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와인, 아이스와인은 눈의 여왕에 잡혀 있어 그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다. 왕자의 구출로 마법이 풀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게 되는 어느 동화 속 공주 같은 와인이다. 가장 화려하면서 그 추운 겨울을 꿋꿋이 이겨낸 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처음 발견된 아이스와인은 때 이른 찬 서리가 빚어낸 우연의 결과물이다. 아이스와인을 위해 독일 농부들은 추운 겨울에 포도를 수확한다. 여느 가을의 로맨틱한 포도 수확과는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포도밭에 찬 서리가 내리고 영하 7도의 날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늘이 시기해 포도를 다 못쓰게 될 수도 있고 운 좋게 아이스와인을 얻을 수도 있다. 그저 하늘에 그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포도의 수확은 일출 전에 이루어진다. 해가 뜨면 얼음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은 포도알이 녹기 시작하면서 맛이 죽어버린다. 이상기온으로 따뜻한 겨울에는 아이스와인이 생산조차 되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스와인은 진귀하다.
최고 품질은 독일, 최대 생산은 캐나다
현재 아이스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는 독일과 캐나다. 독일은 아이스와인의 원조 국가로 20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독일의 아이스와인은 와인 등급에서도 최상위 등급을 뜻하는 ‘QmP’(Qualitatswein mit Pradikat)에 속하고 그 중에서도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와 함께 독일의 최고급 와인으로 꼽힌다. 캐나다 아이스와인의 시초는 19세기 초 독일 출신 이민자들이 캐나다에 정착해 추운 겨울을 이용한 아이스와인을 생산해낸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1980년대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독일을 이은 아이스와인의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스와인의 원조인 독일의 품종은 리슬링이며, 캐나다는 비달 품종을 주로 사용하는데 비달 품종이 두꺼운 껍질을 지녀 리슬링보다 냉해에 더 잘 견디는 장점을 지녔다. 하지만 그 산도는 리슬링처럼 우아하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독일 리슬링의 아이스와인은 최고급 와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 따르면 99점 이상의 최고 와인 반열에 독일 와인이 10개 올라 있는데 모두 리슬링 아이스와인이라고 한다.
반면 비달을 주로 재배하는 캐나다는 세계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본고장 독일에 비해 다소 열악한 캐나다는 비달 품종의 ‘신선함’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캐나다 아이스와인 최초의 생산자 ‘이니스킬린’은 최고 품질을 생산해 내기로 유명하다.
두 나라 모두 자연식 아이스와인만을 공식적인 아이스와인으로 인정한다. 수확 후에 냉장고에서 냉동시킨 포도알을 가지고 만든 아이스와인은 인공 아이스와인인데 스위스, 미국, 호주 등지에서 아이스박스 와인(icebox wine) 또는 크리요(cryo)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또한 독일에서 영하 5도에 수확했다든지, 캐나다에서 영하 6도에서 수확하는 등 해당 국가의 최저 수확 온도 규정을 지키지 못한 포도로 생산된 와인은 아이스와인이 아니라 ‘늦은 수확’을 뜻하는 ‘레이트 하비스트(late harvest)’로 부를 만큼 철저하게 아이스와인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아이스와인의 첫 맛은 매우 달다. 설탕 폭탄이 터져서 입 안 가득 감미로운 소나타를 선사한다. 곧 깔끔한 산미가 나타나 입천장과 혀에 남아있던 달콤함을 말끔히 치우고 개운함을 노래한다. 꿀벌이 흠모할 감미와 면도날처럼 예리한 산미의 조화가 자아낸 맛의 균형이 잔잔히 흐르며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이스와인의 매력.
신선한 아이스와인은 산뜻함이 매력적이고, 오래된 아이스와인은 신사 같은 엘레강스한 느낌을 주며 복합적인 맛을 자랑한다. 숙성되면 색이 진해지고 희소성에 의해 가격도 오른다. 신선한 아이스와인은 광택이 나며, 연한 호박색으로 빛난다. 투명하고 깨끗한 빛깔이 숙성되면 점점 진한 호박색으로 변한다. 싱싱한 비달 아이스와인의 달콤한 맛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숙성된 리슬링 아이스와인은 가장 소중한 때에 가장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음미할 것을 권장할 만큼 향미나 달콤함의 깊이가 다르다.
입 안 가득 감미로운 소나타
최근에는 아이스와인 업계에도 ‘레드 열풍’이 강하다. 보통 아이스와인하면 화이트와인을 떠올리는데 캐나다의 피노누아, 메를로 등의 레드와인 품종으로 아이스와인을 생산, 그 맛의 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최근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메를로로 만든 아이스와인은 그 편안한 맛이 현대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으며 아이스와인 특유의 목 넘김이 편안하고 기분 좋은 달콤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아이스와인은 보통 식사 후 디저트 와인으로 마신다. 때로 코스별로 나오는 디너에서는 식전주(aperitif)로 마시기도 하지만 보통은 식후에 마셔 입안을 달콤하고 개운하게 정리해 식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신다. 맛 자체가 달기 때문에 케이크, 푸딩, 쿠키, 치즈 등 후식과 함께 먹는데 그 중에서도 로크포르, 블루 치즈, 고곤졸라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아이스와인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디저트가 되기 때문에 따로 다른 음식 없이 와인만 마셔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단, 5~7도로 차게 해서 마셔야 좋다.
또한 아이스와인은 비교적 입구가 좁고 볼 모양이 플룻처럼 날씬하게 빠진 잔에 담는 것이 좋다. 와인의 당도가 좋기 때문에 단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혀 바로 앞쪽에 떨어지는 것보다 약간 뒤쪽에 떨어뜨려 산도를 먼저 느끼면 자칫 단맛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방지하고 전체적인 밸런스를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와인의 품종별 개성비달 Vidal
프랑스와 캐나다의 품종을 교배해 얻은 품종이다. 껍질이 두껍고 포도 알갱이가 충분히 익어도 줄기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아 아이스 와인만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특성은 ‘매우’라는 극단적 수사를 붙여도 좋을 만큼 확실한 당도에 있다. 황금색의 빛깔을 지닌, 비달로 만든 아이스와인은 살구향, 복숭아향, 벌꿀향, 캐러멜향 등이 어우러진 최고의 당도를 지닌다. 온타리오 주의 베스트 아이스와인 와이너리에서 다룬 이니스킬린(Inniskillin)은 아로마와 부케가 탁월한 비달 아이스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으로 유명하다.
리슬링 Riesling
아이스와인을 위해 비달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품종이다. 전형적인 독일 품종으로 역시 껍질이 두껍고 당도가 강해 겨울에 수확을 해야 하는 아이스와인에 적합하다. 비달과 가장 대별되는 차이점은 그 향과 당도가 비달에 비해 부드럽고 상큼하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개인적인 평이기도 한데 비달이 꿀의 진액처럼 달다면 리슬링은 그 안에 한 줌 바람을 품고 있는 듯하다. 너무 단 음식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비달보다는 리슬링에 더 끌릴 것이다.
게뷔르츠트라미너 Gewuztraminer
로제 와인만큼이나 달콤한 장밋빛 색깔을 지닌 품종으로 아이스와인으로 만들 경우 핑크색이나 망고주스처럼 진한 노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몇몇 와인 평론가가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그윽한 아로마를 가진 품종”이라 극찬할 만큼 달콤하고 독특한 꽃향기가 훌륭하다. 비달이나 리슬링처럼 껍질이 두껍지 않은 만큼 가격 또한 높게 책정된다. 오카나간에 있는 서머힐(Summerhill) 와이너리는 게뷔르츠트라이머로 만든 아이스와인을 148캐나다 달러(약 11만8400원)에 판매하는데 한국에 수입될 경우 20~30만원을 호가한다.
이 밖에도 아이스와인을 만드는 품종은 최근 다양해지는 분위기다. 보르도의 유명 포도원들이 편애하는 카베르네 소비뇽, 부드러움의 극치인 메를로, 무척 까다롭고 예민한 피노 누아, 타닌 맛이 강렬하고 그 풍미도 야생적인 시라 등 점점 더 많은 품종들이 아이스와인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와인이 말을 건네다 김혜주 칼럼니스트와 미켈레 끼아를로
와인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누구보다도 전 세계 와이너리 관계자들의 방문 소식에 관심이 많다. 각종 자료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얻는 정보로는 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하는 행사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오는 와이너리 관계자들의 방문행사다. 이곳에서 왔다면 대개의 경우 바롤로, 바르바레스코를 비롯해 바르베라, 돌체토, 가비, 모스카토 다스티 등 각각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와인 중 하나 이상을 소개할 테고, 아울러 말을 끊지 않으면 그날 밤 내내 그 지역 음식에 관해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화이트 트러플, 리조토, 두툼한 쇠고기, 바로 반죽해 내온 생파스타, 초콜릿, 치즈는 이 음식 명사들 앞에 감히 최고라고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이 최고의 미식거리들은 저마다 찰떡궁합을 이루는 같은 동네의 와인을 찾아와 결국 이들을 찬미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지금의 피에몬테 사람들처럼 우리를 변화시킨다.
최근 만난 미켈레 키아를로 남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와인의 퀄리티는 그곳 사람들의 음식에 관한 애정과 관심만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대개의 경우 맞아 떨어진다. 미켈레 키아를로의 차세대 오너는 피에몬테에서는 파스타보다는 리조토를 먹어야 하고, 물론 최고의 리조토는 바롤로 리조토이지만 바롤로가 없을 때는 바르베라 리조토여도 훌륭한데, 그 리조토를 잘하는 지역 음식점은 어디고, 특히 어느 계절에 찾아와야 최상의 미식 여행을 할 수 있는지 등 마냥 흥에 겨워 소개를 이어갔다.
나 역시 그를 흉내내 와이너리를 소개해 보겠다. 피에몬테에서는 바를로, 바르바 레스코가 유명하긴 하지만 바르베라를 빼먹어서는 말이 안 되고, 물론 최고라 칭송받는 바르베라가 많지만 그중 미켈레 키아를로의 ‘라 쿠르트’는 꼭 맛봐야 하며, 혹시 이 와인을 구할 수 없다면 ‘레 오르메’를 맛볼 것! 이제 당신은 왜 피에몬테 사람들의 식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와인이 바르베라인지 그 이유에 대해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김혜주 와인 칼럼니스트, 알덴테북스 대표
[유동기 금양인터내셔날 마케팅 차장 dkyoo@keum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