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하나씩 소울푸드를 품고 산다. 그건 음식을 넘어 이미 영혼의 한 피질(皮質)을 이룬다. 소울푸드란 원래 미국 흑인 노예의 음식을 일컫는다. 백인 지배자들이 먹다 버리거나 먹지 않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말한다. 프라이드 치킨은 켄터키 노예들의 눈물로 튀긴 음식이다. 백인이 버린 닭발, 목, 날개 같은 부위를 뼈째 씹어 먹을 수 있도록 오래 튀긴 데서 유래했다. 흑인들의 눈물이 기름 솥에 더해져 짜고 슬픈 음식이 됐을 것이다. 음식은 열량과 맛을 떠나 이처럼 역사와 정치,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칵테일 주스가 된다. 우리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기억컨대 나는 애호박을 볶아 얹은 국수가 아닌가 싶다. 소박해서 오래 기억되는 존재도 있는 법이다.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가지를 들기도 한다. 당대의 음식 역사에서 한 번도 비싼 적이 없었던 거의 유일한 재료인 가지가 소울푸드인 것도 흥미롭다.
그런데 호박과 가지라는 너무도 흔하고 싸서 주목받지 못하는 두 재료가 소울푸드인 지역이 또 있다. 바로 지중해다. 특히 이 재료로 만든 ‘라타투이(Ratatouille)’는 남부 지중해 사람들의 영혼의 음식, 즉 소울푸드로 미각의 중추에 새겨져 있다.
영화 <라타투이>를 기억하시는지. 픽사의 놀라운 이 애니메이션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이 영화에서 각별한 감명을 받았다. 어머니가 해주던 소박한 채소 요리의 추억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라타투이를 만들면서 어머니와 엣 기억을 더듬는 장면은 그렇게 세밀하게 연출된 정서였다.
우리가 마치 국수에 얹을 애호박을 볶으면서 어머니의 국수 손맛을 떠올릴 게 분명하듯 말이다. 허영만 원작의 영화 <식객>과 <식객2>는 일관되게 관객의 소울푸드를 건드린다. 어머니와 손맛, 라면 같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모자이크로 영화를 끌고 간다. 음식은 결국 추억과 기억에 관련된 염도 높은 존재나 다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라타투이>가 한국에 소개되자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다. 갑자기 강남의 레스토랑에서 이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더 재미있는 건 라타투이를 주문한 손님들의 반응이었다.
“응? 이게 뭐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