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신흥국 증시에도 온도차가 뚜렷했다. 중국이 연초 달리다 미·중 무역 분쟁의 재점화로 한동안 부진했다면 러시아는 오일 가격 상승의 덕을 톡톡히 봤다. 브라질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히며 증시가 신고가를 계속 경신했지만 베트남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일단 올해 신흥국들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은 대체로 밝은 편이다. 베트남은 일단 고성장 환경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증시 모멘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고 러시아는 원유 생산 쿼터 확보가 증시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 역시 성장 잠재력을 증명할 것으로 보이고 인도도 비싸지만 중장기적으론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역시 IT주를 중심으로 추가 상승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트남과 인도가 지난해 발휘 못했던 뒷심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올해 신흥국 주식 투자 메리트의 가장 큰 이유는 위험 자산 선호 현상이다. 미·중 간 1단계 무역협상이 합의되고 미국 경제가 침체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연초 증시를 흔들었던 미국과 이란의 긴장관계도 해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완화적 스탠스를 이어감에 따라 달러 강세가 멈추고 신흥국의 경기 선행지수는 반등하고 있다. KB증권은 1분기 평균 환율이 6.9위안까지 하락할 것으로 봤다.
▶로컬 통화 강세에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하까지 기대되는 신흥국
신흥 통화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에서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계속하며 경기 회복을 위한 완만한 통화정책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기가 시장이 예상하는 6% 내외의 완만한 성장세를 연출한다면 지난 2년간 신흥국에서 나타난 중국발 디스인플레이션은 점차 해소되고 이때 경기 회복에 기인한 인플레이션은 신흥증시 투자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가별 성장 기여도도 신흥국 투자 매력을 부각시킨다. 오히려 올해는 선진국보다 인도나 러시아 등 신흥국의 성장 기여도가 두드러진다. 인도, 남아공, 브라질 등의 2020년 주당순이익(EPS) 전망 컨센서스가 개선되고 있어 가격 부담이 있는 미국 투자의 대안이 되고 있다.
▶신흥국에 몰리는 글로벌 기관투자자
글로벌 기관투자자들도 신흥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아시아(일본 제외) 주식펀드와 주식 상장지수펀드(ETF)는 작년 11월부터 투자자금이 유입됐으며 신흥국 주식 ETF로도 작년 11월부터 자금유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신흥국 ETF인 VWO(Vanguard FTSE Emerging Markets Index Fund ETF), EEM(iShares MSCI Emerging Markets ETF), IEMG(iShares Core MSCI Emerging Markets ETF), EMIM 네 개의 ETF에 몰린 자금은 현재 250억달러에 육박한다. 미중 무역 분쟁에 대한 긴장이 재발하기 직전인 작년 7월 수준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신흥국 주식 비중도 늘리고 있으며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중장기적으로 신흥국 주식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 신흥국 주식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CPPIB는 2010년부터 꾸준하게 신흥국 주식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 같은 기간 전체자산에서 신흥국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서 10.1%로 늘어났으며, 자국 주식인 캐나다 주식 비중은 11.4%에서 2.3%로 줄어들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신흥국 주식 ETF로의 자금 유입 규모도 최근 1개월간 한 주 10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IT가 증시 이끌어갈 중국
신흥국의 대표주자인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시가 상승세다. 특히 최근엔 중국 주요 경제 지표들이 경기 저점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대미 수출이 회복되고 있으며 자동차 판매 부진도 완화되고 있다.
KB증권은 중국 증시가 무역 합의로 하방 위험이 완화되었고 경제 공작회의에서는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인프라 투자 자금 조달 채널이 확대된 것이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신경제 중심의 기업이익 상승세로 지수 간 디커플링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라 봤다. 특히 작년은 성과주가 크게 반등했는데 올해 역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작년 소비 및 IT 지수는 연초 대비 72% 급등했다. 반면 중국 전체 A주 시가총액의 53%를 차지하고 있는 금융, 부동산, 경기순환 업종의 주가는 성장주를 따라가지 못했다.
심정훈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중국 성장주가 가치주를 상회한 것은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해 이익가시성이 높은 기업을 선호했기 때문”이라며 “2020년 미중 무역 분쟁 추가 합의 타결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성장주 주가 성과는 올해도 가치주를 상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미중 무역 분쟁을 계기로 내수 시장 촉진과 중국 혁신 기술 확보에 집중하는 것도 성장주의 모멘텀 중 하나다.
다만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는 상반기에는 높은 정책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가치주가 그간 상승했기 때문에 KTB투자증권은 올해 중국A주의 성장주는 상저하고, 가치주는 상고하저의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 투자를 할 경우엔 어떤 지수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다. 지난해 상해종합지수는 연초 대비 20%, 심천성분지수 41%, 상해A주 성장지수 28%, CSI300지수는 33% 상승했다. 상해종합지수가 다른 지수에 비해 성과가 낮은 이유는 성장주 외에도 금융, 경기순환, 부동산 업종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주에 투자하고 싶다면 성장주 비중이 높은 지수에 투자해야 한다. KTB투자증권은 올해도 주당순이익(EPS) 성장이 높은 성장주가 시장을 이끌어가면 높아진 밸류에이션을 소화할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저하고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1단계 무역 합의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기의 펀더멘털 회복은 더딜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정책 대응 또한 단기 성장에서 중장기 구조개혁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강도가 약화되고 있으며 선진국 수요 회복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수출의 탄력적인 회복이 쉽지 않다. 기업이익 둔화와 가계 구매력 정체도 문제다.
▶베트남 성장 잠재력은 쾌청
베트남은 올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작년 말의 증시 부진을 회복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베트남 증시는 거의 제자리걸음했다.
2020년 베트남 정부는 경제성장률 6.8%, 수출 증가율 7%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수 경기 또한 높은 생산 인구를 발판 삼아 여전히 견고한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베트남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9.2%로 지난해 58.4%보다 낮아진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돼 부채 리스크가 낮다”고 평가했다.
국가 차원에서 건전성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주원인이었던 부실채권 관리에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무디스는 베트남 정부의 채무변제 지연 리스크를 근거로 12월 초 베트남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다만 VN지수의 추세적 상승은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금융투자는 향후 NN지수는 높아진 밸류에이션 매력을 반영해 최근 급락분 저점인 940~950선 사이에서 저지선을 형성할 것으로 봤다. 이재선 하나금융연구원은 “전고점인 1020포인트 돌파를 위해선 자본시장 체질 개선이 여전히 선결과제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VN지수가 MSCI EM 지수 편입의 사전 단계가 될 수 있는 증권법 개정안 발효는 이르면 내년 초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증시 호재로 작용할 시점은 하반기는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증시의 최근 조정은 은행 건전성 향상을 위한 정책발표에 따른 단발성 이벤트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베트남 증시의 상승세를 이끌었던 대형 은행주들이 베트남 중앙은행이 은행권 건전성 강화를 위해 시행규칙(Circular 22)을 발표하자 조정을 받은 것이다. KB증권은 단기 관점에선 패시브 전략을 추천하며 외국인 매매 불가 종목이 포함되어 있는 VN30지수가 포함되어 있는 ETF 투자를 제안했다.
▶유가 상승에 희비 엇갈리는 인도와 러시아
인도는 시민권 개정안 반발 시위나 최근의 유가 상승세, 높아진 밸류에이션이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향후 유가가 급등하지 않아도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신흥국에 대한 투자심리는 약화될 수 있다. 유가 상승에 대한 보조금 지급 부담과 원유 수입 비용 증가에 따른 재정 및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 정치 불확실성과 함께 두드러질 수 있다. 다만 인프라 투자계획이나 기업 실적 추정치 상향으로 증시 하단은 지지될 것으로 봤다.
반면 러시아는 유가 상승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증시에 호재다. 러시아 역시 올해 연초 신고가를 기록한 나라다. 10월부터 증시가 줄곧 상승세를 달려왔다. 유가 상승에 따른 기대감이 증시를 떠받칠 것으로 보인다. OPEC+회의에서 추가 감산을 결정했고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유가 가격 하락 리스크가 낮아졌다.
KB증권은 OPEC 정례회의에서 OPEC외 국가들도 생산량 쿼터 산정 시 가스 콘덴세이트를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생산여력을 확보했고 이란 사태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점도 단기 투자심리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너무 달려온 브라질, 밸류에이션 부담 남아
브라질 증시는 연초부터 신고가를 경신한 5개국 중 하나다. 외국인 자금들이 대거 빠져 나가는 와중에도 작년 보베스파 지수 상승률은 31%로 전 세계 3위였다.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양호한 소비심리,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 공조 등의 긍정적 재료에 주목하며 주식을 매수했다. 여기다 무역 분쟁의 반사이익, 연금개혁안 통과에 따른 대외신인도 개선, 미국의 관세 부과 계획 철회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다만 현재 브라질 증시는 이미 호재를 선반영한 상태라 추가 상승 여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평가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의 12개월 선행 PER은 최근 5년 대비 10.8% 할증되어 있고 12개월 주가순자산비율 기준으로는 37% 할증된 상태를 보여 포트폴리오 내 비중 확대를 고려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에 도달하면 그동안 브라질이 누려왔던 반사이익 역시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이 그동안 브라질 증시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했지만 최근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소강과 글로벌 공급과잉 규모를 감안하면 유가상승폭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경기 회복세가 투자 심리를 이끄는 한편 가격 부담이 커지는 구간이라 비중 확대 전략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KB증권은 조언했다.
중국 근로자들이 지난 장쑤성 롄윈강 항구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수출품을 선적하고 있다.
▶증시 상승에 신흥국 펀드 수익률도 호조
주요 신흥국들의 증시 상승과 로컬 통화 가치 강세 덕분에 글로벌 신흥국 펀드들은 최근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래에셋e-오션브릭스인덱스증권자투자신탁은 3개월간 16.1% 성과를 냈으며 신한BNPP더드림러브증권자투자신탁 역시 15.4% 성과를 냈다. 슈로더이머징위너스증권자투자신탁도 3개월간 14.3% 수익률을 거뒀다.
글로벌신흥국 펀드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 펀드는 중국 펀드다. KB통중국4차산업증권자투자신탁은 3개월간 22.1%, 1년간 46.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의 중국 IT주와 TSMC 등의 반도체주 등의 주가 급반등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하나UBSChina증권자투자신탁 역시 18.58%의 수익률을 작년에 거뒀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글로벌 신흥국 펀드는 최근 1년간 19.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재작년의 부진을 대부분 만회한 것이다.
6개월 수익률은 7.2%였다. 중국 펀드의 최근 1년간 수익률이 32.7%였으며 인도 펀드는 14.24%였다. 러시아 펀드가 1년 수익률이 35.96%로 가장 높았다. 다만 높은 변동성과 위험자산 기피 현상, 차익실현 때문에 신흥국 펀드들은 자금유출이 심했다.
중국 펀드는 1년간 1조1345억원의 자금유출이 있었다. 베트남 펀드만 거의 유일하게 신흥국 중 자금이 유입됐다. 1년간 110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