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정비창에 8000가구 등 7만 가구 공급, 노른자위 용산 ‘들썩’ 서울 집값 잡을 수 있나?
추동훈 기자
입력 : 2020.05.28 16:08:17
수정 : 2020.05.28 16:08:42
서울시내 아파트 공급물량 부족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서울 노른자 땅인 용산에 8000가구 규모의 미니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내놓으며 공급물량에 대한 갈증을 씻어내고자 승부수를 던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도심에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특히 용산의 상징성 등을 따져봤을 때 그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 강남권 재건축 등 재건축 활성화에 대한 신중론을 견지하며 아쉬움을 남겼다는 평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6일 코레일의 서울 용산역 철도 정비창 부지에 주택 8000가구 등 향후 서울에 7만 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이 담긴 ‘수도권 주택 공급 기반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기업을 참여시켜 활성화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저소득층 조합원(집주인)의 분담금이 부족할 경우 LH·SH가 대납하고, 중도금과 이주비 부담을 완화해 주는 등 당근을 던졌다. 또 세입자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보장해 주고, 영세 상인에게는 국비로 공공임대상가 등을 지어 제공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도심 내 공장 이전 부지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해 1만5000가구, 국·공유지 등 도심 내 유휴 부지를 추가로 확보해 1만5000가구를 공급해 총 7만 가구를 3년 내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 용산 등 7만 가구 공급 계획 발표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포함됐다 좌초된 용산 정비창 부지(51만㎡) 개발 계획이 가장 눈에 띈다. 서부이촌동 일대까지 묶어 56만6800㎡의 땅에 5000여 가구 최고급 주택을 조성하고 아시아의 중심이 될 국제업무지구를 조성하겠다는 당찬 계획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금난 등으로 2013년 백지화됐다. 그 이후 수년간 허허벌판의 땅으로 버려졌던 정비창 부지 일대는 이번 정부 계획을 통해 8000가구 규모의 주택 공급 부지로 재변모하는 셈이다. 2018년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 마스터플랜’을 구상하며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주목을 받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과열 우려에 무기한 보류한 바 있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계획에 의하면 3000가구 늘어난 8000가구의 주택이 들어선다. 또 일부 오피스텔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파트를 짓게 된다. 이 중 5000~6000가구는 일반 분양, 나머지 2000~3000가구는 임대주택으로 공급될 계획이다. 8000가구로 그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임대주택이 상당부분 포함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지난 2018년 말 과천 택지 공급량이 7000가구인 것을 고려하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미니 신도시’가 들어서는 셈이다.
국토부는 2021년 말 용산 정비창 도시개발사업 구역 지정을 마치고 2023년 사업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입주자는 2023년 말부터 모집한다. 한 전문가는 “공급 정책의 핵심은 속도”라면서 “용산 정비창은 과거 한 차례 사업이 무산된 이력도 있어 사실 시장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인 만큼 정부가 신속하게 구역을 지정하고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업 진행 속도에 따라 시장에 주는 공급 시그널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우려를 예상한 듯 정부에서는 해당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단속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14일 서울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와 인근 재건축·재개발 사업 구역이 5월 20일부터 내년 5월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는 것. 이 지역에서 일정 면적 이상의 주택과 상가, 토지 등을 거래할 경우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주거용지의 경우 2년간 원래 용도대로 이용해야만 한다.
정부세종청사에서 14일 열린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용산 정비창 부지(0.51㎢)와 인근 한강로동, 이촌2동(서부이촌동)의 개발 초기 단계 정비사업 구역 13곳 등(총 0.77㎢)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5·6 공급대책의 후속대책 성격으로 풀이된다. 국토부는 “부동산 매수심리 자극이 특히 우려되는 초기 단계 재건축·재개발 구역으로서, 조합원 지위 양도가 허용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13개 정비사업 구역 가운데 재건축 추진 구역 2곳은 이촌동 중산아파트 구역과 이촌 1구역이다. 재개발 구역 11곳은 한강로3가 정비창 전면 1·2·3구역, 한강로1가 한강로·삼각맨션 구역, 한강로2가 신용산역 북측 1·2·3구역, 한강로3가 용산역 전면 1~2구역, 한강로2가 국제빌딩 주변 5구역, 한강로3가 빗물펌프장 구역이다. 대부분이 주거지역이고 일부 상업지역이 섞여 있다.
해당 지역에선 주거지역의 경우 18㎡, 상업지역은 20㎡를 초과한 토지를 취득할 때 사전에 토지이용 목적을 명시해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년은 허가받은 목적대로 이용해야 한다. 주택이나 상가를 구입할 경우 최소 2년 이상 실거주하거나 영업을 하는 등 2년간 매매나 임대가 금지된다. 이들 구역 내 토지면적이 대지면적 18㎡ 이하 주택이나 20㎡ 이하 상가 등과 같은 소규모 부동산은 토지거래허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동네 호가 들썩, 경매 등 입질
곧바로 토지허가제 도입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안은 15일 공고돼 20일 발효됐다. 지정 기간은 내년 5월 19일까지 1년이다. 김영한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용산 정비창 부지 인근 정비사업장 주변의 지가상승 기대심리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주택공급 확충을 위해 추진되는 다른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사업 규모, 투기 성행 여부,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해 허가구역 지정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최중심부 땅에 주택 공급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은 시장에도 곧바로 반영됐다. 용산의 미니신도시 조성 소식에 투자자의 관심이 쏠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촌동 아파트 단지가 관심 대상이다.
이촌동 소재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이촌동 대림아파트 전용 59㎡ 평균 호가는 11억원 선으로 올 초에 비해 5000만원 올랐다”며 “이번 호재로 추가 상승 여력이 생겼다”고 했다. 전통적 부촌인 동부이촌동도 수혜를 볼 전망이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촌동 한가람아파트에서만 4건의 손바뀜이 일어났다. 한가람아파트 전용 84㎡는 평균 16억원에 거래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지난해 11월(17억5000만원)보다 1억5000만원가량 내렸다. 하지만 이들 물건도 자취를 감췄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서울 금싸라기 땅에 임대주택을 대거 넣는 것에 대한 주민 반발도 적지 않다.
한남동 소재 공인중개사는 “용산 정비창 부지 개발은 단기적으로는 호재,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볼 수 있다”며 “임대주택 확대 정책으로 한남동에서 향후 재개발되는 곳도 임대주택 비율이 최대 30%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매 시장도 요동쳤다. 13일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날 서울 서부지법에서 열린 용산구 청파동1가 근린주택에 대한 경매에 무려 42명이 응찰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3종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 이 주택은 대지면적 95.9㎡, 건물면적 273.4㎡의 지상 3층짜리 빌딩이었다. 감정가는 9억143만원이었지만 응찰자가 대거 몰리면서 14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가 감정가의 1.6배로 뛴 것이다. 상가가 아닌 근린주택이라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1층에 새마을금고라는 안정적인 임차인이 있어 인기가 높았다. 아울러 전날 서부지법에서 1회 경매 입찰이 진행된 서울 용산구 신계동 용산이편한세상 전용면적 124㎡도 감정가(16억6000만원)보다 1550만원 높은 16억7550만원에 낙찰됐다. 같은 날 1회 경매 입찰이 열린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남산대림아파트 전용 84㎡(2층, 감정가 12억5000만원) 물건은 유찰됐지만, 2회차 경매 입찰에 부쳐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월드메르디앙 전용 128㎡(5층)는 최저가(13억1200만원)보다 소폭 높은 13억1311만원에 낙찰되며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21일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초고가 아파트인 한남더힐 전용 177㎡(4층)가 올해 전국에서 진행된 법원경매 기준으로 최고 낙찰가인 38억811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한남더힐이 법원경매에서 낙찰된 것도 처음이었다.
오명원 지지옥션 연구원은 “5월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된 용산 법원경매에 투자자와 수요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용산 개발 재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앞으로 투자·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릴 것”이라 예상했다.
정부가 투기방지 대책 일환으로 용산 정비창 부지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증여·소송·경매’ 등을 통해 제도를 교묘하게 피해 나가는 꼼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이 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꼼수 투자에 대한 이슈도 제기됐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거래 당사자 간 합의 이후, 용산구청에 계약내용 및 토지이용계획 등이 첨부된 허가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구청에서 신청내용 검토 후 15일 이내 신청인에게 허가증을 교부하거나 불허가 처분을 하게 돼 있다. 즉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허가를 받고 나서야 가능하다. 그러나 증여·소송·경매는 허가 대상이 아니어서 토지거래구역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제도적 허점을 노린 꼼수 거래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허위 경매를 이용하면 토지거래허가제를 피해 거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근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대여금 공증을 받은 후, 해당 물건을 경매에 붙여 낙찰하는 방법 등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매매계약을 허위로 먼저 체결할 수는 없지만, 돈을 빌려준 것처럼 승소 판결을 받은 후 재산에 강제 집행하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넘겨오는 등 소송을 이용한 허위거래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 역시 “증여의 경우 지금은 자금 흐름이 투명화 돼있어 편법거래로 이용하기에 쉽지 않지만 경매는 좀 다르다”라며 “실질적으로 합법이기에 허위 경매 사례를 잡아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편법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산 청약에 도전하기 위한 전입신고도 이어지면서 이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용산에 8000가구 규모의 미니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거주기간 가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는 해당 지역에서 2년 이상 거주해야 청약 1순위 자격이 주어진다. 분양 시점이 2023년 말이라고 가정하면 지금 이사해도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거주기간 가점제는 해당지역 거주기간에 따라 가점을 차등 부여하는 제도로 현재 국토부가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아 검토 중이다. 실제 지난 10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현행 청약제도를 개선해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자는 “현재 84점인 청약 가점에 거주기간 가점 16점을 추가해 100점 만점 제도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청약 가점은 무주택기간(32점)과 부양가족수(35점), 청약통장가입기간(17점) 등 총 84점 만점이다. 서울 분양은 전용 85㎡ 이하 물량 100%를 가점제로 공급해 가점이 높을수록 새 아파트에 당첨될 확률이 높다. 8000가구 대부분은 아파트로 공급될 예정이며 공공임대물량이 30%가량 될 것으로 계산해보면 5600가구가 분양되는 만큼 치열한 청약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구역 지정을 마치고 2023년 사업승인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도심 알짜 입지에 대규모 분양이 예정됐다는 소식에 수도권·지방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하루 빨리 서울로 거주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용산 정비창 부지에 공급되는 아파트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서다.
▶너도나도 청약 도전
거주기간 가점제 도입 청원도
이 청원자가 제안한 ‘거주기간 가점제’는 이미 국토부에서도 검토 중인 사안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지난달 초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는 국토부가 제출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해당지역 거주기간 요건을 가점제로 넣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부대권고’를 달았다. 특히 현행 청약제도에서 해당지역 거주기간 요건은 주택을 우선 공급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는데 그치고 있을 뿐 점수화되고 있진 않다. 하지만 거주기간이 가점제 대상이 되면 한 지역에 오래 거주할수록 해당 지역 아파트를 청약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규개위의 권고 취지도 이와 같다. 현재 국토부는 거주기간을 가점제 대상으로 넣을지를 두고 검토 중이다. 거주기간이 가점제 대상이 되면 거주기간을 구역별로 나누고 그에 따라 가점이 부여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거주기간 가점제는 먼저 타당성 조사부터 시작해 필요성, 효과 등에 대한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아직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 말겠다고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