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 그 중에서도 부동산 증여는 사실 드문 일이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몰래몰래’ 주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증여로 잡히지 않았다. 또 증여보다는 상속이 대세였다. 유교 관념이 아직까지 강하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사망 전에 자식에게 ‘증여’라는 방식을 통해 재산을 미리 넘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물론, 5억원까지 비과세가 적용되는 상속에 비해 증여는 5000만원만 넘어도 10~50%의 세 부담을 져야 해 현실적으로 큰 이득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한 해 서울 아파트 증여건수는 5600여 건이었다. 2018년 한 해 이뤄진 서울 아파트 증여건수는 1만5400건에 달했다. 10년 만에 증여가 3배가 된 것이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아파트 증여는 왜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
강남 일대 아파트
주요 원인은 부동산 가격과 사이클 양측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먼저 가격요인. 한동안 침체되는 것처럼 보였던 한국의 부동산 시장, 그 중에서도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2015년 이후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가격 상승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부동산 과열의 조짐이 보이자 2016년 정부는 11·3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아파트 청약시장에 대한 규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내집마련’과 ‘재테크’의 양검을 다 쥘 수 있는 부동산 투자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이듬해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출범한지 1달만인 2017년 6·19 가계부채대책을 내놓고 DTI(총부채상환비율)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비율을 확 낮췄다. 그리고 딱 2개월 후, 강남 재건축 거래를 원천봉쇄하다시피한 8·2 부동산대책이 나옴으로써 정부의 ‘부동산 잡기’ 방향이 명확해졌다. 문제는 이 같은 잇단 대책에도 불구, 서울의 아파트가격이 계속 치솟았다는 것이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서울 아파트값은 4.5% 올랐고, 2018년엔 6.7% 상승했다. 예전엔 큰 벽처럼 여겨졌던 ‘10억원’은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만큼은 ‘보통적 존재’가 된 것이다. 상속 시 부여됐던 5억원 비과세 혜택은 예전과 비교하면 그 메리트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두 번째, 사이클 요인이다. 작년 대출을 막고, 세금부담을 확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9·13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후 서울 아파트 시장은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문제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 부동산은 점진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2018년 9·13 부동산대책의 13년 전 버전으로 불리는 2005년 8·31 부동산대책 때도 규제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잡히는 듯했지만, 결국엔 훌쩍 뛰었다. 이에 대한 학습효과로 사람들은 ‘서울 부동산은 팔면 안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이 같은 사이클 요인은 많은 사람들의 투자 방향을 ‘쥐고 버티기’쪽으로 몰아갔다.
▶정부 공시가격 현실화에 종부세 대상 크게 늘어
문제는 세금이다. 6억원(1주택일 경우 9억원) 이상 주택에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는 과거 ‘세금폭탄’이라는 레토릭이 무색하게 극소수에게만 적용되는 세금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공시가격이 6억원 혹은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서울에서 찾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 됐다. 종부세 부과 대상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목표로 공시가격 상승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뿐인가. 작년 국회를 통과한 종합부동산세 세율 상한과 일찌감치 시행령으로 정해진 종합부동산세 계산의 핵심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매년 5% 포인트씩 4년간 상승, 최종적으로 100% 적용까지, 세금부담이 부동산 투자에 최초로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돼버렸다. ‘버티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진 것이다. 1주택자에겐 큰 부담이 없지만 2주택 이상을 보유한 경우 버티기를 하려면 막대한 세 부담을 져야 한다. 팔수도 없다. 사겠다는 사람이 최근엔 뚝 끊겨 없어졌고, 팔려고 하면 2주택자 이상은 양도세 중과 적용을 받아 최고 62%의 세율을 부담해야 한다.
다시 증여가 늘어난 요인으로 돌아와보자. 지난 2~3년간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치솟은 부동산(특히 아파트) 가격에 상속의 메리트가 사라졌고 ▲서울 부동산의 장기적 우상향에 대한 기대감에 ‘보유’쪽으로 방향은 잡았는데 ▲세 부담이 연 수천만원까지 늘어나면서 만만치 않아졌다. 다주택자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증여’를 선택했다. 양도세 중과 적용을 받아 막대한 세금을 내며 ‘앞으로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부동산을 남에게 주느니 차라리 가족에게 증여세를 물고라도 주면서 보유세는 아껴보자는 전략이다.
이 같은 부자들의 심리는 숫자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2019년 1월 서울 아파트 증여건수는 1511건에 달했다. 극한의 거래절벽으로 아파트 거래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숫자라 더 의미가 크다. 1월 서울 아파트 전체 거래건수는 7000건에 불과했다. 7000건 중 1511건, 비중으로 따지면 22%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증여거래 건수 자체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시행 전달이었던 작년 3월(2187건)에 더 많았지만, 그 때는 전체 거래 자체가 활발했던 때였다. 거래가 줄고 비중만 늘어난 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절대 거래 건수 자체로도 1511건은 2018년 3월 2187건을 제외하면 역대 2번째로 높은 증여거래건수다.
도대체 아파트 증여를 통해 어느 정도의 보유세 절감 효과를 노려볼 수 있을까. 매일경제신문은 우병탁 신한은행 세무팀장과 함께 가상의 A씨 사례를 두고 분석해봤다. A씨는 서울 강남구 소재 시세 34억원 상당의 B아파트와 마포구에 위치한 시세 11억원 상당의 C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올해 A씨가 주택 2채를 보유함으로써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약 3500만원 정도였다. 어지간한 직장인 1년치 연봉이다. 이 숫자도 올해 A씨가 보유한 아파트 공시가격이 작년 수준으로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의 숫자인데, 만약 공시가격이 더 오르면 세금은 더 오를 수 있다.
이런 A씨가 만약 마포구 소재 C아파트를 가족에게 증여한다면 어떨까. 첫 번째로, 독립한 자녀 D씨에게 증여한다고 가정해보자. 자녀에게는 10년간 5000만원에 대해서만 비과세라는 점을 일단 알아야 한다. 마포구 C아파트의 시세는 11억원이지만, 여기에는 7억5000만원 전세금을 내고 세입자가 들어가 있다. A씨는 자녀 D씨에게 전세를 끼고 증여하는 ‘부담부증여’를 할 계획이다. 우 팀장의 도움을 받아 계산해본 결과 D씨가 마포구 C아파트를 증여받아 A씨와 D씨가 각각 집 한 채만을 보유한 1주택자가 될 경우 내야할 보유세는 각각 1300만원, 125만원으로 줄어든다. 3500만원이던 연 납부 보유세가 1425만원으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D씨는 증여 과정에서 증여세는 물론 취득세와 양도세를 납부해야하기 때문에 초기 비용 2억2000만원 정도가 발생한다. 하지만 가족 전체로 봤을 때 연간 2000만원 이상 세금을 아낄 수 있어 이는 10년이면 상쇄되는 금액이다. 앞으로 세 부담이 얼마나 커질지도 알 수 없는데 다가, 마포구나 강남구의 아파트의 경우 향후 미래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일종의 ‘컨센서스’가 있기 때문에 소위 ‘손해보는 장사’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다주택자들은 공시가격 상승으로 인한 보유세 부담이 커졌는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때문에 서울 아파트 보유자들은 퇴로까지 막혔다”면서 “어차피 들고 있으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안은 증여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다주택자 퇴로 막혀, 현실적 방안은 증여가 유일
자녀가 아닌 배우자에게 증여할 경우 세금은 동일하게 아낄 수 있으면서 초기비용은 덜 든다. 자녀와 달리 배우자 증여 비과세 한도가 6억원이기 때문이다. 배우자 증여 시 증여세와 양도세, 취득세 등 초기 부담금은 8500만원 정도. 4년치 세금도 안되는 돈이다. 다만 배우자 증여의 경우 1가구 2주택이라 나중에 양도세 관련 이슈가 있다는 점은 알아둬야 한다. 1가구 1주택에서 받을 수 있는 양도세 비과세 등 적용을 받기는 어렵다.
결국 확 늘어난 증여는 규제로 인해 눌려는 있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는 서울 부동산에 대한 기대감과 달라진 가격에도 바뀌지 않은 비과세 한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강남3구 등 소위 ‘부자 자치구’에서만 증여가 많다는 공식도 깨졌다.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증여를 분석해본 결과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보다 오히려 영등포과 마포, 은평, 용산 등 아파트 증여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통계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전체 거래에서 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구는 영등포구로, 전체 아파트 거래 325건 중 증여 198건(61%)에 달했다.
송파(53%) 마포(49%) 은평(47%) 용산(41%)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자치구들은 모두 정상적인 타인 간 매매거래보다도 증여가 많았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들 지역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개발호재가 아직 많이 남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영등포구와 용산구의 경우 작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통개발’을 선언했던 곳이다. 박 시장의 발언 이후 집값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오르면서 부동산 과열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정부가 강하게 반발, 개발계획 수립은 보류됐지만 언젠가는 실행될 개발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들 지역 주택을 남에게 팔기보다는 가족에게 증여하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마포의 경우 도심 접근성 측면에서 각광받으며 집값이 많이 올랐고,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즉 전세가율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라 ‘부담부증여’에 유리하다. 은평의 경우 GTX와 신분당선 연장 등 교통호재가 남아있다. 송파구는 최근 입주를 시작한 9510가구 헬리오시티 관련 증여가 꽤 돼 숫자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곳의 주택은 ‘팔지 않는다’는 기조가 강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자료: 한국감정원
▶6월 재산세 고지 전에 증여 상담 늘 듯
문제는 보유세 인상에 부담을 느끼지만 양도세 중과로 퇴로조차 막힌 다주택자들이 결국 보유한 아파트를 팔기보다는 가족에게 증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매매시장은 극한의 거래절벽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타인 간 아파트 매매거래는 계속 줄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신고된 월별 아파트 거래신고건수를 보면 9·13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다음달인 10월 1만103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타인 간 거래는 11월 3분의 1수준인 3534건으로 떨어졌고, 12월엔 2282건, 1월엔 1870건까지 곤두박질쳤다. 설 연휴가 끼어있던 데다가 달 자체가 짧은 2월엔 1589건 거래신고가 되는 데에 그쳤다. 본격적 봄이 시작된 3월에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3월 들어서도 하루 평균 거래 신고건수가 50건을 넘지 못하고 있어 2월과 비슷하거나 2월보다 오히려 더 적은 거래신고가 이뤄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정상적 거래가 줄어들면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현재 가격이 적정한지 등에 대한 판단 자체가 어렵게 된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당장 4월 말에 아파트 공시가격 발표가 있다. 단독주택과 토지에 대한 공시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뛰며 사회적인 논란을 낳은 가운데, 아파트 중에서도 공시가격이 확 뛰는 곳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거래 절벽상황에서 이뤄지는 한두 건의 급매가 공시가격 산정의 기준이 될지, 아니면 작년 가격이 기준이 될지도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시가격 상승은 결국 세 부담을 늘린다. 작년 80%였던 공정시장가액비율도 90%로 오르게 되는 만큼 이래저래 세 부담이 커지는 것은 자명한 상황이다.
6월에는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들게 된다. 종부세 대상자의 경우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친 보유세를 보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주택자들의 경우 팔거나, 버티거나, 증여하거나 3가지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세무팀장은 “아직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고지서가 발부되기 전인데도 최근 증여 등 상담이 늘었다. 고지서를 받게 되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