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투자한 기업들을 모아서 투자하되 정유주만 제외하고 복제한 투자상품.’ ‘국내 업종별 1위 기업 중에서 오너리스크가 큰 곳은 제외한 투자상품.’ ‘코스피기업 중 영업이익률 20% 이상 기업 중에서 무기, 담배, 게임 등 죄악산업에 속한 기업은 제외한 투자상품.’ 기존 ETF나 인덱스펀드에서는 보기 힘든 투자상품들이다. 펀드매니저는 투자자 자신이다. 개인의 선호와 투자목적 등을 반영해 벤치마크 지수를 구성하고(Indexing), 이를 고객의 계좌 내에서 개별 종목 단위로 직접(Direct) 운용하는 다이렉트 인덱싱(Direct Indexing)이 투자시장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정한 지수(Index)를 추종하는 방식으로 잘 알려진 패시브(Passive) 투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핀테크 업체인 두물 머리를 시작으로 대형 증권사들이 다이렉트 인덱싱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국내 펀드 시장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직접투자 방식을 빌린이 투자상품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투자업계는 미국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인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투자 대안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이렉트 인덱싱은 기존 ETF 등 패시브 상품이 커버할 수 없었던 개인의 선호 및 투자목적 등을 반영, 개별주식을 직접 매수해 지수를 추종하는 투자기법이다. 투자자가 직접 투자전략을 세워 ‘나만의 지수’를 만든 후 투자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맞춤형 포트폴리오 구현에 그치지 않고 보유 종목의 비중을 조정하거나 특정 종목을 배제하는 등의 포트폴리오 개인화가 가능해진다. 다만 다이렉트 인덱싱을 제공하는 플랫폼별로 상품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별성을 보인다.
핀테크 업체 두물머리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자체 로보어드바이저 및 데이터 분석 역량에 기반한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 ‘테일러’를 출시했다. B2B 방식으로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를 시작한 두물머리는 다양한 지수 공급을 위해 FTSE 등과 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포트폴리오 매매 및 리밸런싱 관련 한국투자증권과업무를 연계하고 있다. 또한 두물머리는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에 챗GPT를 접목해 개인의 투자 판단 및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등 다양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현재 국내 증권사 중 다이렉트 인덱싱을 도입한 곳은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다. 지난 2월 증권업계 최초로 서비스를 내놓은 NH는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인터페이스(사용자 접근 편의 UX·UI)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앱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총 14개의 기본 지수(한국 시장 기본 지수 3개, NH iSelect 지수 11개)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지수를 선택한 후에는 ▲내 마음대로 편집하기 ▲ 주식 비중만 변경하기 ▲지수 그대로 따라 하기 등 세가지 옵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취향대로 변경할 수 있다. 첫 번째 옵션 역시 테마·업종·스타일별로 나뉜 선택지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투자 주제(항목별 최대 3개)를 고를 수 있다. 지수 완성 후에는 내가 선택한 투자 콘셉트 및 그에 따라 생성된 포트폴리오와 구성 종목들의 비중을 원·막대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업종 간 혼합 투자도 가능하다. 기존 ‘메타버스 테마 ETF’에 들어 있는 카카오·네이버 등 종목들에 NHN을 비롯한 웹툰 관련주 종목을 추가해 자기만의 ‘메타버스+웹툰’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지난 4월 서비스를 도입한 KB증권의 경우 ‘오마하의 현인’ ‘월가 영웅’ 등 대가들의 전략을 참고한 지수들을 메인화면에 담았다. 세부 메뉴를 살펴보면 600여 개에 달하는 방대한 지수를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이 나온다. 테마·업종·국내 대표 지수는 물론 오마하의 현인(가치투자)·월가의 영웅(성장주투자) 등 대가들의 투자전략을 본뜬 지수들도 활용할 수 있다.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알고리즘 ‘마이포트(MYPORT)’를 개발한 KB자산운용 측은 “인공지능(AI)을 지수 제작에 활용한 덕분에 압도적으로 많은 지수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수를 만드는 단계에서도 투자자의 자율성에 역점을 뒀다. ▲프리셋 투자(초보용) ▲간편 투자(중급자용) ▲프로 투자(전문가용)로 나뉘는데, 프로 투자의 경우 이름에 걸맞게 총 9개 팩터의 150여 개 세부값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투자자가 지수 제작을 마친 후에는 양 사 모두 해당 지수의 지난 6개월·1년·3년간의 성과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수익률은 물론 변동성, 샤프지수, 최대하락폭(MDD)을 벤치마크 지수(코스피, 코스닥)와 비교해볼 수 있다.
다만 아직 다이렉트 인덱싱의 경우 최소 투자금액의 문턱이 있다. ETF의 경우 1주 단위로 거래가 가능한데 반해 다이렉트 인덱싱의 경우 기존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상품이더라도 KB증권은 최소 100만원, NH투자증권은 200만원을 투자해야 한다. 옵션을 다수 추가했을 경우 최소 투자금액은 100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다이렉트 인덱싱은 보통 세금 최적화, ESG 요소 고려, 위험 및 특정 팩터에 대한 맞춤 투자 등의 목적으로 활용된다. 먼저 펀드 또는 ETF 등과 달리 개별 종목 보유를 통해 손익통산 및 손실이연제도 등을 활용한 세금 감면 혜택(Tax loss harvesting)으로 절세 관리에 나설 수 있다. 포트폴리오 전체적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평가 손실을 기록한 일부 개별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발생 이익과 상쇄할 수 있어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대비해 절세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투자 소득세는 손익통산을 통해 세금을 매기는데, 손익 합산 규모에 따라 세금 규모가 달라진다”며 “다이렉트 인덱싱을 통해 최적의 절세구간을 계산해 자동으로 리밸런싱 과정을 거치면 투자자가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구간으로 투자상품을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MZ세대 등을 중심으로 주요 방법론으로 자리잡은 ESG 원칙을 투자자 선호도에 따라자유롭게 포트폴리오 구성에 반영할 수도 있다. 자신의 금융 상황 및 리스크 선호도 등에 기초해 특정 주식 및 산업, 팩터 등에 대한 투자금을 증가하거나 줄이는 등의 맞춤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금융 상황 및 리스크 선호도 등에 기초해 특정 주식 및 산업, 팩터 등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키거나 줄이는 등의 맞춤화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기업에 소속된 종업원의 경우 특정 기업 또는 산업에 대한 노출 축소를 위해 자신이 소속된 기업 또는 산업의 주식 종목을 투자에서 배제하는 것이 하나의 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올리버와이먼에 따르면 미국 내 다이렉트 인덱싱 시장규모는 2018년 185조원, 2019년 385조원, 2020년 500조원을 기록했다. 2025년 다이렉트 인덱싱 시장규모는 215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다이렉트 인덱싱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이후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다이렉트 인덱싱 사업의 성장 잠재력을 인식하고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등 발 빠르게 시장을 점유하기 위한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출시한 자산운용사인 뱅가드(Vanguard)가 46년 역사상 최초로 신생 다이렉트 인덱싱 솔루션 개발 업체인 저스트인베스트(JustInvest)를 인수한 바 있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 역시 아페리오그룹(Aperio Group)을 인수하며 대응하고 있다. 이 외에 모건스탠리, 뱅가드, UBS 등도 핀테크 업체 인수를 통해 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업권별로 다이렉트 인덱싱 참여 전략은 조금씩 다르다. 리테일 고객을 상대하는 찰스슈왑의 경우 고객에게 다양한 직접투자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패시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던 모건스탠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랜기간 다이렉트 인덱싱 서비스를 제공해온 파라메트릭(Parametric)의 모기업 이튼 밴스(Eaton Vance)를 약 70억달러에 인수하며 그간 블랙록과 뱅가드가 양분한 패시브 시장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다이렉트 인덱싱의 서비스 수수료를 살펴보면 슈왑 퍼스널라이즈드 인덱싱(Schwab Personalized Indexing)의 경우 35bp로 일반적으로 ETF보다는 높고 액티브 펀드에 비해 낮게 책정돼 있다. 미국 주요 금융투자사가 제공하는 다이렉트 인덱싱의 주요 서비스는 크게 절세 전략과 개인화 지수투자로 나눌 수 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개인화 지수를 제공하는 것은 국내에서 출시된 서비스와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팩터(Factor)와 ESG를 혼합한 형태의 개인화된 지수를 선보이고 있다”며 “그 외에도 특정 업종이나 기업을 스크리닝(screening) 할 수 있고, 같은 종목군에 투자하더라도 비중을 변경하는 방식으로도 지수를 변형하는 등 다양한 옵션을 추가하여 개인투자자의 ESG 투자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내 금융 업계에서도 다양한 업체들이 다이렉트 인덱싱 시장에 참가해 경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선제적으로 참여한 NH투자증권과 KB증권 외에 미래에셋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 ETF 운용 주체인 자산운용사들도 지난해부터 다이렉트 인덱싱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윤신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향후 ETF 시장을 일부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이렉트 인덱싱 시장의 성장에 주목한 국내 자산운용사, 증권사, 핀테크 업체 등도 다이렉트 인덱싱 관련 서비스 출시를 준비·제공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향후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으로 다이렉트 인덱싱을 활용한 절세 관리가 가능해지고, 증권거래세 폐지, 소수점 거래 활성화 등으로 다이렉트 인덱싱 포트폴리오 구성이 쉬워진다면 그 활용도는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