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업무에 종사하는 60대 초반의 P 사장은 항상 목안과 가슴에 가래가 끼어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게다가 찬바람을 쐴 때면 가래와 함께 기침이 터져 나와 그때마다 의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다. 최근엔 점차 증세가 심해져서 폐렴 같은 합병증에 자주 걸리게 되자 그는 여러 검사 끝에 기관지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지인의 권유로 필자의 한의원을 찾았다.
P 사장은 기관지 문제 외에 소변을 자주 보는 전립선 증상과 허리 통증, 만성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지만 술자리가 잦았다. 증상과 체질, 검사결과를 종합해 폐신허증(肺腎虛證·폐와 신장의 기능이 약한 상태)에 해당된다는 진단을 내렸고 몇 달간의 약물치료와 함께 올바른 생활습관을 바로 잡아주자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우리 주위에는 목안에 가래가 많이 끓어서 기관지가 약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 중 흡연도 하지 않고 엑스레이나 CT 같은 검사에도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늘 가래가 끼고 찬바람만 불면 가래와 함께 기침이 시작돼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의학에서는 가래를 담(痰)이라고 부르는데 오래되고 고질적인 가래는 폐나 기관지만의 이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즉 기(氣)의 흐름 장애, 오장육부의 기능 저하, 잘못된 생활습관, 비정상적인 기후변화와 정신적인 측면 등 다양한 원인이 병적인 담을 만들어서 목안과 가슴에 가래를 끓게 만든다고 보고 원인을 제거해 묵은 가래를 치료한다.
묵은 가래가 생기는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우선 오장육부 가운데 폐와 신장, 비위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폐의 기운이 부족해지면 우리 몸을 병으로부터 지켜주는 위기(衛氣)의 기능이 떨어져서 기온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고 본다. 저항력이 약해지면 잦은 감기와 기관지염에 시달리게 되고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점차 목안에 묵은 가래가 자리 잡게 된다. 일반적으로 폐가 약한 사람들은 얼굴색이 희거나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이 많다.
얼핏 보아 기관지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신장의 문제도 한의학에서는 오래된 가래의 한 원인으로 본다. 한의학에서는 신장을 정기(精氣)를 간직하며 몸의 수분대사를 주관하는 중요한 장기로 생각한다.
신장이 약해지면 몸 안의 정상수분이 병적인 액체인 습과 담, 즉 가래로 변하게 되어 항상 기관지에 가래가 끓게 된다. 또한 폐로 열이 떠올라서 진득진득한 가래가 목에 들어차게 된다. 따라서 밤에 기침을 자주하고 숨이 차며 허리와 목덜미가 아프고 어지럽고 대소변이 시원치 않으면서 가래가 끓는다면 신허증, 즉 신장이 약한 증상을 확인해야 한다.
한의학에서 비위란 소화기계를 말하는데 비위가 허약하면 소화, 흡수력이 떨어져서 폐를 충분히 자양하지 못하므로 폐의 기능이 약해진다. 그리고 마신 수분이 비위에서 몸 안에 필요한 정상적인 진액이 되지 못하고 병적인 수분인 담, 즉 묵은 가래로 변하게 되어 늘 가래가 끼게 된다. 흡연이나 음주, 과식 등 좋지 못한 생활습관도 기관지 건강에 영향을 미쳐서 묵은 가래를 만들게 된다. 기관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담배는 물론 지나친 음주와 폭식도 폐와 위(胃)열을 발생시켜 목과 가슴에 가래를 끓게 한다.
이밖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기(氣)가 잘 순환되지 않으면 목안에 가래가 생긴다. 실제로 신경을 쓰면 가래가 끓고 기침이 난다는 사람들은 가래와 기침 외에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목에 무언가 걸려 있고 막힌 것 같은 느낌과 우울감, 가슴이 벌렁거리며 빨리 뛰는 증세를 겪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들이 고질적인 가래와 기침을 유발하기 때문에 자세한 진찰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묵은 가래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신장과 폐, 비위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거나 기(氣)의 흐름을 순조롭게 도와주고 음주나 흡연으로 폐위(肺胃)에 쌓인 열을 풀어내는 방법을 쓴다. 또한 흡연, 음주, 과식 등 생활습관의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은 필수적이다. 목안의 가래는 그 자체로도 답답함을 느끼지만 오래된 가래는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적신호일 수 있기에 정확한 진찰과 치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