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골프의 계절이다. 훈훈한 봄바람이 가득 찬 골프장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갖춰 입은 골퍼들이 드넓은 페어웨이에서 연신 굿샷을 날린다. 하늘을 뚫을 듯 힘차게 날아가는 티샷을 하는 것만큼 짜릿한 순간도 없다. 하지만 뭔가 빠진 느낌이다. 스윙과 스코어는 있는데 ‘골프’라는 운동의 기본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라운드를 하는 도중 세계 곳곳의 골프장을 다녀봤다는 한 동반자가 “최근 중국 골프장을 가보니까 한국이랑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는 말을 던졌다.
뭐가 닮았을까. 이 동반자는 “먼저 카트를 타고 전혀 걷지 않는다. 그리고 골퍼가 스스로 벙커 정리와 디봇을 메우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린에서 캐디가 볼을 목표 방향으로 놔줄 때까지 다들 서서 기다리더라”라고 설명했다. 압권은 한 가지 더 있다. 중국에도 최근 ‘일파만파’ 유행이 불고 있다는 것. 첫 홀은 몸 풀기로 나쁜 스코어를 방지하기 위해 4명 모두 파로 스코어를 적는 것이 중국에서도 점점 번지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웃고 넘길 수 있는 말이지만 생각할수록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골프를 오래 친 사람들에게 ‘골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교과서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신사의 운동이고 스스로 다양한 규칙을 숙지하고 지키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고 매너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많은 골퍼들은 ‘스윙’과 ‘스코어’는 있지만 ‘골프의 정신’은 없는 모습이다. ‘반쪽짜리 골퍼’라고 말하는 이유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수의 한국 골퍼들은 이른바 ‘양반형’이다. 그저 캐디가 모는 카트에 타고 티박스에서 티샷을 하고 다시 카트에 몸을 싣고 다음 샷을 할 장소로 이동한다. 물론 ‘카트’라는 문화는 골프장들이 짧은 시간이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정착시킨 문화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골퍼들이 카트에 타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프는 운동 같지가 않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바로 이 ‘카트’때문이다. 실제로 18홀을 걷는다면 7~8km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 골퍼들이 걷는 거리는 1km가 채 되지 않는다. 샷을 하고 카트타고 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정도다.
게다가 캐디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골퍼들도 너무 많다. 홀까지 거리를 재는 거리측정기는 잘 사용하지도 않고 캐디가 불러주는 대로만 친다. 또 페어웨이 한 가운데 서서 “언니 얼마나 남았어? 몇 번 아이언 갖고와”라고 외치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캐디를 ‘조력자’가 아닌 ‘하인’ 부리듯 하는 것이다.
‘반쪽짜리 양반 골퍼’의 심각성은 벙커와 페어웨이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주말 골퍼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바로 ‘벙커에 있는 발자국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 쳐야 한다. 문제는 벙커에 발자국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벙커샷을 한 뒤 자신의 발자국과 볼 자국을 깨끗하게 정리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골퍼들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타인의 발자국에 자신의 볼이 들어가 있다고 불평할 자격이 있을까. 디봇에 빠지는 것도 똑같다. 디봇을 냈다면 날아간 잔디를 가져와 메워 주는 것이 다음 사람을 위한 매너이자 기본이다.
더 심각한 부분은 그린에서다. 한국에서 캐디의 필수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볼을 잘 놓아주는 것이다. ‘경사를 잘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치기 좋게 볼을 정교하게 놓아주는 것’이라니 그럼 골퍼는 그냥 볼이 놓인 대로 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스스로 퍼팅 라이를 살피는 능력이 없는 ‘고수’들도 많다.
살짝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본 골퍼들과 비교해 봐도 한국 골퍼들의 모습은 차이가 많이 난다.
몇 년 전 일본에서의 첫 라운드 기억은 충격이었다. 대기업 사장과 연세가 있는 분, 여자 골퍼까지 벙커샷을 하면 정성스럽게 흔적을 없애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그린에서 캐디가 쳐야 할 방향으로 볼을 열심히 놓는 모습도 없다. 캐디는 그저 라이에 대한 조언을 해줄 뿐 골퍼들이 열심히 라이를 보고 경사를 읽은 뒤 퍼팅을 한다. ‘스코어 경쟁’을 하기보다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라고 한다. 신사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벙커에 남아 있는 자신의 발자국은 스스로 없애고 벌타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예의’이자 ‘교양’이다.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라운드를 하며 벙커를 정리하고 날아간 디봇을 다시 가져와 메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하고 조금 뛰어가면 된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시쳇말로 ‘체면 구기는 일’도 아니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원래 그렇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한국에서 점차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좋은 스윙을 자랑하고 멀리 보내는 장타를 과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간이 왔다. 자신의 스코어에 냉정하고 빠르게 걸으면서 앞, 뒤팀과의 흐름을 맞추고 머리를 쓰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최상의 퍼팅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2015년 골프 코스에서는 ‘신사’들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