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 모 부장(42)은 은행에 직접 방문해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는 주가연계신탁(ELT)에 대한 설명을 듣고 주저 없이 가입했다. 김 부장은 이미 ELT 연 수익률이 최고 8%에 이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은행에 오기 전부터 가입에 대해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는 금융자산의 40% 이상을 미국 주식과 한국 주식에 분산해 투자하고 있었고, 나머지 자산 역시 예·적금에서 뺀 후 좀 더 높은 수익이 가능한 곳에 투자하는데 ELT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은행에서 ELT 기초자산 중 홍콩 H지수가 지난 1분기에 급락해서 관련 ELT가 원금 손실 위험 직전까지 갔었다는 은행 측 설명을 듣고 더욱 자신이 생겼다. 이처럼 ELT는 본질적으로 전 세계 주요 증시의 흐름과 수익률이 동행하는데 올 들어 주식 시장이 하락한 것을 두고 김 부장은 오히려 매수 기회라고 봤다. 김 부장은 “올 들어 H지수가 크게 하락한 것은 역발상 투자 기회로 보였다”며 “ELT가 한국 미국 H지수와 같은 글로벌 증시가 오를 것에 베팅하는 것이어서 향후 오르면 수익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리스크 낮고 예금 대비 높은 수익률
실제 최근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상으로 가계대출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ELT 상품이 잘 팔리면서 그나마 안도하고 있다. 김 부장처럼 예금이나 적금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이 ELT처럼 어느 정도 리스크가 낮으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상품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PB는 “연초에 비해 주요국 지수가 하락해 투자 매력이 높아졌고, 전통적인 은행 상품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ELT에 대한 추천을 많이 했는데 고객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ELT 잔액은 지난 2020년 말에 21조4394억원이었다. 이후 3개월간 ELT는 1조7425억원 감소하며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당시 주요국 주가 지수가 정점을 찍고 내려가면서 향후 기대 수익률이 낮아진 데다 은행권에선 ELT나 파생결합펀드(DLF)와 같은 원금 손실 가능 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러나 올 들어 재테크 환경이 급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각국의 긴축적 통화 정책으로 안전자산으로의 ‘머니무브’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고 국내 기준 연 2~3%에 그치는 예·적금 이자는 재테크족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예금 이자의 3~4배 수준을 기대할 수 있는 ELT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4대 시중은행의 지난 3월 말 ELT 잔액은 24조9088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올 들어 3조42억원이나 급증했다. 전년 동기(2021년 1분기)와는 정반대의 흐름인데 그만큼 재테크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ELT가 올해 유독 인기를 끄는 것은 이 상품이 개별 주식보다는 투자 리스크가 낮기 때문이다. 또 은행 이자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통상 이 상품은 증권사에서 ELS라는 이름으로 주로 판매되며, 은행에선 ELS를 은행신탁계정으로 편입해 판매한다. 판매 주체가 증권사냐 은행이냐에 따라 관리 방식이 다를 뿐 상품 자체는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매 6개월마다 만기, 최대 3년
ELT의 만기는 대개 최대 3년 만기이고, 매 6개월마다 만기가 돌아온다. 6개월, 1년, 1년 6개월, 2년, 2년 6개월, 3년 등으로 은행이 만기를 잡고, 6개월 만기가 도래한 시점에 투자를 시작한 시기의 지수와 비교해 특정 비율만큼만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에 이자를 얹어서 고객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준다. 이처럼 6개월마다 상환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스텝다운’ 형태라고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ELT의 ‘녹인(knock in·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간)’이다. 주요 국가의 지수가 급락했을 때 ELT의 녹인 사태가 회자되는 것은 일단 녹인에 터치하게 되면 투자자의 원금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대표 ELT 상품 중 기초지수로 코스피200, 홍콩 H지수, 유로스톡50을 적용하는 ELT를 살펴보자. 기초지수는 각각 한국, 홍콩, 유럽 우량기업 대표 지수다. 이 상품은 가입 후 3개월과 9개월 비교 가격 결정일에 기초지수의 종가가 어느 하나라도 행사가격 이상인 경우 수익이 난다.
국민은행이 이같은 상품을 내놓은 것은 H지수처럼 특정 지수가 특정 기간에 폭락했을 때 원금 손실이 나는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H지수가 폭락하더라도 한국이나 유럽 증시가 좋다면 원금 손실이 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같은 방식을 ‘업&다운’ 형태라고 부른다. 이 상품의 녹인 구간은 50%다. 기초지수가 특정 기간 중 반토막만 나지 않으면 수익 상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건 까다로워지면 수익률 올라가
이 상품의 연 수익률은 세전 기준으로 7.4%다. 조건이 까다로워지면 수익률이 올라간다. 국민은행의 또 다른 ELT 상품 중에선 수익률 8%짜리 상품도 있다. 이 ELT는 기초지수로 미국 S&P500, 일본 닛케이225, 유로스톡50을 사용한다. 6개월 단위 스텝다운 형태로, 가격 결정일에 모든 기초자산의 종가가 행사가격보다 높아야 수익 상환이 가능하다. 녹인은 50%이며, 6개월 단위로 수익 상환이 불가능할 때는 최대 만기까지 끌고 가면 된다. 만기까지 기초자산이 최초 기준 가격의 50% 미만으로만 하락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누적 24%(연 8%)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다만 기초지수 중 하나라도 반토막 난 적이 있거나 만기 평가 가격이 최초 기준 가격의 70% 미만일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하니 유의해야 한다.
주요국 지수가 반토막 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ELT가 중위험 중수익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달러의 초강세와 중국의 침체 예상에 따라 홍콩 H지수는 4월 14일 기준으로 작년 1년간 32.3% 하락했다. 특히 지난 3월 15일 H지수가 폭락하면서 지수는 당시 연중 최저점인 6123.94를 찍었다. 2021년 4월 15일(10905.89) 대비 44%나 하락하자 일부 ELT(녹인 50%)에 비상등이 들어오기도 했다. 조금만 더 하락하면 녹인을 터치하면서 관련 ELT가 원금 손실이 날 판이었다.
녹인이 있는 ELT는 일단 이 구간에 들어가면 무조건 원금 손실이 확정된다. 만기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손실금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나 H지수는 이후 드라마틱하게 반등했고, 최저점(3월 15일) 이후 4월 14일 기준으로 20.6% 상승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 ELT의 경우 주요 지수 중 H지수를 많이 담고 있다”며 “H지수가 더 이상 하락하지만 않는다면 해당 지수가 워낙 바닥이기 때문에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고객이 상담을 받고 있다.
중국이 경기 침체를 걱정하며 대대적인 부양책을 쓰고 있는 점은 H지수의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은행권의 ELT 추천 근거다.
이처럼 H지수는 ELT 수익률을 좌우하는 ‘양날의 검’이다. 다른 국가 주가지수보다 더 많이 하락했기 때문에 역으로 향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PB들은 다른 기초자산을 담고 있는 ELT는 당장의 리스크는 피할 수 있겠지만 리스크가 낮아진 만큼 수익률도 낮춰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실제 미국 우량 기업들을 담은 주가 지수인 S&P500은 최근 1년(4월 14일 기준) 7.8% 올랐다. 유로스톡50의 경우 1년간 3.6% 하락했고 일본 닛케이225는 8.3% 하락했다. 국가 간 지수의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이와 달리 H지수는 최근 반등에도 불구하고 1년간 32.3%나 하락했다. 결론적으로 H지수를 담은 ELT는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리스크도 높다는 뜻이다. 녹인이 있는 ELT와 그렇지 않은(노녹인) ELT도 마찬가지다. 장단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자신에 맞는 상품을 찾아야 한다. 녹인 ELT는 만기 전에 원금 손실이 날 리스크는 없지만 기대 수익률 역시 녹인 ELT보다 낮아진다. 녹인 ELT는 일단 손실 구간에 진입하면 곧바로 손실이 확정돼 원금 손실을 보고 돈을 찾아가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
신한은행의 대표 상품 중 노녹인 ELT는 기초자산을 S&P500과 유로스톡50으로 삼고 있다. 이 은행은 녹인 ELT의 리스크를 감안해 주로 노녹인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 상품은 스텝다운 방식으로 6개월마다 상환 조건은 ‘80-80-80-80-75-65’다. 첫 6개월에서 가입 이후 2년간 기준(80)으로 기초자산이 20% 이상만 하락하지 않으면 조기 수익 상환이 가능하다. 마지막 기준인 65는 만기 상환 조건으로 기초자산이 35% 이상만 빠지지 않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다. 이 상품은 노녹인인 만큼 평가 기간 중간에 원금 손실 리스크는 없지만 3년 내내 조기·만기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결국엔 손실이 나는 구조다. 이 상품의 수익률은 연 5.2%다. 다른 은행의 녹인 상품보다는 기대 수익률이 낮은 편이다.
하나은행의 ELT 상품 중엔 연 7.4%의 수익률 상품이 있다. 녹인이 없는데도 7%대 수익률로 최근 판매가 활발하다는 전언이다. S&P500과 유로스톡50, 닛케이225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으며, 조기 상환 조건은 6개월 단위 3년 만기로 ‘80-80-80-80-75-65’다.
▶수수료 높아 시중은행들 판매 경쟁
시중은행들은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예대마진)를 통해서 거두는 이자이익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ELT 등 수수료 수익을 높여가려 하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예대마진을 놓고 ‘이자장사’라고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채권과 주식 시장이 모두 하락세를 보이면서 중간 수준의 리스크를 갖는 ELT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은행들은 고객들의 까다로운 수요를 맞추려면 당국이 은행들을 대상으로 하는 ELT 총량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DLF 등 은행들이 판매하는 투자 상품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하자 이같은 신탁 상품에 대한 규제를 내걸었다.
2019년 11월 말 잔고 기준으로 은행별로 ELT의 전체 규모가 유지되도록 강제한 것이다. 당시 잔액이 많았던 일부 은행들은 유리하지만 적극적으로 이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던 은행들은 갑작스런 불이익에 당황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다 다양하고 리스크를 낮춘 ELT를 판매하기 위해선 2년 전 총량 규제부터 풀어줘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