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상하이’ 뜨거운 호치민 부동산 과거 강남개발 연상... 평당 5000만원 초고층 아파트 분양, 중국·한국·홍콩 부호들 주고객
전범주 기자
입력 : 2019.03.05 15:35:58
수정 : 2019.03.05 15:36:15
베트남이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2차 정상회담 장소로 하노이를 택했다. 아시아 변방이던 베트남 축구는 ‘박항서 매직’으로 불리는 특유의 빠르고 끈질긴 플레이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과 중국의 건곤일척 무역전쟁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리는 곳이 베트남이다. 중국이 가지고 있던 ‘전 세계의 공장’ 지위를 베트남이 발 빠르게 꿰차는 형국이다. 지난해 7%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베트남은 올해도 6% 후반 이상의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베트남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경제 성장 기대감과 막대한 외자 유입, 막 시작된 급격한 도시화의 결과물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호치민 부동산 시장은 과거 서울의 강남개발을 연상시킬 정도로 뜨겁다.
지난 1월 말 방문한 호치민은 넘치는 부동산 수요가 자산 가격을 폭발적으로 밀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사이공강 주변 핵심지와 고급주택가와 프라임오피스 시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과수요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전 세계 주요도시 부동산 시장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과는 차별화된 양상이다. 한강이 서울을 남북으로 가르듯이, 사이공강은 호치민을 동서로 관통한다. 호치민의 중심지는 과거 월남 대통령의 집무실이던 통일궁 등이 자리 잡은 1군(district 1) 지역으로 사이공강 바로 서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와 차량 행렬로 언제나 붐빈다.
행정과 상업 중심지라는 면에서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을 연상시킨다. 베트남서 가장 비싼 이곳의 땅값은 2017년 호치민시가 1군 지역에 주택 신축과 거래를 자제시키겠다는 발표 이후 더 뛰고 있다.
1군의 동북쪽 끝 사이공강을 끼고 있는 바손지역은 ‘골든리버’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금싸라기 땅이다.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인 빈그룹이 보유한 이 땅 중 일부를 홍콩계 디벨로퍼 알파킹이 사들여 호텔과 레지던스로 개발 중이다. 올해 1월 초 개관한 알파킹의 최고급 레지던스는 3.3㎡당 분양가가 5000만원을 상회한다.
저층부(19층 이하)에 에스코트 호텔을 넣고, 고층부(20~45층)엔 센테니얼 레지던스를 분양 중이다. 레지던스의 전용 151㎡의 분양가는 200만달러(22억원·옵션 제외), 전용 59㎡은 80만 달러(9억원) 선이다. 호텔서비스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레지던스라고 하지만 서울 강남 신축아파트의 분양가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45층에 들어설 전용 500㎡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무려 1700만달러(189억원)에 이른다. 호치민 고급주택 시장은 서울과 달리 면적이 늘어날수록 단위면적당 가격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중산층이 부실하고 초고소득자의 고급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장에서 만난 라우치킨 알파킹 프로젝트매니저는 “하루 100명 넘는 고객이 견본주택을 찾고 있고 절반 정도는 계약이 됐다”며 “한국 방문객 문의가 많아 한국인 직원도 곧 출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이공강 동쪽으로 1군, 4군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 2군의 투티엠 지역이다. 열대우림이 우거진 660만㎡의 나대지는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한다. 호치민시는 이곳을 ‘상하이의 푸동처럼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동서(도심~신공항)와 남북(빈탄~7구)으로 뻗는 고속도로와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 시 최대 규모 광장과 공원, 오페라극장과 국제컨벤션센터가 들어온다. 강변에는 최고급 아파트단지와 상업시설이 들어서 상주인구 15만 명의 핵심지구가 탄생한다. 투티엠 지구가 완성되면 하루 방문자수가 100만 명에 이르고, 일자리를 얻는 경제인구도 22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이 남동쪽을 개발축으로 강남개발에 나선 것처럼, 호치민은 투티엠(2군)을 필두로 삼성전자 휴대폰공장이 있는 사이공하이테크파크(9군)까지 북동진하는 셈이다.
사이공강이 돌아나가는 곳에 말굽모양의 곶처럼 솟아있는 투티엠은 롯데자산운용, 케펠랜드, 빈그룹, 거캐피탈 등 국내외 기업들이 블록을 나눠 개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는 거캐피탈과 케펠랜드의 엠파이어시티 프로젝트는 세 번째 아파트를 분양중이다. 이미 분양이 끝난 아파트부지는 한창 터파기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블록 안에서 세 차례 분양이 이뤄졌는데 2년 동안 분양가는 두 배 이상 올랐다. 2016년 1차 분양 때 전용 3.3㎡당 1000만원에서, 2017년 1250만원으로, 2018년에는 2170만원으로 급등했다. 마지막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강변에 위치한 이유도 있지만 현지의 부동산 활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472가구 공급에 5000명 넘는 청약자가 몰려 현장서 하루 종일 제비뽑기를 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호치민 강남’ 꿈꾸는 투티엠… 아파트 분양가 2년 새 두 배 올라
강변아파트 472가구 분양에 5000명 몰려… 하루 종일 제비뽑기
강변 호텔식아파트 평당 5000만원 분양… 펜트하우스 189억원
엠파이어시티 프로젝트 책임자인 토마스 탕(Thomas Thang) 거캐피탈 베트남총지배인은 “지난해 말 3차분양은 사이공강 바로 앞에 있는 데다 부동산 경기까지 뜨거워서 분양가를 초기보다 2배 가까이 올렸는데도 90% 넘게 계약을 마쳤다”며 “1차와 2차 분양은 모두 완판됐고, 외국인 투자한도인 30%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인데 이 중 15%는 한국인 투자자가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투티엠에서 에코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롯데자산개발도 호치민 경제와 부동산 시장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백운재 롯데자산개발 호치민법인장은 “중국에서 발을 뺀 상당수 기업들이 ‘포스트 차이나’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꼽고 있는데 경제성장률과 인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라며 “현지에선 10년 후면 투티엠이 상하이 푸동만큼 값이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파트 뿐 아니라 도심 외곽에 위치한 택지지구 빌라도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25년 전 대만계 디벨로퍼가 호치민 외곽 신도시로 개발한 푸미흥 지구는 현지 고소득자나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주거지다.
도심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은 약점이지만, 외곽에 위치해 보안과 커뮤니티 면에서 독립된 부촌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외국인에게 부동산 투자가 허용된 2015년 이전에 분양돼 현지인들이 소유하고 외국인들은 임차만 받을 수 있다. 강변에 위치한 최고급 샤토캐슬 빌라의 경우 시가는 40억~70억원을 호가한다. 최초 분양가보다 20~30% 정도 오른 액수다.
베트남 부동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최대 부동산디벨로퍼인 엠디엠그룹의 문주현 회장도 나흘간의 호치민 출장길에 올랐다. 호치민 주요지역을 꼼꼼히 살핀 엠디엠그룹은 투티엠 지역의 지분투자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문 회장은 “호치민의 사이공강 주변과 정부 인프라가 집중되는 지역, 삼성전자 등 한국투자가 이뤄지는 곳은 서울의 강남처럼 성장성이 높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베트남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젊은 인구구조, 낮은 도시화율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더라도 국지적으로 상당한 투자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 회장은 “다만 속도 면에 있어서 과열 분위기도 충분히 감지된다”며 “사이공강변 펜트하우스가 한강변의 펜트하우스보다 비싸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 호치민의 고급 주택 시장은 한국을 포함한 외국투자자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CBRE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호치민의 고급·럭셔리 아파트 거래 중에 76%를 외국인이 사들였다.
중국 투자자가 31%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19%로 뒤를 이으며 홍콩(10%)을 크게 앞질렀다. 상하이의 푸동처럼 대도시 신규개발 지역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을 목도한 아시아 투자자들이 호치민의 신시가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치민 럭셔리 아파트는 1㎡당 5000~1만2000달러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데, 국내 전용 84㎡ 기준으로 보면 5억~15억원 정도다.
호치민 부동산 호황은 가파른 경제성장, 젊은 인구구조, 급격한 도시화, 풍부한 외국자본 유입에 따른 결과다.
지난해 7%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베트남은 미중 무역 분쟁 와중에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제조업 생산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휴대폰과 가전제품 공장을 베트남서 가동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1988년부터 30년간 베트남 누적 외국인 투자동향을 보면, 한국이 594억달러로 일본(506억달러)과 싱가포르(435억달러), 대만(318억달러)을 넘어섰다.
베트남 생산기지화 트렌드는 한국기업뿐만이 아니다. 애플의 에어팟을 조립하는 중국 기업인 고어텍은 생산 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다른 애플 공급 업체인 페가트론과 청웨 프레시전 인더스트리도 이전을 결정했다.
일본 자동차 관련업체들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요코오는 중국 공장에서 70%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베트남으로 생산라인을 빠르게 옮기고 있다.
호치민 엠파이어 시티 프로젝트 현장
오는 2020년까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베트남의 한 고위관료는 “베트남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의 새로운 생산기지는 물론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재료 시장의 핫스팟이 되었다”고 현지 언론을 통해 공표했다.
베트남의 인구는 지난해 98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실제로는 1억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연령은 30.8세로 한국(41.1세)보다 10살 이상 젊다.
월평균 임금은 대략 15만~30만원 선으로, 중국(69만~90만원)의 3분의 1이하 수준이다. 베트남은 남부는 열대지역에 속하지만 주변국과 달리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아침 6시만 되면 주요도로는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로 정체가 시작된다.
특히 베트남은 아직도 도시화율이 34%에 머물고 있어 대도시 성장가능성이 높다. 한국(91%)과 말레이시아(75%)는 물론, 태국(53%), 필리핀(44%), 라오스(40%)에 비해서도 도시화율이 떨어진다. 베트남은 각 지역마다 최저임금 수준이 달라, 호치민 같은 대도시로 노동인구가 급격하게 몰리고 있다.
다만 과거 한국투자자들이 정점이던 베트남 주식시장에 들어갔다가 크게 물렸던 것처럼 현지 부동산 시장도 과열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호치민 신규 주택지구의 고급 아파트 분양가가 서울 강북과 미사 등 동남권 외곽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경제규모와 인프라 면에서 과대평가됐다는 지적이다.
베트남 부동산 전문가인 기우석 ERA베트남 대표는 “남들이 하니 따라하는 해외 투자는 낭패를 초래할 수 있으니 시장 상황과 법·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호가를 터무니없이 올리거나 매수 호가만 확인하고 빠지는 ‘미끼 매물’도 많아져 투자에 주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기 대표는 “설상가상으로 최근 베트남 정부가 아파트 등에 대해 인허가 절차를 길게 잡고 지연시켜 매물 자체도 적어졌다”며 “단타로 접근하기보다는 믿을 만한 파트너를 끼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전략적인 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기 대표는 개인이 아파트를 매입했을 때 임대수익률은 평균 5~6% 정도, 현지 정기예금 이자 정도만 기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투티엠에 롯데, GS, 엠디엠과 케펠랜드, 홍콩랜드 등 국내외 업체 발길
문주현 엠디엠 회장 “사이공강변은 충분히 관심가질 만… 과열 조짐도”
베트남 정부는 2015년부터 외국인에게 자국의 부동산 투자를 본격 허용했다. 주택의 경우 외국인은 토지에 대해 50년 사용권, 건물에 대해 50년 소유권을 가진다. 외국인의 주택 소유한도는 전체 호수 또는 연면적의 3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은 개인자격으로 분양주택이나 외국인이 소유한 주택만 거래가 가능하다. 현지인이 분양받은 주택을 외국인이 사들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한 외국인이 소유한 주택을 사들일 때 50년 소유권 기간은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매도인이 사용하고 남은 잔여기간만 물려받는 식이다.
주택이 아닌 일반건물은 외국인이 개인으로서 사들이거나 임대할 수 없고 반드시 법인으로 투자해야 한다. 토지에 대해선 50년 사용권을 인정하고, 건물은 영구적인 소유권을 준다. 한국 법인이 베트남 땅을 사서 그 위에 상가건물을 지으면, 그 건물은 영구 소유가 가능하지만 땅은 50년이 지나면 베트남 정부에 임대료를 내야하는 식이다.
법인으로 베트남 상업시설에 투자했을 때 과거엔 법인 청산이 어려워 투자회수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주상복합 상가 등기가 불가능해 청산하지 못한 사례가 실제 존재했는데, 2017년 1월 등기법 개정 이후 등기 및 청산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일반적으로 투자청산이나 기업청산은 현행법에 따라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소요되지만, 현지 세제와 인허가 절차로 인해 기간이 훨씬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베트남에 투자를 진행 중인 국내 중소형 디벨로퍼 대표 A씨는 “외국인 투자로 경제성장을 끌어가고 있는 베트남 정부가 향후 외국인 투자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중국모델로 갈지 개방형인 싱가포르 모델로 갈지에 따라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베트남 부동산 투자는 자본이득을 다시 한국으로 가져가기보다는 현지에서 계속 키워간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