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재산형성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이 18년 만에 부활했다. 저금리와 세금부담에 시달려 저축의지마저 상실할 지경에 처했던 서민들은 갑자기 나타난 횡재(?) 거리를 보고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새로운 재형저축이 처음 나온 지난 3월 6일엔 상품 가입에 필요한 소득확인증명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쇄도하면서 국세청 홈택스(www.hometax.go.kr)가 서류를 제때 발급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6개 국내은행이 이날 하루 판매한 재형저축만 해도 27만9180건에 달했다고 하니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만큼 이 상품이 매력적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서민들은 금리를 조금 더 준다니 어부지리나 얻는 것인 양 덤벼들었지만 실제론 자기들이 떡밥을 쫓다 어항에 갇힌 고기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형저축 가입 시 고려할 점
왜 그럴까. 진실을 알려면 먼저 재형저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5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재형저축은 절세라는 미끼를 갖고 있다. 14%의 이자(배당)소득세가 면제되고, 감면세액의 10%에 해당하는 농어촌특별세 1.4%만 내면 된다. 가입 대상은 연봉 5000만원 이하 근로자와 3500만원 이하 사업자. 조건에 해당되면 부부가 각자 가입할 수도 있다.
여기서 절세를 미끼라고 한 것은 세금은 원금에 대해 매기는 게 아니라 소득에 대해 매기는 것이기 때문. 소득이 적으면 절세효과 자체가 없다. 이 상품으로 혜택을 제대로 보려면 이자나 배당 또는 차익을 많이 얻는 게 먼저란 얘기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끼를 보고 어항에 들어간 물고기 꼴이 될 수도 있다. 재형저축은 장기간 돈을 묶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으로 재형저축 상품을 다시 보자.
현재 재형저축은 은행의 재형저축예금과 보험사의 재형저축보험, 자산운용사의 재형저축펀드 등 세 종류가 있다. 어느 상품이건 가입기간은 최소 7년, 최장 10년이다.
재형저축 예금과 보험은 원금보장형이긴 하지만 기존 저축상품에 비해 금리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률은 미미하다. 게다가 3년 뒤 변동금리로 전환되면 지금 제시한 금리조차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이다.
재형저축 펀드는 운용성과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실적배당형 상품이다. 수익률의 기대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장기투자펀드의 성적이 쏠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이나 보험 상품과 면밀히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일석삼조의 연금저축계좌
2013년 개정된 세법은 투자자들에게 절세라는 화두를 던졌다. 투자나 자산관리 때 세금을 고려하라는 과제를 안겨준 것. 개정 세법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으로 낮췄고 세제혜택 상품도 축소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연금저축계좌라는 새 상품이 등장했다. 연금저축계좌는 2001년 도입된 연금저축보다 자신의 은퇴자산을 관리하고 늘릴 수 있게 개선된 상품이다. 기존 연금저축은 만 18세가 넘어야 가입됐지만 이 상품은 나이 제한이 없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훨씬 전부터 나서라는 얘기다.
18세부터 소득공제 혜택을 볼 수 있는 한도인 월 34만원씩, 연간으로 400만원씩 납입해 연 3% 수익을 냈다면, 55세가 되어 연금을 받을 때는 약 2억7000만원이 된다. 이 돈을 85세까지 30년간 나눠 받으면 매월 약 100만원씩 받을 수 있다. 그런데 10살부터 동일한 조건으로 냈다면 50% 증가된 월 15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노후를 준비할 대안이 될 수 있다. 새 연금저축계좌의 가입연령을 폐지한 것도 그래서다.
납입한도는 연간 1800만원. 기존 연금저축의 한도인 연 1200만원보다 600만원이 늘었다. 과거 연금저축은 필요할 때 돈을 찾으면, 전액 해지를 해야 하고 그간의 보았던 혜택을 모두 토해내야 했다. 그러나 새 연금저축계좌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소득공제 한도인 연간 400만원을 초과해 납부한 적립원금까지는 언제든지 세제상 불이익을 보지 않고 찾아서 쓸 수 있게 했다. 연금저축으로 소득공제만 받고, 노후준비를 위한 상품을 따로 가입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장기저축은 수익률 중시해야
노후준비를 연금저축계좌로 일원화해 적립하면 자금이 필요할 때 이 계좌에서 적당한 돈을 찾아서 쓸 수 있고 55세 이후 연금을 받을 때 연금소득세를 적게 내도 된다. 게다가 연금소득세도 연령별에 따라 5.5%에서 3.3%까지 낮은 세율로 차등 적용된다. 한마디로 소득공제에 저율과세, 필요자금 수시인출까지 가능한 일석삼조의 노후보장 상품인 셈이다.
재형저축이나 연금저축은 모두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상품이다. 이런 점에서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수익률 전망도 꼭 챙겨봐야 한다. 어느 곳에서 가입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받는 금액에 엄청난 차이가 생기기 때문.
금융소비자리포트가 제시한 과거 10년간 금융권별 연금저축 평균수익률을 보면 보험은 누적수익률 39.8%, 은행신탁은 41.5%, 운용사 채권형펀드는 42.6%로 정기적금수익률 48.4%보다 낮았다. 반면에 운용사의 주식형펀드와 혼합형펀드의 수익률은 거의 원금의 2배 수준인 122%와 98%로 나타냈다. 이 기간 동안 금융위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과 차이가 났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상품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재형저축이나 연금저축은 위험분산 효과가 있다. 이런 점에서 무조건 안전성만 고집하기보다는 적절한 수익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