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가는 곳이 있었다.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면 한적한 도시 콩코드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월든’이란 호수가 있다. 이 호수가 유명한 이유는 미국작가이자 철학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이곳에 거주하며 <월든, 숲속에서의 삶>이라는 책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소로는 1845년 여름부터 2년 동안 이 호수 북쪽에 기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 이곳은 사실 그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이 그에게 빌려준 땅이었다. 그가 살던 조그만 오두막에 가면 다음과 같은 푯말이 등장한다.
“나는 숲에 갑니다. 나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사실을 대면해 신중하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이 가르쳐야 만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혹은 내가 죽을 때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소로는 월든 호수에서 인생의 겉모습을 버리고 그 본질들을 대면해 최선의 삶이 무엇인가를 모색했다. 우리의 문제점은 인생의 겉모습에 집착해 인생의 순간들을 생각 없이 흘러 보낸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최선의 삶은 무엇인가?
소로는 인생의 핵심을 자신만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로움’은 상대방의 부재를 절감하는 상태와 심지어는 남들과 같이 있어도 심리적으로 혼자인 상태다. 반면에 상대방의 부재를 느끼지 않고 혼자 스스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상태를 ‘고독’이라고 한다. 영어에서도 전자를 ‘Loneliness’라고 하고 후자를 ‘Solitude’라고 한다.
세상은 점점 빨라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순간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는 정보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혼자만의 ‘고독’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외로움’과 ‘고독’이 모두 혼자 있는 시간이지만 고독은 명상, 내적인 탐구와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독을 통해서만 심오한 독서와 예술에 심취할 수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고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유’다. 자유는 창조력과 직결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창조성을 꺼낼 수 없다. ‘자아의 발견’은 고독의 또 다른 선물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고독’을 ‘테오리아(Theoria)’라고 불렀다. 영어단어 ‘Theory’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테오리아는 중세교회에서 ‘콘템플라티오’ 즉 ‘내면 보기’ ‘내면 관조하기’로 번역됐다. 터키 카파도키아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테오리아를 위한 수많은 동굴들이 있다. 수도사들은 이 동굴에서 3년 동안 수련을 한다.
터키를 중심으로 기원후 4세기 이후에 등장한 동방교회는 ‘신과 합일 되는 깨달음을 위한 단계’인 테오리아를 그리스도 교인들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테오리아를 통해 삼라만상 특히 마음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넵시스(Nepsis)’를 의도적으로 인식한다. 신과 대면할 수 있는 테오리아 수행을 통해 신을 관조하게 되면 신과 합일되는 ‘테오시스(Theosis)’의 경지에 도달한다. 우리는 테오리아를 정결한 삶, 절제와 경전의 명령 준수, 그리고 신과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 얻을 수 있다. 동방그리스도교의 수행전통의 세 가지 단계는 첫째 ‘카타르시스’로 즉 더러운 생각, 말, 행동을 정화하고 둘째는 ‘테오리아’로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셋째는 ‘테오시스’ 신과 합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테오리아를 실천한 가장 위대한 인물 중에 한명이 무함마드(기원후 570~623년)다. 무함마드는 570년에 유복자로 태어나 6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됐다.
가난한 삶을 타파하고자 당시 다른 아랍소년들처럼 대상무역상으로 출발한 무함마드는 어려서부터 ‘알-아민’ 즉 ‘믿을 수 있는 자’라는 별명을 지닌다. 그는 25세에 자기보다 15살 많은 미망인이자 자신의 고용주였던 카디자와 결혼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난다. 무함마드의 대상무역업은 날로 발전해 메카에서 존경받는 상인이 된다. 만일 무함마드가 자신의 삶을 아무런 자기발견의 노력 없이 지나갔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다른 성공한 대상무역인과는 달리 1300년이 지난 오늘날 17억 인구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이슬람의 창시자가 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테오리아였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위해 매해 메카 외곽의 히라 동굴로 퇴거했다. 당시 아랍사회는 부족중심이었다. 부족들 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의였으며 그 정의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복수였다.
아랍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아무도 모르는 영적인 병에 걸려있었다. 무함마드는 이 영적인 병을 히라 동굴에서 명상하기 시작한다. 이 명상을 아랍어로 ‘타한누스(Tahannuth)’라고 한다. 그는 해결책을 골똘히 궁리하는 동시에 금식하며 영적 훈련을 수행했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타한누스란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자아를 발견하고 대면하는 일이다. 무함마드는 타한누스를 통해 그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다간 수많은 무명의 인물이 아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무지’의 사회를 신에게 승복한 ‘이슬람’ 공동체의 창시가가 됐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하루에 식구들 밥을 먹이는 상인이 아니라 타한누스를 통해 아랍인 전체를 위해 삶의 기준을 전달할 예언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7억 인구의 정신세계를 마련할 무함마드에게 타한누스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종교에서는 ‘자신을 모르는 것’ 또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모르는 것’을 죄라고 불렀다.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명상’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명상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경전과 고전을 깊이 읽는 시간, 자신의 삶의 원대한 계획과 이 순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도 제어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마술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산 정상에 올라가라고 촉구한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 한 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영적인 정상으로 가는 길이 바로 테오리아다. 하루에 30분 정도 자신을 위한 분리된 시간과 장소에서 명상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자유 창의성 그리고 카리스마를 선물해 줄 것이다.
배철현 교수는
고대오리엔트언어들에 매료되어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 주임교수이다. 주요 관심사는 고대오리엔트문명인 후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주요저서로는 <타르굼옹켈로스 창세기> <타르굼아람어문법>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그리다> 등이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3호(2012년 0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