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은 출범 30년 동안 상장사 1800여 개, 시가총액 600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코스피와의 격차, 만성적인 저평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도 코스닥 3000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시장은 다시 변동성에 흔들렸고, 30주년을 맞은 7월 1일 지수는 출범 기준점인 100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동훈 코스닥협회장은 이러한 저평가의 핵심 원인으로 ‘장기 자금의 부재’를 지목했다. 그는 개인투자자 중심의 수급 구조에서 벗어나 기관과 연기금이 기업 가치를 평가하고 장기 투자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코스닥의 체질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스닥 출범 30년을 맞아 이동훈 협회장을 만나 저평가 원인과 시장 정상화를 위한 해법, 그리고 코스닥의 다음 30년에 대한 구상을 들어봤다.
코스닥 출범 30년의 가장 큰 성과는 기술과 자본이 부족했던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조달 통로를 열어줬다는 점이다. 정보기술과 바이오, 반도체 장비, 이차전지 소재 등 한국의 신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상당수가 코스닥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코스닥을 대한민국 혁신 생태계의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했다. 다만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성장은 더뎠다고 평가했다. 코스닥에서 성장한 대표 기업들이 코스피로 이전하면서 시장을 이끌 대형주가 반복적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업은 계속 들어왔지만 시장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성공 기업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반면 코스피는 글로벌 대기업과 기관·외국인 자금, 주요 지수에 연동된 패시브 자금이 맞물리면서 자본을 끌어들이는 구조를 강화했다. 같은 실적을 내더라도 코스피 상장사가 더 안정적인 수급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이 회장은 기업의 이전 상장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다. 현재 구조에서는 기업과 주주 모두에게 코스피 이전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동훈 협회장은 이에 대해 “코스닥에 있으면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충분히 나오지 않고 기관 자금도 들어오지 않는다”라며 “기업과 주주 입장에서는 성장한 뒤 코스피로 옮기자는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코스닥에 남는 선택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할 제도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이 회장은 일정 기간 코스닥에 잔류하며 고용과 연구개발, 배당을 확대한 기업에 세액공제와 R&D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성장기업이 코스닥에 남아 시장의 상징이 되고, 이를 따라 기관과 신규 상장사가 들어오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닥 시장 운영의 독립성 강화도 주장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같은 거래소 안에서 운영되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옮겨도 운영 주체가 체감하는 경쟁 압력이 크지 않다는 이유다. 그는 “거래소 입장에서는 한 집안의 두 주머니와 같다”며 “두 시장이 경쟁하는 구조였다면 코스닥 운영 주체가 우량기업을 붙잡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혜택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저평가를 설명할 때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불성실 공시, 적자기업, 주가조작과 테마주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이 회장도 코스닥기업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상장기업이 많은 만큼 공시 오류와 지배구조 문제가 더 자주 드러날 수 있고, 기업 스스로 실적과 투명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이 같은 문제가 코스닥 전체의 만성적인 저평가를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봤다. 과거 코스닥이 강한 상승세를 보였던 시기에도 공시와 지배구조 문제는 존재했지만, 시장에 자금이 들어올 때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더 크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수급을 빼놓고 코스닥은 신뢰가 낮다거나 동전주와 부실기업이 많다는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진단에서 코스닥 저평가의 시작은 기업가치를 가격으로 연결할 장기 매수 주체의 부재다. 개인이 거래를 주도하는 시장에서는 자금이 테마와 수익률을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 기관과 연기금은 기업을 분석하고 일정 기간 보유하면서 기준 가격을 형성하지만 코스닥에서는 이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분석 정보 부족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코스닥협회가 인용한 한국IR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증권사 리포트가 한 건이라도 발간된 코스닥 상장사는 40.1%에 그쳤다. 전체 상장사의 약 60%가 투자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의미다.
이 회장은 “중소형주 보고서를 쓰는 데 드는 시간은 대형주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읽고 거래할 기관이 적으면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얻는 보상도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 없으니 보고서가 나오지 않고, 정보가 부족하니 기관과 외국인이 다시 투자를 피하는 악순환이다. 다만 수급 부족이 코스닥의 모든 문제를 덮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장기자금은 회계와 공시의 신뢰가 뒷받침될 때 들어온다. 상장기업도 예측 가능한 실적과 투명한 정보, 주주를 대하는 태도를 증명해야 한다.
이 회장이 코스닥 3000의 선결 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도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비롯한 장기자금의 유입이다. 기업 수가 매년 늘어나는 동안 새 자금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으면 기존 자금은 더 많은 종목으로 나뉘고, 거래는 일부 대형주와 테마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는 “코스닥에는 한 해 100개가 넘는 기업이 새로 상장하는데 장기 자금은 비례해서 들어오지 않는다”며 “기업만 계속 늘어나는 구조에서 지수가 안정적으로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에 특정 종목을 의무적으로 사달라는 주장은 아니다. 국내 주식 벤치마크와 위탁운용 지침에 코스닥 비중을 현실적으로 반영해 민간 운용사가 중소형 성장기업을 분석하고 투자할 유인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다. 국민연금이 마중물 역할을 하면 운용사와 애널리스트, 퇴직연금 상품이 뒤따를 수 있다는 구상이다. 채권과 코스닥지수 또는 우량 성장주를 결합해 변동성을 낮춘 퇴직연금 상품, 코스닥 액티브 ETF와 새로운 지수 개발도 장기자금 유입의 통로로 제시했다. 다만 국민연금은 시장 활성화 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코스닥 투자 확대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정책적 필요뿐 아니라 장기 수익률과 위험 분산 측면의 근거도 제시해야 한다. 코스닥협회도 정부와 연기금에 자금 유입만 요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정보 비대칭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IR협의회 등과 함께 국내외 IR을 지원하고, 기관투자자와 상장기업을 연결하는 기업설명회와 간담회를 운영한다. 외국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AI 번역 시스템 고도화와 영문 공시 용어 정비에도 협력하고 있으며, 코스닥기업이 해외 투자자에게 기술력과 성장 전략을 직접 설명하는 해외 IR 프로그램도 이어가고 있다.
코스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이 필요하다는 데 이 회장도 동의했다. 사업 지속성이 없거나 회계와 공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기업, 불공정거래의 대상이 된 기업이 시장에 오래 남으면 우량기업까지 같은 할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기존 상장폐지 절차가 지나치게 길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다만 시가총액과 주가 같은 정량 기준을 시장 급락기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기업 부실과 시장 전체의 수급 충격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우려다.
금융당국은 코스닥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을 2026년 7월 200억원, 2027년 1월 300억원으로 올리고 주가 1000원 미만 기업에 대한 퇴출 요건도 도입했다. 제도 발표 당시보다 지수가 하락하면서 기준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도 빠르게 늘었다. 코스닥협회 조사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 미달 가능성이 제기된 기업 중 약 27%는 영업흑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회장은 “시가총액은 기업이 단기간에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며 “시장 전체가 급락했을 때 정상적인 흑자기업까지 퇴출 위기에 놓인다면 수급 실패의 책임을 기업에 묻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흑자기업을 무조건 보호할 수는 없다. 흑자를 내더라도 성장성과 유동성이 낮고 투자자의 관심이 장기간 사라진 기업이라면 상장 유지 필요성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량 기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장 충격과 구조적 부실을 가를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이 사업 지속성과 경영 정상화 가능성을 소명할 기회를 주고, 일정한 회복 기간과 실질심사를 거쳐 퇴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우량기업을 별도 시장으로 분류하는 세그먼트 제도에도 같은 문제가 있다. 기관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우량기업군을 만드는 취지는 분명하지만, 자금이 상위 세그먼트에만 집중되면 나머지 기업에는 ‘비우량시장’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이 회장은 프라임 시장에 장기자금을 연결하지 못하면 제도는 간판 교체에 그치고, 자금이 상위군에만 들어오면 스탠더드 기업의 유동성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를 시행한다면 스탠더드 기업을 위한 별도 지수와 ETF, 규제 샌드박스와 성장 지원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이 말하는 코스닥 3000은 지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자는 구호가 아니다. 장기자금이 들어오고, 상장 기업이 신뢰를 높이며, 성장기업이 코스닥에 남고, 부실 기업은 예측 가능한 절차에 따라 퇴출되는 시장이 만들어졌을 때 따라오는 결과에 가깝다. 그는 “과거 코스닥에서 성장한 대형기업들이 계속 남아 있었다면 지금의 지수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며 “장기자금이 유입되고 기업의 체질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코스닥 3000이 불가능한 목표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수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변화가 있다.
기관과 외국인의 투자 비중이 실제로 늘었는지, 코스닥 기업에 대한 리서치 커버리지가 확대됐는지, 성장기업이 이전 상장 대신 잔류를 선택하기 시작했는지, 상장폐지 절차가 빨라지면서도 오판을 되돌릴 장치가 생겼는지, 규제 완화와 함께 허위공시와 회계 부정에 대한 책임이 강화됐는지를 봐야 한다. 이 회장은 규제 개선의 원칙으로 ‘사전 규제 최소화와 사후 책임 엄격화’를 제시했다. 기업 규모와 위험 수준에 맞게 내부회계와 감사 규제를 차등 적용하되, 회계 부정과 허위공시에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도 주주가치 제고라는 방향에는 동의하면서 인재 보상과 전략적 제휴, M&A에 활용할 기업의 선택지가 지나치게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규제를 풀어달라는 기업의 요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코스닥협회와 회원사도 투자자에게 약속할 것이 있어야 한다. 불성실 공시를 반복한 회원사에 대한 자율규율과 주주 소통, 예측 가능한 주주환원과 내부통제 강화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 임기를 약 8개월 남겨둔 이 회장은 수급 구조 개선과 기업승계 세제, 회계 규제의 비례성 문제를 마지막까지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임기 안에 모든 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음 변화가 시작될 씨앗은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