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골드만삭스자산운용 한국서 전격 철수…지난 가을 골드만삭스에 무슨 일이
입력 : 2012.12.28 14:14:39
수정 : 2013.01.25 11:34:55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한국 시장 전격 철수 결정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골드만삭스 측이 금융감독당국과 언론에 철수 방침을 공개한 날이 지난 11월 13일. 하지만 불과 보름 전만 해도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내부 대다수 고위급 임원들은 본사의 이 같은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단지 그간 공모펀드 판매 부진의 책임을 물어 리테일 조직만 일부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란 얘기로 사무실 분위기가 뒤숭숭했을 뿐이다. 지난여름만 해도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글로벌 회장이 11월 아시아 출장길에 한국을 직접 방문해 국민연금 등 큰손들을 면담하고 한국 지사의 자본 확충 및 장기 발전 청사진까지 제시할 예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매각도 아니고 한국 사업을 아예 철수한다니. 도대체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빌딩 19층에 위치한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사무실에선 지난가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골드만삭스는 지난 2007년 1600억원을 들여 맥쿼리IMM자산운용을 인수해 국내 자산운용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11년까지 4년 연속으로 적자를 봤다. 2008년 94억원 적자에 이어 2009년 70억원, 2010년 74억원, 2011년 7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경쟁력이 없는 부문을 접는 것은 합리적인 내부 판단”이라고 했다.
문제는 골드만삭스의 이 같은 철수의 변에는 절반의 진실만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자본을 종잣돈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돈을 버는 투자은행(IB) 업무는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 때문에 UBS, 바클레이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IB 부문에 대해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는 대신 고객 돈을 대신 굴려주는 자산관리업무를 새로운 캐시카우로 키우고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 본사는 투자은행 부문에선 인력을 감축하고 있지만 지난 2010년부터 자산운용 부문에서만 1000명을 새로 뽑았다. 인력 충원 과정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자산운용 핵심 인력에 대해선 지금도 뜨거운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적으로 자산운용 사업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유독 한국에서만 철수를 결정하는 자기모순을 저지른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국내 자산운용 인력들을 대량 해고하지도 않았다. 공모펀드 판매 조직 등 리테일 담당자들에게는 해고 통지서가 날아갔지만 나머지 상당수 자산운용 전문 인력들은 대다수 싱가포르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쪽으로 이전 배치됐다.
사실 돈 많은 고령 은퇴자들이 계속 늘어나는 한국 시장은 글로벌 투자은행으로서는 탐나는 시장이다.
350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슈퍼파워인 전 세계 국부펀드 중에서도 세 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에다 3234억달러에 달하는 한국은행 외환보유고, KIC(한국투자공사)의 해외 투자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돈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진출 5년 만에 자산운용 비즈니스를 접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골드만삭스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철수의 정확한 배경을 알려면 우선 한국이 아니라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글로벌 비즈니스 운용이란 시각에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자본은 자기 이익에 충실할 따름이다. 본사 차원에서 볼 때 한국에 계속 머물 때 발생하는 이익 측면이 한 축이라면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화 등 떠날 때 생기는 장기 이익은 또 다른 축이다. 본사 입장에선 두 가지 측면 모두를 감안했음은 당연하다.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어떤 변명을 붙여 빠져나갈지는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달라질 일이지만.
우선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업은 의욕은 앞섰으나 먹을 것은 별로 없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돈을 벌 때 일차적으로 감안해야 하는 게 세금이다. 똑같이 돈을 벌어도 법인세율과 개인소득세가 얼마냐에 따라 회사와 직원이 가져가는 실제적인 몫이 달라진다. 홍콩 싱가포르 등과 비교해볼 때 세율이 높은 서울로선 경쟁력이란 측면에서 일단 한 수 접어야 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이미 국내 현지 법인에 소속된 트레이딩 데스크를 ‘효율성’의 명분하에 싱가포르에 위치한 아태지역본부로 옮겼다. 자산운용사들은 크게 봐서 운용팀, 리서치팀, 트레이딩팀(매매 전담)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운용팀과 리서치팀만 남기고 매매팀을 아태지역본부로 통합한 것이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경우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기업탐방 등은 국내 현지법인에 남겨두고 국내 주식 매매는 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 뒀던 셈이다. 외국계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볼 때는 아시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사들을 한 군데에 모으면 경비 절감과 매매 볼륨, 정보 공유라는 차원에서 통합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며 “본사 입장에선 지속적으로 통폐합을 추진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아태지역본부를 집중 유치해 동북아 금융 중심지를 조성하겠다는 이른바 동북아 금융허브 프로젝트는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추진되어 온 국정 과제다. 정부는 2005년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산하에 금융허브기획과와 금융허브협력과 등 2개과로 구성된 금융정책심의관을 신설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선 금융허브 담당이 금융위원회인지 아니면 금융감독원일지 모를 정도로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오죽하면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철수가 결정되자 느닷없이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직접 뛰어다녀야 했을까.
하지만 벌써 10여 년이 경과했지만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건립 등 전시행정에만 급급했을 뿐 실제로는 제대로 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영어 사용 문제 등 한국의 인프라가 선진 금융허브인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부족한 것도 철수를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지나친 규제로 인해 대체투자(AI), 상장지수펀드(ETF), 멀티에셋 등 신규 사업을 벌이기엔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홍콩이나 싱가포르도 규제가 있지만, 한국처럼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쪽”이라며 “규제의 방향을 투자자의 알권리 보장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최근 글로벌금융시장에서 중국, 인도 투자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과정에서 코리아 데스크 등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전담하는 인력들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있다는 정황도 관련이 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비중이 예전엔 40%를 웃돌 정도였지만 이젠 30%대로 떨어졌다.
싱가포르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했던 A씨는 “10년 전만 해도 아태지역에서 한국이 가장 큰 시장 중의 하나였는데 이젠 중국, 인도에 밀려 외국계 펀드의 한국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위축됐다”며 “한국 전문가들이 해고도 많이 당했고 신규 채용도 얼마 안 돼 글로벌투자은행들의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내에서 한국인들의 말발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론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한국지사 내부의 불협화음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국내에서 비즈니스를 접었다. 하지만 피델리티, 슈로더, 알리안츠, JP모건, 에버그린 등 대다수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은 여전히 한국 사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ING자산운용이 매물로 나와 있지만 이 경우에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ING생명이 공적 자금을 갚기 위해 해외법인을 파는 차원에서 진행돼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골드만삭스 주식형펀드의 수익률 저조도 단기 성적표일 뿐 최근 3년간 운용 성과를 보면 상위 10% 내에 드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채권 부문 운용 역시 장기 성과가 탁월해 국민연금 위탁운용사 내에서도 베스트권에 항상 진입해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가 뭘까.
외국계 소식에 정통한 한 대형증권사 고위 임원은 “막상 한국에 들어와 보니 경쟁이 너무 치열한 데다 펀드 운용 수수료가 너무 싸서 자금을 더 쏟아 부어도 큰 실익이 없다는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며 “그런 와중에 증권과 운용 등 한국지사 내부 인력들 간에 갈등이 있었고 본사 측에서 그럴 바엔 차라리 운용 사업을 철수하자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물론 상당히 와전된 얘기일 수 있다. 회사 측도 부인했다.
하여튼 골드만삭스가 국내에 증권 부문만 남기고 자산운용 사업부문을 철수한 것은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다. 남은 것은 반성이다. 골드만삭스의 철수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