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커피 브랜드인 블루보틀이 한국에 처음으로 점포를 낸 곳. 핫한 빵집과 카페가 주말마다 인스타그램에 소개되고 ‘인싸’들이 줄을 서는 곳. 하지만 한편엔 아직도 옛날 모습을 지닌 중소 제조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
성수동에 대한 묘사다. 이곳은 서울에서도 매우 특이한 모습과 독특한 감성을 지닌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 런던 뱅크사이드와 비교되기도 한다.
한강르네상스의 포문을 열었던 갤러리아포레는 한화건설이 갤러리아백화점의 고급 이미지를 차용해 2008년부터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다. 처음부터 ‘현금자산 100억원 이상, 연간 백화점 쇼핑 금액 1억원 이상, 서울옥션(미술품 경매) VIP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을 정도로 철저히 고급화를 노렸다. 이후 트리마제·아크로서울포레스트 등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입주하며 성수동 일대는 연예인도 많이 거주하는, 이른바 ‘힙’ 타운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곳은 소녀시대 태연·써니, 슈퍼주니어 이특·은혁·동해 등이 살고있고, BTS 제이홉 등도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성수동 일대는 최근 개발 사업에 또 한 번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한강변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 내용의 재개발을 추진 중인 성수전략정비구역 사업이 12년 만에 재개된다. 최고 50층 높이의 층수 규제를 풀고, 한강과 직접 연결하는 보행데크와 공원을 품은 ‘수변친화’ 주거 단지를 만들 예정이다.
성수동은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곳, 압구정과 청담을 마주 보는 한강변에 있다. 자연적으로 매우 좋은 입지지만 예전부터 장마철이면 중랑천의 물이 넘쳐 자주 물에 잠기곤 했다. 그때 만들어진 일시적인 섬이 바로 뚝섬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말’과 역사를 함께한 지역이었다. 말 목축을 금지했던 병자호란 이전의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가 전국에서 가장 큰 말 목축장이었다. 1954년 5월 8일엔 한국마사회가 뚝섬에 경마장을 열었다. 35년간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경마장은 1989년 지금의 과천 렛츠런파크(옛 경마공원)를 열면서 문을 닫게 된다. 5년 후 근처에 있던 골프장까지 문을 닫으면서 서울시의 ‘서울숲’ 조성 프로젝트도 시작됐다.
성수동은 또 ‘민자 1호 산업단지’로 불릴 만큼 거대한 중소기업의 요람이었다. 1970년대 이곳은 직원 수 5~30명 정도의 제조업체가 약 2900개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진다. 그러나 1970년대 말 구로공단, 안산 반월공단이 생기며 기계공장·철공소 등이 하나둘 성수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비싼 인건비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탓이 컸다.
조금씩 사람이 사라져가며 생기를 잃어가던 성수동 일대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뉴타운 후보지로 거론되다가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발표한 한강르네상스 사업 일환으로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된다. 사업은 이후에도 순항해 2011년 최고 50층 높이로 건물을 짓는 개발안이 결정 고시됐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이 시정을 잡으면서 사업 진행은 큰 암초를 만난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1·2·3·4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수년 동안 건축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4지구조합 관계자는 “박원순 전 시장 때 사업 진행이 거의 멈춰 있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6월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이 발표되면서 지역 주민의 기대감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성수동은 한강르네상스 계획의 유일한 ‘생존자’인 만큼 향후 개발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어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다. 2007년 서울시는 전략정비구역 5곳(합정·여의도·이촌·압구정·성수)과 유도정비구역 5곳(망원·당산·반포·자양·잠실)을 한강변에 지정했는데 성수동만 제외하고 나머지 9곳 모두가 중도 취소됐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개발 첫 단계부터 다시 밟아야 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은 하던 사업을 진행만 하면 돼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시가 발표한 이번 계획안은 2011년 만들어진 원래 정비계획 이상의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됐다. 우선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될 것을 가정해 기존 최고 50층 이하(높이 150m)였던 층수 규제를 풀었다. 서울시와 성수전략정비구역 조합 등에 따르면 이번 계획안에 따라 최고 높이 300m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50층 규모의 재개발을 추진했던 조합들도 최고 80층 계획안을 앞세워 고급화 경쟁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성수전략정비구역 4지구 조합원은 서울시에 제출하기 위한 새로운 건축 계획안을 최근 마련했다. 주동 층수를 기존 지하 1층~지상 50층에서 지하 4층~지상 최고 77층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임대 물량을 늘려 용적률을 추가 확보하는 동시에 층수를 높이는 내용이다. 동 사이 간격은 넓히고 사업성은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1, 2, 3지구도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1, 2지구는 조합이 50층 안과 70층 안을 제시했는데, 조합원 대다수가 70층을 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1지구 조합 관계자는 “당장 층수를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70층을 원하는 조합원이 다수”라며 “앞으로 총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3지구 역시 최대 80층 규모의 건축 계획을 염두에 두고 조합원 설문을 진행 중이다.
강변북로로 가로막혀 있었던 대지 여건을 개선해 한강까지 걸어서 접근할 수 있게 만든 점도 특징이다. 자연스럽게 한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단지 안에 입체데크를 조성하고, 단지를 중앙집중형으로 배치해 개방감과 한강 조망 가구를 최대한 확보하도록 했다.
10년 이상 멈췄던 성수전략정비구역의 재개발 시계가 다시 돌면서 근처 서울숲과 하나의 고급 주거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는 기대감도 높다. 서울숲 일대는 앞서 언급했듯 이미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와 전시·공연장, 특급호텔 등이 어우러진 문화산업 복합 클러스터로 개발 중이다.
일례로 서울숲 인근 성수동 1가 부영 호텔 건립 용지(특별계획구역4·685의 701)와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용지(특별계획구역3·685의 700)에 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개발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번 결정안에 따라 부영호텔 용지에 최고 48층 짜리 주상복합 2개동과 5성급 관광호텔 1개동을 짓는 계획도 확정됐다.
서울시는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성수역~한강 연결축’에 상업·업무·여가 기능, ‘서울숲~한강~뚝섬 연계 축’에 선형공원과 수변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기존 시가지 연계 축인 뚝섬로 변으로는 주요 공공서비스 기능을 배치할 예정이다. 이 밖에 한강 수변공원은 강변북로보다 높게 입체적으로 조성하고 단지와 연결된 새로운 석양 명소로 만들어낸다는 구상이다.
성수전략정비구역 4개 지구 중 입지가 가장 좋은 곳은 1지구다. 서울숲과 지하철 분당선 서울숲역이 가장 가깝다. 트리마제 바로 옆이라 갤러리아포레·아크로서울포레스트 등과 거대한 블록을 만들 수 있다는 평가다. 성수대교를 이용하기 편하고, 영화관 메가박스 등이 근처에 있다. 면적도 4개 지구 중 가장 넓다.
2지구는 그동안 다른 지구보다 사업 속도가 느려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하지만 성수전략정비구역의 또 다른 핵심 개발 계획인 강변북로 지하화에 성공할 경우 최대 수혜지로 꼽힌다. 지하화를 통한 대규모 공원이 1지구의 절반과 2지구 전체를 가로질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4지구는 일반분양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돼 주목받는다. 전략정비구역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영동대교를 이용하면 압구정동·청담동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한강 조망권이 4개 전략정비구역 중 가장 뛰어나다. 한강을 대각선으로 조망할 수 있어 재개발이 끝날 경우 뒤에 위치한 동까지 한강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지구는 입지 측면에선 다른 지구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이용하기도 쉽다.
현재 30평형대를 배정받을 수 있는 매물 기준(추정분담금 포함)으로 시세는 20억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트리마제 전용 84㎡ 호가가 30억원을 넘어 미래 가치는 충분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 일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기 때문에 실거주 요건이 필요하다. 결국 이 지역을 신규로 진입할 사람들은 직접 거주하는 ‘몸테크’를 각오해야 한다. 사업이 늘어질 위험이 있는 정비사업 특성상 부담이 높은 부분이다.
성수동 일대 재개발 계획 밑그림이 나오면서 개발업계에선 성수전략정비구역의 또 다른 핵심 개발 계획인 강변북로 지하화가 가능할지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만일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성수동 일대 한강변은 말 그대로 천지개벽하는 것이고, 무산될 경우엔 초고층 주상복합 클러스터로만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강변북로 지하화 계획에 따라 성수전략정비구역의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와 서울시 등이 내놓은 종전 계획에는 강변북로를 지하화해 대규모 문화공원을 만들고, 성수동에서 한강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보행로를 만든다는 구상이 포함됐다. 당시 계획에 따르면 먼저 강변북로를 지하화한 480m 구간 상부와 기부채납한 토지 등을 이어 서울숲과 뚝섬유원지를 연결하는 1㎞ 띠 모양의 대형공원을 만들도록 돼 있었다. 공원 안에는 공연·전시시설, 창작스튜디오, 어린이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을 함께 설치한다는 방안을 담았다. 한강을 넘어 압구정까지 이어지는 1㎞ 길이의 보행교를 만든다는 계획도 있었다. 서울시는 최근 성수동 바로 한강 건너편인 압구정3구역 재건축 조합에 공공기여 방식으로 한강 보행교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의 현실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이 사업은 성수전략정비구역 4개 지구가 비용을 같이 부담(기부채납)한 후 추진해야 하는데, 지구마다 사업 속도가 달라 프로젝트를 한 번에 진행하기 어렵다. 투입 예산 대비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지하화 완전 백지화 ▲덮개공원으로 변경 등 다른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변북로 지하화 문제는 향후 국토부 등과 협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