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신규고객 발굴’을 위해 유병자보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보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계약 유지율도 높은 경향을 보이는 우량고객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만성질환을 앓는 것도 불안한데, 다른 질병을 보장하는 보험 하나쯤 가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당뇨나 고혈압을 앓고 있으면 보험 가입조차 어렵거나 비싼 보험료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1~2년 새 보험사들이 앞다퉈 관련 상품을 내놓으면서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여러 상품군 중 하나로 작게 취급하던 과거와 달리, 최고 인기상품을 ‘간편형’으로 출시하는 경우도 늘었다. 특히 암 완치자가 늘고 ‘두번째 암’도 많아지면서 암 진단과 치료를 받은 후에도 다른 암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들도 많이 나왔다. 유병자보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최근 젊은 세대에서 암은 물론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39세 고혈압 환자는 30만 명, 30대 당뇨병 환자도 11만 명이나 된다. 젊은 고혈압 환자는 지난 5년간 약 30% 늘었고, MZ세대 당뇨병은 연평균 12% 증가하고 있다.
40대 이전에 만성질환 진단을 받은 경우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데, 보험 상품으로 다른 질환을 대비하기가 어려워진다. 젊다는 생각에 암보험이나 다른 건강보험 상품을 미처 준비해두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아직 유병자보험 상품을 적극 홍보하는 곳이 많지는 않지만, 관련 상품 개발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맞다”면서 “최근 MZ세대 가운데 당뇨나 고혈압을 진단받는 사례가 늘고 있어 유병자보험 시장은 계속 커질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0년 기준이긴 하지만,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유병자보험 건수는 467만 7000건으로 직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유병자들이 소위 ‘빅3’ 보험사를 선호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2020년 기준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의 유병자보험 계약건수(52만1199건)는 전년 대비 약 43%나 늘었다.
유병자보험 상품명에는 세 자리 숫자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보험 가입 여부를 좌우하는 3가지 질문의 기준을 요약한 것이다. 부동산 계약서를 쓸 때 갑과 을 간에 다양한 조건을 거는 것처럼, 보험 계약을 할 때에도 보장 내역에서 제외할 것과 ‘계약 파기’ 가능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이를 보험용어로는 ‘고지항목’이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보험 가입 시 묻는 질문이 정해져 있는데, 유병자는 조금 더 까다롭다.
통상 유병자가 가장 처음 마주치는 관문은 ‘3개월 이내 입원이나 수술, 추가검사에 대한 의사 소견을 받은 적은 없는지’이다. 이어 2년 이내 입원이나 수술을 한 적이 있는지, 5년 이내 암이나 간경화, 협심증, 심근경색 또는 뇌졸중(뇌출혈·뇌경색)을 진단받았거나 입원·수술한 적이 있는지 등을 묻는다. 이 같은 조건은 보험사마다, 상품마다 조금씩 다르므로 가입 시 약관을 확인해야 한다.
기존 보험 상품에만 있던 다양한 특약이 속속 추가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KB손해보험은 자사 유병자보험에 ‘상해·질병 3~100% 후유장해’ 보장을 추가했다. 보험기간 중 상해나 질병이 완치되지 못하거나 이전과 같은 노동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보장받을 수 있다. 뇌와 심장질환 보장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계약 형태도 다양해졌다. 일부 보험사는 갱신형, 무해약환급형 등 최대 6종까지 제공한다. 무해약 환급형은 보험료 납입기간 중 해지할 경우 해약환급금이 없는 대신 해약환급금을 지급하는 동일한 상품에 비해 저렴한 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다. 갱신형과 비갱신형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100세 만기 상품도 나왔다. 다른 질병이나 검사비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특약도 늘어나는 추세다. 미래에셋생명은 유병자보험에도 70여 종의 특약을 붙여 다양하게 보장받을 수 있게 설계했다. 이 상품 하나로 종합치료 올케어, 암 집중보장, 뇌와 심장질환 집중치료 등 맞춤보장을 받을 수 있다. AXA손해보험 유병자 암보험은 5년간 생활자금을 지원하며 알츠하이머병 및 루게릭병, 파킨슨병 등 퇴행성질환까지 추가 보장해준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개발원이 유병자들의 보험료율 체계를 정리하면서 보험사들이 유병자 보험료를 산출할 수 있게 됐고, 보장도 세분화할 수 있었다”면서 “손해율 계산이 가능하고 소비자 관심도 커지고 있어 앞으로도 다양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병자보험에 가입할 생각이라면 한 상품으로 통합보장을 받기보다 2개로 쪼개는 것을 추천한다. 만성질환 진단을 받기 전에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면, 암보험 하나에 건강보험을 추가하면 무난하다.
암보험을 1순위로 꼽는 이유는 여전히 한국인 사망원인 1위 질환이기 때문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암 유병자는 약 228만 명이다. 23명당 1명꼴로 암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다. 65세 이상 고령자만 보면 7명당 1명이 암 유병자다. 조기발견이 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5년 생존율은 71.5%까지 높아졌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모두 유병자보험을 판매하므로, 생각하고 있는 보험료를 반으로 나눠 생보사에 하나, 손보사에 하나씩 각각 가입하기를 권한다”면서 “요즘 당뇨와 고혈압 환자들은 물론 암 완치자들도 암보험에 추가로 가입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보험사들도 유병자 암보험 상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생명 등 많은 보험사들이 간판 암보험 상품의 보험료를 조금 높이는 방식으로 ‘간편 가입’용 유병자 암보험을 판매 중이다. 한화생명은 지난해와 올해 히트 상품인 ‘시그니처 암보험’을 다이렉트 상품, 유병자 상품으로 설계해 고객 선택권을 넓혔다. 암 부위별로 진단금을 최대 7번까지 받을 수 있고, 암 진단부터 치료까지 전 과정을 두루 아울러 보장해 인기를 모았다. 새로운 암 검사와 수술·치료기법을 보장하는 상품들도 있다. 교보생명 유병자 암보험은 특정NGS유전자패널검사, 암CT·PET·MRI·초음파검사, 카티(CAR-T)항암약물허가치료, 특정항암호르몬약물허가치료, 암다빈치로봇수술 등 다양한 치료비용을 보장한다.
최근 여러 보험사들이 주목하는 ‘여성 전용’ 상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한 트렌드다. 남성에 비해 평균수명이 긴 데다, 여성들만 걸리는 질환들을 집중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손해보험은 역점 상품인 ‘시그니처 여성보험’을 355 간편보험으로 출시했다. 특히 5년 내 입원 또는 수술 여부 질문 시 갑상선기능저하 및 항진증, 유방 및 여성 생식기 질환에 대한 질문을 제외해 이 질환을 앓고 있어도 가입할 수 있다.
흥국생명도 여성전용 유병자보험을 판매한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3대 질병 중 복합병력을 가진 유병자도 2대 질환(뇌·심혈관질환)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성암보장특약 가입 시 자궁암, 난소암 등의 진단비를 3000만원까지 추가 지급한다.
흔히 보험 소비자들은 갱신형보다 ‘비갱신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가입 중에 보험료가 오르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병자들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가입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갱신형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비갱신형으로 설계하면서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할 확률이 높아서다.
한 보험사 설계사는 “암 치료기법만 봐도 과거 비쌌던 의약품이나 의료 기술 가격이 많이 낮아졌다. 지금 수천만원인 치료비도 기술 발전으로 확 내려갈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특히 암보험은 새로운 상품들이 꾸준히 출시되므로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부담스러운 금액으로 가입하지 말고, 최소한의 보장만 받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라는 이야기다.
유병자보험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기 때문에 몇 년 후에도 가입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삼성화재가 다이렉트 상품으로 출시한 유병자보험은 당뇨,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어도 90세까지 가입이 가능하다. 자동갱신을 통해 100세까지 보장한다. 상해·질병으로 인한 입·통원 수술비부터 암· 뇌·심장 질환 등 주요 질병 진단비는 물론 대상포진, 독감 등 자주 걸리는 질환도 대비할 수 있다.
신찬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