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하도 집값이 떨어진 지금이 집을 살 기회라고 해도 막상 공인중개사에 가보면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집 마련’이야 항상 최우선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집값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고민만 커진다.”(40대 직장인 A씨)
‘내 집 마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해 A씨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가격 하락이 대세인 것처럼 보였지만, 반등의 조짐도 보이면서 좀처럼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이다.
일단 분명한 것은 가격이 여전히 ‘하락 추세’에 놓였다는 점이다. KB부동산 월간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9333만원을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기준 중위가격이 10억원 밑으로 내려온 것은 2021년 5월 9억9833만원 이후 21개월 만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21년 6월 10억원을 돌파한 뒤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7월 10억9291만원으로 정점을 찍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 1월 10억1333만원에서 2.0%(2000만원) 떨어져 10억원 이하로 떨어지는 등 7개월 새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파트 중위가격(중앙가격)은 주택 매매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위치한 가격이다. 평균 가격이 고가 주택이나 저가 주택의 가격 변동 폭에 따라 좌우되는 것과 달리 중위가격은 매매 가격 가운데 정중앙에 위치한 가격만 따지기 때문에 시세 흐름을 판단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매매 가격뿐만 아니라 전세 가격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 가격은 5억1333만원을 기록했다. 전월 5억2667만원 대비 2.5%(1334만원) 하락해 5억원 선 붕괴가 유력한 상황이다.
평균 매매 가격도 하락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2억2482만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 12억3918만원 대비 1.2%(1436만원) 하락했다. 평균 전세 가격 역시 같은 기간 6억1031만원에서 5억9297만원으로 1734만원이 떨어지며 6억원 선이 무너졌다.
정부기관인 한국부동산원 기준 시세도 마찬가지다.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지난해 5월 30일 기준 하락률 0.01%를 기록한 이후 3월 첫째 주까지 40주 연속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 중이다. 이 기간 하락 폭이 증가하거나 감소하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상승 전환하지 못했다.
수도권 아파트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지난해 1월 마지막 주 변동률 -0.02%를 기록한 이후 57주 연속(보합 제외) 하락 중이다. 전국 아파트 가격의 지표 역할을 하는 서울과 수도권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하락 폭이 감소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 변동률은 지난 2월 첫째 주 하락률 0.31%를 시작으로 4주 연속 하락 폭이 감소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역시 같은 기간 하락률 0.58%에서 4주 연속 하락 폭이 줄어들고 있다.
일부 지역이 ‘상승 전환’에 성공한 것도 부동산 심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송파구는 3월 6일 기준 아파트 매매 가격 변동률 0.03%를 기록하며 서울 25개 구 가운데 유일하게 매매 가격이 상승했다. 송파구 매매 가격이 상승 전환한 것은 2022년 4월 4일 조사에서 변동률 0.01%를 기록한 이후 48주 만이다.
송파구 매매 가격 상승은 대단지가 주도했다는 분석이다. ‘아실’에 따르면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9510가구 규모 헬리오시티는 올해 들어서만 69건의 매매가 이뤄지며 서울 아파트 가운데 가장 많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헬리오시티뿐만 아니라 송파구 대규모 단지가 거래량 상위 10개 아파트 단지에 이름을 올렸다. 6864가구 규모 ‘파크리오(송파구 신천동)’는 43건 거래가 이뤄지며 세 번째로 많은 매매가 이뤄졌다. 문정동에 위치한 ‘올림픽훼밀리(4494가구)’ 역시 21건의 매매가 이뤄지며 8번째로 많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헬리오시티 같은 경우 이제 급매를 찾아보는 게 어려워졌다”라며 “집주인들 사이에서 매물을 거두거나 호가를 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도중에 거래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송파구 일대 정비사업 활성화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 의무 폐지’ 내용이 담긴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을 발표했다. 이후 송파구에서는 올림픽선수촌, 한양1차, 풍납 미성, 풍납 극동 등이 잇따라 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재건축에 속도가 붙었다.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 올림픽훼밀리는 ‘올림픽 3대장’으로 불리는 송파구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다. 이 단지 전용면적 84㎡는 올해 초 14억10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는데, 최근에는 16억3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지며 가격이 2억2000만원 상승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송파구 일대 아파트 가격 상승은 재건축 규제 완화 효과도 있다”라며 “이 일대는 강남권에서도 정책 흐름에 따라 투자 수요가 민감하게 움직인다”라고 밝혔다.
송파구가 다른 강남구, 서초구와 같은 다른 ‘강남 3구’와 달리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초구와 강남구 아파트 가격은 각각 0.16%, 0.06% 상승했다. 반면 송파구는 0.00%로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올해 하락 폭은 송파구가 가장 크다. 송파구의 올해 아파트 가격 하락률은 1.96%로 서초구(1.39%), 강남구(1.94%)보다 가격이 더 떨어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서울 동남권 일대가 워낙 낙폭이 컸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송파구 진입장벽이 낮아 수요자들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일부 지역 상승 전환과 함께 정부의 규제 완화 효과로 거래량 반등 등이 발생하는 것도 부동산 시장이 다시 상승 전환할 것으로 보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월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 신고 건수(계약일 기준)는 2166건으로 2021년 10월 2198건 이후 처음으로 월 거래량이 2000건을 돌파했다. 평년 수준 거래량보다는 여전히 적지만 전월 1419건 대비 52.6% 증가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거래 절벽이 극심했던 지난해 2월 820건보다 164.1% 늘어나는 등 매매 시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3월 말까지 2월 거래 신고 기간이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래량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이 같은 거래 증가 배경으로는 올해 초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규제지역에서 풀리면서 시세보다 저렴한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러한 상승세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향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가격 전망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송파구의 가격 상승이 서울 전체 아파트 가격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송파의 경우) 지금 상황은 국지적 회복세로 낙폭 과대지역에서 일부 저점 매수가 나타나면서 거래가 늘어난 것”이라며 “경기 침체, 역전세난, 고금리 등 변수가 많아 시장 전체가 상승 전환으로 돌아설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장 리서치본부장 역시 “다른 분야 경기가 워낙 안 좋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 손바뀜이 이뤄지고 수요가 줄어들면 거래가 더 활발해지기는 어렵다”라며 “주변 지역 가격은 여전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송파만 지속적으로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 전망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부동산 시장 상황과 관련해 부동산 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최근 주택 거래 및 청약 건수 호전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75%인 15명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답했다. ‘장기적 추세 전환’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올해 연말까지 집값을 어떻게 예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이 하락 또는 현상 유지를 점쳤다. ‘현 수준에서 소폭 등락’이라는 응답과 ‘5% 이내 하락’이라고 답한 전문가가 나란히 40%(8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5% 이내 반등’이라고 답한 전문가가 15%(3명)으로 뒤를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폭 상승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주택 가격 하락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가파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내년에 반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KB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의 전문가나 부동산 관계자들이 ‘하락’을 예상했다. 이번 보고서는 부동산 시장 전문가 161명, KB협력 공인중개사 540명, KB자산관리전문가(PB) 75명 등 88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가 포함됐는데 전문가, 공인중개사, PB 모든 응답군에서 90%가 넘는 응답자가 ‘집값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세 시장에 대해서도 ‘하락 전망’이 다수를 차지했다. 금리 상승 여파와 높은 전세 가격 부담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 대부분은 주택 시장 반등 시기로 2024년을 예상했다. 수도권 반등 시기는 이보다 더 빠를 가능성도 있다.
보고서는 “현재 정부의 규제 완화 대책을 살펴보면 시장의 니즈와 방향성 측면에서 거의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규제 완화의 폭이나 정책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고민은 올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국외 요인이 부동산 시장에 끼칠 영향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인한 금융 시장 후폭풍이 여전히 남아있고, 미국발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월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3월 아파트 거래 신고 건수가 278건으로 다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석환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1호 (2023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