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에도 가격상승세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최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입에서 ‘매매허가제’ 시행 가능성까지 흘러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강 수석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규제의지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규제에 치여 갈 곳 잃은 부동자금은 대안투자처를 찾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1.25%로 추락하며 예·적금 등 은행 상품은 사실상 투자가치를 상실한 상황이다. 저금리에 레버리지를 통해 추가수익을 내려는 투자자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대외환경 악화로 환율과 채권시장 역시 급등락을 반복하며 투자에 나서기가 망설여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가 또 하나의 투자 대안으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리츠(REITs :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부동산 관련 증권 등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배당을 통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부동산 간접투자방식이다.
▶5000원부터 투자 가능해
대형 빌딩·백화점 등에 투자
그동안 국내 시장에 선을 보인 리츠들은 부자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대부분이 소수 자산가의 돈을 모아 부동산 및 부동산 관련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형(또는 폐쇄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모형 리츠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대중적인 투자 상품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리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주식 시장에 상장해 누구라도 개별종목처럼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장 리츠’는 물론 주식 시장 상장을 조건으로 내건 ‘공모형 리츠’가 대거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선보인 공모형 리츠는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쇼핑센터를 기본자산으로 하거나 익히 알려진 서울 핵심 업무지역의 유명 오피스빌딩을 기초자산으로 편입해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부동산 관련 재간접 자산에 투자하는 리츠 등 이전보다 다양한 형태의 리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관투자자와 큰손으로 불리는 거액 자산가들은 물론 일반 개미 투자자들의 자금까지 흡수하고 있다.
2018년 약 43조2000억원이었던 리츠의 자산규모는 지난 1월 13일 기준 48조7000억원을 넘었다. 2018년 대비 약 12.7% 증가한 수치다. 국토교통부 리츠정보시스템 통계를 분석한 결과 등록된 리츠 수는 248곳으로 조사됐다. 리츠 통계가 집계된 2012년(71곳) 이후 리츠의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인가 또는 등록된 리츠 업체는 49곳이었다. 2017년 33곳, 2018년 34곳의 업체가 인가 또는 등록됐으며 인가·등록된 리츠 업체 수는 2017년 이후 2년 연속 증가했다. 리츠는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당 형식으로 배분하는데 배당수익률이 10%를 초과한 업체는 15곳이었으며 이 중 20%를 초과하는 업체도 3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5% 미만의 수익률을 기록한 업체는 31곳이며 수익률이 0%인 업체도 99곳으로 조사됐다.
롯데리츠는 롯데쇼핑이 보유한 백화점 4개, 마트 4개, 아웃렛 2개가 기초자산으로 여기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수익을 내는
구조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세율인하
“리츠 세제혜택 늘어날 것”
정부는 최근 시중의 부동자금을 리츠에 끌어들이기 위해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와 기재부 등 정부는 지난 2018년 9월 ‘공모형 부동산 간접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공모 리츠·펀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들이다. 정부가 내놓은 이 방안의 골자는 2021년까지 공모형 부동산 간접투자 시장을 60조원까지 키운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세권 개발이나 복합환승센터 건설 같은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공모형 리츠나 부동산펀드를 통해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자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구상이다. 또 5000만원 한도로 일정 기간 리츠에 투자하면 배당소득의 분리과세 혜택을 주고, 세율 역시 14%가 아닌 9%로 낮춰주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실상 공모형 리츠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상하는 상황에서 저금리 압박과 세금 확대 리스크를 피해 상당한 규모의 시중 자금이 리츠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게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환경에 편승해 여러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등 금융사들이 리츠 상품 마케팅과 판매 등 영업에 더욱 열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 리츠 고점 대비 하락세
저가매수·배당수익 노려볼 만
주식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장 리츠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상장된 리츠 업체는 10월 30일에 상장한 롯데리츠와 12월 5일에 상장한 NH프라임리츠 2곳이었고 현재 총 7개의 리츠 업체가 시장에 상장돼있다. 지난해 줄줄이 최고가를 찍었던 상장 리츠는 고점 대비 15~20% 빠진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증시 상승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높아진 것을 리츠 주가 약세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5일 기준 롯데리츠는 52주 최고가 대비 약 20% 빠진 5730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한 달간 10% 정도 빠진 상황이다. 그 결과 시가총액은 1조원에 못 미치는 9854억원으로 집계됐다. 리츠계의 샛별로 떠올랐던 롯데리츠는 상장 첫날 상한가인 30% 상승하며 단숨에 시총 1조원을 넘는 ‘대어’로 올라선 바 있다.
서울스퀘어, 강남N타워 등의 지분을 담아 지난해 11월 상장한 NH프라임리츠도 전날 5930원에 거래를 마치며 52주 최고가 대비 10% 빠졌다. NH프라임리츠는 공모 청약에 7조7000억원이 몰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리츠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52주 최고가와 비교했을 때 신한알파리츠(-20.2%), 이리츠코크렙(-19.1%), 에이리츠(-18%), 모두투어리츠(-9.3%) 등 상장 리츠 모두 약세를 보였다.
라진성 키움증권 연구원은 “주식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위험자산으로 포트폴리오가 이동하며 리츠가 전반적으로 내리고 있다”며 “여러 니즈별로 수급적인 이슈가 있는 것 같은데 근본적으론 그동안 많이 올랐던 리츠에 대한 차익실현 욕구가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롯데리츠와 NH프라임리츠는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주가가 각각 7100원, 6600원까지 상승한 바 있다. 이러한 주가 상승으로 인해 배당수익률이 4%대로 하락하며 리츠 본래의 투자 매력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통상 상장 리츠의 배당수익률은 공모가 5000원 기준 5% 이상 수준으로 책정된다. 주가가 오르면 시가배당률은 그만큼 하락한다. 최근 주가하락으로 리츠의 배당수익률이 상승하며 투자 매력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안정적인 자산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투자시점이라는 이야기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 예금이자가 2%에 불과한데 현재 리츠는 여전히 배당수익률을 5% 내외로 기대할 수 있다”며 “안정성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현 시점에서 공모 리츠 주식을 사는 것도 좋은 선택지”라고 말했다.
▶기초자산 성장성 따져보고
기관의무보유 기간도 살펴야
리츠의 주가 상승 동력은 크게 3가지로 금리 하락, 임대료 상승, 부동산가격 상승이다. 금리와 임대료는 단시간 내에 급등락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엔 큰 폭의 주가 상승 동력은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부동산가격 상승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자산가치 상승이 필수적이라 투자자 입장에서도 성장성을 잘 살펴야 한다.
최근 선보이고 있는 리츠 상품들 역시 대형 유통회사나 굵직한 대기업을 임차인으로 들여 안정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안정적인 임대료 수익을 바탕으로 꾸준한 배당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성장성이 낮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리츠 기초자산의 성장성이 부족하면 임차 조건이 뛰어나도 장기적으로는 주가움직임이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올해 빌딩 외에 주유소부지 등 다양한 기초자산을 통해 리츠 상품이 선보일 예정이라 투자자의 선택지는 더욱 넓어질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상장 예정인 코람코에너지플러스리츠는 대표적으로 자산가치 상승 전략을 내세우는 대표 리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람코자산신탁이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SK네트웍스의 직영 주유소 193개를 인수해 설립한 코람코에너지플러스리츠는 일부 주유소 부지에 오피스나 주거시설을 세울 계획이다.
아직 상장 일정을 잡진 못했지만 홈플러스 리츠도 자산가치 상승을 노릴 계획이다. 전 층을 모두 상업시설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지상층 일부를 오피스텔 등으로 재개발하며 자산가치 상승을 노린다는 것이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해외 리츠 시장에서 주유소 리츠는 안정적 고배당과 우량 자산으로 분류되는 상품”이라며 “주유소 리츠 상장은 국내 리츠 상품의 다변화와 시장 확대를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상장이 무산된 홈플러스리츠는 올해 공모리츠 시장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한편 상장 당시 의무보유 확약기간을 조건으로 투자한 기관들의 물량이 출회될 가능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기관의 의무보유 확약기간이 곧 끝나가면서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롯데리츠의 경우 기관의 35.4%가 의무보유 확약 조건을 걸었다. 이 중 1개월 확약을 건 약 14.6%만 확약기간이 끝난 상태이며, 3개월 확약을 걸은 626만2225주(기관물량의 11.21%)는 당장 이달 말, 6개월 확약을 건 537만3479주(9.61%)는 4월 말에 또 쏟아질 예정이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규제로 인해 부동산 직접 투자가 어려워져 투자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세제혜택과 꾸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리츠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리츠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지만, 현재 상장된 리츠 회사는 7곳뿐이며, 배당이 나오는 회사도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츠에 투자하기 전 리츠를 운용하는 투자회사가 안전성과 전문성을 담보한 곳인지 확인하고, 임대 수익은 물론 향후 매각 때 투자 수익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