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매일경제 취재팀이 방문한 대구 달서구 본리네거리 일대. 차가운 겨울 날씨를 뒤로한 채 곳곳에서 신축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내년 7월 입주 예정인 주상복합 빌리브클라쎄(235가구), 내년 5월 준공하는 달서코아루더리브(162가구)를 필두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온도는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온기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구는 하반기 들어 ‘미분양의 무덤’이라 불리며 신규 오픈 단지가 속속 청약 미달 사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달서코아루더리브 공사 현장과 맞닿아 있는 520가구 규모 빌리브라디체 아파트는 지난해 말 청약에서 14가구만 접수하며 청약 경쟁률 0.03 대 1의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올해 들어 첫 대구 분양이었던 대구 남구 대명동 ‘영대병원역 골드클래스 센트럴’의 1순위 청약결과도 부진했다. 655가구를 모집하는 데 90명만 신청해 미달이 났다. 특별공급에도 5명만 신청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대다수 단지들이 완판됐었다. 올해 1분기에 분양한 ‘힐스테이트 감삼센트럴(20.21 대 1)’과 ‘힐스테이트 대명센트럴(10.93 대 1)’ 등은 무난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예년보다 많은 분양 물량이 쏟아지자 상대적으로 입지가 좋지 않은 곳으로 여겨지는 단지부터 속속 미달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빌리브라디체와 함께 브랜드 단지인 힐스테이트 동인도 0.6 대 1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미달을 면치 못했다.
대구시 전경
▶대구 아파트 매매가 10주 연속 내리막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1월 10일 기준 9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하락폭도 커지고 있다. 대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2021년 11월 셋째 주에 전주 대비 0.02% 떨어지면서 2020년 5월 첫 번째 주에 하락으로 돌아선 이후 80주 만에 다시 하락으로 전환했다. 연이어 올해 들어서까지 10주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미분양 물량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21년 9월 2093개, 10월 1933개, 11월 2177개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가뜩이나 새해 들어 대출규제와 금리 상승 효과가 더해져 전국 집값이 주춤하고 있는 상황인데, 대구에서는 미분양까지 늘어나 3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대구의 주택 매매량은 2275건으로 전년 동기(7601건)에 비해서는 70.1%나 확 줄었다. 여러모로 살펴봐도 전형적인 하락장으로 가는 모양새다. 여기에 입주물량까지 터질 판이다. 대구 입주물량은 2020년 1만3000가구 지난해 1만5000가구 선이었다. 이 물량이 올해 1만9000가구로 늘고 내년에는 3만2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24년에도 여전히 3만 가구 안팎으로 예측된다. 시세가 떨어지는 가운데 입주물량 폭탄이 떨어지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가격 회복이 힘들어진다.
주택사업경기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대구에서 6년 만에 최고로 높다. 주택산업연구원은 1월 주택사업경기실사지수(HBSI) 조사 결과를 내놨는데, 전국 HBSI 전망치는 2021년 12월보다 0.2포인트 하락한 77.6을 기록했다. 특히 대구는 50.0으로 2021년 12월보다 17.8포인트 하락하며 3개월째 전국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HBSI는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주택을 찍어내는 공급자 입장에서 주택사업 경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이 수치가 기준선인 100을 넘으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건설사 비율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100을 밑돌면 앞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구 결과가 최악으로 나온 것이다.
래미안포레스티지 조감도
▶“올해 지방은 완전히 차별화된 장세”
월간 기준으로 봐도 비슷한 통계가 잡힌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1년 12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의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0.10% 하락한 것으로 나왔다. 2020년 4월 이후 20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택 전세가격도 전달 대비 0.02% 하락했다. 입주물량 등의 영향으로 달서구와 중구 위주로 떨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라 볼 수 있다. 아파트 역시 같은 방향이다. 2021년 12월 대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11월 대비 0.17% 떨어졌다. 11월 아파트 매매가격은 10월에 비해 0.07% 하락했는데, 2021년 5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하락으로 전환한 것이다.
구군별로는 동구의 아파트값 하락률이 0.11%로 가장 컸다. 달서구 0.09%, 중구 0.06% 등이고 수성구도 2주 연속 0.04% 하락했다. 특히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조차 아파트 시세가 빠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핵심입지의 아파트는 다른 곳은 떨어지더라도 ‘똘똘한 한 채’ 심리로 가격이 방어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핵심 입지에 있는 수성구마저 하락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이다.
수성구 소재 범어라온프라이빗 2차 아파트는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2020년 11월 14억950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난해 10월에는 이보다 훨씬 낮은 13억원에 거래가 됐다. 이런 식으로 수성구 아파트 곳곳에서 아파트 매수 열기가 식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대구 부동산은 완연한 하락세로 봐야 한다”며 “입주물량이 많은 데다 미분양까지 나오고 있어 당분간 시세가 상승 반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 A부동산 관계자는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시세가 대대적으로 폭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지만 당분간 조정장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거래가 뜸해지고 집주인이 호가를 낮추는 등 매도자 우위 시장으로 넘어가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이에 권영진 대구시장은 청와대를 방문해 유영민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과 만나 부동산 조정 대상 지역 지정 해제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권 시장은 1월 13일 청와대에서 “대구가 큰 도시(Big City)를 넘어 위대한 도시(Great Daegu)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정 대상 지역 해제 등 지역경제 재도약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지난 2020년 12월 달성군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구시 전역을 조정 대상 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당시 뜨거운 대구 부동산 열기를 다소나마 식히려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반전해 대구 주택 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우려가 일자 권 시장이 나서서 규제를 풀어달라고 머리를 숙인 것이다.
조정 대상 지역 지정 요건은 3개월간 주택가격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초과하거나 청약 경쟁률 등이 높아 주택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된 곳이다. 하지만 이미 대구는 부동산 열기가 확연하게 꺾이며 미분양까지 나오고 있어 더는 조정지역을 묶어둘 명분이 없다는 게 권 시장의 진단이다. 2020년 아파트값 상승률 전국 1위를 기록했던 세종시 역시 집값 하락세가 새해에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청와대 제2집무실 가시화 등 여러 개발 호재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1월 16일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주택 매매가격 변동률 조사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세종의 아파트 거래가격은 전달 대비 1.74%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전세가격도 마찬가지다. 전월 대비 1.32%포인트 떨어져 수도권(0.53→0.25%), 서울(0.39→0.24%) 대비 훨씬 낙폭이 컸다.
세종 아파트값은 지난 2020년 활화산처럼 타오른 바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통계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이 42.0%로 전국 최고였다. 여당을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집값 상승에 불쏘시개가 됐다. 하지만 2021년 오름폭이 점점 줄어들더니 5월 셋째 주(-0.10%)부터 하락으로 돌아섰다. 7월에 반짝 상승하기도 했지만 같은 달 마지막 주부터 올해 둘째 주까지 25주 연속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집값 하락세가 극심한 세종과 대구만 보고 지방 부동산 전체를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에 따라 여전히 부동산 상승세를 보이는 곳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따라 상승세 보이는 곳도 적지 않아
대표적으로 강원도 속초를 들 수 있다. 1월 17일 기준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강원도 속초의 아파트값은 새해에만 0.70% 올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기간 전국 평균 상승률이 0.06%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속초는 2021년 아파트 가격이 평균 17.34% 올라 강원도 집값 상승을 이끈 곳이다.
2021년 12월 기준 아파트 평균 시세는 2억1619만원으로 1년 사이 7725만원 올라 강원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고점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강원도 전반의 매수세는 아직 죽지 않은 모습이다. 강원도 아파트 매매 시장의 온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확실히 에너지가 있다. 지난 3일 기준 강원도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2.4로 전북(102.8)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두 번째로 높았다.
▶교통 호재 속초, 전국 상승 1위 찍기도
속초 조양동 속초서희스타힐스더베이 전용면적 96㎡ 평형은 2021년 12월 6일 6억4000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비규제 지역 덕을 보고 몰린 투자 수요도 아직 견고한 편이다. 내년 8월 입주 예정인 ‘속초디오션자이’의 경우 분양가 84㎡ 기준 4억원 중반대였다. 하지만 영구 바다 조망이 보장되는 일부 평면에는 프리미엄이 5억원이나 붙어서 호가로 나와 있다. 지난해 하반기 30층 매물이 8억2162만원에 거래된 사례도 있다.
교통 호재가 속초 부동산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2021년 말 동해선의 유일한 단절 구간인 강릉~제진 철도건설사업 공사에 본격 착수했다. 속초는 강릉과 제진 사이에 있다. 속초는 2027년 춘천과 이어지는 동서고속화철도 개통 호재도 있다. 바다가 보이는 속초 고층 아파트를 축으로 세컨드하우스를 사겠다는 수요도 적잖아 여전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큰 틀에서 강원도 아파트 상승세가 주춤한 추세여서 속초 시세 랠리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강원도 매매수급동향지수는 105.3으로 전월보다 4.1포인트 하락했다. 2021년 9월(122.9) 연중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10월(109.4)부터 하락세를 탄 것이다. 여전히 수급동향지수는 기준선(100)보다 높긴 하지만 상승 에너지가 줄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월 13일 제1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부동산 조정대상지역 지정 해제 등 지역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부산의 아파트 청약 경쟁률도 주목할 만하다. ‘부산 재개발 최대어’로 꼽힌 래미안 포레스티지가 최근 5년 동안 진행된 부산지역 아파트 청약 가운데 최고 청약자 수를 기록하는 이변을 썼다. 1월 14일 진행된 래미안 포레스티지 1순위 청약에는 6만5110건의 청약통장이 접수됐다. 평균 경쟁률은 58.98 대 1로 집계됐다. 모든 주택 타입이 1순위에서 마감됐다. 전용면적 115㎡ 평형은 최고 경쟁률 347.5 대 1을 기록했다. 래미안 포레스티지는 부산 온천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통해 조성되는 단지다. 지하 6층~지상 35층 규모 아파트 36개 동, 4043가구 규모다. 이 가운데 조합원과 임대 물량을 제외한 일반 분양 물량만 2331가구에 달했다.
부산 첫 분양으로 쌍용건설이 기장군에 공급했던 ‘쌍용 더 플래티넘 오시리아’ 역시 평균 1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17가구를 모집하는 1순위에서 1401명이 몰렸다. 필명 ‘가즈하’로 활동하는 박광섭 작가는 “올해 지방 시장은 일률적인 흐름 없이 지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완전히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지방 시장을 한데 묶어 분석하는 방식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의 경우 1년 7개월 만에 실거래가 지수가 하락하면서 수도권 집값 하락이 본격 시작했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2021년 11월 공동주택 실거래가 지수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179.9로 전월 대비 0.79% 하락했다. 인천은 전월 대비 0.49% 올랐지만 경기도가 0.11% 하락해 수도권 전체의 11월 실거래가 지수도 0.27%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하락한 것은 2020년 4월 이후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경기도는 2019년 5월 이후 30개월 만의 하락세를 보였다. 서울의 아파트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거래가 뜸한 상황이다. 시세보다 싸게 나온 급매물만 거래가 되면서 실거래가 지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3월 대선을 앞두고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변화 가능성을 보고 집을 사자는 움직임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철 아파트사이클연구소장은 “서울·수도권 집값은 1~2년간 조정을 거쳐 완연한 하락장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