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이 한창입니다.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웬만한 산이나 계곡이나 들판에 흰 눈이 쌓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월이 오기 전에 한두 번쯤 눈이 더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도 있고요. 만일 카메라를 갖고 계신다면,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멋진 설경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함박눈이 흩날리는 장면이나 온 천지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는 풍경은 겨울이 아니면 찍을 수 없는 매력적인 사진의 소재 가운데 하나입니다.
눈 풍경은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눈은 불가사의한 아름다움과 함께 감정을 순화시키는 시정(詩情)과 환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사람들의 가슴을 애틋하게 만드는 것은, 그 흰 색깔만큼 순수한 눈이 아직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은 청소년기의 어느 순간 눈만큼 시린 추억의 발자국을 사람들의 가슴에 깊숙하게 남겨 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복수 (SPC서울사진클럽 CEO과정 제5기·(주)씨에스테스토 대표)
권은희 (SPC서울사진클럽 CEO과정 제5기·새누리당 국회의원)
첫눈을 기다릴 때의 설렘, 머리와 어깨에 눈을 맞으며 걷는 즐거움, 손바닥에 떨어진 눈이 빠르게 녹아내리는 것을 볼 때의 슬픔, 대지를 덮고 지상의 모든 생명을 길고 어두운 잠에 빠져들게 만드는 포근함,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역동적인 힘…, 눈에 관한 얼마나 많은 인상들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팔랑팔랑 내리는 싸락눈, 비와 함께 흩날리는 진눈깨비,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잎을 떨구고 난 나뭇가지들에 핀 하얀 눈꽃, 흰 눈에 뒤덮인 눈부신 설원, 이른 아침에 내리는 서설, 응달에 남아 있는 잔설…, 이름만 들어도 눈앞에 정경이 떠오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감동적인 풍경사진은 빛이 부족하거나 궂은 날씨 같은 좋지 않은 촬영환경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사진들이 그런 상태에서 찍혔습니다. 거센 바람이 일으킨 눈보라가 하늘을 가려버릴 기세로 가득 피어올랐습니다. 스케일로 하면 마치 만년설에 덮인 히말라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강원도의 목장에서 길 옆에 무릎 높이나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게 쌓아 놓은 눈 무더기에 바짝 다가가서 위쪽으로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들입니다. 셔터를 누르는 타이밍과 카메라의 위치, 각도, 배경의 선택과 노출 등을 잘 선택하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누구나 그렇게 찍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사진이 반드시 ‘진실’을 찍는 것은 아닙니다. 외계에서 날아온 거대한 물체처럼 보이는 정체 모를 이 조형물(사진 권은희)도 사실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얇은 얼음조각을 한손으로 들고 찍은 것입니다. 뒤쪽에 밝은 태양을 넣고 찍었기 때문에, 마치 이 물체 자체가 안쪽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사진을 볼까요? 흰 눈으로 덮인 설원에 작은 오두막 한 채, 그 옆에 앙상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사진 천옥루). 그리고 위쪽으로는 흰 구름과 짙푸른 회색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뿐이지만, 설원의 겨울다운 정일함과 무구함, 그리고 전체적으로 기분 좋은 안정감과 조화의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쓸데없는 공간이나 빈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화면을 구성하는 소재들이 적절한 균형을 가지고 제자리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 구도, 말하자면 디자인이 잘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사진을 찍은 것은 모두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하게 된 분들입니다. 누구나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사진을 찍고 싶고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주어져 있지만, 실제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지 않는다면 생각만으로는 어떤 사진도 찍을 수 없습니다. 안락한 일상을 빠져나와 추위와 눈보라에 맞설 용기가 있으시다면, 그리고 몇 가지 사항에만 유념하신다면 이처럼 멋진 겨울 풍경사진 한 장쯤 손에 넣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겨울에 야외에서 사진을 촬영할 때 기억해 두어야 할 것들을 몇 가지 적겠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의 야외촬영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먼저 자연에 대한 존중과 순응하는 태도, 그리고 추위와 안전에 대비한 체력과 옷차림입니다.
방한모(바라클라바), 보온용 장갑과 방수 등산화는 필수입니다. 마른 수건과 휴대용 손난로, 발목 토시(스패츠), 아이젠은 가지고 가면 유용하게 쓰입니다.
카메라 가방에는 꼭 필요한 것만 챙겨 넣습니다.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서 작은 카메라라도 예비로 한 대 더 준비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렌즈는 표준 줌렌즈(24~70mm)와 망원 줌렌즈(70~200mm) 두 개면 충분하고, 무게가 부담스럽다면 삼각대는 두고 가셔도 됩니다. 해 뜰 무렵이나 일몰 때 찍는 것이 아니라면 ISO로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셔터속도로 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맑게 갠 날에는 원편광(C-PL) 필터가 있으면 좋습니다. 또 영하의 기온에서는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완전 충전된 여분의 배터리를 따뜻한 주머니에 넣어서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카메라의 배터리가 들어 있는 손잡이 부분에 손난로를 감싸서 보온하면 전지를 보다 오래 쓸 수 있습니다.
나중 일을 생각해서 RAW파일로 찍거나, ±1스톱 정도로 단계 노출로 설정해서 찍도록 권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나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선명하게 나오게 찍으려면 배경과 셔터속도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어두운 배경으로 해서 셔터속도를 1/30초를 기준으로 몇 단계 변화를 주어서 찍어봅니다.
삼각대를 쓰지 않을 경우, 카메라 흔들림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때 플래시(daylight sync)를 사용하면 의외로 박력 있는 눈 사진을 찍을 수 있답니다.
천옥주 (SPC서울사진클럽 CEO과정 제3기·그래픽신화 대표)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느끼고 깊이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을 감동이라고 하지요. 좋은 사진에는 그런 감동이 찍혀 있습니다. 카메라나 렌즈를 다루고 촬영기법을 익혀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사진가가 그 장면에서 어떤 감동을 느꼈는가가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셔터를 눌렀다면, 다른 사람은 그 사진에 찍혀 있는 사물만 보게 되겠지요. 눈부신 은빛 설원, 석양으로 물든 해질 녘의 하늘, 바다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이의 맑고 커다란 눈망울…. 단지 아름답고 인상적인 경험만이 아니라, 거기에 스스로가 공명을 일으키는 마음의 상태가돼야 합니다.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감동적인 사진은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김승곤 교수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온 뒤 일본대와 쓰쿠바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이명동 사진상, 일본사진협회 국제상 등을 수상했다. 전 일본사진연맹 심사위원,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장, 서울사진축제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사진에 있어서의 몇 가지 논점> <한국 현대 사진의 장면> <잔인한 사진의 정치학> 등 200여 편의 논문을 썼다. 현재 사진평론가로서 국립순천대 사진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