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전에 없던 신상품을 내놓고, 시시각각 바뀌는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디지털 혁신이나 비대면 환경 구축은 기본 중 기본이다. 재테크 시장의 큰손인 베이비부머를 위한 노력도 물론 있지만, 최근의 변신은 MZ세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사들에게 MZ세대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서다. MZ세대는 기성세대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재테크 원칙’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24시간 돌아가는 자산 시장에 익숙하고 투자기간이 짧으며 자금회전도 빠르다.
아직 자금은 많지 않지만 ‘미래 고객들’의 호흡이 매우 짧아진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의 발걸음도 민첩해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분방하던 MZ세대가 트렌디한 상품을 가입하러 왔다가 기존 금융상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은행, 증권, 보험사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파격’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년간 순위 변동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금융권 판도가 MZ세대의 쏠림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MZ세대 전용 금융상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나이 등 특별한 가입 제한이 없다면 누구나 이용해볼 만한 매력적인 상품들이다.
삼성화재 다이렉트 ‘착’은 메타버스 아바타로 브랜드 전략을 발표했다.
▶코인에 빠진 MZ세대에게
은행 예·적금이 먹힌다?
MZ세대에게 은행이란 ‘잠시 돈이 스쳐가는 곳’이다. 물론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예·적금족도 있지만, 큰 흐름에서는 돈을 묶어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장생활 2년 차인 20대 김 모 씨는 “친구들 10명 중 8명은 가상화폐 투자를 한다.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지만, 오르고 내리는 폭이 큰 코인 시장에 익숙하다보니 은행 통장에 돈을 넣어두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출 사이클도 빨라졌다. 김 씨는 “예를 들면 마이너스통장이나 신용대출을 받아서 코인에 투자하고, 200만원을 벌면 원금은 상환한 뒤 수익금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사고 싶은 걸 산다. 예금이든 대출이든 오래 묶어두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파킹통장’이 뜬다. 특히 토스뱅크는 무조건 2% 이자를 지급하는 수시입출금 통장으로 한 달 새 170만 명을 모았다. 1억원 이상 거금을 넣고 굴리는 2030도 많다. 수시로 입출금하며 주식·코인 등에 목돈을 투자하거나 ‘환율스위칭’에 활용한다. 환율스위칭은 달러 가치가 오를 때 환전해 당시 가장 값싸게 거래되는 주식 등을 매입해 환차익과 투자 이익을 동시에 추구한다.
토스 외에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 등도 파킹통장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SBI저축은행의 모바일 앱 사이다뱅크에서 입출금통장에 가입하면, 2억원까지 무조건 연 1.2% 이자를 적용해준다. OK저축은행의 OK파킹대박통장은 1.5%의 이자를 주는데, 다른 금융기관의 오픈뱅킹을 연결하면 0.2%p를 추가로 제공한다. 웰컴저축은행의 수시입출금 통장인 웰컴비대면보통예금은 3000만원까지 무조건 1.3% 금리를 준다.
신한카드 신한 플레이 방탄소년단
카카오뱅크는 미션을 완수하면 귀여운 캐릭터를 주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MZ세대를 공략했다. 카카오뱅크 ‘26주 적금’은 최초 가입금액만큼 매주 적금을 납입하면 카카오톡 캐릭터가 ‘목표 달성 캘린더’의 빈칸을 채워주고, 26주를 완납하면 0.50%p의 우대금리를 준다.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올해 분기별 신규 가입 계좌 수는 1분기 56만 건, 2분기 86만 건, 3분기 109만 건이다. 가입자를 연령별로 보면 20대와 그 이하가 34.8%, 30대 가입자가 33.5%로 2030세대가 전체의 68.3%를 차지한다.
신한은행은 MZ전용 브랜드 ‘Hey Young (헤이영)’을 만들었다. ‘Hey Young 머니박스’는 파킹통장 서비스로 최대 200만원까지 연 0.6% 이자를 제공한다. 신한 모바일뱅킹 앱 ‘쏠(Sol)’에서 서비스에 가입하고 입출금통장 중 하나를 연결해 자유롭게 잔액을 예치하고 출금할 수 있다.
하나은행은 게임처럼 재미있고 위젯으로 빠르게 입금할 수 있는 ‘하나 타이밍 적금’을 출시했다. 추가 금액을 넣는 데 게임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접목해 ‘타이밍 버튼’을 누르면 그 횟수에 비례해 입금된다. 하나은행은 특별금리 1.50%p를 주는 ‘금연성공 적금’도 있다. 예금 가입 후 정부의 ‘국가금연지원서비스’를 신청하고 금연 성공 판정 시 특별금리를 준다.
NH농협은행의 ‘NH샀다치고 적금’도 재미있다. 궁상맞은 절약이 아니라 지름신을 참는 ‘도전’을 테마로 한 것이 특징이다. 소비와 관련된 아홉 가지 아이콘을 원하는 이름과 금액으로 설정하고, 소비를 참았을 때 아이콘을 클릭하여 입금하면 해당 금액만큼 입금이 된다. 이렇게 입금한 횟수가 150회 이상일 때 1.2%p의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KB국민은행 ‘KB Smart★폰 적금’도 같은 방식으로 고객들에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신한 라이프 모델로 활동 중인 가상인간 ‘로지’
▶현재·가성비 중시… 미니보험 인기
보험은 MZ세대에게는 후순위 중 후순위 금융상품이다. 장기간 돈이 묶이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 현생(현재)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보험은 매력적이지 않다. 기성세대가 ‘중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내가 갑자기 죽으면 가족들이 보험금이라도 챙겨야지’ 하는 생각에 꼼꼼히 따져보고 종신보험이나 CI 보험을 가입했지만 MZ세대는 시큰둥하다.
세 살인 딸을 키우는 30대 초반 직장인 박 모 씨는 “내가 죽은 뒤 ‘1억원’을 받으려면 종신보험료만 매달 수십만원을 내야 하더라. 요즘 집값 뛰는 것, 화폐 가치 떨어지는 걸 생각하면 그 돈을 매달 납입하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보험료를 미국 주식과 ETF 상품에 적립식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혼인 20대들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학생 신 모 씨는 “(엄마가 들어준) 실손보험 하나 있으면 모를까, 보험은 아예 생각도 안 해본 친구들이 대다수다. 단돈 몇 만원이라도 있으면 코인에 투자하지 20년 30년씩 넣어야 하는 보험에 넣겠나”라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2030들이 최근 연금보험이나 달러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40세 이전 조기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이 늘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드는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국계 보험사 관계자는 “명확하게 데이터로 집계되진 않지만 확실히 2030 고객들의 문의가 늘었다. 연금보험을 언제부터 수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고, 자산 다변화 차원에서 달러보험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많은데,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 샀다치고 적금
발 빠른 보험사들은 MZ세대 취향에 맞춘 상품을 새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한화생명의 ‘라이프플러스 구독보험’이 대표적이다. 이마트 할인, GS25 편의점 맥주구독, 프레시지 밀키트 등 다양한 생활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보험이다. 가입 즉시 혜택을 볼 수 있고 가입 다음 달부터 1년간 매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와인뿐 아니라 영양제 구독, 다이어트용 맞춤운동, 자녀돌봄 서비스 상품도 있다. 보험료는 모두 월 2만~3만원 선이다.
삼성생명은 경증부터 중증까지 장애를 보장하는 ‘생활보장보험 탄탄하게’를 내놨다. 생보업계 최초로 재해 및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를 모두 보장한다. 업계 최초로 재해나 질병으로 인해 실직하고 해당 사유로 고용보험공단에서 구직급여를 수령한 경우 최대 91일까지 구직급여지원금을 보장(선택특약 가입 시)한다.
삼성화재는 신규 브랜드 ‘다이렉트 착’을 만들었다. 자체 DB에 고객 가입정보와 건강정보를 분석해 ‘초개인화 맞춤상품’을 추천하고, 원하는 보험금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보장내역을 조정해서 추천(보험피팅 서비스)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인다.
신한 라이프 ‘놀라운 건강보험’은 주계약 가입만으로도 3대 질병인 암, 뇌출혈 및 뇌경색, 급성심근경색증 치료비 일부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 회사의 ‘놀라운 종신보험’은 보험료 납입기간 동안 6대 질병(암·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말기신부전증·말기간질환·말기만성폐질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경우에는 사망보험금을 50% 증액해준다.
하루짜리 미니보험도 있다. NH농협손해보험은 ‘하루보장 레저보험’을 판매한다. 골프, 자전거, 등산, 생활스포츠 중에서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종류에 따라 골절진단비, 상해 수술비, 배상 책임, 홀인원 비용 등을 보장한다.
SBI저축은행 사이다뱅크
▶<오징어 게임>처럼 실적 채우기…
맞춤형 카드가 대세
카드 업계는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게임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퀘스트’를 깨면 레벨업을 하듯, 조건을 충족하는 재미와 성취감 요소를 넣은 것이 특징이다. KB국민카드의 ‘KB챌린지’ ‘KB페이 챌린지 플러스’ 카드는 매주 특정 과제를 달성하면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을 준다. 조건과 전월 실적에 따라 월 최대 4만~5만 점까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BC카드는 아예 MZ세대 직장인을 타깃으로 한 신개념 신용카드 ‘시발(始發)카드’를 선보였다. 카드명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비용을 일컫는 ‘시발비용’에서 따왔다. 1800~1만8000원 미만은 결제 건당 180원, 1만8000원 이상은 1800원 할인해준다. 사직서, 사원증 등 직장인 공감 요소를 담은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최근 잇달아 출시되고 있는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도 MZ세대 입맛에 맞는 방식이다. 복잡하게 할인되는 곳을 따질 필요 없이 그 브랜드에서 혜택을 집중해서 받고 나머지 가맹점에서는 일괄 적립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MZ세대가 많이 쓰는 간편결제, 페이 플랫폼과의 제휴도 활발하다.
롯데카드는 핀테크 플랫폼 핀크와 손잡고 ‘새로고침 카드’를 내놨다. 전월 이용금액이 40만원, 80만원, 180만원 이상이면 각각 1만, 1만5000, 2만 핀크머니를 적립해준다. 롯데카드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한 ‘카카오페이지 롯데카드’도 출시했다. 이 카드는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등 카카오페이지의 다양한 콘텐츠를 결제할 때 활용하면 사용금액의 5%를 캐시백해준다.
삼성 iD카드(iD ON, iD ALL)
PLCC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카드도 MZ세대 가입자를 모으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베이와 이마트, 대한한공, SSG, 스타벅스 배달의 민족 등 다양한 파트너사와 손을 잡았다. 올해 카드사 신규상품은 대부분 PLCC였는데, 8월 기준 현대 PLCC 카드는 총 37종으로 점유율은 88.5%나 됐다. 현대카드는 신한카드와 우리카드에 이어 월세납부 서비스를 선보였다. 타사와 달리 금액 제한이 없고 카드 실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대 고정지출인 월세를 카드로 결제할 수 있어 편리하고,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포인트나 할인 혜택을 챙길 수 있다.
신한 더모아카드는 5000원 이상 결제 금액의 1000원 미만 잔돈을 적립해주는 카드다. 이용자들은 최대한 적립 효율을 내기 위해 ‘5999원’, ‘5900원’ 등 잔돈금액을 크게 해 결제하거나 현금으로 잔돈을 미리 내고 나머지 금액을 카드로 결제하는 등 방법을 공유하며 즐거운 ‘피킹 생활’을 하고 있다.
▶국경 없는 영토싸움
‘금융 슈퍼 앱’ 승자는 누가 될까
금융사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생활금융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금융거래를 하지 않을 때에도 고객들이 자주 접속하고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앱 하나로 다 되는 ‘원앱전략’이 대세다. 이 싸움에는 은행, 보험, 카드, 증권 등 기존 금융권의 ‘경계’가 없다. 심지어 같은 계열사에서도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업계 최대 관심사는 누가 ‘금융 슈퍼 앱’이 될 것이냐다. 내년 본격 시행되는 마이데이터 사업, 그에 기반한 맞춤 자산관리 서비스, 금융권의 디지털 혁신 등 변수는 차고 넘친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내년 연말, 늦어도 내후년 초에는 ‘승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특성상 서비스 초기 고객 확보가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내년에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각 사마다 전략은 다양하다. 주요 금융사 최고기술책임자(CTO)들은 밤잠을 설치면서 선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다 되는 간편한 사용자 환경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고객들이 최대한 오래 머물고 자주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발굴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행이나 맛집 예약 등 새로운 서비스를 붙이는 곳도 있고, MZ세대가 선호하는 서비스 회사와 제휴하는 곳도 있다.
최근 핫한 암호화폐와 대체불가능토큰(NFT) 서비스는 물론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신기술도 대거 접목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들이 MZ세대를 ‘열공’하고 있는 것도 디지털 혁신과 슈퍼 앱 경쟁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24시간 비대면 간편금융’에 익숙한 MZ세대를 공략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질 것”이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