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소비, 우주항공, 메타버스, ESG, 골프, 케이팝, K뉴딜, 수소경제, 게임, 태양광, 5G, 전기차, 2차전지’. 지난 2년 여간 출시된 테마형(thematic) ETF 상품들이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정부의 확장재정을 바탕으로 증시에 훈풍이 부는 동안 테마형 ETF 상품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국내에도 정부의 뉴딜정책을 기본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등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은 측면도 있다. 다만 각국 정부가 긴축재정으로 돌아서면서 시장의 분위기도 나빠졌다. 많은 투자자의 관심에 힘입어 자금을 유치했던 테마형 ETF의 수익률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만 신규 ETF 22개 상장
성공적인 금융혁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 ETF는 2002년 국내에 도입된 이후 공모펀드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ETF의 성장세는 지속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ETF 운용 자산규모는 지난해 10조달러 고지를 돌파했다. 복잡하지 않은 전략 구조, 저비용 분산투자, 높은 환금성 등 다양한 장점을 무기로 자금을 유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ETF 순자산 총액은 약 74조원으로 지난해만 42%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국내 공모펀드 시장의 외형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는 테마형 ETF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테마형 ETF는 섹터(또는 업종) ETF와 유사한 특화(spec ialized) ETF의 한 종류로, 특정 주제(theme)나 트렌드(trend)와 연관된 자산으로 지수를 구성하여 추종하는 ETF를 통칭한다. 국내보다 더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미국 시장은 무역전쟁, 대마초(cannabis), 채식주의자(vegan), 코로나19 백신 등 더욱 세분된 테마형 ETF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 역시 ETF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규 상장 종목 수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4월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4월 18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 신규로 상장한 ETF 종목 수는 22개였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15개) 대비 4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신규로 상장한 ETF 종목 수는 65개로 지금 같은 속도라면 작년 상장 개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4개에 불과했던 상장 ETF 종목은 2010년 64개로 늘어난 뒤 2015년 198개에서 2016년 256개,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325개, 413개로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위축되면서 ETF 상장 건수도 2019년 말 450개에서 2020년 말 468개로 18개 상장하는 데 그치는 등 부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상장 건수는 533개로 재차 증가하는 모습이다.
순자산액의 증가세는 더욱 명확하다. 2002년 출범 당시 3444억원에 불과했던 ETF 자산총액은 2010년 6조578억원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21조630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9년에는 51조7123억원으로 50조원을 넘어섰고, 2021년 5월에는 순자산 60조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12월에는 70조원까지 넘어서며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18일 기준으로는 74조1848억원을 기록 중이다.
최근 투자자 성향에 맞춘 다양한 테마형 및 액티브 ETF가 나오고 있어 시장 확대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액티브 ETF는 메타버스, ESG, 신재생에너지, 모빌리티 등 장기적 성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할 때가 많다”며 “이에 따라 투자자들도 중장기 투자 대안으로 액티브 ETF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큰 충격이 없다면 올해 80조원 돌파는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급격한 성장세를 생각하면 2024년에는 순자산규모가 100조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의 출시 경쟁이 치열해진 테마형 ETF의 확장이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내 ETF 순자산 80조원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보이며 2023년 시장 상황이 개선된다면 100조원 돌파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상장 후 1년 평균 수익률 -5.7%
테마형 ETF 시장의 확장은 투자자의 수요에 적시에 부응하고 상품군을 다양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테마형 ETF는 상장 이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기 자본시장 연구위원에 따르면 “최소 1년 이상 지난 상품을 대상으로 테마형 ETF의 상장 이후 약 1년 동안 평균 누적초과수익률은 -5.7%로 동 기간의 주식 시장을 밑돌았다”고 말했다.
연구는 국내 주식형 ETF 266개를 유형 4개로 분류해 각각 누적초과수익률을 조사했다. 누적초과수익률이란 같은 시점에 코스피나 코스닥 같은 벤치마크 가중평균 수익률 대비 얼마나 더 성과를 냈느냐를 계산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위 25%의 누적초과수익률은 0.4%이며 하위 25%의 경우 -18.3%로 성과가 저조하게 나타났다. 다른 유형의 주가지수 ETF의 경우 편차가 존재하지만 평균적으로 누적초과수익률이 거의 0%에 근접해 벤치마크와의 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았으나, 유독 테마형 ETF의 상장 이후 수익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NH아문디자산운용이 선보인 메타버스MZ ETF.
테마형 ETF 수익률이 유독 낮은 것은 해당 인기 종목을 모아 상장할 때가 되면 이미 주가가 오를 대로 올라 고평가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테마 종목을 추려서 상품화하면 이미 테마 종목들의 주가가 꺾이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민기 연구원은 “테마형 ETF 상장 이전 250거래일(약 1년)부터 상장 시점까지 해당 ETF에 편입된 종목들의 수익률을 따져봤더니, 누적초과수익률이 평균 16.2%로 같은 기간 주가지수 수익률을 훨씬 상회했다”며 “상장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해당 테마의) 평균 거래량은 약 80%, 검색 빈도는 약 73% 증가하여 테마형 ETF의 편입 종목은 상장 전에 이미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은 종목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상장하면 늦었다’는 게 결론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각국의 긴축정책과 저성장 우려가 더해지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장주를 많이 편입하는 테마형 ETF의 경우 부침이 더욱 심한 편이다. 최근 ETF들의 1개월 수익률을 살펴본 결과 중국 반도체와 전기차, 태양광 관련 ETF들이 10% 이상 빠지고 있으며, 중국 관련이 아니어도 게임, 웹툰·드라마, 메타버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등이 5% 이상 하락 중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0.5% 하락해 시장에 비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월 기준으로 살펴보면 게임, 2차전지, K뉴딜 등을 담은 테마형 상품이 –15~-17%까지 빠진 상황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시장에서 성장세가 강한 테마를 즉시 출시하려고 해도 자산운용사가 새로운 테마의 ETF를 상장하려면 금감원과 거래소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이미 시장에 소문이 돌고, 발 빠른 사람들은 해당 종목들을 미리 사들이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상장해서 일반의 매수가 시작되면 미리 산 사람들이 팔고 떠나면서 차익을 실현하고 떠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소부장·유전자지수 등 상장 대기
당분간 테마형 ETF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운용업계는 이미 코스피200, 대형주나 소형주 등 기존의 지수로 할 수 있는 ETF들은 레드오션이 된 만큼 새로운 상품개발을 위해 테마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투자자들의 관심과 흥미도 높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에 투자하는 ‘타이거(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에는 최근 1년에만 2조3523억원이 유입됐다.
최근 한화자산운용은 ‘ARIRANG iSelect우주항공&UAM’과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VITA MZ소비액티브’ ETF를 코스피 시장에 신규 상장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올해 테마형 지수 라인업을 확대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유전자혁신기술 관련 지수 등을 새로 발표할 예정이다. 소부장에 특화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로 휴대폰, 반도체 등 산업과 연관성이 있고, 안정적인 성장성을 갖는 기업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유전자 가위, 유전자 치료제 등 유전자 기술과 관련된 종목으로 구성된 유전자혁신기술지수도 발표될 예정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발된 지수다.
다양한 테마형 ETF의 출시로 투자자의 선택지는 늘어났지만, 단기적 과열 여부를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테마형 ETF 상장 과정에서 스마트머니의 선취매와 뜨거운 테마의 경우 관련 시장의 주가가 단기 과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테마형 ETF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도 유념해야 한다.
테마형 ETF를 포괄하는 액티브 ETF는 지수 대비 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시장 대표지수를 지속해서 추종하는 패시브 ETF와 달리 담당 펀드매니저가 시장 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수시로 변경한다. 이러한 이유로 패시브 ETF 대비 늘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아니며 보수는 상대적으로 높다.
ETF의 대부로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 대표는 “장기적으로 부를 증진하는 방법은 트렌드를 따라다니는 투자가 아니다”라며 “타이밍을 잘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맞겠지만 오랜 경험으로 봤을 때 투자 적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분산투자, 장기투자, 그리고 투자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서는 안 되는, 저비용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민기 연구위원은 “테마형 ETF에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낮아진 수익률 외에도 차별화된 상품에 부과되는 높은 운용보수를 감당해야 한다”며 “초과수익률(Alpha)의 크기가 유의미한 것으로 보아 테마형 상품의 분산투자 효과 또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조언했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아직 테마형 ETF의 운용 기간이 짧아 장기수익률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대세’ 흐름을 타고 만든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증시 트렌드는 장기적으로 사이클을 타기 때문에 단기과열 거품이 꺼지고 장기적인 모멘텀을 가진 테마는 상승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테마형 ETF 시장 선점 경쟁이 당장 부작용을 낳을 수 있지만 투자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원하는 범주의 산업에만 콕 집어 미리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테마형 ETF의 운용 실적이 짧아 앞으로 장기수익률이 어떨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대 유행하는 테마는 빠르게 변하기 마련이고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는 이런 위험성을 알고 주의 깊게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