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 탓에 뉴욕 증시가 하방 압력을 떨치지 못하는 가운데 이달 8월에도 증시 간판 기업들이 줄줄이 분기 실적을 공개한다.
시장의 관심은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거쳐 기업 실적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월가에서는 증시가 이미 경기 침체를 상당 부분 선반영했다고 보면서도 실물경제를 책임지는 기업들이 실적발표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성적과 전망을 내놓을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달 말 1%P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사진 연합뉴스>
▶월가 “기술株는 피해라”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면서 뉴욕 증시에서는 섣부른 매매에 나서기보다는 관망해야 한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일본계 투자사 노무라증권의 롭 서바라먼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글로벌 경제 분석 메모를 통해 “통제 불능 상태인 물가 급등세와 각국 중앙은행의 과도한 긴축 정책, 정부의 재정 상황 악화 등이 경기 침체의 주요 원인”이라면서 “미국과 유로존, 영국, 일본, 한국, 캐나다, 호주 등 총 6개 지역이 내년을 전후해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는 9월 새 학기를 앞두고 계절적으로 부각되던 이른바 ‘개강 특수’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소비심리 위축이 심각하다는 비관론과 더불어 기술주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문가 예상도 눈에 띈다.
전 세계적인 물류난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원자재 가격 인플레이션, 연준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 겹치면서 미국 소비자 심리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모닝컨설턴트가 올해 5~6월 미국 학부모 27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개학 시즌 학부모 소비 의향’을 보면 새 학기를 맞아 자녀의 노트북 등을 사는 데 예산상 고민이 된다는 비중은 40%로 1년 전보다 10%포인트(p) 늘었다.
중국발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 2020년(42%) 이후 처음으로 40% 선을 찍은 것이다. 한편 새 학기에 소비를 아예 못할 것 같다고 답한 비중은 19%로 5%포인트 늘어나 2018년(1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새 학기 소비에 문제가 없다는 응답은 35%로 지난 2018년(4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새 학기에는 특히 노트북이나 태블릿PC 판매가 호조를 띠는 경향이 있는데 대표적인 관련 기업이 애플과 HP다. 새 학기 소비와 관련해 랜디 헤어 헌팅턴 내셔널뱅크 주식부문 연구국장은 “보통 3분기(7~9월)에는 휴가철 소비뿐 아니라 개학 시즌 소비가 부각되곤 하는데, 여기에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물건을 사면서 충동적으로 쓸어 담는 소비까지 포함된다”면서 “다만 올해는 이런 충동구매가 많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곧 경기 침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소비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금융데이터 업체 마켓비트 집계를 보면 애플은 이달 1일 종가 대비 월가 전문가들의 12개월 목표주가를 기준으로 한 주가 상승 여력이 약 33%다. 다만 이는 주가가 올해 들어 23.67% 하락한 데 따른 결과다.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는 HP는 상승 여력이 16%에 그친다.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란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인 상황을 말한다. 다만 뉴욕 증시에서는 실제 침체에 앞서 이미 불안감이 퍼지는 모양새다. 지난 7월 15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6월 소매판매’를 보면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소매판매 금액은 직전 달인 5월보다 1%, 작년 6월보다 8.42% 늘었고 식품·에너지 부문을 제외한 근원 소매판매도 5월보다 1% 늘어났다.
다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소비가 실질적으로는 줄어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앞서 같은 달 13일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보면 5월보다 물가가 1.3%, 작년 6월보다 9.1% 올랐고 6월 근원 CPI는 5월보다 5.6% 올랐다. 명목상 소매판매 증가율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6월 소매판매는 직전 달, 작년 같은 달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미국 민간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한 ‘6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98.7로 1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5월(103.2)보다 크게 하락한 수준이며, 100을 밑돌았다는 점에서 침체 불안감을 키웠다. 소비자신뢰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를 웃돌면 긍정적, 밑돌면 부정적인 것을 의미한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70%를 책임지고 있다.
생산 측면에서는 제조업 종목이 높은 주가 상승 여력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변동성이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집계한 ‘분기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2분기에 평균 55를 기록했다. PMI는 해당 부문 기업 내 구매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해당 업종 경기가 어떤지 설문조사를 한 후 이를 수치화한 지표로 50이 기준점이다. 50을 넘으면 해당 부문 경기가 성장세이고, 밑돌면 위축세로 판단한다. 팀 피오레 ISM 의장은 “산업 부문은 공급에 제약이 있지만 수요 역시 주도적”이라면서 “공급과 수요 간 긴장이 앞으로 몇 달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 6월 27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5월 근원 내구재 수주’는 직전 달보다 0.7% 늘어나 시장 예상치(0.3%)를 넘어섰다. 내구재란 3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말하며, 특히 근원 내구재는 내구재 중에서 운송·국방 부문을 제외한 것으로 민간 부문의 제품 수요를 반영한다.
▶美 채권 모으는 개미, 매수 4배 급증
미국 주식 시장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상반기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채권 순매수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배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 침체 우려 탓에 뉴욕 증시 주요 기업 주가가 흔들리자 서학개미들이 주식에서 채권으로 자금을 옮긴 결과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NH투자증권이나 삼성증권 같은 국내 대형 증권사도 미국 우량기업 회사채 거래 서비스를 하나 둘 열기 시작했다. 매일경제가 한국예탁결제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채권을 순매수한 금액은 13억4900만달러(약 1조7511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12.54% 급증했다.
반면 올 들어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은 총 118억7900만달러(약 15조4201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11% 줄었다. 연준의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계기로 경기 침체 불안감이 커지면서 기술주 등 위험자산에 투자됐던 자금이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우량기업 회사채로 이동한 결과로 해석된다. 유동원 유안타증권 글로벌자산배분 본부장은 “시중 장기 금리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지난 5월 이후 3%대를 넘겼고 이에 따라 우량기업 회사채 수익률이 4% 이상 덩달아 뛴 것이 투자자의 눈길을 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나스닥 마켓사이트 앞으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9.1% 올랐다.<사진 연합뉴스>
올해 상반기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세가 시들해진 반면 채권 순매수세가 급증하는 등 자산 선호도가 극명히 엇갈렸다. 뉴욕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자 ‘안전자산’ 격인 미국 국채와 함께 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부와 비슷한 수준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형 우량주 회사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옮겨가는 모양새다. 다만 미국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연방준비제도가 자금줄을 옥죄고 있는 만큼 수익률이 높더라도 신용이 낮은 기업 채권을 매수하는 것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20년 이후 3개년 동안 반기별 비교를 해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은 올해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작년 상반기의 경우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이 115.79% 급증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오히려 7.11% 줄어들었다. 반면 미국 채권 순매수 금액은 2020년 상반기 3억7900만달러 순매도세를 기록한 후, 작년 상반기 3억2700만달러 순매수세로 돌아섰고 올해 상반기에는 작년 대비 약 4배 불어났다.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채권 인기가 확실히 체감되는데 이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면서 “금리 상승기가 되면서 채권 가격이 떨어진 것이 채권을 저가 매수해 자산 다변화를 할 기회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채권 투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내 채권과 마찬가지로 쿠폰 금리에 따른 채권 이자 수익을 받을 수 있다. 쿠폰 금리란 채권 발행 시 만기와 더불어 미리 정해둔 명목 이자율을 말한다. 둘째로 채권 가격이 매입 가격보다 높이 오르는 경우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달러 가치가 더 오르는 경우 국내 채권과 달리 환차익을 노려볼 수 있다.
국채가 아니더라도 신용등급 수준이 미국 정부와 동급인 우량기업 회사채는 4%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자의 눈길을 끈다. 6월 29일 애플 채권은 수익률 4.40%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해당 채권은 만기가 2044년 5월 6일로 쿠폰 금리가 연 4.45%다. 6월 29일 기준 애플 주가는 연중 -23. 50%였는데 주식이 아닌 채권에 투자한다면 오히려 4%를 넘나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채권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개인이 국내 증권사 등을 통해 달러화로 채권을 사고파는 ‘직접투자’와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신탁투자’, 개인이 채권 기초 상장지수펀드(ETF) 등 펀드 상품을 매매하는 ‘간접투자’ 방식이다. 신 센터장은 “채권 직접투자와 ETF 간 가장 큰 차이는 주문 금액”이라며 “직접 투자할 경우 주문 단위가 크고 ETF는 소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단 ETF는 운용 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자금이 큰 경우 직접 채권을 매수하는 것이 유리하고 작은 경우에는 ETF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채권 수익률이 오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기업 펀더멘털과 시장 분위기를 반드시 따진 후 투자하라는 경고음이 나온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은 6월 말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회사채 시장 위기 지수(CMDI)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니나 보야첸코 뉴욕 연은 거시금융 연구책임자는 “CMDI 수치가 역사적으로는 중앙값 범위 내에 있지만 2008~2009년 금융위기 시기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다음으로 최근 급등하고 있으며 특히 투자 등급 회사채 위기 지수가 더 높다”고 지적했다.
채권 시장 변동성에도 주의해야 한다. ‘월가의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는 채권 시장이 왜곡된 최악의 해”라면서 “주식 대 채권을 60 대 40 비율로 두지 말고 주식과 원자재, 현금, 장기 국채를 똑같이 25%씩 비율로 보유하라”라고 조언했다.
해외 채권에 투자하는 경우 환율과 거래 비용에도 주의해야 한다. 달러화 강세가 더 이어진다면 환차익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가면 환차손을 볼 수 있다. 거래 비용의 경우 크게 수수료와 세금을 따져봐야 한다. 수수료에는 크게 중개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있고, 직접·간접·신탁 투자 방식에 따라 수수료가 조금씩 다르다. 해외 채권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 현지에서 이자 소득세가 과세되고, 현지에서 과세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분리과세가 이뤄진다.
▶달러화 ETF 뜨고 신흥국 지고
미국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진 가운데 뉴욕 증시 투자자들이 신흥국 통화 ETF에서 미국 달러화 ETF로도 자금을 옮기고 있다. 인플레이션 탓에 미국 소비심리가 악화되고 이에 따라 미국 경제 침체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 달러화 선호도가 커진 셈이다. 미국 경제에 비해 신흥국 경제 침체 가능성이 더 짙은 데다 미국은 글로벌 경제 중심 역할을 하는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에서 ‘안전자산’으로서 달러화 매력이 부각됐다.
외환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 달러화 강세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자흐 팬들 신흥국 통화 담당 분석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식량난과 에너지 부족, 기존의 물류대란 등으로 인해 신흥국 중에서도 특히 아시아 통화가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특히 필리핀 페소화와 인도 루피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처럼 기존에 고수익을 내왔던 통화들의 달러화 대비 가치가 6월 한 달 급락했고 앞으로 몇 주 동안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의 경우 전문가들은 당분간 1250~1350원을 오갈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표적인 신흥국 통화 ETF는 ‘위즈덤트리 이머징 커런시 스트래티지 펀드(CEW)’이고 달러화 ETF는 ‘위즈덤트리 블룸버그 US달러 불리시 펀드(USDU)’가 대표적이다. 특히 CEW 상위 구성 10개 통화는 멕시코 페소화(7.30%),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7.07%), 폴란드 즈워티화(7.04%), 중국 위안화(6.93%), 말레이시아 링깃화(6.92%), 인도 루피화(6.91%), 브라질 헤알화(6.90%), 인도네시아 루피아화(6.85%), 한국 원화(6.80%), 콜롬비아 페소화(6.77%) 순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 분기 실적 발표가 하반기 증시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본다. 커먼웰스 파이낸셜 네트워크의 브래드 맥밀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올해 2분기 이후 시장 불안감이 더 커졌는데 이는 올해 매도세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주식 시장이 바닥을 찍었는지, 더 떨어질지를 가를 변수는 기업들 실적”이라고 언급했다. 15일 기준 팩트셋 집계에 따르면 월가 전문가들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상장 기업들의 2분기 수익이 직전 분기 대비 4.2%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P 500 지수 상장 기업들의 최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6배로 작년 말(21.5배) 대비 가파르게 떨어졌다. PER는 기업의 주당 순이익(EPS) 대비 주가 비율을 말한다. 주가가 고평가 혹은 저평가됐는지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