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선거 이후 ‘제2의 브라질 펀드’ 찾아라… 인도·남아공·아르헨티나 대선 결과 주목해야
유준호 기자
입력 : 2019.05.02 11:13:49
수정 : 2019.05.02 11:14:21
2018년 신흥국 증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치’였다. 미국 중간선거가 시장의 관심을 받았고, 유럽에서는 브렉시트 이슈가 부각됐다. 우리 증시 역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경협주가 시장의 주도주로 부상하는 등 정치라는 키워드는 각국 증시와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드는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해 신흥국에서는 선거 이슈가 크게 부각됐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총선을 통해 61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으며 브라질 역시 좌파 정권이 끝나고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됐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역시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을 놨다.
신흥국 선거 결과에 따라 증시가 크게 움직이며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말레이시아와 터기의 금융 시장은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신흥국 위기설의 진원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면 브라질은 대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개혁 모멘텀이 부각되면서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태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더욱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신흥국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에 따른 자본 유출과 그로 인한 환율 약세 등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신흥국들의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리스크이자 기회인 선거에 신흥국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올해 역시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등 주요 신흥국이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할 예정이다.
신흥국은 선거 결과에 따라 금융시장 분위기가 확연히 갈린다는 점에서 최근 6개월간 가장 상승폭이 컸던 브라질 펀드의 재현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이라면 신흥국 선거 판도를 미리 체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지난해 투자자 희비 가른 신흥국 선거
지난해 대선을 치른 신흥국들은 선거 결과에 따라 증시가 크게 반응했다. 지난해 10월 대선을 치른 브라질은 새 정부의 시장 친화적인 정책에 힘입어 1분기 말(3월 19일) 장중 한때 10만선을 돌파하며 시장의 기대를 입증했다. 대선1차 선거일(10월 7일) 직전 거래일 종가 기준으로 5개월 만에 22%가 상승했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브라질은 새 정부가 개혁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면서 증시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1월 1일 열린 취임식에서 사회주의와의 결별을 택하고 비대해진 국가에 해당될 것을 천명했다.
그는 “시장 개방으로 선순환을 도모하고 재정개혁을 통해 적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연금 개혁, 세제 개편,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이 그가 내건 주요 경제 정책 공약이다.
민영화 이슈는 브라질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새로 임명된 광업에너지부 장관이 국영유틸리티 기업인 일렉트로브라스(Electrobras)의 정부 지분을 궁극적으로 ‘제로’로 만들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연초 이후 지난 4월 12일까지 20.7%가량 상승했다. 상파울루주의 하수 처리 사업을 담당하는 상파울루 상하수도 공사(SABESP) 역시 연초 이후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증시 상승세에 힘입어 브라질 펀드 역시 다른 해외 주식형 펀드와 비교해 수익률 측면에서 독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4분기 동안 국내에 설정된 10개 브라질 펀드는 평균 15.16%의 수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펀드가 글로벌 증시 조정으로 -12.53%의 수익을 낸 것을 감안하면 브라질 펀드의 성과가 더욱 도드라진다. 브라질 펀드는 올해 1분기 동안에도 3.77% 추가 수익을 올렸다.
반면 61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말레이시아는 금융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는데, 이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초였다. 희망연대와 지역 정당인 와리산당의 야권연합이 하원 222석의 과반인 112석을 확보한 반면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은 7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총선 승리에 따라 마하티르 총리가 취임했지만 금융 시장은 변동성이 커졌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지난해 5월 총선 이후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지난 4월 12일까지 11%가량 주가가 하락했다.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재정적자와 인프라 투자 모멘텀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모든 종류의 연료보조금을 폐지했지만 마하티르는 연료보조금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급될 연료보조금은 차량의 종류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될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평가다. 정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들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면서 인프라 투자 모멘텀은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디노믹스’ 향배 가를 인도 총선
올해 가장 주목받는 신흥국 선거로는 인도가 꼽힌다. 이번 인도 총선은 모디노믹스의 연속성을 결정짓는 선거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모디 총리의 연임이 결정되고 모디노믹스가 지속될 경우 인도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한 번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디 총리의 연임에 따라 인도 증시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투자자들 역시 선거 결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4월 11일부터 총선에 돌입한 인도는 5월 19일까지 선거를 진행한다. 총 유권자 수만 8억 명이 넘기 때문에 선거 기간만 해도 한 달 이상 소요되고, 올해 6월은 되어야 선거 결과 역시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인도는 양원제로 구성돼 있는데 하원의 다수당 지도자가 총리로 임명된다. 하원은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543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2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4년 총선 당시 모디 총리가 이끄는 정당인 BJP(인도국민당)는 과반을 차지했고, 이 정당을 중심으로 연립 여당인 NDA (국민민주동맹)는 300석 이상을 가져갔다. 화폐개혁, 조세개혁 등 모디노믹스로 불리는 개혁 정책이 시동을 건 것도 바로 이 때다. 모디 총리의 집권 이후 인도는 연평균 7%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모디 총리의 집권 이후 인도 센섹스 지수의 상승률만 70%를 웃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는 주 의회 선거 등에서 양호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모디 총리의 무난한 연임이 예상됐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열린 주 의회 선거에서 BJP가 패하면서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인구가 많고 기존 집권 여당의 텃밭에서 선거를 내주면서 비관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체감하지 못하는 농민들의 표심이 멀어진 탓이다.
하지만 최근 파키스탄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이 가중되면서 모디 총리의 연임에 무게가 다시 실리는 모양새다. 인도 증시 역시 글로벌 경기 위축 공포에도 불구하고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지난 4월 2일 인도 센섹스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9000선을 돌파했고, 잠시 단기 조정에 들어간 이후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모디 총리의 연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4월 16일 기준 미래에셋TIGER인도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20.70%)와 삼성인디아2(10.55%), 미래에셋연금인디아업종대표(10.30%) 등 주요 인도 펀드도 올해 들어 두 자리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종훈 삼성자산운용 글로벌주식운용팀장은 “여전히 경기 모멘텀 둔화와 높은 밸류에이션에 따른 부담이 남아 있지만 모디 총리의 지지율 상승은 인도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단기에 증시가 급등하지는 않더라도 오는 6월 선거 결과 발표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 해소되는 상황을 투자 기회로 활용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남아공·아르헨 ‘경제 위기’ 극복 계기될까
5월 총선을 치르는 남아공과 10월 대선을 앞둔 아르헨티나는 선거를 통해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변수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에 560억달러(약 63조7000억원) 구제금융을 요청했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남아공 역시 아르헨티나의 구제금융 요청과 터키 리라화 급락으로 신흥국 위기설이 부각될 당시 또 다른 취약국 중 하나로 거론돼 왔던 곳이다.
남아공 총선은 대선이나 다름없다. 남아공은 하원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내세운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는 구조다. 남아공은 1994년 처음으로 실시한 평화적인 민주선거 이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줄곧 총선에서 과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정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ANC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2009년에 당선된 제이콥 주마 대통령 체제 이후 정경 유착과 함께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더욱 문제다. 주마 대통령 취임당시 3%대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2017년 1%대까지 낮아졌으며 2018년은 0% 성장이 예상된다. 실업률 역시 27%에 육박하면서 좀처럼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난해 남아공 랜드화 가치는 달러 대비 15.9% 급락했고, 신흥국 위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이름을 올렸다. 결국 불경기와 정치권의 부패가 지속되면서 주마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자진 사임했다.
새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라마포사는 사업가 출신이다. 취임 이후 부패 척결과 경제회복, 빈부격차 해소를 가장 큰 목표로 잡았다. 농업과 광산업을 육성하고 1000억달러 규모의 외국인 투자유치와 관광업 활성화를 주장하면서 빈곤층 교육과 최저임금 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다만 라마포사 대통령이 총선을 통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주마 대통령의 자진사임으로 인해 선출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에서 ANC가 승리하고 정식으로 라마포사 대통령이 취임할 경우 이 같은 개혁 모멘텀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월 27일 진행되는 아르헨티나 대선 역시 신흥국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선거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257석 중130석 하원의원과 72석 중 24석의 상원의원 역시 이번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선거가 포퓰리즘과의 단절 혹은 복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현재 대통령은 2015년에 당선된 기업가 출신 중도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다. 포퓰리즘 혁파를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으며 연금지급 축소 등의 재정개혁과 법인세 감소 등의 친기업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2년간 이어온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에 따른 막대한 재정 지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6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지난해 페소화 급락과 함께 물가 상승률은 23%를 넘어섰다. 경제 불안에 마크리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태다.
공공지출 축소, 세금 인상, 공무원 감축 등 IMF의 요구사항이 포함된 올해 예산안 통과 등으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포퓰리즘에 익숙해진 국민들의 반발에 IMF의 구제금융과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반발이 지속될 경우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태종 연구원은 “재선을 위해 마크리 대통령이 일부 긴축 정책을 포기하고 포퓰리즘 노선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지 않고 긴축 정책을 고수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발로 표심이 좌파 포퓰리스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마크리 대통령이 패하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집권에 성공하게 될 경우 아르헨티나의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다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