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틀대는 재건축… 가격은 반등, 거래는 늘어 은마·잠실주공5단지 등 대장주 다시 뜨다
박인혜 기자
입력 : 2019.07.01 16:14:07
수정 : 2019.07.01 16:14:34
재작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개월 만에 나온 8·2 부동산대책은 ‘재건축 아파트’, 그 중에서도 ‘강남 재건축’을 정밀 조준하고 있었다. 8·2 부동산대책의 기본 전제는 ‘투기에 가까운 재건축 투자가 결국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권의 집값을 비정상적으로 상승시켰다’는 것이었다. 일정 과정 이상을 밟은 재건축 아파트는 일부 예외조항에 해당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예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던 것이 당시 대책의 핵심이었다.
대책에 직접적으로 포함되거나 언급되진 않았지만 더 강력한 ‘비공식적’ 규제도 많았다. 그 전까지는 비교적 ‘루틴’하게 진행됐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재건축 아파트 심의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고, 당초 발표가 ‘코앞’이라고 했던 ‘압구정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발표가 무기한 연기된 것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건축 압박 정책의 일환으로 읽힌다. 이후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곧바로 나온 ‘안전진단 심사기준 강화’ 등은 서울 집값을 들썩이게 하는 ‘주범(?)’이 재건축이라는 정부의 인식을 잘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신호는 시장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의 재건축 조이기만큼 즉각적인 효과는 없었다. 8·2 부동산대책 발표 후 서울 집값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이후 다시 폭등했고 재건축도 거래가 안됐을 뿐 매수대기자는 존재했다.
은마아파트
다만 재건축뿐 아니라 모든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를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는 작년 9·13 부동산대책의 효과는 재건축에 직격탄을 가했다. 9·13 부동산대책의 핵심은 결국 ‘실거주 1채’를 제외하고는 규제를 강하게 가하겠다는 것인데, 재건축아파트의 경우 기본적으로 30년 이상 연식의 ‘오래된 아파트’라 거주환경이 좋을 수가 없고, 일부 저층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면적 자체가 초소형인 경우가 많아 실거주하며 버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서울시가 정부의 정책기조에 발맞춰 재건축 심의를 좀처럼 내주지 않겠다는 신호를 여러 번 내면서 재건축이 한없이 늘어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재건축 가격은 뚝뚝 떨어졌다.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11월 첫 주 하락으로 전환한 재건축 아파트 시세는 3월 4주차까지 20주 연속 하락했고, 3월 5주차에 잠시 반짝 상승했다가 다시 2주간 하락했다. (이때는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공시가격을 발표한 직후,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이후 4월 3주차부터 재건축은 계속 상승중이다. 6월 1주차까지 8주 연속 상승했고,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일반 아파트의 경우 11월 5주차부터 시작된 하락이 6월 1주차까지 27주 연속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재건축의 반란’ 수준이다.
가격만 상승세로 전환한 것이 아니다. 매수세에도 불이 붙었다. 강남구 재건축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작년 9·13 발표 이후 10~12월 3개월간 체결된 매매거래가 12건에 불과했다. 4400가구가 넘는 대단지에서 3개월간 12건의 거래만이 성사된 것은 ‘거래절벽’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올해 1분기 같은 3개월 상황은 좀 달랐다. 총 28건의 거래가 신고됐다. 같은 전후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2배가 넘는 거래가 나온 것이다. 4월과 5월, 2달간의 매매거래도 6월 초 기준으로 12건이 보고됐는데, 최근 계속해서 매수세가 붙는 추세라고 대치동 소재 공인중개 관계자들은 전했다.
개포주공1단지
▶개포동 일대 저층 주공 아파트 거래 대폭 늘어
8·2 부동산대책에 따라 거래가 금지됐던 개포동 일대 저층 주공 아파트도 일정 조건을 채워 거래가 반짝 풀린 틈을 타 올해 초 거래가 그야말로 폭발했다. 올해 들어 이 단지에서 보고된 매수거래는 총 34건에 달했다. 이곳은 작년 9·13 이후 3건만 거래됐던 단지다.
재건축 거래가 살아나고, 가격도 작년 9·13 부동산대책 발표 전 ‘신고가’ 수준까진 아니지만 다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의 ‘컨센서스’다. 문제는 ‘왜’다.
정부가 그토록 잡으려고 했던 재건축 거래와 가격이 8·2 부동산대책 후 3개월을 채 가지 못했고, 9·13 부동산대책 발표 후 6개월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책실패’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일단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가 갖고 있는 입지와 규모에 첫 번째 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부촌’으로 불리는 곳들은 강남권에 대거 포진돼있고, 이 동네들은 학군을 비롯해 주변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부촌의 핵심입지엔 오래된 재건축 아파트들이 있다. 새로 아파트를 지으려고 해도 서울에 마땅한 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기존 아파트가 갖고 있는 입지는 불변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은마아파트나 잠실주공5단지와 같은 곳만 봐도 그렇다. 은마아파트는 4400가구가 넘는 초대형 단지인 데다, 대치역(3호선)과 학여울역(3호선)을 동시에 끼고 있는 역세권이고, 현재 정부와 서울시가 활발하게 추진 중인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개발 호재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학군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문학교들이 포진돼있고, 요즘엔 학교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하는 학원가가 대치동을 감싸고 있다. 아파트 자체는 낡아 녹물이 나오고, 허름해보일지언정 은마아파트가 갖고 있는 입지는 변하지 않는다. 거주환경은 나쁘지만, 이 아파트가 새 아파트로 재건축됐을 때의 미래가치를 보면 그야말로 ‘넘사벽’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비교적 일관된 평가다.
잠실주공5단지는 어떤가. 송파구 잠실동 일대 한강변의 마지막 남은 대단지다. 이미 10년 전 ‘엘스’ ‘트리지움’ ‘리센츠’ 등이 모두 재건축을 마무리해 입주까지 마쳤지만 핵심이라고 했던 잠실주공5단지는 낡은 모습 그대로다. 노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10년 전 입주를 해 낡은 아파트로 가고 있는 인근 단지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잠실주공5단지에 대한 기대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와 대각선 방향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상징성과 한강변 입지라는 것은 역시 변하지 않는 가치다. 아파트는 낡아도 미래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잠실주공5단지
▶강남 재건축 대체할 만한 택지 공급 실패
그동안 정부는 재건축을 규제했지만, 이와 함께 이들을 대체할 만한 핵심지에 주택을 추가로 공급하거나 공급할 계획을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이 아닌 수도권에 3기 신도시를 발표하고, 소규모 자투리땅에 주택을 짓는다는 정도의 발표는 강남권 재건축의 입지를 아는 사람들에겐 큰 뉴스가 아니고, 투자의 대체제도 되지 못한다. 대출한도를 조이고, 대출을 추가로 내주지 않겠다는 극악처방에 재건축 아파트의 힘은 다소 떨어졌고, 이에 따라 가격도 크게 내려갔지만, 오히려 현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3월 아파트 공시가격이 발표되고, 금리는 하락추세를 보이고, 이 밖에 다양하게 존재하던 각종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오히려 ‘재건축은 지금이 가장 싸다’는 사람들의 추격매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최근 재건축의 가격과 거래가 다시 꿈틀대며 오르는 이유다.
강남권에 국한된 얘기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용산구에서 ‘부촌’으로 꼽히는 이촌동과 서빙고동 소재 낡은 아파트들은 가격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오르고 있다. 이촌동 재건축의 ‘핵’이라 불리는 ‘한강맨션’은 조합장 해임 등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와중에도 매매거래금지 예외조항에 해당되는 일부 매물들의 가격은 꺾일 줄 모른다. 올해 1월 말 한강맨션의 전용 101㎡ 매물은 22억원에 거래됐는데, 이는 작년 11월 22억8000만원과 크게 차이가 없다. 현재 이보다 면적이 작은 전용 87㎡ 매물은 시장에 21억5000만원에 나왔고, 이미 거래가 완료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3구나 용산 등 ‘부촌’을 벗어나도 재건축의 반등은 동일하게 목격되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4단지’의 실거래 추이를 보자. 전용 32㎡가 2월 말 2억3000만원에 팔렸지만 4월 말에는 2억7000만원에 거래돼 2개월 만에 17%가 뛴 가격에 계약이 이뤄졌다. 상계주공5단지 전용 31㎡은 작년 9·13 이후 5억1000만원까지 치솟았던 가격이 4억3000만원으로 바로 떨어졌고, 이후 3억원대 중반으로 추락했으나 올해 5월 거래를 보면 3억9000만원에 팔려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유동성은 있으나 그 유동성이 주택시장 외 갈 곳을 잃은 상황에서, 잠시 주택시장 밖에 있던 자금들은 기회를 보다 다시 주택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중장기적 미래를 봤을 때 가장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재건축은 현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세금을 감당하고라도, 증여 등 여러 절세 수단을 고민하면서도 ‘보유해야 할 대상’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진단은 결국 작년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핫’하게 달아올랐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슬금슬금 내려갔던 재건축 가격을 다시 전고점을 향해 가도록 만들었고, ‘절벽’이라고 할 정도로 위축됐던 거래마저 다시 살리면서 재건축이 다시 반등할 조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부도 우리나라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성장을 이뤄내던 당시인 1970년대부터 1990년 이전까지 지어진 아파트들의 입지적 장점과 그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권과 학군, 각종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밀집해있는 상황이고, 소위 ‘수도권 생활권’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의 핵심입지에 있는 주택에 살고 싶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추가로 주택을 지을 만한 땅은 마땅치 않고 가장 좋은 위치에는 낡은 재건축 아파트들이 포진해있다. 서울 주거의 핵심 중 하나인 한강변 역시 상업용 빌딩이 아닌 낡은 아파트로 쌓여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건축 거래를 막고, 재건축을 지연시키는 것은 서울 주택 가격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히려 현재 저층으로 형성된 이들 아파트들을 중층, 혹은 고층으로 다시 지어 추가로 새 집을 공급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에도 부합한다는 것. 잠실주공5단지만 해도 현재 3700여 가구 수준이던 것이 재건축 후에는 2배에 가까운 6000가구 이상으로 늘어나는데, 자투리땅에 주택을 지어도 이 정도 공급을 달성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양지영 양지영R&C 연구소장은 “거래가 없는 가격하락은 신기루와 같다. 이는 진짜 가격 하락으로 볼 수 없다”면서 “수십, 혹은 수백 건의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가격이 떨어졌다면 이는 ‘가격 하락’이 맞지만, 몇 건의 거래에서 얼마가 떨어졌다고 가격이 낮아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것이 지난 9·13 부동산대책 발표 후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9·13 부동산대책에 대한 시장의 학습과 판단이 이뤄졌고, 아파트 공시가격 인상 등의 불확실 요인이 걷히자 결국 거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가격이 회복세로 들어서는 것이 2019년 봄과 여름의 서울 주택시장의 상황이라는 것.
이제 남은 것은 서울 부동산 시장 전반에 걸쳐 아직 해소되지 않은 ‘심리적 위축’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여부다. 이미 심리도 어느 정도는 풀리기 시작했다. 한국감정원이 매주 발표하는 매매수급지수를 보면 4월 3주차(72.1) 이후 7주 연속 떨어지지 않고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