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랜지가 문을 닫으면 당장 현대차의 인기 차종인 아반떼나 소나타 그랜저 산타페는 물론이고 기아차의 소렌토 등도 생산 차질을 빚는다. 이 회사에서 이들 차량에 들어가는 중요 부품인 하프 샤프트나 액슬 모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프 샤프트는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에서 나오는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장치이며, 액슬 모듈은 승용차의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등이 들어간 핵심 부품이다. 이 회사는 국내 최대의 하프 샤프트 생산업체일 뿐 아니라 액슬 모듈 점유율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프랜지는 이 외에도 엔진의 중요 부품인 크랭크 샤프트와 코넥팅 로드 등 단조품과 선박이나 발전설비 등에 들어가는 프랜지도 생산하고 있다. Fn가이드에 따르면 이 회사의 매출비중은 자동차 부품이 84%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랜지가 13%, 기타 3%이다. 자동차 부품의 주요 판매처는 현대차와 기아차이며, 프랜지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에 팔고 있다.
현대가 사돈기업인 한국프랜지
현대차그룹이 한국프랜지에 이런 중요한 사업을 맡긴 이유는 두 집안의 특수 관계 때문이다. 지난 1974년에 한국프랜지의 전신인 울산철공을 창업한 故 김영주 전 한국프랜지 명예회장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매제다. 이런 사이의 이점을 안고 돈을 번 한국프랜지는 지금 서한이라는 이름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서한그룹은 한국프랜지나 서한산업을 비롯해 울산방송, 서한워너터보, 서한ENP, 서한Auto USA, 북경서한NTN, 서한NTN베어링, KOFCO.USA 등 여러 계열사를 두고 있다.
한국프랜지 단독 매출은 6466억원대이나 이들 계열사를 포함한 연결 기준 매출은 2011년 9724억원이었고 지난해는 1조원대에 진입했다. 게다가 회사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단독 매출액은 2011년 5965억원에서 지난해 8.4%나 늘었다. 2000년 말 3144억원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애널리스트와 거리 먼 회사
그런데 한국 간판산업의 핵심 업체이자 매출도 적지 않은 기업을 다루는 애널리스트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국내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아직 한국프랜지를 커버하지 않아서 리포트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회사의 주요주주 리스트를 봐도 기관투자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프랜지의 시가총액은 725억원에 불과하다. 자본총계만 해도 2600억원이 넘는 회사가 증시에서 받는 대접은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다. 증권 전문가들이 이 회사를 찾지 않고, 또 이 회사가 주가나 주주관리에 소홀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비밀은 이 회사의 계열 비상장사에 있는 것 같다.
한국프랜지는 지난 1월 23일 풍력발전기와 플랜트 부품 등을 생산하는 계열사인 서한ENP에 138억원의 채무보증을 했다고 공시했다. 이날 기준 한국프랜지의 채무보증 잔액은 1528억원인데 그 대부분은 서한ENP에 한 것이다.
지난 2008년 서한ENP를 세울 때 한국프랜지는 지분 30%를 들고 있었다. 초기 적자가 누적될 때는 상당한 지분을 들고 있었으나 이 회사가 제법 이익을 낸 2011년 말 한국프랜지의 지분율은 8.1%로 떨어졌고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확 늘었다. 서한ENP는 2010년 20억원, 2011년 56억원의 순익을 냈다. 이익 나는 회사의 지분율은 줄었는데 지급보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익은 대주주가 먹고 책임은 상장사인 한국프랜지가 떠안는 것처럼 비춰진다.
이에 대해 임훈순 한국프랜지 재무팀장은 "사업초기 유럽위기를 만나 대주주주가 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지분율이 높아 졌다"고 해명했다.
서한산업 통해 3세 체제
이보다 심한 모습은 또 다른 계열사로 한국프랜지처럼 액슬이나 하프 샤프트 등을 생산하고 있는 서한산업에서 드러난다. 사실 서한산업에 대한 한국프랜지의 지분율은 13.9%에 불과해 계열이라고 부르기조차 머쓱할 정도다. 나머지 86.11%는 모두 대주주 일가의 소유이니 사실상 대주주의 개인회사라고 하는 게 옳다.
그러나 초기 서한산업은 한국프랜지가 지분 94%를 소유했던 완전한 자회사였다. 그러던 지분율이 1999년에 갑자기 32.6%로 줄었다. 그해 서한산업은 본격적으로 흑자구조에 접어들었고 이듬해인 2001년엔 642억원 매출에 28억원의 이익을 냈다.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2004년 말 한국프랜지의 서한산업 지분율은 다시 10.9%로 줄었다. 한국프랜지가 계속 흑자를 내고 있었기에 지분을 팔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후 2005년 상반기 한국프랜지의 서한산업 지분은 보유 주식수의 변화 없이 지분율만 10.9%에서 13.89%로 증가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한산업은 2011년에 전년보다 656억원 늘어난 4266억원 매출에 4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 알짜회사가 상장사인 한국프랜지의 손에서 대주주의 손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생산 품목조차 한국프랜지와 거의 일치한다. 무엇 때문에 이 사업을 계열사로 시작했을까.
현재 서한산업 최대주주는 창업 2세인 김윤수 회장이 아니라 3세인 김용석 대표다. 김 대표의 지분율은 58.33%나 된다. 이어 김용범 김용준 두 형제가 한국프랜지와 동일한 13.89%씩을 갖고 있다. 결국 한국프랜지는 서한산업이란 비상장 계열사를 세워 3세 체재를 안착시켰다.
문제는 계열사 출범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갈 때는 상장사인 한국프랜지가 부담을 떠안다가 회사가 안정되면 지분을 대주주가 챙긴다는 것이다. 지난해도 이런 일이 또 생겼다.
한국프랜지는 지난해 전년 대비 179.3%나 증가한 9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전년보다 92.5%나 급감한 2억2810만원에 그쳤다. 회사 측은 자회사인 서한ENP와 서한ENS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했고 기부금까지 나가 순이익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12월 30일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명목으로 서한ENP를 서한ENS와 서한ENP로 인적분할 했다. 2년여 만에 번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았던 서한ENP의 지분은 대주주 쪽으로 넘어갔고 반대로 성과가 불투명했던 서한ENS의 지분은 그대로 한국프랜지가 들고 있었다.
이런 불투명성한 지배구조가 한국프랜지의 주가를 바닥으로 기게 한 셈이다. 이런 면에서 도전적 시각을 가진 투자자라면 한국프랜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회사의 내용 자체는 매력적이니 대주주 일가를 제대로 감시해 성과가 고스란히 회사에 남도록 한다면 상당한 차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거래를 계속 방치할 경우 주가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앞으로도 지지부진한 국면을 이어갈 수도 있다.
한편 임훈순 재무팀장은 "서한산업의 경우 당초 피팅사업을 하려고 설립했으나 외환위기를 만나 사업을 포기하고 대안을 찾다가 현대차 아산공장을 겨냥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서한ENP 지분변동에 대한 한국프랜지의 설명
※Seohan ENP(주)를 2008년 1월 10일에 지분 취득하고,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해 2009년 6월 29일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이 30%로 증가함.
※2009년 12월 30일 선택과 집중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조선기계 부문은 핵심사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고, 풍력발전 부문은 차별화된 기술·고객·사업기반을 갖춘 글로벌풍력발전부문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Seohan ENP(주)를 Seohan ENS(주)와 Seohan ENP(주)로 인적분할했음.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Seohan ENP(주) 유상증자에 당사는 참여하지 않아 지분이 10%로 감소했음.
※2010년 12월 15일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Seohan ENS(주) 유상증자에 당사는 지분율(30%)만큼 참여했음.
※2011년 3월 29일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Seohan ENP(주) 유상증자에 당사는 참여하지 않아 지분이 8.1%로 감소했음.
※2012년 6월 28일 경영환경 변화의 적극적 대처 및 안정적인 영업구조 확보를 위해 Seohan ENP(주)가 Seohan ENS(주)를 흡수합병해 당사의 Seohan ENP(주)의 지분율이 10.9%로 변동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