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이 중국에 치우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인도가 투자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규모가 크고 인건비도 저렴하다는 점, 정보기술(IT) 인력풀이 풍부하다는 점 등이 인도의 주된 잠재력으로 꼽히면서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인도 증시보다 더 두드러진 수익을 내는 투자처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도쿄 증시와 멕시코 증시다. 일본은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인도나 멕시코와 달리 선진국에 속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 아시아 지역 미국 최대 동맹국이라는 점 등에 힘입어 투자 관심을 끈다. 실제로 일본 도쿄 증시대표 주가 지수인 닛케이225 지수는 1월 16일(이하 현지시간)까지 기준으로 올해 약 7% 올라섰다. 신흥국 인도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BSE센섹스 지수가 같은 기간 1% 이상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같은 신흥국으로 분류되지만 멕시코 역시 인도 못지않은 투자 관심을 받고 있다. 멕시코는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더불어 ‘니어쇼어링’ 반사효과를 받으며 글로벌 기업 투자가 몰리는 지역이다. 멕시코는 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 주목받고 있다. 1월 16일(이하 현지시간) 일본 종합상사 스미토모의 효도 마사유키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버크셔가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각각 5% 이상 보유하고 있다”면서 “지난 2020년 8월 공시 이후에도 꾸준히 지분을 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6월 버크셔는 5대 그룹(미쓰비시·미쓰이·마루베니·이토추·스미토모) 지분을 평균 8.5%씩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바 있는데 이후 추가 매수에 나섰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버크셔가 보유한 5대 종합상사 지분 가치는 총 200억달러에 이른다. 이어 지난해 11월 버크셔가 1220억엔(약 8억3700만달러) 규모의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했을 때 시장에서는 이것이 일본 투자를 늘리기 위한 현금 조달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 바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인도 일본 주식 사재기에 나섰다. 중국이 구조적 성장둔화에 갇힌 가운데 본토·홍콩 증시가 급락하자 자금을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1월 17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투자자들이 잇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표 주가지수’ 닛케이225 지수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앞다퉈 매수했다고 밝혔다. 당일 중국 AMC 노무라 닛케이 225 ETF는 일일 상한선인 10%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중국 본토인들은 해외 주식 계좌를 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ETF로 더 몰리는 분위기다. 하루 전날인 16일에는 해당 펀드가 기초 순자산 대비 9.5% 프리미엄으로 거래되면서 1시간 동안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당일 해당 ETF 거래대금은 48억위안(6억6800만달러, 약 8900억원)을 기록해 하루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일본 도쿄증시를 향한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1월 16일 도쿄증시에서는 대형 수출주 중심 닛케이225 주가지수가 전날보다 2.01% 오른 결과 3만5619.18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989년 증시 거품이 가라앉은 후 1990년 이래 최고치다.
닛케이 225 지수가 34년 만의 사상 최고 기록을 내자 한국 투자자들도 앞다퉈 레버리지 펀드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를 보면 한국 투자자들은 새해 첫 주간에만 닛케이225 지수에 레버리지 투자하는 ETF인 ‘노무라 넥스트펀드 닛케이225 레버리지 펀드’(1570) 와 ‘라쿠텐 닛케이 225 레버리지 펀드’ (1458) 를 각각 867만달러(약 116억원)와 747만달러(약 9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해당 상품은 각각 해외주식 순매수 기준 12위와 16위에 올랐다.
지난해 말 강세를 보였던 엔화 가치가 올해 초 주춤한 가운데 도쿄 증시가 상승세를 타자 시세 차익과 환 차익을 동시에 보려는 매수세가 몰린 결과다. 노무라 넥스트펀드 닛케이225 레버리지 펀드와 라쿠텐 닛케이225 레버리지 펀드는 10일 하루에만 모두 4% 뛴 결과 올 들어 각각 10% 이상 시세가 올랐다.
새해 도쿄 증시 전망과 관련해 미국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쿠쓰 마사시 일본 증시 담당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올해 도쿄 증시가 지난해보다 13%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규모 7.5 지진 여파가 빠르게 복구되고있는 데다 일본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친화적 경영을 내세우면서 외국인 매수세를 끌어당길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한편 엔화 환 차익과 관련해서는 오는 3월 중순 ‘춘투(춘계 임금 투쟁)’에 투자 눈길이 쏠리는 분위기다. 마에다 에이지 전 일본은행(BOJ) 통화정책 담당 이사는 1월 블룸버그통신 인터뷰를 통해 “올해 3월 노사협상 결과 임금 인상률이 지난해 대비 4%에 이를 가능성이 크며 이는 BOJ 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요 기업과 노동조합 간 임금협상 결과 인상률이 4%로 정해지면 BOJ로서는 물가 상승 압박 등을 이유로 기존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방향을 틀게 될 발판이 된다는 분석에서다.
새해에도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뉴욕 증시에서는 라틴아메리카 ‘니어쇼어링’ 수혜국 투자 수익률에 관심이 쏠린다. 미·중 갈등과 관련한 니어쇼어링이란, 기업이 운송·규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미국과 가깝고 비교적 인건비가 낮은 곳에 생산시설을 두는 것을 말한다.
미국 니어쇼어링과 관련해 가장 큰 수혜국으로 꼽히는 곳은 멕시코다. 지난해 뉴욕 증시에서는 멕시코 주요 기업에 투자하는 대표적 ETF인 ‘아이셰어스 MSCI 멕시코 ETF(EWW)’ 시세가 약 35% 뛰었다. 같은 기간 대표적 신흥국인 중국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차이나 ETF(MCHI)’ 시세가 약 17% 하락한 점, 중국 추월을 선언한 인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인디아 ETF(INDA)’ 시세가 약 16% 오르는 데 그친 점에 비해 두드러진 상승세다.
니어쇼어링과 관련해 멕시코산업단지협회(AMPIP)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3년 하반기~2024년 상반기 제조업 생산시설용 부동산 수요가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 약 80% 급증할 것으로 추정했다. 대부분은 자동차·전자·기계 제조업과 관련한 공장 건설 용도다. 멕시코 정부는 해당 기간 미국 기업들의 멕시코 투자 규모가 4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씨티그룹의 에르네스토 레베야 아메리카대륙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투자는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멕시코의 경우 니어쇼어링에 유리하며 이로 인해 앞으로 몇 년간 500억달러 규모 수출이 늘어날 수 있는데 투자 수준과 승수 효과까지 감안하면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0.5% 추가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멕시코 은행인 방코 레히오날의 엔리케 나바로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비교적 낮은 임금에 비해 인력 질이 좋고 지리적으로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점, 미국·멕시코·캐나다 간 자유무역협정(USMCA)상 관세 혜택을 감안할 때 멕시코는 중국 등 아시아에 편중된 생산시설을 옮겨오기 유리한 조건”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20년 기준 중국 제조업의 시간당 평균 인금은 6.5달러였는데, 멕시코는 4.82달러로 더 낮았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인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CSIS)의 라이언 버그 미주 프로그램 책임자는 “미국 거대 양당이 중국 견제에 대해서만큼은 단합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니어쇼어링은 꾸준한 주제가 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 니어쇼어링은 즉각 일어나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일례로 지난해 테슬라는 멕시코 몬테레이에 전기차 공장(기가팩토리)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멕시코에서 조립한 전기차는 USMCA에 따라 관세 인하 혜택을 받는 데다 육로를 통한 수출이 가능하다는 등의 장점이 꼽힌다.
다만 EWW 투자 시 고려해야 할 부분도 있다. 멕시코 ETF이지만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는 점에서 페소화 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당분간 이어질 니어쇼어링 반사효과를 입을 수 있다는 부분은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미국 경기가 둔화되는 경우 미국 경제 동조화 경향이 강한 멕시코 역시 경기 둔화를 경험할 수 있다. 무장 카르텔로 인한 치안 리스크와 인프라스트럭처 부족에 따른 산업용 물과 식수 확보 문제는 니어쇼어링 열기의 한계로 꼽힌다. 테슬라는 올해 공장 준공과 더불어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수자원 등 인프라 부족 탓에 공장 착공 시기가 연기되면서 전기차 생산 일정도 미뤄졌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와 집권당이 인프라 시설과 투자에 대해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프라 부족 문제가 부각됐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 밖에 올해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대통령 선거다.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멕시코에서는 올해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집권당인 진보 계열 ‘국가재건운동’이 내세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는 친환경 경제 정책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 야권 연합세력인 ‘멕시코를 위한 광범한 전선’이 내세운 소치틀 갈베스 후보는 IT 산업 육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