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부장인 40대 후반 양 모 씨는 최근 거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추천받아 헤지펀드에 2억원을 투자했다. 상장주식뿐만 아니라 공모주 등 다양한 자산과 전략을 활용해 분산투자하는 방식으로 펀드 운용사가 과거 투자자문사 시절부터 연 5% 이상 안정적 성과를 꾸준히 내왔다는 설명에 투자를 결정했다. 양 씨는 “지금까지 일반 공모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에 3000만~5000만원 단위로 가입했었는데 공모펀드는 수익률이 별로이고 ELS는 생각보다 위험이 큰 것 같아 헤지펀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2016년 금융투자상품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단연 헤지펀드. 공모펀드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는 것과 달리 헤지펀드는 서울 강남의 거액자산가는 물론 이제 중산층까지 속속 빨아들이고 있다. 1%대 저금리 시대를 맞아 헤지펀드가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연 5% 안팎 중위험·중수익을 노릴 수 있는 핵심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헤지펀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여의도 증권가
▶가입기준 완화로 중산층 가입 급증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6년 12월 12일 기준 국내 헤지펀드 설정잔액은 6조7085억원으로 작년 말 3조3945억원에 비해 2배 규모로 커졌다.
펀드 숫자도 작년 말 41개에서 현재 240개로 6배로 늘었다. 헤지펀드가 국내 처음 도입된 2011년 말 설정액(2369억원)과 비교하면 5년 사이 30배 가까이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이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최근 1년 사이 이처럼 투자자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은 것은 금융위원회가 2015년 10월 25일 헤지펀드 운용사 설립요건(자본금 60억원→20억원)과 최저 가입금액(5억원→1억원)을 낮춘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문턱이 낮아지면서 기존 투자자문사로 명성을 날리던 실력자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헤지펀드의 상품성이 높아졌다. 2016년 한 해 동안 전문 사모운용사로 신규등록한 운용사는 약 70개로 이 가운데 40개 넘는 운용사가 헤지펀드를 출시했다.
이들의 헤지펀드 총 운용자산은 2조5000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기존 헤지펀드는 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종목을 매수하고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을 공매도하는 롱숏(Long·Short) 전략 위주였다. 반면 신규 헤지펀드들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같은 메자닌, 공모주(IPO), 비상장주식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혼합한 게 특징이다.
최저 가입한도가 기존 5억원에서 1억원 이상(레버리지 200% 이상인 헤지펀드는 3억원 이상)으로 낮아지면서 투자자 저변이 확대된 것도 헤지펀드의 인기 원인이다. 5년 넘게 지속되는 지루한 박스권 장세에서 기관투자가들은 공매도를 활용해 수익을 내는 반면 공매도 접근이 쉽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은 헤지펀드를 통한 간접투자에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주요 3개 증권사의 2016년 헤지펀드 판매 현황을 살펴보면 가입자 3명 중 1명은 가입액이 1억원 규모다. 3개 증권사를 통해 올해 헤지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는 총 1195명인데, 이 가운데 1억원 이상~2억원 미만으로 투자한 가입자가 428명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했다.
2억원 이상~3억원 미만 가입자도 142명(12%)에 달했다. 헤지펀드 가입자의 절반가량이 3억원 미만인 셈이다.
불과 1년 전까지 헤지펀드 최소 가입한도가 5억원 이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증권사 가세로 펀드 종류 다양해져
헤지펀드 시장에 한발 늦게 진입한 증권사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증권사들은 최근 메자닌, 공모주, 부동산 등 차별화된 투자 전략을 앞세워 고객 유치를 본격화한 상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니 환영할 만하다.
2016년 8월 증권사 가운데 가장 먼저 헤지펀드 상품을 출시한 NH투자증권의 ‘NH앱솔루트리턴헤지펀드’ 운용잔고가 최근 2900억원을 돌파했다. 헤지펀드 시장에 뛰어들자마자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안다자산운용에 이어 업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NH투자증권은 연 목표수익률 15%라는 공격적인 수익률을 앞세워 고객 유치에 나섰다.
메자닌, 롱숏 등 10가지 이상 전략을 사용하고 최근 각광받는 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NH투자증권에 이어 두 번째로 헤지펀드를 출시한 코리아에셋증권의 ‘코리아에셋 클래식 공모주 전문투자형 사모증권투자신탁 1호’는 기업공개(IPO)에 참여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공모주 펀드 성격을 갖고 있다.
평상시에는 국공채와 우량 회사채에 주로 투자해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유가증권 및 코스닥 시장에 신규로 상장하는 공모주에 투자하여 추가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토러스투자증권은 고수익보다는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헤지펀드를 출시했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을 배제하고 국채 중심으로 연 3%의 수익률을 추구하고 있는 상품이다.
높은 수익률보다는 안정성에 초점을 둬 이 같은 상품 수요가 있는 수요자들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포석이다.
이 밖에 다른 주요 증권사들도 일제히 헤지펀드 시장 성장에 주목해 상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2017년 헤지펀드 출범을 준비 중이다. 주로 인덱스 추종 전략을 구사해 안정적 수익률을 올리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교보증권, LIG증권도 헤지펀드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PO 뜨고 롱숏 지고… 헤지펀드 지각변동
특히 올해는 IPO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의 성과가 돋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지펀드를 잘만 고르면 일반주식형 펀드에 비해 투자위험은 낮추면서도 연 10~20%가량 높은 ‘대박’ 성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반면 작년까지 국내 헤지펀드들이 주로 사용했던 롱숏 전략 헤지펀드는 올해 성과가 대부분 저조했다. 헤지펀드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2016년 12월 12일 기준 국내 설정된 240개 헤지펀드의 연초 이후 투자 성과를 살펴보면, 상위 10개 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 기준)의 평균 수익률은 13.4%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IPO 투자를 주요 전략으로 활용했다.
‘웰스 공모주’(23.3%), ‘제이씨에셋공모주’(15.2%), ‘파인밸류IPO플러스’(10.9%), ‘인벡스공모주’(9.8%), ‘보고알파플러스공모주’(8.5%) 등 펀드가 IPO 전략을 활용해 올해 10% 안팎의 수익을 기록했다.
IPO 전략 헤지펀드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파인밸류자산운용’이다.
올해 초 투자자문사에서 헤지펀드 전문운용사로 전환한 파인밸류는 2016년 1월 21일 가장 먼저 IPO 전략으로 특화된 ‘파인밸류IPO플러스’ 펀드를 출시했다. 한 증권사 PB는 “워낙 조용하게 운용하는 곳이어서 시장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공모주 투자에 특화됐고 CB와 같은 메자닌 투자도 병행하는 전략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8월 말 IPO 전략 헤지펀드를 처음 출시한 인벡스자산운용은 불과 100일 만에 1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록해 눈길을 끈다.
인벡스운용 관계자는 “지난 7월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 관련주의 ‘차이나 디스카운트’가 커진 상황에서 GRT(광학필름), 오가닉티코스메틱(아동용 화장품), 골든센츄리(농기계용 휠) 등 중국 공모주에 집중 투자해 좋은 수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반면 하위 10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1.3%로 매우 저조했다. 특히 수익률 하위 10개 펀드 가운데 4개는 주식 롱숏 전략을 활용했다. 2013년과 2014년 연간 20% 이상 수익을 내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았던 ‘대신 에버그린 롱숏’(-25.6%), ‘브레인 백두’(-22.4%), ‘브레인 한라’(-22.5%), ‘브레인 태백’(-22.5%) 등 롱숏 헤지펀드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업계 전문가는 “헤지펀드가 원래 공매도나 적극적인 자산 변경을 통해 위험을 회피(Hedge)하고 안정적 성과를 추구하지만, 전략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경우 투자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시장 변동성 커져
헤지펀드 관심 더 커질 듯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헤지펀드의 투자 매력은 더욱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헤지펀드는 시장 하락이 예상될 때 공매도를 하거나 금이나 채권 같은 안전자산으로 매우 빠르게 갈아타는 방식으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기 때문이다.
곽상준 신한금융투자 여의도본점영업부 PB팀장은 “헤지펀드의 특성이 수익을 좀 덜 먹더라고 덜 깨지는 데 있다”면서 “저금리 상황인 데다 트럼프 당선으로 글로벌 투자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연 5% 수준 중위험·중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라면 헤지펀드의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물산 합병 논란으로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내년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눈여겨볼 만하다는 지적이다. 김임권 현대증권 연구원은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의결권행사를 유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내년부터 큰 규모의 행동주의 펀드들이 본격적으로 설정돼 투자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임자산운용은 2016년 11월 말 국내 최초로 행동주의를 주요 전략으로 활용하는 ‘라임 데모크라시’ 헤지펀드를 출시했다.
이 헤지펀드는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 대주주 및 우호지분율이 낮아 지배구조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기업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기업들의 취약한 지배구조와 높은 유보금,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행사 지침)’ 도입 등으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행동주의펀드가 활동할 만한 여건이 성숙됐다”고 출시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모든 헤지펀드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한때 연간 20~30%가 넘는 수익률을 보이면서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일부 운용사들은 2015년부터 2년 연속 마이너스 성과를 내면서 투자자들이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헤지펀드들이 난립하면서 CB나 BW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만큼 메자닌 전략 비중이 큰 상품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권욱 안다자산운용 회장은 “시장이 확대되는 건 바람직하지만 2000년대 초반 벤처 버블 때처럼 돈이 몰린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헤지펀드를 내놨다가 성과가 안 좋아지면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가 신뢰를 잃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를 고를 때 무조건 최근 높은 수익률만 좇아가기보단 운용사별 중장기 성과와 전략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자금 여유가 있다면 하나의 헤지펀드에 집중 투자하는 것보다는 분산투자하는 것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