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악~ 너무 커. 와아아악!!”
조용한 산길에 외마디 비명이라니. 날파리 쫓으며 소일하던 매점 주인이 화들짝 놀라 뛰어나왔다.
“아니, 무슨 일이에요. 어디 다쳤어요?”
헐레벌떡 뛰어 내려오던 여학생의 한마디에 깜짝 놀라 주시하던 이들의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아니오. 저기… 저기 나방이 너무 커요. 우엥~”
범인은 벌레였다. 피톤치드의 효능을 마음껏 누려도 모자랄 이 공기 좋은 산등성이에서 쩌렁한 비명을 뿜어내게 한 원인이자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법한 여학생이 겪어야 할 부끄러움의 원흉이다. 도대체 얼마나 큰 나방일까 싶어 학생이 뛰어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 보니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탁 트인 풍경에 입이 떠억 벌어지는 것도 잠시, 지붕에서 훌쩍 내려와 날갯짓하는 나방 한 마리에 온몸이 움찔했다. 그 뒤로 어린아이 주먹만한 말벌 한 쌍도 뒤따른다.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이 모든 게 기후 위기 탓’이라고 중얼거리길 잠시, 매점 주인이 으레 그랬다는 듯 나름의 정답을 내놨다.
“그 많던 잠자리는 다 어디갔는지 원. 천적이 없어서 그런지 나방이 커요.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대신 말벌이 나방 잡으러 다니던데, 독한 놈들만 남았나봐. 조심해요.”
백로가 훌쩍 달아난 9월 어느 날, 내장산 국립공원을 찾아 케이블카에 올랐다. 종착지에서 바라다본 풍경은 아직 여름, 하지만 산꼭대기 나뭇잎들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벌레들의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높이 763.5m의 내장산은 신선봉을 중심으로 연지봉, 까치봉, 장군봉, 연자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령봉이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선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다. 매년 가을철 단풍 명소로 손꼽히는 이곳은 초입부터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객을 반긴다. 그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다보니 아직은 파아란 단풍잎들이 얽히고설켜 완벽한 그늘을 만들어 냈다. 늦여름 볕이 섭씨 30℃를 훌쩍 넘겨 찜통더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터널 아래는 서늘하다. 이게 정말 피톤치드인가 싶을 만큼 공기의 감촉도 푸근한, 이 느낌적인 느낌에 이렇다 할 근거는 없지만 다시 가보겠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나설 만큼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아직 가시지 않는 더위에 내장산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케이블카(성인 1명, 왕복 1만원, 편도 6000원) 때문이다. 총 688m의 거리를 5분간 운행하는 이 오래된 교통수단은 해발 540m에서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다. 2013년 6월에 첫 시동을 건 후 별다른 리모델링을 거치지 않은 탓인지 10여년 전 모습 그대로 산 위를 날아(?) 다니지만, 10월 말경 단풍 절정기가 되면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탈 수 있을 만큼 인기 높은 핫스폿이 된다. 케이블카 운행을 준비 중이던 분에게 물으니 “그땐 3층 탑승장까지 줄이 늘어서서 승강장 앞 주차장을 가득 메운다”는 답이 돌아왔다. 3층 건물로 지어진 승강장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러니 단풍 절정기나 아니나 걸어 올라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계단에 쪼그리고 앉거나 서서 1시간은 기다려야 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51명 정원의 케이블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서히 길을 오른다. 깨끗이 정리됐지만 세월의 더께까지 가릴 순 없었는지 군데군데 낡은 내·외관이 안쓰러웠다.
도착 지점에선 화장실이 푸세식이라 미안하다는 푯말이 생경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었는데, 당연히 급한 볼일은 케이블카를 타기 전 주차장 이곳저곳에 마련된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올라와야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면 두 갈래 길 중 한 곳을 택할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전망대를 거쳐 내장사, 탐방안내소로 내려오는 길이 하나요, 전망대에서 다시 돌아 나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다. 케이블카 도착 지점에서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약 10여 분. 그러니까 내장산 단풍을 즐기는 다수의 등산객이 찾는 유명 코스다. 데크와 계단, 야자수 매트로 마무리된 등산로는 가지런하다. 우스갯소리로 뾰족구두를 신고도 오를 수 있을 만큼 정리가 잘 돼 있다.
전망대 앞의 매점에선 음료수와 빙수를 비롯해 갖가지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전망대 2층 펼쳐진 내장산의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환호성이 터질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누가 이곳에 전망대를 세웠는지 연자봉 중턱에서 바라본 산새는 고개를 돌리는 족족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했다면 우화정에 들러보자.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을 수 있는 이곳은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내방산의 명소다. 맑은 연못 한가운데 정자가 솟아 있어 한 폭의 그림이 떠오른다.
[글 · 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9호 (2024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