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보험 업계에서도 고령자나 유병자(이미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험 업계의 최근 고민은 과거만큼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보험을 1~2개 정도 갖고 있다. 새롭게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는 젊은 층을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보험의 미래 시장인 젊은 층 인구가 매년 줄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보험에도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대면 접촉을 싫어하는 젊은 층들의 특성은 보험 종사자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보험은 상품 특성상 필요에 의해서 가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만기가 되면 원금에 이자를 붙여서 받을 수 있는 은행 상품과 달리 저축성 보험을 제외한 보장성 보험들은 본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가 없다보니 보험상품 가입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보험설계사들이 사람을 꾸준히 만나 설득하는 과정에서 보험 가입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젊은 층들이 보험을 외면하면서 보험 업계가 다시 주목하는 것이 고령자와 유병자다. 과거에 보험을 가입했던 사람들의 경우 만기가 60세, 70세, 80세 정도로 지금보다 짧은 경우가 많았다. 만기 60세인 보험의 경우 정작 이런저런 질병이 많이 발생하는 시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고령층을 위해서 100세 또는 120세 만기를 내걸고 보험사들이 상품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또 이미 한 차례 질병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보험사들에게는 좋은 고객이다. 이들 유병자들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험가입이 아예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보험사가 환영하는 고객이 됐다. 해당 질병과 관련된 부분만 보장에서 제외하고 질병과 무관한 부분을 보장하는 형태로 보험 가입이 진행되고 있다. 보험설계사도 이러한 고객을 반긴다. 질병을 한 차례 앓아봤기 때문에 보험의 고마움을 알거나 보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시중은행 PB센터 고객의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이다. 고령층과 유병자가 상대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때 넉넉히 지갑을 열 수 있는 계층이라는 얘기다.
▶고령화 진행으로 늘어나는 치매환자
한국신용정보원이 최근 펴낸 ‘치매보험 가입현황을 통해 본 고령층 보험시장의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화 진행으로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인 치매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대수명 증가와 출산율 저하로 2060년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은 4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기준으로 노인인구 비중은 아직 15% 수준이다. 이에 따라 국내 치매환자도 늘어나 2060년에는 323만 명으로 예상된다. 연간 치매관리 비용 또한 106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치매환자 1인당 비용으로 나누면 치매 중증도에 따라 1500만원에서 3300만원 사이가 된다. 정부와 가계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급격히 늘어나는 치매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17년 9월 ‘치매 국가 책임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중증치매환자의 의료비 부담비율을 최대 60%에서 10%로 낮췄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이 커지면서 보험사들도 앞다투어 치매보험 판매에 나서고 있다.
치매보험이란 치매로 진단받았을 때 진단비와 간병비 형태로 보험금을 지급받는 상품이다. 치매 관련 전문의가 실시하는 인지기능·사회기능 정도를 측정하는 CDR척도에 따라 치매로 진단받은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보험회사로부터 진단비와 간병자금, 생활자금의 형태로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치매를 단독으로 보장하는 전용상품도 있고, 종신보험이나 통합보험 등에 치매 관련 담보가 특약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상품도 있다.
지난해 상반기 신규 치매보험 가입건수는 136만 건으로 전기 대비 214%가 증가했다. 특히 경증 치매진단을 보장하는 치매보험 상품은 전기 대비 455%나 폭증했다. 신규 가입건수의 증가로 보유계약 또한 크게 늘어 지난해 상반기 치매보험 보유계약건수는 462만 건에 달한다. 지난해 가입한 계약이 전체 보유계약의 29%를 차지할 정도다.
치매보험 가입자를 살펴보면 여성과 고령자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단독형 상품의 경우 여성 가입자 비중이 68%에 달했다. 연령별 가입현황도 단독형 상품은 50대가 41%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27%로 2위, 40대가 21%로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치매보험 가입자의 평균 보험 보유 개수와 월납보험료가 미가입자에 비해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치매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의 경우 전반적으로 보험에 대해 잘 알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다는 설명이다.
▶65세 이상 의료·간병비 3228만원
치매와 같이 장기 간병이 필요한 질병은 긴 투병기간으로 인한 의료·간병비 등 경제적 부담은 물론 가족갈등과 같은 경제 외적 부담도 야기한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연령의 투병기간은 평균 6.1년으로 그동안 지출되는 의료·간병비는 3228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병기간 2년 미만의 경우 2441만원, 투병기간 10년 이상은 4435만원에 달한다. 투병기간이 길어질수록 직접 의료비(입원비·외래진료비)의 비율은 줄어드는 반면 약제비와 건강기능식품·건강보조기구의 지출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다.
치매는 증상 정도에 따라 ‘중증치매’와 ‘경증치매’로 나뉜다. 치매관련 전문의가 실시하는 CDR척도에 따라 치매를 측정하는데 0~5점 사이에서 점수가 높을수록 정도가 심하다. 중증치매는 CDR척도 3~5점, 경증치매는 1~2점에 해당된다. 중증 치매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생활이 어렵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경증치매는 일상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는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중증치매환자의 비율은 2.1%에 달할 정도로 극히 낮다. 즉 중증치매만 보장하는 상품에 가입한 경우에는 실제로 치매가 발생하더라도 보장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험상품 내용을 꼼꼼히 살펴서 경층치매도 폭넓게 보장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치매는 젊었을 때보다는 65세 이상 노년기에 주로 발생한다. 나이가 들수록 발생할 위험이 커지는 질병이고 특히 80세 이후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중앙치매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환자 가운데 80세 이상이 절반을 넘는 60%를 차지한다. 따라서 치매를 보장받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면 80세 이후도 보장하는 상품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보장기간이 80세 이하인 경우라면 정작 80세가 넘어서 치매에 걸리면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되는 상품의 경우 100세를 넘어 110세까지 보장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치매보험은 간병비까지 보장
최근 출시된 상품을 보면 생명보험사의 경우 치매진단 시 일정 금액을 주고 이후 간병비를 일정 기간 지급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한화생명의 ‘간병비 더해주는 치매보험’의 경우 주계약 1000만원을 기준으로 경도 치매 진단자금 500만원, 중등도 치매 진단자금 1000만원, 중증치매 진단자금 2000만원을 보장해준다. 또 중증치매를 위한 간병자금으로 매월 총 180회를 생존 시까지 지급해준다. 교보생명의 ‘교보가족든든치매보험’도 한화생명과 상품 구조가 유사하다. 대신 경도치매 보험금이 100만원으로 낮고, 중증치매 생활자금이 매월 100만원씩 36회까지만 보증 지급된다.
미래에셋생명의 ‘치매보험 든든한 노후’는 특약을 활용하면 중증치매에 걸렸을 때 만기와 상관없이 생존 기간 동안 매월 최대 100만원을 생활자금으로 받을 수 있다. 신한생명의 ‘신한간병비받는간편한치매보험’도 특약을 통해 매월 간병비를 100만원 종신 지급받을 수 있다. 또 보험료 납입기간 중 해지환급금이 없는 대신 일반형보다 보험료가 저렴하고 납입기간이 지나면 해지환급금이 동일해지는 해지환급금 미지급형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손해보험의 경우 삼성화재가 ‘유병장수 100세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치매·건강보험을 내놓고 있다. 이 상품은 최대 100세 만기까지 보험료 변동 없는 비갱신형이다.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의 진단비, 치매간병 생활자금 등 치매보장을 강화했다. 현대해상의 ‘간단하고편리한치매보험’은 유병자도 가입 가능한 치매전용 간편신사보험이다. 치매 초기 단계인 경도, 중등도 치매도 폭넓게 보장하고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병 보장 담보까지 있다. 50세 남자, 20년납, 90세 만기 기준으로 보험료는 월 5만원 수준이다. KB손해보험의 ‘KB The간편한치매간병보험’은 가입 연령이 25세로 낮아진 것이 특징이다. 또 간편 고지를 통해 2가지 질문 ▲1년 내 치매 또는 경도 이상의 인지기능 장애 진찰·검사 여부 ▲5년 이내 치매 관련 질병 여부에 해당되지 않으면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유병자들도 쉽게 가입할 수 있다.
▶80세 고령자도 가입 가능한 보험 속속 출시
치매보험 외에 유병자와 고령자 등 시니어 층을 대상으로 한 보험상품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한화생명이 올해 초 출시한 ‘한화생명 간편가입 100세 건강보험’은 간편심사를 통해 저렴한 보험료로 고혈압과 당뇨 환자는 물론 80세 고령자까지 가입 가능한 상품이다. 이는 상해사망을 주계약으로 실속형·기본형·고급형·자유설계형으로 가입할 수 있다. 최소보험료 3만원 기준을 충족하면 고객이 원하는 특약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 내게 맞는 맞춤형 보험설계가 가능한 DIY 보험이다.
이 상품은 기존 간편가입보험에 부가 가능했던 암·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입원·수술 등 5개였던 특약 구성을 35개로 다양화했다. 최근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는 대상포진과 통풍·뇌혈관질환, 당뇨 및 합병증·인공관절·관절염·백내장·녹내장 수술자금 등 다양한 질병들도 특약 가입을 통해 보장할 수 있다. 가입연령은 만 30~80세로 40세 남성형 실속형으로 20년 납입할 경우 특약 등의 선택에 따라 월 보험료는 3만5000원 수준이다.
삼성화재도 올해 초 다이렉트 사이트를 통해 유병력자를 대상으로 한 실손의료비보험을 출시했다. 과거에 치료 이력이 있거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고객들도 가입할 수 있다. 만 65세까지 가입할 수 있고 보험료가 설계사 상담 때보다 10.4%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가입 후 매년 갱신을 통해 보험료가 변동될 수 있고 3년마다 재가입 여부를 결정해 최대 10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삼성화재 다이렉트 유병력자 실손의료비보험은 3가지 기준에만 부합하면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간편심사 보험이다. 간편심사 기준은 ▲3개월 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 소견 여부 ▲2년 내 입원·수술·7일 이상 치료 여부 ▲5년 내 암(백혈병 제외) 진단·입원·수술·치료 여부 등이다. 다만 유병력자 실손의료비보험은 일반 실손의료비보험과 보장 내용에 차이가 있어 가입 시 주의가 필요하다. 실손의료비보험의 자기부담금이 최소 10%인 반면 유병력자 실손의료비보험의 자기부담금은 30%이다. 또한 유병력자 실손의료비보험은 처방조제비와 비급여 추가 특약은 보장에서 제외된다.
NH농협손보는 유병자와 고령자도 두 가지만 고지하면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투패스초간편건강보험’을 선보였다. 이는 고지기간이 최대 1년으로 짧아져 과거 병력이 있는 고령자나 유병자도 쉽게 가입할 수 있다. 고지항목은 ▲3개월 이내 입원·수술·추가검사 등에 대한 의사소견 여부 ▲1년 이내 질병 또는 상해로 입원·수술 여부만 알리면 된다. 특히 납입면제제도를 도입해 가입 고객이 암(유사암 제외)·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 진단 시 보험료 납입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상품은 종합형 건강보험으로 고객은 암·뇌질환·심장질환 등 3대 질병뿐 아니라 상해·질병 입원·수술 등 다양한 담보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암과 급성심근경색 진단 시 최대 2000만원을 보장하고, 뇌 관련 질환도 보장을 강화해 뇌출혈 진단 시 최대 4500만원까지 보장한다. 만 80세까지 가입할 수 있고 10년, 15년, 20년, 30년 만기 갱신형으로 100세까지 운영된다.
고지의무사항을 하나로 줄인 보험도 출시됐다. 고령자와 유병자들을 최대한 고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NH농협생명이 출시한 ‘하나만묻는NH암보험’은 80세까지 가입할 수 있고 유병자도 하나의 고지사항으로 100세까지 보장이 가능하다. 보험 가입금액은 500만원에서 최대 2500만원까지 500만원 단위로 가입할 수 있다.
이 상품은 5년 이내 암·제자리암·간경화 치료사실만 없을 경우 고령자와 유병력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의 폭을 대폭 확대했다. 암보장개시일 이후 일반 암 진단 시 2000만원을 보장하며, 유방암과 남녀생식기암(전립선암 제외)도 일반암과 동일하게 보장한다. 가입은 순수보장형과 건강관리형 중 선택할 수 있으며 건강관리형 가입 시 일반 암 진단 확정 없이 보험기간 만기까지 생존 시 100만원의 건강관리자금을 지급한다.
보험료는 순수보장형의 경우 최초계약, 15년 만기, 전기납, 월납의 경우 40세 남자 1만5700원, 40세 여자 1만8800원이다. 동일 기준으로 건강관리형 선택 시 40세 남성 2만1100원, 40세 여성 2만42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