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목표로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기로 약속했던 민간임대사업자 제도가 주택매물 잠김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시행 2년여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7월 말 배포된 재산세 고지서에 임대사업자 세제감면분이 줄줄이 누락되는가 하면 원래 소형주택에 주기로 했던 세제감면 혜택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등 혜택이 하나둘씩 축소되면서 임대사업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민간임대주택을 늘리자는 차원에서 ‘임대주택등록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보급에 힘써왔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 감면을 미끼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해 놓고 임대사업자 급증으로 인한 매물 잠김·공급 축소 논란이 일자 정작 혜택을 축소하고 책임과 처벌 강도만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임대사업 등록을 의무화하는 제도 도입을 앞두고 시장 반발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방배동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
▶7월 재산세 고지서에 임대사업자 혜택
누락 속출… 납세자가 일일이 확인해야
# 사례1
서울 송파구에 살고 있는 임대사업자 신 모 씨(42)는 얼마 전 ‘위택스’ 사이트(wetax.go.kr)에서 재산세 고지서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신 씨가 보유한 송파구 헬리오시티 소형 아파트(전용면적 39㎡)에 약 42만원의 재산세가 고지됐기 때문이다.
신 씨는 총 5채의 임대주택을 등록한 장기임대사업자여서 전용면적 40㎡ 이하 주택에 대해 재산세(본세) 전액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감면이 적용돼있지 않았던 것이다. 신 씨는 구청에 항의한 뒤에야 제대로 된 고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서울시가 올해분 재산세 고지서를 발부한 뒤 각 구청 조세담당 부서 창구에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한 임대사업자들의 재산세 관련 항의 민원이 빗발치면서 업무가 마비됐다.
한 구청 관계자는 “재산세 고지서 발부가 시작되면서 매일 적게는 수십 건에서 많게는 수백 건의 오류 발견 민원과 정정 요청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확인해 오류를 발견하고 정정 요청을 하지 못하는 납세자는 잘못된 세금을 그대로 내는 경우도 많다.
재산세 고지서에서 황당한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납세자의 주택 보유 수, 취득 시기 등 각종 조건에 따라 경우의 수가 복잡한 감면 혜택을 실제 재산세 부과 시스템에 적용하는 일종의 ‘할인 코드’를 각 자치구 담당 공무원들이 수기로 시스템에 입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등록은 국토교통부가 만든 임대등록시스템(렌트홈)에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렌트홈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세 입력 시스템과 연동돼있지 않다.
이 때문에 임대주택이 등록되면 자치구 주택과가 이를 확인해 조세과로 공문을 보내고 조세과에서는 다시 해당 임대사업자의 주택 보유 수, 장·단기 여부 등을 일일이 확인해 수기로 재산세 시스템에 코드를 입력하고 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하루에도 자치구별로 많게는 수백 건의 임대유형 변동이 일어난다”며 “담당자가 일일이 확인하고 코드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재산세는 6월 1일 기준 주택, 건물, 토지, 선박 등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주민에게 부과되는 세금으로 지자체에 납부하는 지방세 중 하나다. 매년 7월과 9월에 반씩 나눠 부과되지만 총액이 20만원 이하인 경우는 7월에 한꺼번에 고지된다.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2채 이상의 주택을 등록하면 임대기간, 전용면적에 따라 25%에서 최대 100%까지 재산세(본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 8년 이상 장기 보유를 조건으로 하는 장기 임대사업자는 단기 임대사업자보다 큰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주택 유형별(아파트·오피스텔)로 2가구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일반적으로 임대주택 면적이 작고 보유기간이 길수록 큰 혜택을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새 정부 들어 각종 세금 규제 강화와 함께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 정책 등으로 임대사업자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 조세 시스템은 수기로 입력하는 등 ‘조선시대 시스템’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임대사업자 재산세 감면 기준은 주택 수, 면적별로 모두 다르고 복잡해서 잘못 부과돼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올해 공시가격이 올라 세금이 많이 올랐는데 세금 감면까지 알아서 챙기라는 것 같아 신뢰가 흔들리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31만2000명이던 임대사업자는 올해 5월 말 기준 42만9000명으로 급증했다. 대규모 재산세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선 법원의 등기 시스템과 국토부의 렌트홈, 지자체 재산세 부과 시스템 등을 하나로 묶은 통합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자치구 조세 담당자는 “이대로 가면 일단 재산세를 모두 부과한 뒤 본인이 조건을 확인해서 신고해야 환급을 받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며 “갈수록 임대사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전국 단위 자동화된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대사업 稅감면” 정부 말 믿었다가 뒤통수… 소리 소문 없이 혜택 축소
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전용 39㎡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임대 등록한 A씨는 최근 날아온 재산세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대 100%까지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던 해당 아파트 세금이 그대로 매겨져 있었던 것이다.
구청에 전화해 재산세를 감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정부가 분명히 8년 이상 장기 임대사업자가 전용 40㎡ 이하 주택은 한 채만 임대해도 올해부터 재산세를 깎아 준다고 했다”며 “정부 정책이 이런 식이면 누가 믿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약속했던 임대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축소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으로 8년 이상 준공공임대주택에 주어졌던 양도세 중과 배제·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이 작년 9·13 부동산 대책 이후 확 줄어든 데 이어 소형 주택(전용 40㎡ 이하) 재산세 감면 혜택은 발표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부는 재산세 감면 혜택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정부를 믿고 소형 아파트를 구입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들이나 일반 국민에게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스스로 만든 정책을 국민에게 믿지 말라고 하는 것이냐’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8년 이상 임대주택을 등록하면 올해부터 부여한다던 전용 40㎡ 이하 주택에 대한 재산세 감면이 시행도 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2017년 12월 당정협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거쳐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 안에는 임대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전용 40㎡ 이하 주택의 8년 이상 임대사업자라면 한 채만 임대해도 재산세 감면 혜택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반적으로 임대주택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으려면 집 두 채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등록해야 한다.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중에서도 주요 내용인 데다 감면 혜택이 최대 100%에 달해 수요자 관심이 상당했다. 하지만 해가 두 번이나 바뀌고 사실상 ‘없던 일’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스토리는 이렇다. 정부는 장기 민간임대주택 재산세 감면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소형 주택 한 채 재산세 감면과 다가구주택을 감면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작년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일부 국회의원이 “자기가 소유한 집에 살지 않고 전세를 사는 1주택자가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으려 하면 어떻게 막겠느냐”며 반대해 소형 주택 1주택자 재산세 감면안은 사실상 좌절됐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결정이 내려진 후 정부가 고지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식을 모른 채 소형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대주택 등록을 진행한 임대사업자들은 재산세 감면 혜택은커녕 의무임대기간 8년과 임대료 증액 제한 5%라는 제약만 얻었다. 임대기간 안에 주택을 팔면 과태료가 부과돼 집을 매각하기도 쉽지 않다.
한 임대사업자는 “정부가 대대적으로 ‘소형 주택을 사서 임대하라’고 홍보했으면서 이제 와서 국회 핑계만 대는 것은 사기”라며 “결정도 나지 않은 사항을 왜 발표했느냐”고 분을 냈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정책이 누더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세제 혜택은 상당 부분 없어지거나 축소됐다. 업계에선 임대업 활성화라는 큰 그림의 정책을 내놓고 집값이 오름세를 띠자 국민 눈치를 보며 정부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8년 이상 준공공임대주택 등록을 위한 가장 큰 유인책이었던 종부세 합산 배제와 양도세 중과 배제는 집값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적용 대상이 확 줄어들었다. 최근 정부는 임대사업자 과세 자료가 누락돼 재산세를 잘못 부과한 사례가 자주 발생하자 환급 조치에 나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稅 혜택… 다가구만 ‘홀대’ 하나…
여러 채 중 1채만 40㎡ 넘어도 재산세 100% 감면 혜택 제외
충북 음성에 살고 있는 이 모 씨(59)는 최근 날아온 재산세 고지서 때문에 분이 터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총 18가구로 구성된 다가구주택 임대사업자인 그는 올해부터 적용되는 지방세 특례법에 따라 전액 재산세 감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방 단 하나의 전용면적이 40.95㎡로 기준 면적(40㎡)을 1㎡ 미만으로 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감면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 씨는 “다가구주택은 취업준비생, 학생, 일용직 근로자 등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순수 임대사업 목적으로 지을 때가 많다”며 “주로 시세차익을 보기 위한 갭투자용으로 사서 임대등록하는 아파트·오피스텔보다 세제 혜택이 적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게 된 다가구주택(원룸) 소유자와 임대사업자들이 정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면적 기준을 세 감면에 들이대 소외되는 사례가 많아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정부가 다가구 등 단독주택에 대한 공시가격을 대폭 올려 세금 부담이 늘었는데 아파트(공동주택)나 오피스텔보다 더 엄격한 세금감면 기준을 적용하는 데 대한 불만이 커진 것이다.
서울시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무 담당 부서로 가구당 면적 기준 때문에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한 다가구주택 임대사업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말 정부가 발표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다가구주택 임대사업자는 8년 이상 장기 임대일 경우에 한해 모든 호수의 전용면적이 40㎡ 이하(소유자가 실제 거주하는 호수는 제외)이면 100%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당초 다가구주택은 아파트나 오피스텔과 달리 재산세 감면 혜택이 없었지만 서민이 거주하는 시설이라는 이유로 올해부터 혜택이 신설됐다.
그러나 ‘모든 호수의 전용면적이 40㎡ 이하’라는 조항 때문에 실혜택을 볼 수 있는 임대사업자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만약 방이 단 한 개라도 40㎡보다 크면 감면 비율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두 채 이상 등록하면 임대기간, 전용면적에 따라 25%에서 최대 100%까지 재산세(본세)를 감면받을 수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서울 지역 한 다가구주택 임대사업자인 김 모 씨(40) 사례도 앞서 설명한 이 씨와 비슷하다. 김 씨는 총 15가구로 구성된 다가구주택을 보유 중인데 딱 한 가구만 투룸(전용면적 59㎡)으로 지어 재산세 감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김 씨는 “대부분 다가구주택이 신혼부부 등 수요를 잡기 위해 원룸과 투룸이 섞여 있다”며 “한두 가구가 기준 면적을 초과한다고 해서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과 달리 50~75% 정도 감면 비율도 적용해주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잦은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가구주택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임대사업자등록 유도라는 입법 취지를 봤을 때 상식적으로 큰 방이 한두 개 있으면 감면 비율을 줄여서라도 혜택을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