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퍼터 20개, 드라이버 15개, 우드 15개.
어느 골퍼가 지난 10년 동안 골프를 하면서 장비를 구입한 사연을 접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 입으로도 장비병에 걸린 것 같다고 고백했다.
골프 도중 동반자가 멋지게 티샷을 하거나 퍼트에 성공하면 그렇게 탐이 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구입한 장비가 수두룩하다. 골프 당일 백에 드라이버와 퍼터를 각각 2개씩 넣기도 한다.
“솔직히 이젠 장비보다 사람에게 원인이 있다는 점도 알죠. 연습이나 레슨을 통해 실력을 높여야 하는데 신상품이 나오면 참을 수가 없어요.”
어떤 때는 필드에서 딱 한 번 휘두르고 마음에 들지 않아 바로 창고에 박아둔 골프채도 여러 개라고 했다. 심지어 필드에 나갈 때마다 다른 드라이버나 퍼터를 들고 나갔다. 우표 수집하듯이 클럽을 구입한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장비에 집착해 과소비하면 ‘장비병(gear acquisition syndrome)’에 걸렸다고 보면 된다. 누구나 장비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실력을 키우는 최대 관건을 장비라고 생각하면 장비병 예비환자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안경을 쓰면 읽을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영국의 골프 스타인 저스틴 로즈(43)는 2019년 초 골프 클럽을 대대적으로 교체했다. 3번 우드와 볼, 60도 웨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바꿨다. 그는 장비 교체 이후 두 번째 출전한 파머스인슈어런스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프로 선수가 장비를 전면 교체하고 한 달여 만에 우승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보통 시즌이 끝날 즈음 교체하는데 클럽에 완전히 적응하고 난 뒤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아마추어는 언제 가장 클럽을 바꾸고 싶을까.
“동반자가 나보다 왜소한 체격인데도 20~30야드 이상 멀리 뻥뻥 장타를 날리면 바로 장비부터 바꾸고 싶죠. 저 친구가 좋은 드라이버 덕에 장타를 내는가 하는 생각이 들죠.”
한 골프 동반자의 말이다. 구력 20여 년에 80대 중반 타수를 기록하는 골프 마니아로 골프에 대한 애착 못지않게 장비 사랑도 유별나다.
신형 장비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클럽 각 부위 용어와 기능도 훤하다. 필드에 나가지 않는 날은 시내 유명 골프숍을 찾는다.
클럽 교체 심리와 관련해 골프다이제스트가 미국의 대표적 골프연구소인 골프데이터테크의 통계를 소개한 적이 있다. 드라이버는 2~3년마다 교체한다는 비율이 43%로 가장 높았고 4~5년이 36%로 뒤를 이었다.
골프업계에서는 1만 스트로크를 하면 드라이버를 교체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연습을 포함해 일주일에 평균 50번 공을 때리면 4년 정도 사용한다는 수치가 나온다.
골프용품업계에 따르면 클럽으로는 드라이버가 가장 많이 팔린다. 장타에 대한 골퍼들의 로망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특히 신제품 시즌에 수요가 몰린다. 마스터스 같은 큰 대회에서 스타 골퍼가 우승할 때에도 클럽 판매가 상승 곡선을 탄다.
샤프트 소재로 고수는 압도적으로 스틸, 90대 타수 이상은 그라파이트가 많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골퍼들은 아이언 교체에는 훨씬 신중하다. 아이언 세트를 구매할 때까지 검토 시간은 1개월이 37%로 가장 많았고 2~3개월은 33%로 나타났다.
아이언은 정확성을 요구하고 민감하기 때문에 골퍼들이 구입에 신중을 기한다. 그래서 교체 주기가 장비 가운데 가장 긴 편이다.
아이언이 다른 클럽에 비해 비싼 데다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또 아이언을 교체했다고 실력이 반드시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교체를 망설이게 한다.
우드 보유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우드 2개를 사용하는 싱글 골퍼의 비율은 28%로 3명에 1명꼴이다. 반면 핸디 16~20의 골퍼는 49%로 절반에 해당했다.
실력자들은 우드 하나를 사용하고 대부분 아이언으로 처리하면서 정확도에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소 하나 이상의 하이브리드를 보유한 비율은 85%에 달했다.
퍼터 교체 주기는 드라이버와 비슷하다. 2~3년마다 교체한다는 비율이 핸디 11~15의 중급자 가운데 4%, 0~10의 고수급은 21%였다. 핸디 16~20에서는 18%로 조사됐다.
오재근 한국체대 교수는 “드라이버와 퍼터의 교체 빈도가 높은 것은 바로 옆에서 상대 동작을 보며 강한 시각적 자극을 받는 것도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장비에 지출하는 비용도 통계에 나와 있다. 정기적으로 골프를 하는 사람은 연평균 107만원(2015년 기준)을 지출했다. 특히 핸디 0~10의 싱글 골퍼들이 13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고수들이 오히려 장비에 더 많이 투자한다.
드라이버나 퍼터를 바꾸더라도 기존 클럽을 다른 사람에게 바로 주지 말고 3개월 정도는 보유하라는 이야기도 참고할 만하다. 새 클럽에 적응 못하고 “구관이 명관”이라며 다시 옛것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와는 달리 프로선수에게 가장 민감한 장비는 뭘까. “드라이버를 바꾸면 드라이버 연습만 하면 되지만 공을 바꾸면 모든 클럽을 연습해야 합니다.”
프로골프 선수들은 골프공은 라운드 중 필수이자 그 자체로 목적이라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저스틴 로즈가 당시 클럽은 바꿨지만 공은 바꾸지 않았던 이유다.
실력자일수록 스코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관련성이 클수록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드라이버보다 아이언, 아이언보다 퍼터, 퍼터보다 공 순이다. 이래서 고수들은 웨지, 퍼터, 공 등 쇼트 게임 장비를 웬만하면 바꾸지 않는다.
아마추어 골프계에 “장비를 바꾸면 6개월 동안 내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장비 교체가 그만큼 어려운 선택이라는 의미다.
그래도 장비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나의 기술을 의심한 적은 있어도 클럽을 의심한 적은 없다”는 잭 니클라우스의 말도 있지 않은가. 클럽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