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이 달라진다. 필요한 특약을 골라 가입하는 대신 보험료를 최고 25% 정도 낮춘 상품이 오는 4월 나온다.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해 주지 않는 비급여 의료비 대부분을 보장해주는 현행 실손의료상품은 4월부터 기본형과 특약형(3개)으로 분리돼 판매된다.
만능 보장형 상품이 사라지는 대신 ‘기본형+특약(3개)’ 구조로 개편돼 신규 가입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품을 더욱 싸게 고를 수 있게 됐다.
▶도수치료 MRI 등 특약 가입해야 보장
△도수치료·체외충격파치료·증식치료 △비급여 영양주사(마늘주사 등) △비급여 MRI 검사 등 5개 진료 항목은 선택해서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고 가입해야 한다. 특약에 가입해도 보장한도와 횟수가 설정된다. 도수치료는 연간 50회, 누적 350만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MRI는 입원·통원 구분 없이 연간 보장한도가 300만원으로 설정됐다. MRI의 경우 기존 실손보험의 통원한도(30만원)보다 검사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실비 보장을 받기 위해 불필요한 입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고객이 기본형만 선택할 경우는 지금보다 25% 정도 싼 보험료를 내고 가입할 수 있지만 특약 사항은 보장받을 수 없다. 또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후 2년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보험료를 최대 1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특약형에 가입하지 않은 기본형 신규 가입자들은 현재보다 보험료가 내려가는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만 40세 남자 기준으로 현재 평균 실손보험료가 1만9429원인데 특약(3개)에 모두 가입하지 않을 때(기본형)는 보험료가 1만4309원으로 26.4% 낮아진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여기에 특약1(1394원), 특약2(834원), 특약3(1565원)을 모두 가입한다고 해도 총 보험료가 1만8102원으로 현재보다 6.8% 더 싸진다.
▶비급여 특약자기부담금
20%→30%로 확대
하지만 비급여(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치료) 특약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현행 20%에서 30%로 확대돼 ‘본전뽑기식’ 무분별한 의료쇼핑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과잉진료가 심각한 분야는 특약분리를 통해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기본형에만 가입한 고객들은 보험료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도수치료(물리치료)나 미용을 위한 비급여주사제, MRI 검사 등은 젊은 층들에게는 별 상관도 없으면서 보험료를 높이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본인이 관련 치료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면 3개 전부를 가입하지 않거나 필요한 것만 1, 2가지만 가입하면 된다. 향후 나이가 들어 질병 발생 확률이 높아지면 그때 가서 특약에 가입할 수도 있다.
보험사들의 잘못된 ‘끼워팔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오는 2018년 4월부터는 실손보험을 암보험이나 사망보험 등 다른 보험과 묶어 팔지 못 한다.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개편안에 대해 과잉진료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개선 효과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비급여 의료항목의 표준화, 진료비 내역서 공개 등 추가적인 제도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과잉 진료를 부르는 ‘제2의 도수치료’가 나타날 경우 이를 또 특약으로 분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급여 의료비에 대해 2년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3년 차부터 보험료를 10% 이상 할인받을 수 있어 진료비가 소액인 경우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게 이익일 수도 있다.
정부는 다만 급여 본인부담금과 4대 중증질환 관련한 비급여 의료비는 보험금 미청구 여부를 판단할 때 제외하기로 했다. 따라서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관련 비급여 의료비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했어도 보험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약 보험료 따져본 후 갈아탈 수 있어
정부의 이 같은 개편에도 불구하고 실손보험이 현재 전 국민의 65%인 3296만명(6월말 기준)이나 가입한 상품이어서 신규 가입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기존 가입자들도 특약 항목과 보험료 등을 꼼꼼하게 따져본 후 새로운 실손보험으로 갈아탈 수 있다. 보험사별로 가입 심사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동일한 회사 상품 내에서만 갈아타기를 허용하고 있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온라인 채널 가입을 유도해 나가기로 한 만큼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편리하고 저렴하게 가입하는 방법도 노려볼 만하다. 온라인 실손보험은 삼성화재, 동부화재, KB손보, 메리츠화재 등 4개사가 판매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올해부터 온라인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 보험금 청구도 모든 보험사가 모바일 앱을 통한 청구 서비스를 시작하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재직 중에만 보장되는 단체실손보험 가입자가 퇴직 후에 개인실손보험으로 연결해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올 하반기께 마련되는 점도 눈에 띈다. 단 최근 나오고 있는 한방 정액 보장 상품들은 이번 개편안과 상관없이 상품 설계 시 보장하는 한도만큼만 보장한다.
생명·손해보험업계는 “과잉진료에 따른 손해율을 줄일 수 있다”며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실손상품 끼워팔기를 금지하는 단독형 판매 의무화 규정과 보험금 미청구자 할인제도 등에 대해서는 부담이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개편안 중 보험사들이 가장 반발하는 내용은 2018년 4월부터 실손 단독형 상품만 판매해야 하는 점이다. A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수당이 얼마 되지도 않는 실손 단독형 상품을 설계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판매할지 의문”이라며 “온라인 판매를 늘려 이를 보완한다고 하지만 새 제도가 정착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계는 “이미 3200만 명이나 되는 기존 가입자들의 과잉진료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과 기존 가입자들을 위한 혜택이 없는 점, 그리고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 비급여 진료 부분을 투명화시키는 방안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오는 4월 1일까지 병원급 이상(30병상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포함시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