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에서 시작된 0%대 금리는 엔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 미국 기준 5.5%까지 올라간 상태다. 한국도 이미 기준금리가 3.5%까지 상승하면서 그동안 저금리 상황 속에 활활 타오르던 대출시장에도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도 오르고 예·적금 금리도 올라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은행을 비롯한 각종 금융기관들은 통상 고금리 속에서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리고, 예·적금 금리는 천천히 올린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고금리 시대에 예·적금 금리도 속도의 문제는 있겠지만, 분명 오름세다. 한국은행이 10월 17일 발표한 ‘2023년 8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8월 M2(광의통화, 평잔)는 3829조6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8조8000억원이 증가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등 협의통화(M1)에 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환매조건부채권(RP)등 금융상품을 다 포함하는 광의의 통화지표인데, 통상 시중에 풀린 통화량을 볼 때 사용한다. 8월 M2가 8조8000억원이나 늘어난 데는 정기 예적금의 증가가 컸다. 이 중 7조7000억원이 정기 예적금이었다.
결국 은행들 입장에선 예적금 금리도 상승시켜 수신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고금리 시대에 대출은 줄이고, 예적금은 늘리는 것이 상식적이기에 예적금 수요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현재의 고금리 상황과 경기 불황은 맞물려 있다. 여유가 있다면 거액을 금리가 가장 좋은 상품에 확정 금리를 받아 묻어두면 좋겠지만,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 특히 사회초년생들에게 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수요를 겨냥, 금융사들은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예치 기간이 6개월 미만인 ‘초단기’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상품의 성격 자체도 ‘여행 자금 모으기’ ‘걸으면서 모으기’ 생활 밀착형으로 잡았다. 여기에 상품 가입 시 이벤트를 같이 넣어 공격적인 유치에 나서는 전략이다. 특히 이 같은 상품 기획에서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기존 5대 시중은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카카오뱅크는 ‘26주 적금’ 상품을 출시해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말 그대로 1년 52주의 절반인 26주, 6개월간 적금을 부어 여행자금을 모으자는 콘셉트다. 납입금액도 ‘소박하게’ 1000원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소비자는 10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1만원 가운데 하나를 첫 주 납입금액으로 선택할 수 있고, 매주 그 금액만큼 증액해 자동으로 저축된다. 첫 주 1000원이었다면 둘째 주는 2000원, 셋째 주는 3000원이 된다. 26주 연속 납입에 성공할 경우 연 7%(세전) 금리가 적용된다. 최소 납입금액인 1000원을 선택하면 35만원가량이고, 최대 납입금액인 1만원을 선택할 경우 26주간 소비자가 붓는 돈은 351만원인데, 그야말로 국내부터 해외까지 자신이 원하는 콘셉트의 여행을 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느낌으로 적금을 굴려볼 수 있다.
연 7% 고금리 외 ‘미끼’도 있다. 26주 연속 자동이체 납입에 성공하면 제주항공의 멤버십 포인트와 항공운임 할인쿠폰, 롯데면세점의 온·오프라인 할인쿠폰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제주항공 여행 혜택 중 하나로 최대 2만5000원 상당의 제주항공 리프레시 포인트를 제공하는데, 이 포인트는 항공권 구매나 사전 좌석 선택, 기내식 주문 등에 현금처럼 이용이 가능하다. 또 제주항공의 온라인몰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쿠폰과 국제선 전 노선 왕복 기준 제주항공 항공운임 10% 할인쿠폰도 준다.
여행 하면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테마가 쇼핑인 만큼 롯데면세점과도 제휴해 롯데인터넷면세점에서 쿠폰처럼 사용 가능한 50달러 상당의 리워드 쿠폰과, 롯데면세점 오프라인 지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1만5000원 상당의 쿠폰 수령도 가능하다. 경품 성격으로 26주차까지 자동이체 납입에 성공해 만기를 달성한 고객 중 20명을 추첨해 제주항공 국내선 편도 항공권도 제공한다.
여행 콘셉트의 적금으로는 인터넷은행이 아닌 ‘전통의 은행’ KB국민은행의 ‘KB두근두근 여행적금’도 있다. 최대 3.9%(우대금리 포함) 금리, 만기 6개월 적금 상품이다. 다른 곳에 비해 금리는 평범한 편이지만, 월 100만원까지 납입이 가능해 최대 600만원에 이자를 더한 ‘목돈’을 챙겨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가장 적게는 월 5만원부터 가능해 지갑이 가벼운 직장인에게도 큰 부담은 없다. 적금의 목적 자체가 ‘여행’인 만큼 여행사와 제휴해 혜택을 제공한다. 1회차 납입 시 노랑풍선의 패키지 1만원 할인권을 주고, 4회차까지 납입하면 패키지 4% 할인, 자유여행 호텔, 항공, 액티비티 등에서 5000~1만원을 할인해주는 쿠폰을 준다.
건강을 콘셉트로 한 초단기 적금을 선보인 곳도 있다. 우리은행은 건강을 위한 걷기와 이자를 연동시킨 ‘데일리 워킹 적금’ 상품을 출시했다. 역시 6개월짜리 상품으로 연 금리가 세전 기준 무려 11%까지 나오는 상품이다. 다만 이 11%를 받기가 쉽지만은 않다. 매일 1만보 이상을 걸어야한다는 ‘미션’을 수행해야지만 받을 수 있는 금리인 것이다.
건강을 챙기면서 금리도 챙겨 가자는 콘셉트인데, 기본 이자는 1%밖에 되지 않아 반드시 걷기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만 가입에 메리트가 있는 상품이다. 또 소정의 마케팅 동의를 해 만기 해지 시점까지 유지해야 하고, 구글 피트니스(안드로이드)나 건강앱(iOS)을 깔아 우리원뱅킹과 연동해서 1만보 걸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대신 고객의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 하루에 2번 앱 푸시를 통해 걸음 수 현황을 안내하는 기능도 넣었다. 하루에 납입 가능한 최대 금액은 1만원이고, 6개월 동안 꾸준히 적금을 붓는다면 190만원가량을 가져갈 수 있다.
인터넷은행을 중심으로 중도해지만 하지 않으면 우대금리를 부여하고, 대신 급할 때는 찾아 쓰기가 가능한 상품도 젊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속속 내놓고 있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중도해지만 하지 않으면 6개월 만기로 5%(세전) 금리를 적용해주는 토스뱅크의 ‘굴비적금’이 대표적이다. 1원부터 저금이 가능해 일단 부담이 없고, 한 달에 최대 30만원까지 가능하다. 중도해지를 하면 금리는 세전 2%에 불과하지만, 만기를 채우면 5%이고, 대신 급할 때는 두 번까지는 ‘미리 빼기’가 가능하다. 조건이 오로지 ‘만기 채우기’라 단순하며, 적금의 재미를 부여하기 위해 저금을 할 때마다 굴비가 조금씩 내려오고, 밥상까지 내려오면 밥상을 꾸밀 수 있도록 했다.
케이뱅크의 ‘코드K 자유적금’도 비슷한 성격이다. 매월 최대 3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6개월 만기를 선택하면 3.6%, 1년 만기를 선택하면 4.3%까지 최고 금리(우대금리 포함, 세전)를 준다. 역시 급할 때 찾아 쓸 수 있도록 두번까지 부분 출금을 해도 ‘중도해지’가 아니다.
케이뱅크는 ‘챌린지박스’라는 적금 상품도 내놨는데, 가입기간을 30일로 할 수 있어 6개월보다도 훨씬 짧은 그야말로 ‘초초단기’ 돈 모으기도 가능하다. 목표금액과 기간을 정하면 매주 모아야 하는 금액이 자동으로 계산되고, 매주 입금액과 이자금액을 합쳐 목표금액을 안내해준다. 최대 가입금액은 500만원이고, 챌린지를 성공하면 금리는 최고 연 4%(세전)다. 기본금리 1.5%에 끝까지 성공할 때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 2.5%가 더해진 것이다. 최대 가입기간은 200일로 6개월 남짓이다. 지역은행인 BNK경남은행도 이 같은 초단기 적금 상품 대열에 합류했다. 최고 연 5.7% 금리를 주는 ‘오늘도 세이브 적금’을 출시했다.
1개월부터 가입 가능한 초단기 상품으로 적금 가입기간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매일 소액이라도 저축하는 습관을 길러보자는 취지로 기획됐으며, 마케팅 및 모바일 메시지수신 동의(0.15%), 만기 시 납입 원금 잔액 10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0.3%) 또는 200만원 이상 (1%),친구 추천(회당 0.3%, 최대 0.6%)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 시 최대 1.75%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11월 30일까지는 ‘MZ고객 절약습관 기르기 이벤트’가 진행돼 만 40세 미만 고객이 가입하면 0.5% 우대금리가 추가로 제공된다. 이에따라 우대금리 조건 모두 충족 시에는 최대 연 5.7% 금리를 기대할 수 있다. 가입금액은 매일 1000원부터 10만원 이하이고, 가입기간은 1개월부터 6개월까지 월 단위로 가능하다.
향후에도 이 같은 ‘초단기’ 콘셉트의 예적금 상품 기획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시대에 예적금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른바 MZ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소비 성향 등을 감안하면 초단기 상품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또 여행 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을 겨냥해 마케팅 이벤트를 연계하는 등의 상품 기획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