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미국 나스닥 전광판에 스페이스X의 종목코드 ‘SPCX’가 처음 등장했다. 공모가 135달러였던 주식은 150달러에 거래를 시작해 첫 날 160.95달러로 장을 마쳤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상장기업 가운데 하나였던 스페이스X가 마침내 누구나 증권계좌로 살 수 있는 상장주식이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X가 증시에 입성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오히려 그다음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오픈AI와 맞서는 앤트로픽(Anthropic), 미국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 앱트로닉(Apptronik)처럼 아직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기업들이다. “스페이스X는 놓쳤지만 다음 스페이스X는 상장 전에 살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 월가는 새로운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비상장기업을 일부 담는 상장지수펀드(ETF)다. 과거 비상장 유니콘 투자는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 고액 자산가의 영역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일반 투자자도 주식처럼 거래되는 ETF 한 주를 통해 이들의 기업가치 변화에 일부 올라탈 수 있게 됐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투자자가 앤트로픽이나 안두릴 주식을 직접 사는 것이 아니라, 이들 기업을 보유하거나 다른 투자기구를 통해 투자한 ETF를 사는 방식이다. 겉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비상장주식, 특수목적법인(SPV), 공정가치, 순자산가치(NAV), 유동성 같은 낯선 단어가 잇따라 등장한다. 다음 스페이스X를 찾는 투자자라면 기업 이름보다 먼저 이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 증시에서 대표적인 상품은 ER셰어스 프라이빗-퍼블릭 크로스오버 ETF(ERShares Private-Public Crossover ETF·XOVR)와 크레인 셰어스 퍼블릭-프라이빗 AI&테크놀로지 ETF(KraneShares Public-Private AI & Technology ETF·AGIX)다. 이름은 복잡하지만 원리는 어렵지 않다. 일반 ETF가 애플이나 엔비디아처럼 이미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만 담는다면, 이들 상품은 상장기업 사이에 아직 증시에 들어오지 않은 비상장기업을 일부 섞어놓는다. XOVR는 자산의 85% 이상을 상장기업에 투자하고 나머지 일부를 비상장기업에 배분하는 구조다.
현재 운용사는 예측시장 기업 칼시(Kalshi)와 방산기업 안두릴 등을 비상장 투자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스페이스X에도 투자했지만 주식을 ETF가 바로 들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특수목적법인(SPV)을 거친 간접 투자다. 운용보수는 연 0.75%다.
AGIX는 이름 그대로 AI에 더 집중한다. 2026년 8월 14일 기준 전체 자산의 4.85%가 비상장기업에 들어가 있다. 앤트로픽이 1.93%로 가장 크고 앱트로닉 1.14%, 초고속 데이터 전송용 반도체 기술기업 아야르랩스(Ayar Labs) 0.88%, 자율주행 기업 누로(Nuro) 0.60%,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 0.30% 등이 뒤를 잇는다. 운용보수는 연 1.00%다. 숫자만 보면 아직 비상장 기업이 ETF 전체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AGIX에 100만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하면 현재 비중대로라면 약 4만8500원 정도가 비상장기업 가치에 노출되는 셈이다. 앤트로픽 한 종목으로 좁히면 약 1만9300원 수준이다. ‘앤트로픽 ETF’라기보다 AI 상장주 포트폴리오 안에 앤트로픽을 포함한 비상장기업을 조금씩 얹어놓은 상품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여기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표현이 ‘직접 보유’다. AGIX가 앤트로픽 주식을 직접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AGIX 한 주를 산 투자자가 앤트로픽의 직접 주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실제로 보유하는 것은 AGIX라는 ETF의 주식이다. 앤트로픽 주식의 소유권은 펀드에 있다.
삼성전자 주식을 담은 ETF를 샀다고 투자자가 삼성전자 주주명부에 직접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XOVR처럼 SPV를 이용하면 거리는 한 단계 더 멀어진다. 투자자는 XOVR를 사고, XOVR는 SPV에 투자하고, 그 SPV가 스페이스X 같은 비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하는 식이다. 그래서 비상장 ETF를 볼 때는 ‘이 기업을 담았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담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ETF가 주식을 직접 가지고 있는지, SPV를 거쳤는지에 따라 의결권과 정보 접근권, 매각 조건 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장기업 투자 비중을 훨씬 높이고 싶다면 데스티니 테크100(Destiny Tech100·DXYZ) 같은 상품도 있다. 다만 DXYZ는 ETF가 아니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폐쇄형 펀드다. 2026년 3월 말 기준 포트폴리오의 경제적 노출을 보면 앤트로픽이 18.1%, 스페이스X가 14.5%로 상당히 높다. 대신 일부 투자는 여러 SPV를 거쳐 이뤄진다. 삼성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비상장주식을 편입한 상품을 볼 때 가치평가가 얼마나 투명한지, 자금이 갑자기 들어오거나 빠져나갈 때 기존 투자자의 몫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환매 과정에서 변동성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분석했다. 비상장기업의 이름이 유명할수록 오히려 상품 안쪽의 구조를 한 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비상장주식 ETF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ETF와 내용물의 거래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ETF는 주식시장 문이 열려 있는 동안 언제든 사고 팔 수 있다. 그러나 ETF 안에 들어있는 비상장주식은 그렇지 않다.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매수자를 찾을 수 없고, 경우에 따라 주식을 팔기까지 몇 주나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개방형 펀드와 ETF의 비유동성 자산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다. SEC 규정상 펀드는 비유동성 자산 비중이 순자산의 15%를 넘게 만드는 추가 투자를 원칙적으로 제한받고, 이후 시장 상황 등으로 15%를 넘어가면 별도의 보고와 유동성 관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쉽게 말해 고객은 언제든 돈을 빼갈 수 있는데 펀드 안에는 당장 현금으로 바꾸기 어려운 자산이 너무 많아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XOVR는 이 문제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월 26일 XOVR에서 하루에 6억2500만 달러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스페이스X 관련 투자 비중은 펀드 자산의 44.5%까지 치솟았다. 스페이스X 주식의 가치가 하루 만에 몇 배로 오른 것이 아니다.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쉽게 팔 수 있는 상장주식과 현금부터 줄어들면서 전체 펀드 규모가 작아졌고, 당장 팔기 어려운 스페이스X 투자분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이다. 피자 한 판에서 다른 조각을 먼저 먹어버리면 남아 있는 한 조각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는 것과 비슷하다. 반대로 돈이 갑자기 많이 들어와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엔비디아 같은 상장주식은 바로 살 수 있지만 앤트로픽이나 안두릴 주식은 원하는 순간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없다. 새로 들어온 돈이 상장주식이나 현금에 머무는 동안 기존 비상장기업 비중이 낮아질 수 있다. 모닝스타의 북미 패시브전략 리서치 책임자 브라이언 아머(Bryan Armour)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ETF들이 SEC 규정의 경계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 거래되는 ETF 속에 매일 거래할 수 없는 자산을 넣는 실험이 이제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다.
또 하나 어려운 문제는 가격이다. 애플 주식은 뉴욕 증시가 열려 있는 동안 매초 가격이 바뀌고 오후 4시가 되면 그날의 종가가 만들어진다. 앤트로픽에는 이런 가격이 없다. 비상장기업은 거래소에 상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ETF가 앤트로픽의 가치를 ‘모른다’고 표시할 수는 없다. ETF는 매일 순자산가치(NAV)를 계산해야 한다. NAV는 펀드가 가진 모든 자산의 가치를 더하고 부채를 뺀 뒤 ETF 주식 수로 나눈 값이다. 쉽게 말하면 ETF 한 주 안에 들어 있는 자산의 장부상 가치다. 문제는 비상장주식의 현재 가격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AGIX는 최근 투자 라운드에서 형성된 기업가치와 비상장주식을 사고파는 세컨더리 시장의 거래가격 등을 참고해 공정가치를 정한다. 평가위원회가 이런 자료와 비교기업, 시장 상황을 종합해 가격을 산정한 뒤 NAV에 반영한다. XOVR 역시 회계기준과 최근 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비상장 자산의 공정가치를 계산한다. 하지만 ‘공정가치’는 오늘 실제 거래소에서 누군가 그 가격에 샀다는 의미가 아니다. 추후 비상장기업이 더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를 받거나 실제 주식 거래가격이 떨어지면 기존 평가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 8월 14일 AGIX의 NAV는 46.55달러, 실제 시장 거래가격은 46.68달러로 차이가 0.13달러에 그쳤다. ETF 시장가격과 NAV 사이의 차이는 현재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비상장기업의 평가가 정확하다는 뜻까지는 아니다.
DXYZ처럼 폐쇄형 펀드로 가면 이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DXYZ의 3월 31일 기준 NAV는 주당 24.56달러였지만 5월 21일 시장가격은 61.66달러까지 올라 당시 공시 NAV보다 151% 높았다. 투자자들이 펀드 안에 들어 있는 스페이스X와 앤트로픽 같은 비상장기업에 높은 값을 매기면서 펀드 자체가 보유 자산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된 것이다. ETF는 시장가격이 NAV에서 크게 벗어나면 기관투자자의 설정·환매 거래를 통해 차이가 좁혀지는 장치가 있지만 폐쇄형 펀드는 이런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DXYZ의 관리보수도 평균 총자산 기준 연 2.5%로 XOVR나 AGIX보다 높다. 비상장기업을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대신 가격과 비용에서 다른 위험을 떠안는 구조다.
한국 투자자가 이런 상품을 고를 때는 유명한 비상장기업이 몇 개 들어 있는지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첫 번째로 볼 것은 전체 자산 가운데 비상장기업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다. AGIX처럼 비중이 5% 안팎인 ETF와 DXYZ처럼 특정 비상장기업 하나가 10%를 훌쩍 넘는 상품은 주가가 움직이는 원인이 다르다. 두 번째는 직접 주식인지 SPV를 거친 투자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비상장주식 가격을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자주 다시 평가하는지, 네 번째는 ETF 시장가격이 NAV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거나 비싸게 거래되는지를 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은 비용이다. 화면에 표시되는 운용보수 뿐 아니라 SPV나 다른 펀드를 거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더 많은 비상장기업을 담고 싶다면 선택지는 넓어지지만 대개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XOVR와 AGIX 같은 ETF는 매일 사고팔 수 있는 대신 비상장 자산 비중에 한계가 있다. DXYZ는 비상장 기업 비중을 높일 수 있지만 시장가격과 NAV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ARK 벤처펀드(ARK Venture Fund·ARKVX) 같은 인터벌 펀드(Interval Fund)는 더 다양한 비상장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대신 거래소에서 매일 매도할 수 없고 정해진 시기에만 환매가 가능하다. 결국 비상장기업 투자에서는 수익 가능성과 함께 유동성, 가격투명성, 비용 가운데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다음 스페이스X를 ETF로 사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다음 앤트로픽과 안두릴을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기업까지 돈이 어떤 길을 따라 들어가는지 아는 일이다. 투자자가 산 것은 유니콘의 이름이 아니라, 그 유니콘의 가치가 자신의 계좌까지 전달되도록 설계된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