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동료, 지인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보다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그리고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뉴소비 트렌드가 새로운 대세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혼자서 밥을 먹거나(혼밥) 술을 마시는(혼술) 것은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이 됐다. 최근에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혼자 영화를 보거나(혼영) 여행을 떠나고(혼여) 노래방에도 혼자 가는(혼노)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인구 구조도 이 같은 트렌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혼을 미루고 혼자 사는 싱글족이 더 이상 사회의 눈치를 보는 세상은 옛말이 됐다. 미혼, 이혼, 부모로부터 독립 등을 통한 이른바 ‘1인가구’가 전국에서 520만 가구(2015년 통계청 기준)를 돌파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7.2%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2년 안에 가구 3곳 가운데 1곳은 나 홀로 1인가구가 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금융사, 싱글족 겨냥한 혼금 마케팅
이 같은 지각변동 속에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금융회사들이 최근 나 홀로 싱글족을 겨냥한 ‘혼금(혼자금융)’ 마케팅에 발 벗고 나섰다. 1인가구의 소비패턴을 빅데이터로 철저하게 분석한 뒤 맞춤형 금융상품을 내놓거나, 싱글족의 파트너인 반려동물을 특화한 상품도 틈새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올해 초 시중은행 연구소 가운데는 아예 1인가구의 소비패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조직도 생겨났을 정도다. 올해 3월 초 금융시장에 등장한 KB국민은행의 ‘1코노미 패키지’를 한번 들여다보자.
이 패키지 상품은 KB금융의 5개 핵심 계열사가 판매하는 상품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두 1인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은행은 1인가구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스마트 적금’과 ‘오피스텔 전세자금대출’을 출시했다. 국민카드는 1인가구 소비패턴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뒤 다양한 유형의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청춘대로 1코노미 카드’를 내놨다. KB손해보험은 독신가구를 겨냥한 ‘1코노미 암보장 건강보험’을, KB증권은 ‘1코노미 ELS(주가연계증권)’를, KB자산운용은 ‘1코노미 주식형 펀드’를 각각 패키지 상품에 담았다. 이런 상품들이 패키지로 나온 배경은 KB금융이 1인가구 시장을 차세대 수익원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KB금융은 올해 초 KB경영연구소 내부에 ‘1인가구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보고서 작성 업무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1인가구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한 KB금융의 금융상품과 마케팅 전략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의 대표적인 1인가구 금융상품인 ‘올포미(All for Me)’ 적금·카드 패키지의 경우 시장에 출시된 지 1년이 채 안 됐는데도 벌써 30만 계좌를 돌파했다. 이 상품은 적금과 카드를 패키지로 묶어서 싱글족을 겨냥한 우대금리와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올포미 적금의 경우 가입기간 3년 이내에 정기적립이나 자유적립이 가능하고, 올포미 카드는 싱글족이 주로 사용하는 7대 업종을 대상으로 매월 이용금액이 큰 순서대로 5~10%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1인가구 연구센터도 발족
1인가구 금융상품이 크게 늘고 있는 이유는 나 홀로 싱글족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그만큼 일반인들과 차별화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직장생활 15년차인 골드미스 김하영 씨(가명·38)의 일상생활을 예로 들여다보자.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마케팅 담당 팀장으로 일하는 그녀는 최근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본사에서 가까운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다. 점심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주로 먹지만 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저녁 식사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혼자서 먹는다. 혼자 살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관심이 더 많은 그녀는 얼마 전 신한은행이 출시한 헬스 플러스 적금에 가입했다. 이 적금은 개인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하면 우대 금리를 더 많이 주는 1인가구 특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만기일 전날까지 10만 보 이상 걷기에 성공하면 우대이율을 포함해 최대 2.0%의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녀는 현재 거주하는 오피스텔을 구할 때도 독신인 지인으로부터 우리은행이 출시한 ‘위비 발콜론’을 소개받아 1인가구 금융상품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이 상품은 싱글족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겨냥해 모바일 부동산 중개 플랫폼인 ‘방콜’과 제휴한 뒤 고객들에게 대출한도 최대 1000만원, 연 3.0%의 우대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1인가구 싱글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일반인들과 어떻게 다를까. KB금융연구소가 연소득 1200만원 이상 20~40대 1인가구 15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초 조사한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싱글족들은 하루 평균 두 끼를 혼자 먹고(41.5%), 5~10평형 원룸을 가장 선호(40.2%)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융 활동의 경우 예·적금 상품의 보유율이 응답자의 82.9%로 가장 많았던 반면 펀드(15.6%)나 채권(2.6%) 투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이 같은 특징은 최근 출시되고 있는 금융상품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하나은행이 출시한 ‘시크릿 적금’의 경우 싱글족들이 자기계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특징을 반영해 체중관리나 어학점수 등 목표를 미리 설정하거나 문화센터 등의 영수증을 제시하면 우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신한카드의 ‘미스터 라이프 카드’도 주거비용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1인가구의 특성을 반영해 전기·도시가스·통신요금 등을 자동 이체하면 건당 5만원까지(최대 1만원)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들 상품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1인가구의 소비행태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맞춤형 금융상품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시장 트렌드를 선도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싱글족 저축·투자보다 소비에 관심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싱글족들은 저축이나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적고 대신 현재 소비에 대한 관심이 더 큰 편이다. 출산이나 자녀 교육, 결혼 등 목돈이 들어가는 생애 이벤트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싱글족들은 보험을 들더라도 사망 보험이나 종신 보험보다는 질병이나 재해에 초점을 맞춘 실손보험이나 보장성 보험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증권 시장에서도 싱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해 설계한 맞춤형 연금저축 펀드, 1인가구 수혜업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주식형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노후대비 개인연금 상품은 금융회사에 따라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보험(보험사), 연금저축펀드(증권사)로 구분되는데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보장하는 펀드상품이 요즘 들어서는 가장 높은 가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상품의 경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거나 중도 해지할 경우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노후 대비용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에 나설 것을 권고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펫신탁·고독사 보험 등장
1인가구에 대한 금융상품 저변 확대는 급기야 반려동물 시장으로까지 옮겨 붙고 있다. 싱글족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선호한다는 사회적 통계를 반영한 마케팅 전략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을 이용할 때 치료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보험 상품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최근에는 반려동물 주인이 사망하거나 질병으로 돌보기 어려울 경우에 대비한 신탁상품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국민은행은 작년 말 ‘KB펫신탁’을 출시했는데 위탁자가 사망하기 전 새로운 반려동물 부양자를 지정해 신탁한 재산을 지급하는 상품구조로 설계돼 눈길을 끌었다. 기존 상품은 가입대상을 개로 한정했지만 반려동물 주인들의 호응이 뜨겁자 고양이까지 가입대상을 확대했다.
현재 520만 가구로 집계된 국내 1인가구 숫자는 오는 2020년에는 587만 가구로, 2035년에는 760만 가구로 크게 늘어나며 소비 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됐다(통계청 조사). 저금리와 저수익 구조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블루오션 시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금융회사들에게 이만큼 빨리 성장하는 새로운 소비계층을 발굴하기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1인가구 시대, 고령화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쓰이스미토모화재보험 등 일본의 대형 보험사들이 선보인 1인가구 상품 중에는 ‘고독사 보험’이라는 이색적인 상품이 있다. 돌봐줄 친지나 지인이 없는 고령자가 사망할 경우 장례 처리나, 유품 관리, 유산 처리 등을 보험회사가 대신 담당해주는 상품들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3만 명 안팎의 고령자들이 가족이나 친지들 없이 혼자서 쓸쓸하게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 같은 사회 트렌드를 상품 전략으로 연계시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고령자가 혼자서 숨질 경우 집주인이 지불해야 하는 생활용품 처리 비용이나 리모델링 비용까지 폭넓게 보장하는 보험 상품들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심지어는 친지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주거 공간을 임대해 주면서 그 조건으로 고독사 보험을 요구하는 집주인들도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고독사’는 친지나 지인들의 보살핌 없이 혼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지난 2010년 일본의 국영 NHK방송이 ‘무연(無緣) 사회’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서 그해 일본의 최고 히트어로 선정됐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