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시원한 초원과 화창한 날씨. 말 등에 몸을 맡겨 달려 나가고 싶은 기분이다. 여기에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공놀이’만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말 위에서 느끼는 속도감과 공놀이의 매력을 더한 스포츠, 그것이 바로 폴로다.
지난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제주도 한국 폴로 컨트리클럽(KPCC)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스포츠이벤트가 열렸다. ‘2012 로얄 살루트 폴로컵’ 대회다.
국내에 생소한 폴로는 기원전 600년 무렵 페르시아의 ‘쇼간(Chaughan)’에서 비롯됐다. 쇼간은 지금의 폴로처럼 스틱으로 공을 치는 경기다. 페르시아에서 동쪽으로 전파된 쇼간은 티베트어로 공을 뜻하는 ‘풀루(Pulu)’에서 이름을 따 ‘폴로’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됐다.
기원은 페르시아와 티베트 지역이지만 폴로를 전 세계에 전파한 국가는 영국이다. 폴로는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인도에 전파됐는데, 19세기 무렵 인도를 식민통치하던 영국 군인들이 폴로의 규칙 및 경기 용구를 정비한 뒤 유럽에 전파했다.
이후 폴로는 영국을 거쳐 미국, 아르헨티나 등 과거 영국이 영향력을 발휘했던 국가로 퍼지면서 세계 곳곳에 알려졌다. 1886년 미국과 영국 국가대표팀이 세계 최초로 국제 폴로 경기를 가지면서 폴로 강국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후 두각을 드러낸 국가는 아르헨티나다. 1928년 열린 제1회 코파 데 라스 아메리카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폴로가 정식 종목에서 탈락할 때까지 다섯 차례의 대회에서 영국과 함께 금메달 2개를 차지하며 세계 무대를 휩쓸었다.
폴로가 아르헨티나의 국기(國技)가 됐을 정도로 지금도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카를로스 알베르토 아르가냐라스 주한 아르헨티나가 이날 대회 관람을 위해 제주도를 찾았을 정도로 폴로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애정은 깊었다.
이날 국내 유일의 국제 규격 폴로 경기장인 KPCC에서 경기를 펼친 국내 폴로 동호인들과 외국 프로선수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는 동시에 이곳을 찾은 100여명의 관중에게 폴로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제임스 맥스웰 로얄 살루트 아시아 디렉터는 “외국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경기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2일 중국 상하이에서도 로얄 살루트가 주최한 폴로 대회가 열렸지만 맥스웰 이사는 중국 대신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한국에 강한 열정을 보였다. 제주도를 찾은 것만 벌써 5번이 넘는다는 맥스웰 이사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에 폴로의 매력을 좀 더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KPCC 폴로 경기장의 규모는 약 5만4000㎡로 축구장의 6배 정도 되는 크기다. 한 팀의 인원은 4명이다. 여기에 심판 한 명을 더해 모두 9명이 말을 타고 푸른 잔디밭을 누빈다. 경기를 할 때 말이 달리는 속도는 최고 시속 60㎞. 덕분에 선수 수가 적어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펼쳐진다.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8명의 선수와 말 8마리가 동시에 공을 향해 달려 나가는 순간 지축이 뒤흔들리면서 ‘다가닥, 다가닥’ 하는 힘찬 말발굽 소리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폴로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날 선수들은 왼손으로는 폴로 전용 말인 ‘폴로 포니(Polo Pony)’의 고삐를 잡은 채 능숙한 승마 기술을, 오른손으로는 폴로 공을 치는데 쓰이는 ‘맬릿(Mallet)’을 쥐고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로얄팀 선수들과 흰색 유니폼의 살루트팀 선수들이 말 위에서 공을 향해 맬릿을 휘두르며 공을 칠 때마다 관람객 100여명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관람객들은 선수들이 승마 기술을 뽐내며 아슬아슬하게 서로 스쳐지나갈 때마다 손에 땀을 쥐며 경기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폴로공의 크기는 야구공보다 약간 큰 사이즈다. 시속 60㎞로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텐데 몸을 숙여 공을 치고 막는 모습에 관객들은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폴로는 ‘추커(Chukker)’당 7분 30초씩 네 차례 추커가 이어진다. 1·2추커가 끝나고 휴식 시간이 되자 갑자기 아나운서가 관람객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달라는 부탁을 했다. 경기가 펼쳐지며 뒤집어진 잔디밭을 관람객들이 직접 밟으며 다지기 위해서다. 폴로의 잔디 밟기는 관람객들이 함께 걸으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찰스 윈저 영국 황태자도 피할 수 없는 폴로 관람객의 전통 매너다.
우승을 차지한 로얄팀
1. 클럽 하우스
2. 폴로 장비
3. 폴로 레슨을 위한 시연
경기는 9대5 로얄팀의 승리. 승패에 관계없이 선수들과 관람객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대회를 마쳤다.
이제는 폴로를 배워볼 차례. 우선 땅 위에서 연습용 맬릿을 쥐고 공을 쳐내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연습용 맬릿의 길이는 성인의 팔 길이 보다 조금 짧다. 10~20차례 휘둘러보니 공을 중심에 맞춰 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프로 선수들처럼 능숙하게 공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중심에 맞춰 정면으로 정확히 보낼 때의 짜릿한 손맛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20여분 정도 공을 친 뒤 드디어 ‘시합용’ 맬릿이 손에 쥐어졌다. 길이는 130㎝, 무게는 200g 정도다. 실전용 맬릿과 함께 말 위에 올랐다. 다루기 어려운 무게와 길이는 아니다. 하지만 무게 대부분이 공을 치는 아랫부분에 몰려있기 때문에 공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여기에 말 위에서 중심까지 잡아야하니 연신 헛스윙만 일삼았다.기자의 불안감을 말도 느꼈을까. 온순히 서있던 말이 갑자기 뒷걸음을 치기 시작한다. 공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면서 휘두르면 헛스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맬릿을 휘두르니 말이 더욱 놀란다.
초조해하는 말의 갈기를 몇 차례 쓰다듬어주며 진정시킨 뒤 마음을 다잡고 시원하게 스윙을 했다. ‘중심에 맞췄다’는 생각이 든다 싶더니 공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푸른 잔디밭을 굴러간다. 연신 헛스윙만 일삼던 기자가 ‘딱’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공을 맞추니 다시 한 번 놀라 뒷걸음질을 친다.
제대로 맞추고도 말이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지켜보던 외국인 선수가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