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정상회의의 공식 의제는 ‘디지털 무역’과 ‘데이터 이동’이다. AI와 각국의 데이터 주권 등 엄중한 주제들로 가득 찬 가운데 틱톡의 미국 내 분리안이 하나의 비공식 의제로 자리잡고 있다. 대화 테이블에 틱톡의 이름이 회의 문서에 적히진 않지만, 미·중 정상 간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서 이 앱의 미국 내 분리안과 알고리즘 통제권이 논의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한 나라의 외교 이벤트에서 특정 앱이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틱톡이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증거다.
실제 미국에서 틱톡의 무게감은 이제 단순한 숏폼 앱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월간 활성 이용자 1억 7000만 명, 미국 인구의 40%가 매일 틱톡을 켜는 셈이다. 10~29세 연령층의 절반 이상이 이 플랫폼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트렌드를 따라잡고, 정치적 의견을 공유한다. 2024년 대선 기간 중 미국 정치 캠프의 80% 이상이 틱톡을 홍보 채널로 활용했다는 조사도 있다. 브랜드는 이곳에서 신제품을 테스트하고, 중소상인은 10달러 광고로 수천 명의 고객에게 노출된다. 틱톡의 알고리즘은 ‘밈’을 넘어 경제와 여론을 동시에 움직이는 엔진이 됐다. 이제 그 엔진은 외교와 패권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틱톡을 둘러싼 갈등은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불붙었다. 그는 틱톡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며, 미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으면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같은 해 중국 정부는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을 수출통제 품목으로 지정하며 방어전에 나섰다. 이 한 문장이 거래의 판을 바꿨다. 틱톡의 알고리즘이 국경을 넘으려면 중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잠시 기조를 완화했지만, 2024년 의회는 ‘국가안보 기반 디지털 통제법(Protecting Americans from Foreign Adversary Controlled Applications Act, PAFACA)’을 통과시켰다. 주요 취지는 외국 정부가 통제하거나 지배하는 앱은 미국 내에서 분리(Divestiture) 하지 않으면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2025년 1월, 연방대법원은 이 법을 “국가안보 목적의 내용 중립적 조치”라며 법의 합헌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회색지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세 차례 행정명령으로 집행을 유예했고, 최종 시한은 2025년 12월 16일로 설정됐다. 법은 살아 있고, 협상은 이어지고 있다.
틱톡 미국 내 분리 논의의 핵심은 소유가 아니라 통제다. 미국은 데이터를 자국 내에 두고, 추천 알고리즘의 운영·감사를 미국 내 법인이 담당하기를 원한다. 미국 이용자 데이터는 오라클 클라우드에 격리 저장되고, 미국 내 인력이 접근을 통제한다. 추천 시스템의 코드베이스 역시 ‘미국판 버전’으로 분리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반면 중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알고리즘은 국가 기술 자산이며, 해외로의 수출에는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코드의 완전한 매각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가능한 타협은 ‘미국 내 복제·운영권’ 정도다. 즉, 틱톡의 미국 버전은 같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지만, 미국 내에서 독립적으로 학습·업데이트되는 구조다. 이 절충이 실제로 작동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 의회는 여전히 “알고리즘의 임대는 주권의 위임”이라고 보고 있다. 이 논쟁의 본질은 결국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업데이트 버튼을 누르는 손이 누구인가.”
틱톡을 둘러싼 백악관의 최근 행보는 ‘차단’보다 ‘재설계’에 무게를 둔 것으로 읽힌다. 법은 금지까지 허용하지만, 행정부는 집행을 몇 차례 유예하며 시계를 조절해 분리·운영안을 다듬는 쪽으로 여지를 남겨왔다. 주요 외신들은 이를 “위험을 관리하면서도 협상 지렛대를 유지하려는 선택”으로 해석한다. 금지 버튼을 누르는 대신, 미국 내 법인 구조와 데이터 경계, 알고리즘 운영권을 재배치하는 절충이 우선순위로 떠올랐다는 관측이다.
이 접근은 2026년 중간선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틱톡이 젊은 세대의 정보 소비·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상황에서, 전면 금지는 정치적 반발과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트럼프는 대선 국면에서 틱톡을 직접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에도 “사용자 접점을 단절하기보다 관리 가능한 형태로 남겨두자”는 메시지를 간헐적으로 내왔다.
‘트럼프 미디어(TMTG)’의 존재도 변수로 거론된다.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자체 배급망이 마련돼 있지만, 외연 확장에는 거대 플랫폼의 분배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이 캠프 안팎에서 공유돼 온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내 채널은 강화하고, 외부 플랫폼은 조건부로 활용한다”는 혼합 전략이 등장했다는 평가다. 틱톡을 완전히 배제하기보다, 미국 내 통제 수준을 높여 쓰임새를 남기는 구상이 여론·정책의 접점에 자리한 모습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책 설계의 핵심은 세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 지배구조의 국적화다. 미국 내 신설 법인과 미국인 다수 이사회가 거론되며, 모회사 지분·권한은 제한하는 방향이 논의돼 왔다. 둘째, 데이터의 경계다. 저장·처리·접근을 미국 내로 묶고 외부 감사와 로그 관리로 실효성을 높이려는 구상이다. 셋째, 알고리즘 운영권이다. 코드의 복제·분리, 업데이트 승인권의 현지화, 오라클 등 제3자 검증 모델 등이 수차례 재부상했다. 다만 알고리즘 수출허가와 같은 역외 규제가 남아 있어, 최종 형태는 외교·통상 협의와 병행해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정치자금과 정책의 상호작용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진다.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ByteDance)에 투자한 미국 헤지펀드 서스퀘하나 인터내셔널(Susquehanna International Group, SIG)의 핵심 인물인 제프 야스(Jeff Yass)가 공화당에 수천만달러를 기부한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야스와 SIG가 바이트댄스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로 밝혀지자 일부에선 “투자가 정치 후원으로 이어지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논의되는 ‘미국판 틱톡’은 단순한 법인 분리가 아니다. 첫째 지배구조가 달라진다. 미국 내 신설법인에 미국인 다수가 이사회로 참여하고, 중국 본사는 소수 지분만 보유하는 형태가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둘째, 데이터 경계가 세워진다. 미국 이용자 정보는 국경을 넘지 않으며, 오라클을 포함한 외부 감사인이 접근 로그를 감시한다. 셋째, 추천 알고리즘의 운영권이 미국으로 이양된다. 코드의 소유권은 여전히 중국에 있지만, 학습·업데이트는 미국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분리된다.
넷째, 서비스 품질 문제다. 글로벌 버전과 분리되면 추천의 정밀도와 콘텐츠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다. 알고리즘의 ‘진화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변수다. 분리안이 실현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디지털 주권을 지켜냈다”는 성과를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면, 12월 이후 틱톡은 미국 내에서 업데이트 중단이나 다운로드 제한 같은 현실적 제재를 맞을 수도 있다. 지금 이 모든 과정은 ‘금지’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분리의 설계가 곧 여론과 데이터 주권의 설계가 된 셈이다.
틱톡의 운명은 과거의 SNS플랫폼 인수전과 겹쳐진다. 2006년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했을 때, 세상은 ‘검색’의 제국이 ‘영상’의 제국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2012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사들인 건 모바일 전환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왓츠앱, 링크드인, 트위터까지 플랫폼 인수는 데이터와 광고를 장악하는 전쟁이 됐다. 2017년 바이트댄스가 10억달러 안팎에 뮤지컬.ly를 인수하며 ‘글로벌 틱톡’을 출범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경을 넘은 인수가 정치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 첫 사례였다. 이제 인수전의 주체는 달라졌다. 한때는 창업가와 벤처가 시장을 움직였지만, 지금은 국가와 재벌, 정치인이 등장하는 모습이다. 일론 머스크는 2022년 440억달러에 트위터를 인수해 정책과 표현의 경계를 실험했고, 트럼프는 자신의 미디어를 상장시켜 정치적 여론 플랫폼을 구축했다. 메타·구글·바이트댄스·트위터·트럼프미디어까지, 모두가 ‘데이터의 영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틱톡 논쟁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 있다. 이번엔 기업 간 인수가 아니라 국가가 플랫폼의 소유권을 재설계하는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법과 행정으로 틱톡을 쪼개려 하고, 중국은 기술과 규제로 지키려 한다. 한쪽은 분리를, 다른 한쪽은 통제를 통해 자국의 이해를 관철한다. 이 싸움이 끝나면, 세계의 플랫폼 기업들은 새로운 규제 시대를 맞게 된다. M&A 계약서에는 이제 가격 대신 ‘데이터 국적’ ‘코드 접근권’ ‘업데이트 승인 구조’ 같은 항목이 가장 먼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의 경쟁력은 이용자 수가 아니라, 규제 가능한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가로 평가받게 된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