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청약·분양권 전매 투자 과열에 대해 ‘주택시장 관리방안(11·3대책)’을 내놓은 이후 규제 대상이 된 서울 분양 시장이 혼란 속을 헤매고 있다.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내면 분양권 전매를 통해 6개월 치 월급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 때 ‘국민 투자 상품’으로까지 불리던 분양권 거래가 먼저 얼어붙었다.
분양 시장 조이기가 시작되자 국토부가 중점 관리지역으로 꼽지 않은 비강남의 재건축·재개발 단지를 중심으로 잠시 살아나던 아파트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해외 경제환경 변화를 비롯해 일파만파 번지는 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치면서 다시 움츠러들고 있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강남3구 등 특정 지역의 분양 아파트에 쏠린 투기과열에 대한 타기팅(targeting)이라고 보면서도 대내외적인 정치적 불안정과 이에 따른 금리 변동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투자 목적의 아파트 매매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강남일대
▶규제로 움츠린 강남권 아파트 시장
매수 문의 뚝 끊겨… 호가도 급락
정부가 ‘분양권 전매제한·1순위 가격 요건 강화, 재당첨 금지’ 등을 통해 부동산 규제 대책에 나서자 서울 강남권 시장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규제의 초점은 분양 과열 억제지만 투자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기존 아파트 시장 역시 거래가 뜸해진 상황이다. 투기과열 논란을 지핀 강남·서초 일대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집주인들이 올리려던 호가를 그대로 두는 한편 투자자들은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올해 본격적인 강남 청약 열기를 지핀 ‘래미안 블레스티지(개포주공2단지 재건축)’를 비롯한 개포 지구 일대 공인중개소 밀집 상가에는 거래 한파 주의보가 내렸다. A공인 관계자는 “개포 일대는 심리적 영향을 따라 움직이는 투자 수요가 중심을 이루는데 도통 블레스티지 분양권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전매 제한이 풀린 지 3주 새 상황이 급변해 투기과열지구 지정 얘기가 나온 2주 전부터 매수 문의가 뚝 끊겼다. 분양권 호가도 3000만~5000만원씩 떨어진 데다 이달 3일 대책 이후로는 당분간 개점휴업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제한이 풀리던 10월 중순만 해도 이 단지의 분양권은 ‘양도세 대신 납부·웃돈 1억5000만원 이상’이 거래의 기본으로 통했지만 정부가 규제 움직임을 보인 1~2주 새 호가가 떨어지기 시작한 데다 이번 대책이 발표되면서 자신 있게 양도세 대납을 필수로 내세우던 매도자들이 눈치 보기에 나섰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내년 이후 분양을 앞두고 있는 재건축 단지들의 표정도 썩 밝지는 않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부동산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을 하면서 시장에서는 지금의 상승세가 곧 꺾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 잠원동 일대 B공인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원 물건 매수 문의도 잠잠하다”며 “당장 11·3대책뿐 아니라 고위 정책가들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도 중요한 데다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여부 등의 이슈가 있기 때문에 풍선효과를 기대할 만한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지켜보겠다’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반포동 C공인 대표는 “시장은 이미 지난 2006년 버블7 시절 이후에도 가격이 올랐던 경험을 학습한 상황이지만 시국이 어수선한 와중이라 그런지 매수 문의만 있고 실제 매매 거래가 없다”고 말했다.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상계 주공아파트단지
▶반짝 풍선효과 나타난
노원 상계주공 일대
10월 말 국토부가 강남권 분양 시장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비강남 투자 유망지를 찾아 움직였다. 이들의 발걸음이 닿은 대표적인 곳이 노원구 상계동 일대다. 이 지역은 소형·저층 재건축 단지가 포진해 있다는 점에서 강남 개포동과 ‘닮은 꼴’로 통하는 동네이다.
“1~2주 새 매수 문의가 1.5배는 늘었습니다. 한 번에 서너 채 사겠다는 강남 아줌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4단지 인근 A공인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집주인들이 일주일 만에 호가를 2000만원씩 올려 부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4단지 전용면적 58㎡형의 매매 호가는 지난주 초 3억2000만원에서 3억4000만원 선으로 올라섰다. 정부가 강남권 재건축 투기과열 규제 시기를 재고 있던 10월 말을 즈음해 투자 열기가 강북권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상계동 주공 1~16단지 중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8단지는 전용 47㎡형의 매매 호가가 3억4000만원 선으로 일주일 만에 1000만원가량 뛰었다. B공인 관계자는 “개포주공 대신 상계주공을 여러 채 사는 게 어떤지 묻는 투자 상담도 들어왔다”며 “정부가 강남권 시장 개입 의사를 비치자 대체 투자처로 생각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개포주공4단지(전용 44㎡형)의 시세는 10억3500만원 선으로 상계주공8단지 전용 47㎡형 3채와 맞먹는다.
상계주공(1~16단지)은 정부의 제5·6차 경제개발계획과 더불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택 500만호 건설’ 목표하에 1985~1989년 들어선 대단지이다. 상계 주공 일대가 총 4만여 가구인 점으로 보면 과천주공(1만3500여 가구)과 개포주공(1만5700여 가구) 일대의 2배가 훌쩍 넘는 규모다. 상계주공은 재건축 연한 단축(40년→30년) 등을 담은 이른바 ‘부동산3법’이 지난 2014년 통과되면서 2018년 이후 재건축 대상에 포함됐다. 8단지는 안전 위험이 불거지면서 예외적으로 재건축 조합이 만들어져 지난 5월 말 한화건설을 시공사로 정해 현재는 관리처분인가를 준비 중이다. 일대는 상계주공 재건축과 재개발 형식의 ‘뉴타운’사업으로 최근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10월 말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실거래 정보에 따르면 상계동 일대 올해 3분기 주택거래량은 1853건으로 이전 분기인 2분기(1413건) 대비 30%가량, 1년 전 같은 기간(1463건)에 비하면 27%가량 늘었다. 특히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한 아파트 투자가 활기를 띠면서 올 3분기(1592건)는 이전 분기와 1년 전에 비해 각각 35%와 30%가량 거래가 늘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호가가 아닌 거래 시세를 기준으로 단지·면적별로 올 3분기는 직전 분기 대비 5%가량 올라섰다.
C공인 관계자는 “최근 상계뉴타운4구역이 이주에 들어가면서 동네 개발 이슈가 더 불거진 측면도 있다”며 “투자자들이 주공 재건축 아파트와 뉴타운 다세대·연립 매수를 두고 저울질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판자촌 ·달동네’ 오명을 썼던 뉴타운은 6개 구역 중 해제된 3구역을 제외하고 하나 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부 조합원 물건은 5000만원가량 웃돈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투자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상계주공 일대가 정부 규제를 앞두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투자 손길이 옮겨 가는 ‘풍선 효과’ 영향을 받고 있지만 개발 호재가 있기 때문에 시세 상승 여력이 높다”며 “다만 추가분담금과 향후 주택시장 분위기를 감안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수문의 늘어난
‘강북3구(마포·서대문·은평)’
“요즘 들어서는 송파·잠실 쪽에서도 매수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성급하게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11·3대책을 즈음해서는 마포 쪽에 갭투자를 하겠다는 강남권 투자자들이 눈에 띕니다.”
-마포구 용강동 B공인 관계자
“입주를 앞둔 시점에서 거래는 보통 전세 실거주 위주인데 지난주 이후로는 분양권 매수 문의가 많아졌습니다. 집주인들의 배짱이 두둑해지는 바람에 선뜻 팔려는 사람도 없고 호가만 1000만원에서 많게는 4000만원이 뛰었습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A공인 관계자
비강남권 기존 아파트 시장에서는 이른바 ‘갭(gap)투자’를 염두에 둔 매수 문의가 들어오는 중이다. 분양권 투자의 경우 계약금과 이자 비용 등을 포함하면 서울에서 5000만~1억원 선에 할 수 있는데 비슷한 1억원 선의 금액으로 갭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의 기존 아파트가 ‘대체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갭투자란 세입자가 낸 전세 보증금 등을 끼고 집을 사들인 뒤 되팔아 시세차익을 내는 투자 방식으로 보통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은 곳에서 주로 이뤄진다. 강남3구와 강동 등 이른바 ‘강남4구’ 일대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일 본격적인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마포·서대문·은평으로 대표되는 강북 3구에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맏형 ‘마포’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던 은평 뉴타운일대도 시세가 오르는 한편 서대문 일대에서는 재개발 구역들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우선 광화문과 여의도로 통하는 직주근접지로 전세·매매 시세 상승세를 주도해온 마포 일대에서는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금의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지역으로 갭투자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2014년 입주한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형(5층 이상 기준)은 10월 말 호가 시세가 6억9000만원이었지만 11·3대책을 즈음해 7억1000만원 이상을 오갔다. 인근 C공인 관계자는 “전세 시세가 5억3000만원 선인데 수요가 이어지기 때문에 전세금도 오르는 실정”이라며 “기존 전세가율이 77~80% 선이다보니 시세 상승 여력을 염두에 둔 투자자들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이려고 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11·3대책의 규제를 피한 단지들의 분양권 몸값도 소리 없이 오르는 중이다. 이달 사전 입주자 점검 작업을 앞둔 서대문 북아현동 ‘e편한세상신촌’의 분양권 가격(5층 이상·전용60㎡형 기준)은 10월 말 6억3000만원이던 것이 11월에는 6억7000만원 선으로 매도 호가가 올랐다.
이른바 떴다방(이동식 불법공인중개업소)들 역시 소리 없이 초기 웃돈 만들기 작업에 나섰다. 계약자와 투자 수요자들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정당계약을 진행한 마포 신촌숲아이파크(신수1구역)의 분양권은 전매 제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웃돈이 최소 3000만~최고 8000만원을 오가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리 소문 없이 시세가 올라가면서 이제 마포 일대도 강남처럼 ‘웃돈 최저 5000만원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오간다”고 말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은 전세가율을 보이고 있는 곳은 성북구(83.7%)의 석관동 일대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F공인 관계자는 “중대형 매매 가격이 4억 8000만~5억원인데 전세금은 4억 3000만~4억5000만원 선으로 전세가율이 90%를 넘나드는 단지들을 중심으로 갭투자 매수문의가 들어온다”며 “수억원의 목돈이 들어가는 일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조합원 입주권과 달리 갭투자는 사실상 들어가는 자본금과 이자비용 측면에서는 분양권 전매 투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상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향후 입주 물량이 많아 전세금 하락 우려가 있는 비서울 수도권과 달리 서울 시장은 시세상승 여력이 있기 때문에 저금리 기조하에서는 규제를 피해가는 투자가 계속 이뤄질 것”이라며 “초과이익환수제 리스크가 덜하고 강남권에 비해 가격이 싼 비강남 재개발사업장의 조합원 입주권 투자도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분양 재개 나선 건설사들
“내년엔 올해 같은 열기 힘들 듯”
11·3규제 이후 줄줄이 연기됐던 서울 인기 투자지역 정비·도시개발사업장들은 11월 말 일제히 분양 재개 움직임을 보였다. 강남권은 ‘3.3㎡당 분양가 4000만원’ 시대를 연 서초구에서 나오는 ‘래미안신반포리오센트(신반포18·24차 재건축)’를 비롯해 영동대로 개발 호재가 있는 송파 ‘잠실올림픽아이파크(풍납우성 재건축)’, 비강남권에서는 강서 학군 투자지인 양천구의 ‘목동파크자이(신정도시개발지구)’, 강북 대표 직주근접지 마포 ‘신촌그랑자이(대흥2구역 재개발)’, 갭투자가 성행하는 성북구 ‘래미안아트리치(석관2구역 재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11·3규제를 전후해 분양을 미뤘던 사업장들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규제 여파의 불확실성을 하루빨리 줄이자는 계산에서다. 시공을 맡은 건설사 입장에서도 분양 결과를 연말 실적에 반영할 수 있는 데다 일정이 계속 미뤄지는 경우 이자 비용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분위기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꺾이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업장들이 분양을 재개하는 바람에 인기 단지들이 이만큼 몰린 것은 올 들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시장 열기를 이끌던 투자 수요가 11·3규제 이후 관망세에 들어갔지만 공급 측면인 개발사업장의 조합과 건설사들은 일정 조정을 두고 바쁘게 주판알을 굴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시장 전망에 대한 사업장 내 이견은 일정 조정의 중요한 변수다. 강남권 조합 관계자 등에 따르면 분양가를 올리자는 일부 조합원들의 의견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심사를 의식한 시공사 간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시장 예상 외에 정책적 움직임도 고려해야 한다. 국토부의 11·3규제 노선을 따르고 있는 HUG가 조합이나 건설사들이 희망하는 일정 내에 최종적으로 보증 승인을 내린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업계가 예상하는 분양 일정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형C사 관계자는 “보증이 마무리돼야 ‘입주자 모집승인 신청-모집 공고-청약접수-계약’에 들어간다”며 “아직 보증작업 중임에도 문을 연 견본주택은 규제 적용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요자가 찾을 만한 입지 좋은 사업장인 경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1·3대책이 ‘맞춤형’ 대응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심리적 요인이 중요한 부동산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권 전매를 비롯해 양도세 전가까지 이뤄지며 수억원대·수십대 1의 청약 경쟁률을 오가는 강남권 등에 대해 정부가 시장 왜곡을 잡겠다는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에 일대는 연말까지 관망세를 보일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TF 팀장은 “내년 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 데다 대내외적인 정치·경제적 상황이 어수선하기 때문에 이번 규제로 인해 부동산 시장 전체적인 차원에서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일부 지역의 부동산 시장 투자 열기는 부의 재분배 등의 측면에서 정부가 시장 과열을 마냥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기는 하지만 추가 규제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과연 어느 정도의 상승세가 거품이고 과열인지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인데 고분양가를 비롯한 지금의 일부지역 시세 상승세는 단순한 투기 심리보다는 ‘저금리’라는 경제 변수가 더 큰 영향을 준 것”이라며 “내년 이후 시장 분위기가 하락세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정부도 연말 경기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