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연말연시 술자리가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가벼워진 지갑 그리고 숙취와 쓰린 속이다. 원치 않는 ‘오토 에이지(Age) 시스템’으로 한 살 많아진 나이를 위안으로 삼기에는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그렇다고 섣불리 금주선언을 하기 힘든 것이 비즈니스맨의 숙명이 아니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와중에 건강까지 챙겨야 하는 만큼 술자리에서는 저마다 음주에 관해 여러 가지 검증되지 않은 ‘썰’들이 난무 한다. ‘안주를 많이 먹으면 술이 덜 취한다’ ‘위장약을 먹고 술을 마시면 좋다’ ‘토하고 나면 술이 깬다’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들은 맞는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모두 사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시고 즐기고 나누는 술인 만큼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의외로 음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흔히 떠도는 술에 관한 오해를 짚어봤다.
아리송했던 술에 관한 오해와 진실술 마실 때 안주를 많이 먹으면 덜 취한다?No!
“강술 마시면 속 버린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조언이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많이 먹으면 덜 취한다는 속설은 비교적 ‘상식화’되어 있다. 하지만 술과 함께 안주를 곁들일 경우 술의 흡수 속도가 떨어져 빨리 취하지 않을 뿐, 취하는 정도는 섭취한 알코올의 양과 정확히 비례한다. 안주를 곁들이면 술 취하는 속도를 조금 늦춰준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러나 술이 덜 취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 만큼 안주를 믿고 하는 과음은 금물이다. 단, 음주 전에는 가벼운 식사로 속을 채워주는 것이 좋다. 위 속의 음식물은 알코올이 위에서 간으로 직접 가는 것을 막고 장을 통해 알코올의 농도를 낮춘 후 간에 전달되도록 돕는다.
위장약 먹고 술 마시면 술이 강해진다?No!!
음주 전 위장약을 먹으면 다음날 속이 편안하고 숙취가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돈다. 장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알코올 분해를 돕는다는 주장인 듯하다. 위장약과 알코올은 모두 간에서 분해된다. 두 가지를 시간차를 두고 섭취할 경우 간은 술과 약 두 가지를 분해하는 효소를 한꺼번에 생성해야 하므로 과부하가 걸린다. 특히 제산제 계통의 위장약은 위를 보호할지 모르지만, 위벽에 있는 알코올 분해효소의 활동까지 막기 때문에 제산제를 먹고 술을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20%정도로 높아져 위험하다.
일단 한 번 토하면 술이 깬다? No!
종종 술자리에서 남자의 자존심이 발동되면 대결이 시작된다.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일부러 구토를 한 후 다시 대결해 승리했다는 미담 아닌 미담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코올은 위에서 10% 정도만 흡수된 뒤 소장에서 90% 정도 흡수된다. 구토를 하면 위에서 흡수되지 않고 남아 있던 알코올이 음식물과 함께 밖으로 배출되므로 술이 깨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미비하고 소화기에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식도가 찢어져 피가 나기도 하고 위산이 함께 역류하므로 식도염에 걸릴 수 있으므로 무식한 대결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음주 후 얼굴이 붉어지면 건강한 간의 소유자? No!
술자리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 간의 분해 작용이 활발하다는 증거이므로 건강한 것이라는 주장과 간 건강의 적신호라는 측이 항상 논란이다. 음주 후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돼 있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성이 강하고 암 유발물질로도 알려져 있는 아세트알데히드는 분해되지 않을 경우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이때 독성물질에 의해 혈관이 확장되는데 이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지는 것이다.
음주 전후 우유를 마시면 위벽이 보호된다? No!
우유는 약알칼리성으로 위산을 희석하거나 중화시킬 수 있어 일시적으로 속 쓰림 증세가 좋아질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위산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도리어 위염을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음주 후 커피를 마시면 술이 빨리 깬다? No!
음주 후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이 가진 각성 효과로 술이 빨리 깬다는 꽤 그럴 듯한 설도 있다. 하지만 음주 후 커피를 마시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뇌의 기능을 약화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감정을 이완시켜 안전감, 자기만족감 및 기억력 저하, 체력의 저하 등 복잡한 생리작용을 할 뿐 술을 빨리 깨게 하지는 않는다.
술 먹을 때 탄산수를 섞어 마시면 좋다? No!
젊은 여성들 사이에 열풍처럼 몰아친 탄산수는 술자리라고 피해 가지 않았다. 술 마실 때 탄산수를 섞어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루머도 있다. 하지만 소주 등을 탄산수로 희석하면 입의 감촉이 좋아지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 마시기는 쉽지만 희석된 탄산수는 위 속의 염산과 작용, 탄산가스가 발생하면서 위의 점막을 자극하여 위산 분비를 촉진시킨다. 즉 위산과다가 일어나게 된다.
매일 하는 음주 간헐적 폭음보다 해롭다? Yes!
양쪽 다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매한가지. 다만 대한간학회 진료 지침에는 간헐적으로 술을 마시는 경우보다 매일 마시는 경우에 알코올성 간질환 발생이 증가한다고 한다. 물론 폭음하는 습관도 알코올성 간질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술자리 이후 체내 알코올이 분해되는 3일 정도는 휴지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술의 종류보다는 마신 알코올의 총량이 알코올성 간질환과의 관련성이 더 높고 흡연과 비만이 알코올로 유발된 간 손상의 중증도를 증가시킨다고 한다. 순수 알코올 양을 기준으로 남성은 하루 40g(소주 약 반 병 내외), 여성은 하루 20g(소주 두 잔 정도) 이상 음주가 간 손상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술을 마시면 열이 오르지만 체온은 내려간다? Yes!
알코올은 일시적으로 몸이 훈훈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혈관을 확장시켜 열 손실이 많아지고, 뇌의 체온조절 중추를 억압해 오히려 체온이 떨어지게 된다. 따뜻해진 느낌만으로 겉옷을 벗는다면 다음날 감기에 걸리기 쉽다.
간 이상신호 자가진단
1. 피로, 전신 쇠약을 이전보다 심하게 느낀다.
2. 원인 모를 구토, 식욕 감퇴가 있다.
3. 섭취하는 음식량에 비해 체중 감소가 심하다.
4. 우상복부가 불쾌하거나 통증을 느낀다
5. 눈 흰자위나 피부가 노랗게 변한다.
6. 오줌 색이 진해지거나 빨갛다.
7. 자주 잇몸 출혈과 코피가 나며 멍이 생긴다.
8. 배에 복수가 차서 배가 불러 오른다.
9. 피를 토하거나 까맣고 끈적거리는 대변을 본다.
[박지훈 기자 도움 최원혁 건국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김형준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한국건강관리협회 충북·세종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