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단지의 매매 시세는 정부가 ‘버블 7지역(서울 강남·서초·송파·양천 목동, 경기 분당·용인·평촌)’을 지정할 정도로 과열양상을 띠던 지난 2006년의 가격을 뚫은 지 오래다. 재건축 아파트는 그동안 관리처분 인가 이전을 ‘매수 골든타임’으로 꼽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오르기 전에 사자’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이미 관리처분이 끝나 일반분양에 이르는 시점에서조차 가격이 가파른 오름세를 타고 있다.
재건축아파트는 시세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사업의 리스크와 개발 이익을 동시에 고려해 매매 시점을 잡는데 이런 매수 타이밍이란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강남·서초 재건축 관리처분 이후 급등세
서초 잠원동 일대 A공인 관계자는 “2013년까지만 해도 5000만~3억원 정도로 가격이 뛰는 ‘조합설립~관리처분’ 단계가 본격적인 투자로 이뤄지는 시기였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올 들어서는 오히려 관리처분 이후에 가격이 더 뛰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조합설립은 사업이 공식적으로 본격 궤도에 오르는 단계이다.
이후 건축심의와 사업인가에 이르는 과정에서 1차적으로 시세가 뛴다.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 추가분담금의 액수·새 아파트 배정 등을 둘러싼 ‘조합 내 갈등’과 용적률·기부채납비율 등을 둘러싼 ‘조합-지자체 간 갈등’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투자자로서는 여유 자금이 묶일 위험이 크지만 가격 상승폭은 그만큼 크다. 관리처분 단계에서는 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확정되기 때문에 위험이 크게 줄어드는 반면 시세 상승세는 둔화된다.
게다가 사업장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조합설립부터 관리처분에 이르는 기간이 관리처분부터 일반분양에 이르는 기간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 길기 때문에 가격 상승폭 역시 더 클 수 있다.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끌어모았던 강남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청실)’는 조합인가를 받던 2003년 5월 이후 청실 전용면적 95㎡형의 매매가격은 6억9000만원 선이었지만, 사업인가를 받은 2010년 12월쯤에는 10억3000만원까지 시세가 뛰었다. 이후 관리처분 시기인 2011년 6월에는 10억원으로 오히려 다소 낮아졌다가 2년여 후인 2013년 11월 일반분양을 앞두고 11억3000만원 선으로 올랐다.
관리처분 이전까지 4억원이 올랐다면 이후 일반분양까지 1억3000여 만원 정도 오른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향은 재건축 시장을 달구고 있는 강남 개포지구와 서초 잠원동 일대를 중심으로 깨지고 있다. 두 지역은 일반 분양으로 청약 돌풍을 일으키면서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등의 단속 표적이 됐던 동네이다.
잠원동 ‘래미안신반포리오센트(신반포18·24차 통합)’는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대출 보증 제한을 통해 ‘강남 재건축 고분양가 관리’라는 칼을 빼들면서 ‘아크로리버뷰(신반포5차)’, ‘방배아트자이(방배3구역)’와 함께 요주의 대상 단지로 꼽은 곳이다. 인근 공인중개소들에 따르면 당장 이달 말 분양을 앞둔 신반포18차 조합원 물건 가격은 전용 112㎡형을 기준으로 12억원 선이다.
조합설립 시점인 2010년 5월쯤 8억5000만원이던 것이 사업인가를 받던 2013년 12월 말에는 8억7000만원으로 2000만원가량 오른 후 꾸준히 올라 관리처분 당시였던 지난해 2월 9억5000만원 선을 기록했다.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는 12억원으로 2억5000만원이 오히려 더 뛰었다.
올해 3월 일반분양을 통해 본격적으로 강남권 재건축 열기의 불을 지핀 강남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개포주공2단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조합이 만들어진 2013년 6월 당시 7억4000만원 선이던 전용 47㎡형의 매매 가격은 사업인가를 받던 2014년 5월 8억3000만원으로 9000만원가량 오른 후, 관리처분 인가쯤인 2015년 2월에는 8억4000만원으로 다시 1000만원가량 올랐다. 하지만 1년 후, 일반분양을 코앞에 둔 올 2월에는 관리처분인가 이후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상승폭이 더 두드러져 9억6000만원 선으로 올랐다.
▶저금리로 갈 곳 잃은 뭉칫돈
재건축시장에 몰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장 변화의 배경으로 저금리를 꼽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우리 부동산 시장을 지배해온 ‘강남불패신화’에 더해 지난 2014년 말부터 한은 기준금리가 꾸준히 내리면서 갈 곳 잃은 여유자금이 강남권 한복판으로 향한 결과”라며 “‘디에이치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가 대표적인 사례로 자금력이 있는 투자자들은 중도금 대출 규제 등의 영향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당분간 강남권 재건축 투자 열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3.3㎡당 평균 분양가가 4137만원인 디에이치아너힐즈는 분양 승인 당시 고분양가 논란으로 HUG의 보증심사를 여러 차례 거쳤고, 총 분양가가 9억원 이상이라는 이유로 중도금 집단대출을 하지 않았지만 지난달 일반분양 69가구가 계약 시작 나흘 만에 모두 팔렸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 센터장은 “디에이치개포의 경우 일반분양분이 적기는 했지만 일대 강남권 아파트 시장은 저금리로 인한 투자 열기 속에 ‘매수자 우위’인 상황이다 보니 호가가 계속 오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억대의 차익 실현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다. 당장 지난달 11일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린 ‘래미안블레스티지’ 인근 C공인 관계자는 “당시 3.3㎡당 평균 분양가가 3760만원으로 고분양가 논란이 나왔던 데다 앞으로도 강남권 재건축 일반분양이 이어질 예정이어서 웃돈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3.3㎡당 평균분양가 4290만원으로 강남권 최고 분양 가격 기록을 세운 잠원동 ‘신반포자이(반포한양)’ 인근 D공인 관계자는 “최소 1억원 이상의 웃돈이 붙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와 다르게 실제 웃돈은 5000만원을 전후한 정도”라며 “전용 85㎡형의 매매 시세가 15억~15억5000만원 선으로 분양가(13억6000만~15억2000만원)보다 높아 보이지만 구체적인 웃돈은 실제 동·층·향을 고려해 정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남 대치·개포동 아파트 단지 전경
▶재건축 ‘일반분양권’ 거래는 잠잠
“분양가가 높아서 올 3월쯤 겨우 미분양이 해소됐습니다. 시세가 얼마나 오를지는 의문이에요. 웃돈이 3000만원 미만인 매물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분양해 올 상반기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린 서초 반포동 ‘반포래미안아이파크(서초한양 재건축)’의 인근 A공인 관계자의 말이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가 분양시장을 달구고 있지만 상반기 줄줄이 전매 제한이 해제된 강남·서초 일대 재건축 단지들의 분양권 거래는 잠잠하다. 지난해 말부터 3.3㎡당 평균 분양가 4000만원 시대를 열면서 전매 차익의 여지도 줄어들어 시세는 ‘억대 웃돈’을 바라던 투자자들의 기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분양가가 14억3000만~15억3000만원인 반포래미안아이파크 전용 85㎡형의 경우 서울부동산 정보광장 실거래가 정보에 따르면 분양권 시세는 14억7000만~15억5000만원을 오간다.
3.3㎡당 평균 분양가 4240만원으로 1순위 청약접수 당시 강남3구 최고 가격을 기록했던 이 단지는 고분양가 논란에 휘말린 결과 계약이 1~2주 안에 마감되는 강남권 분양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올 초까지 분양을 이어왔다.
사정은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다른 단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3.3㎡당 분양가 4094만원으로 지난해 10월 분양한 ‘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삼호가든4차 재건축)’은 올 4월 분양권 전매 제한이 해제된 이후 현재는 전용 60㎡ 이하의 소형에만 웃돈이 3000만~5000만원가량 붙어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중소형으로 분류되는 85㎡형만 해도 ‘무피(웃돈이 붙지 않은 경우)’ 거래가 이뤄졌고 웃돈 시세는 1000만~2000만원 정도”라며 “1년 내 되파는 경우 전매차익의 절반가량을 양도세로 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전매차익은 더 줄어든다”고 말했다. 계약한 지 1년 이내인 분양권의 경우 파는 사람은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양도차익의 55%, 1년 이상∼2년 미만이면 양도차익의 44%를 양도세로 내야 한다.
3.3㎡당 429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 가격으로 분양 시장에 나온 ‘신반포자이(반포한양 재건축)’ 전용 85㎡형의 분양권 웃돈은 3000만~6000만원 선이다. 현장에서는 거래가 정점을 향해가고 있어서 추가 상승 여력은 의문이란 반응이 나온다.
인근 C공인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한 달에 10~20건씩 거래되던 것이 이제는 한 달에 3~4건 거래되는 정도인데 추격매수가 얼마나 더 이뤄질지는 의문”이라며 “앞으로도 일대 재건축 단지들이 분양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보니 수요가 분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분양가로 인해 억대의 차익 실현 여지가 줄어들었지만 일부 단지들은 웃돈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현장 전망이 나온다. 올 초 일반분양을 시작하면서 강남권 재건축 투자 열기를 당긴 강남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개포주공 2단지 재건축)’의 D공인 관계자는 “11일쯤부터 전매 제한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매도자 우위’ 분위기 속에 당장은 관망세지만 중도금 부담이 덜하다는 점 때문에 초기 웃돈 호가가 1억원을 오가고 있다”며 “수요자들은 중도금 집단 대출이 가능해서 초기 투자금이 1억원 선으로 자금 부담이 덜하다는 점 때문에 매수 문의를 해온다”고 말했다.
인근 E공인 관계자는 “매도인들이 실거래가보다 신고가를 낮추는 ‘다운계약’보다는 양도세를 매수인에게 내도록 하는 ‘세금전가’를 선호하고 있다”며 “입주가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하에 나오는 요구”라고 말했다. 사실상 올해 7~8월부터 정부가 총 분양가가 9억원 이상인 서울 아파트에 대해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을 통한 중도금 집단대출 보증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 보증 규제 이전에 분양한 단지의 웃돈 시세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유보적인 입장도 있다. 개포동 F공인관계자는 “올 상반기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을 들썩이게 한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웃돈 호가만 높은 상황”이라며 “강남권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은 여유자금이 있는 투자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증규제로 인해 집단대출이 되지 않더라고 강남권 다른 단지를 사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래미안블레스티지의 웃돈이 과연 천정부지로 치솟을지는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주택 시장이 전반적으로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데다 저금리 속에 여유자금이 강남권 재건축 시장으로 몰리면서 온도 차는 있겠지만 일대 분양권 투자 수요는 이어질 것이고 시세 역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고분양가·중도금 보증규제’ 영향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남재건축 아파트단지
▶조합원 입주권 vs 일반분양권
수요가 넘치면서 여유자금이 있는 투자자들은 ‘분양권이냐 입주권이냐’로 저울질을 시작한다. 분양권 전매는 일반분양 시장에 나온 물건을 사들이는 것으로 ‘선분양 후시공’의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에서 전형적인 투자 방식이다. 입주권이란 일반분양을 통하지 않고 조합원이 가진 물건을 직접 사들이는 것이다. 분양권과 입주권 중 선택할 때는 각각 장단점을 고려해야 한다. 총 매매금액만 따지면 조합원 물건이 더 저렴하지만 한꺼번에 목돈을 지불해야 한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통상 조합과 시공사가 ‘밀실 가격 책정’을 하지만 일반분양가가 조합원 분양가보다 10~15% 높은 편이고, 전매제한이 풀려도 조합원 물건 가격은 낮은 편이다. 일반분양분은 계약금·중도금·잔금을 나눠 낼 수 있어 한 번에 목돈을 주고 사야 하는 조합원 물건보다 비용 부담이 적은 편이다. 중도금 담보대출에 따른 이자는 입주 시기에 정산할 수 있기 때문에 분양가의 10% 선인 계약금을 낸 후 분양에서 입주까지 약 2년간 추가로 드는 비용이 없다는 점이 매력이다.
하지만 일반분양을 받으려는 경우 ‘로또’ 수준인 청약에서 당첨돼야 한다. 지난달 10월 5일 1순위 청약 접수를 받은 ‘아크로 리버뷰(신반포 5차 재건축)’는 평균 경쟁률이 306.6대 1로 지난 5년간 분양했던 강남권 아파트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해 서울 분양단지 중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이기도 한데 이전 최고 경쟁률은 올 8월 분양한 ‘디에이치아너힐즈(개포주공3·일반분양 63가구)’로 100.6대 1이었다.
청약 당첨이 안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전매를 통해 분양권을 사들이는 수밖에 없다. 고려할 점은 또 있다. 이른바 로열동·층을 원한다면 조합원 입주권이 유리하다. 일반 분양은 조합원들이 우선 고르고 남은 물량을 추첨에 의해 배정받고 물량도 적어 원하는 동과 호를 선택할 확률도 낮아진다. 고준석 신한은행 PWM프리빌리지 서울센터장은 “다만 조합원 물건은 사들이는 시점에 따라 사업 지연으로 인한 추가분담금이 늘어날 위험이 있다”며 “보통 조합원 입주권은 재건축사업 진행 단계상 시세가 뛰기 전, 사업시행 인가 직후 또는 취득세를 절약할 수 있는 관리처분 이전에 사들이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이동현 KEB 하나은행 행복한부동산센터장은 “강남 불패 신화 속에 전매제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뾰족한 투자처가 없음에도 일부 로열층·동을 제외하면 억대 시세차익을 무턱대고 기대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