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사두고 직장 때문에 원주에서 5년째 거주 중인 김모(40) 씨는 요즘 목동 집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다. 원주 집은 전세이고, 목동 아파트만 가진 1주택자지만 보유할지 처분할지 여부를 놓고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씨가 고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그의 집은 공시가격이 9억원이 넘어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인데 내년부터는 세금이 대폭 올라갈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9·13 부동산 대책에서 2020년부터는 2년 이상 거주하지 않은 경우 1주택자라도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가 크게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고려할 때도 청약 당첨 가능성이 여러모로 낮아진 상황이다.
김 씨는 “직장 문제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목동 아파트에 살기 힘들다”며 “계속 보유를 하다 나중에라도 2년 거주요건을 채우고 팔아야 할지, 아니면 내년까지 팔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 2020년부터 장기보유특별공제 대폭 축소
장기보유특별공제는 그동안 9억원(매매가격 기준) 초과 1주택 보유자가 집을 팔 때 ‘세금 부담’을 크게 줄여줬다. 하지만 2020년부터는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지금까진 거주 여부·기간과 관계없이 10년 이상 보유하면 9억원 초과분에 대한 양도세를 최대 80%까지 깎아줬지만 2020년 1월부터 매도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2년 이상 거주’를 하지 않은 경우 일반 장특공제를 적용해 1년에 2%씩, 15년 이상 보유 시 최대 30%까지만 공제하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일을 기점으로 양도세 금액이 크게 벌어지는 셈이다.
만일 2001년 A아파트를 3억8500만원에 취득해 17년간 보유한 주택(2년 거주요건은 채우지 못함)을 지금 17억원에 매도한다고 가정해보자.
김종필 세무사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주택의 양도차익은 취득세 등을 제외하고 6억1882만원 정도다. 올해 집을 판다면 80%(4억9500만원)의 장특공제 혜택을 적용받아 양도세로 3030만원만 내면 된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이 집을 팔 경우 장특공제 혜택이 30%(1억8565만원)로 축소된다. 양도세는 지금 팔 경우의 5.3배인 1억6156만원까지 늘어난다.
김종필 세무사는 “2020년 이후에도 2년 거주와 무관하게 양도세율은 종전과 동일하지만, 장특공제에서 큰 차이를 보이면서 양도세 격차가 커지게 된다”며 “특히 단기보다는 장기 보유자일수록 법 개정 전후 양도세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내년 1인당 부동산세 부담 늘어날 전망
1주택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세금 문제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9·13대책을 반영하면 내년에 1인당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정부 9·13대책의 세수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세법개정안과 9·13대책에 따른 주택분의 1인당 종부세 세수효과는 1주택자의 경우 22만5000원이었다. 내년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이 23만원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정부의 세법개정안과 9·13대책에 따른 세수효과를 1주택자 154억원으로 보고, 1주택자 과세인원(6만9000명)으로 나눈 수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집값 상승분을 공시가격에 ‘현실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혀 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시가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와 각종 부담금 부과 지표로 활용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부동산 공시가격이 집값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10월부터 시작하는 공시가격 조사에서 올해 상승분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1월 중 청약제도가 무주택 실수요자 중심으로 대규모 개편된다는 사실도 1주택자에겐 부담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주택공급에 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내놓고 적용할 예정이다. 추첨제 물량의 최소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게 골자다. 나머지 25% 역시 무주택자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과 1순위 1주택자가 경쟁하도록 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물량의 50%를, 조정대상지역에서는 전용 85㎡ 이하 25%와 전용 85㎡ 초과 70%를 추첨제로 공급하고 있다. ‘주택 갈아타기’를 노리는 1주택자의 당첨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셈이다. 그나마 1주택자가 낮은 확률로 당첨되더라도 6개월 내에 기존 주택을 처분하도록 의무화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서울 강남 등 양도차익이 큰 지역의 중개업소 등엔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1주택 장기 보유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투자 목적 외에 직장 등의 문제로 지방에 내려갔다가 실거주를 못 채운 실수요자들도 꽤 있다”며 “지방 근무로 인해 2년 거주를 못한 한 손님은 며칠 전 적정 금액에 집을 팔아달라며 내놨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서울 집값이 조정될 조짐을 보이면서 이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보유세 부담은 늘어나고, 매도 시에도 세금이 더 붙기 때문이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강남 집값이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금리 인상 가능성에 국내 경기침체, 내년 집값 하락 전망까지 늘어나니 집주인들이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내년까지 집을 팔아야 기존 장특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매도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의 중개업소 사장은 “보유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중과로 인해 집을 팔기 어렵지만, 오히려 장특공제 혜택을 받으려는 1주택자의 매물이 내년에 늘어날 수 있다”며 “주택시장 분위기를 봐가며 임대사업 등록을 하든지, 팔든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급 적용’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에서 1주택자 비과세 요건에 ‘2년 거주’를 넣을 때도 대책 발표 이후 신규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에 한 해 적용했는데 장특공제는 왜 기존 보유자에까지 확대 적용하냐는 것이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장특공제 적용이 내년 말까지 유예돼 있어 당장 팔려는 움직임은 없지만 기존에 장기간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까지 2년 거주를 적용한다니 소급 적용이라며 반발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1주택자까지 투기꾼 취급한다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반포동의 중개업소 사장도 “2020년 양도분부터가 아니라 대책 발표 이후 주택을 새로 구입한 경우부터 적용해야 맞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청약통장은 유지” 목소리
1주택자들이 청약통장을 유지해야 할지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유지하라는 입장인 전문가들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효력’을 발휘하는 청약통장이 언젠가는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청약통장이 당장은 필요 없어졌지만 청약통장을 오래 보유하고,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가점을 주는 지금 구조가 유지된다면 통장 해지가 답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서울 등 투기과열지역에서 1순위가 되려면 청약통장에 가입해서 최소 2년 이상 지나야 한다”며 “가입기간이 길수록 청약 가점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청약통장에 일정 금액과 일정 납입 횟수를 만족했다면 납입을 중단하면 된다”며 “청약통장의 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도 금리가 낮아 부담이 작다”고 설명했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담보로 한 대출은 이자가 낮다. 1000만원을 빌려도 월 이자가 8000원 수준이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 소장은 “청약통장에 돈이 묶여 있을 때의 마이너스 효과보다 보유했을 때의 활용도가 더 크다”고 말했다.
반면 청약통장을 당장 해약하라고 조언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 전문가는 “청약제도가 다시 추첨제로 바뀌더라도 당첨된다는 보장은 없다”며 “확률에 기대기보다 부동산시장을 연구해서 저점에 미분양 물량 및 기존 주택을 사는 게 재테크 측면에서 월등히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당첨 가능성이 떨어지는 신규 아파트 청약을 고집할 필요 없이 재개발·재건축 투자에 나서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은 일반분양보다 좋은 동·호수를 골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