시행이전인 2007년 8월 말에 분양승인 신청을 하게 된다. 이게 받아들여지면 극적으로 분양가상한제를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용산구청이 신청서를 반려하면서 꼼짝없이 분양가상한제 단지에 들어가게 된다.
성수동 트리마제
▶분양가상한제에 임대 후 분양 선택
상한제가 적용될 경우 당초 목표한 분양가보다 훨씬 낮은 3.3㎡당 2000만원 선에 분양해야 했다. 한마디로 사업성이 없었다. 결국 고심 끝에 꺼내 든 카드가 임대 모집형식 분양이었다. 임대로 한 사이클을 돌린 뒤 이후에 분양에 들어가면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대로 아파트를 돌리려면 단국대 부지에 묶인 채권 예고 등기가 풀려야했다. 초기 사업 무산 당시 예금보험공사가 막대한 채권을 떠안았는데, 그 액수가 무려 1280억원에 달했다. 만약 당초 계획대로 분양으로 시작했으면 분양하고 남은 수익금을 예보에 돌려주며 사업을 끌고갈 수 있었지만 임대로는 이 구조를 짜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2008년 11월 법원의 중재로 한스자람과 예보가 합의를 이룬다. 임대 입주자 모집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당시 보증금 25억원에 매월 500만원 가까운 월세를 내야하는 조건인데도 무려 최고 경쟁률 51대1, 평균 4.3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완판됐다. 서울 요지에 지어지는 저층형 초호화 럭셔리라는 장점이 부자들의 구미를 당긴 것이다.
한남더힐이 화제에 오른 것은 2011년 임대 이후 5년이 지나 분양으로 전환하면서다. 이때 분양가가 3.3㎡당 8150만원을 찍어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가장 비싼 전용면적 244㎡ 펜트하우스 분양가가 80억~84억원에 공급됐는데 이는 공급면적 기준 3.3㎡당 8150만원으로, 종전 역대 최고 분양가인 부산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 엘시티 더샵’ 펜트하우스 3.3㎡당 7002만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고급 주택인 ‘갤러리아포레’ 최고 분양가(3.3㎡당 4605만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용면적 243㎡는 3.3㎡당 7400만원, 240㎡는 6500만원에 책정됐다. 전용면적 206㎡와 233㎡는 3.3㎡당 평균 5300만원, 177㎡는 5100만원 선이었다.
이에 앞서 한남더힐은 분양 전환 당시 널뛰기식 감정평가가 문제가 되며 한차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분양전환을 앞둔 2014년 입주자와 시행사 측이 각각 감정평가를 진행했는데 가격이 무려 3배가량 차이가 난 것이다. 입주민 의뢰를 받은 쪽은 감정가를 낮게 책정했고, 시행사 돈을 받은 쪽은 최대한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를 놓고 감정평가액이 엄청나게 차이나자 감정평가의 공신력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당시 감정평가액은 332㎡ 기준 29억2160만원(입주자 측)과 79억9215만원(시행사 측)으로 무려 50억7055만원이나 차이가 불거졌다. 심지어 입주자 측 감정평가를 담당했던 법인의 감정평가사 3명은 ‘한남더힐 분양전환 대책위원회’로부터 6억원대의 금품을 받고 감정평가금액을 고의로 낮춘 혐의로 형사재판까지 넘어갔다.
임대를 살다가 분양을 받으려는 입주민은 최대한 싸게, 기나긴 임대를 끝내고 돈을 회수하려는 시행사 측은 최대한 비싸게 받고 아파트를 거래하려는 심리가 짙게 깔려 감정평가의 근간까지 흔든 것이다.
서울 성동구 소재 갤러리아포레를 비롯한 다른 초고가 아파트에서도 호가를 올려 시장에 내놓는 사례가 속출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56억5000만원에 팔린 갤러리아포레 전용면적 241㎡ 아파트는 최근 60억원이 찍힌 가격표를 달고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지난해 8월 34억5000만원에 거래된 같은 단지 전용면적 195㎡ 아파트는 지난 3월 시세가 2억5000만원 오른 37억원에 계약서가 오갔다. 거래가 체결된 이후 이보다 호가를 1억원 올린 38억원짜리 매물이 등장한 상황이다.
▶성동구 소재 트리마제도 41억원 매물
성수동 소재 트리마제 전용면적 136㎡는 지난해 9월에 37억원에 팔렸는데 최근 41억5000만원을 받겠다는 매물이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33억9000만원에 팔린 전용면적 140㎡ 평형도 최근 가격표를 높게는 36억원으로 올려 붙였다. 정성진 어반에셋 대표는 “초고가아파트를 산 계층 다수는 대출을 전혀 조달하지 않고 집을 사는 경우가 많아 이자부담 등에 쫓기지 않는다”며 “경기와 무관하게 내가 생각하는 가치만큼의 집값은 받아야겠다는 심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들고 있는 현금으로 세금 등을 내는 데 별 지장이 없어 공시가 상승에 의한 세금 인상에 쫓겨 급매물을 내놓는 중산층의 주택 매매 패턴과는 차별화된 흐름이 관측된다는 얘기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초고가주택 역시 불황의 그림자에서 비켜갈 수 없다는 예상도 나온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몇 억씩 뚝뚝 떨어지는 주택 시장 경기 하락이 지속될 경우 한파가 종국에는 초고가주택 시장에도 반영될 것이란 얘기다. 고급주택 분양 업체 미드미네트웍스의 이월무 대표는 “호가를 높인 매물이 나오더라도 실거래로 이어지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며 “경기 위축 여파로 고가주택 수요자가 줄면 시세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