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르도의 샤또 퐁테카네(Ch. Pontet-Canet) 2009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다. 세계적 고수가 ‘완벽한’ 와인임을 인증한 것. 2009 빈티지 중 파커가 100점을 준 보르도 와인은 페트뤼스와 샤또 라뚜르, 샤또 오브리옹 등 19개에 불과하다. 샤또 무통로칠드나 샤또 마고 등 특급 그랑크뤼도 받지 못한 점수를 5등급 그랑크뤼가 받았으니 엄청난 성과를 이룬 셈이다.
샤또 퐁테카네의 멜라니 테세롱 오너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그는 “샤또 퐁테카네는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식물의 꽃 등을 발효해 포도밭에 뿌린다는 것. 그것도 밭이나 포도 품종에 따라 다르게 뿌려 탄닌이 훨씬 복합적인 와인을 생산한다고 했다.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쓰기에 이곳 포도는 서서히 익는다. 농약을 치지 않기에 가지치기도 다른 곳과 다르게 한다. 가지를 둥그렇게 엮어 바람이 잘 통하게 만든 것. 자연히 포도 알이 적게 달려 생산량이 줄어들지만 그만큼 각각의 알갱이에 더 많은 양분이 간다고 했다. 아울러 필요 이상으로 많이 달린 포도를 속아내는 그린 하베스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특히 퐁테카네는 2007년부터 포도나무를 보호하려고 트랙터 대신 말로 경작하고 있다. 트랙터를 쓰면 압력 때문에 뿌리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이나 말을 이용한 경작으로 비용이 더 들어가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이에 대해 멜라니 테세롱 오너는 “화학비료가 생각보다 비싸다. 또 이전부터 사람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었기에 새 농법으로 비용이 크게 더 들어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기농으로 인지도가 높아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밝혔다.
포도 수확은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에 걸쳐 일일이 손으로 한다고 했다. 최고의 포도를 얻기 위해 일일이 맛을 보고 탄닌 등이 적절하지를 판단해 수확한다는 것.
수확한 포도는 샤또 2층으로 옮겨 선별한 뒤 좋은 알갱이만 1층으로 보내 발효한다. 효모는 밭에서 자연 상태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이후 16~18개월 동안 숙성시키는데 절반은 새 프렌치 오크통을 이용한다.
빈티지 특성 살린 와인들
이렇게 나온 와인의 맛은 어떨까.
먼저 2001 빈티지부터 테스팅을 했다. 잔을 드니 산초와 미네랄의 아로마가 코를 찔러왔다. 한 모금 머금자 강한 탄닌과 산도가 전해졌고 여운도 길게 남았다. 잔에 따른 지 한 시간여 지난 뒤 다시 마시니 농축된 과일향이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하게 다가왔다.
멜라니 테세롱 오너는 “수요는 많지 않으나 ‘기밀의 빈티지’다”라고 소개했다. 최고의 빈티지로 꼽힌 2000 빈티지에 비해 인기는 떨어지지만 실제 그 이상의 매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적용한 2008 빈티지는 과일과 향신료의 아로마가 강렬하게 코를 찔러왔다. 그런데 입안에 머금었을 때 첫 느낌은 강렬했지만 이어지는 느낌은 부드럽게 녹아든 탄닌이 농축된 과일의 향과 조화를 이루며 우아하게 다가왔다. 마고 와인의 느낌이랄까.
이어 파커가 100점 만점을 준 2009 빈티지 차례가 왔다.
단순한 향신료가 아닌 꽃과 과일의 향이 응축된 특이한 아로마가 기분을 살려줬다. 한 모금 마시니 강렬한 뽀약 와인의 특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짙은 산도에 섞여 나오는 과일의 향미가 신선함을 주면서도 잘 녹아든 탄닌이 입안 곳곳을 자극했고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포도가 가장 잘 익었을 때 수확
각 빈티지 모두 5등급 이상의 품질을 보여줬는데 빈티지마다 독특함이 있었다. 이것이 품질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멜라니 떼세롱 오너는 “우리는 퐁테카네의 특성을 유지하려고 지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도가 최적으로 익었을 때 수확해 그 빈티지의 독특성을 살린다. 빈티지의 독특성과 퐁테카네의 개성이 조화를 이루는 와인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10년에서 15년 기다려 마시라고 했으나 샤또 퐁테카네에선 지금 마셔도 좋고 10년이나 15년 후 마셔도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언제 마시는 게 좋을까.
2000, 2001 빈티지조차 아직도 덜 숙성된 느낌이며 열릴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3~4시간 전 오픈하는 게 좋다는 것. 보관은 상황에 따라 5년에서 25년까지 할 수 있지만 마시는 시기는 취향에 따라 다르다고. 개인적으로는 강렬한 느낌의 젊은 와인을 즐긴다고 했다. 그동안 유럽이나 미국 마케팅에 주력했으나 세계가 변하는 것을 감안해 아시아 이머징 마켓에 주력하려고 홍콩에 7개월째 머물고 있다는 그는 와인뿐 아니라 퐁테카네의 철학을 공유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품질 향상에 주력해왔다. 이제 품질은 충분하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연결해 퐁테카네의 철학을 공유하고자 한다. 작지만 깊은 이야기, 서로의 문화 이야기, 서로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작은 시음회를 계속할 것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와인 테스팅을 계속하겠다는 그에게 최고 와인을 고집하는 장인의 자세가 엿보였다.
디자인을 전공한 멜라니 테세롱은 2004년 와이너리 사업에 합류해 추수를 하는 것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TV광고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었는데 2003년에 삼촌이 가문의 비즈니스에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촌과 일을 하게 됐다. 계약서에 사인한 뒤에야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 그 전까지는 와인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는 카비네 소비뇽이 좋은 와인 품종이란 것을 알았으나 뽀약이라는 동네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와인의 산지인지조차도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삼촌은 1등급보다도 좋은 와인을 만들어 보자고 했는데 그 결실이 나온 것이다.
멜라니 테세롱은 와인 학교에서 좋은 와인 만드는 법은 물론이고 포도 경작 등을 배웠고 유명 와인산지를 찾아다니며 포도 경작이나 수확, 와인 제조법 등을 배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