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수제품 중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왕실 도자기로 유명한 ‘로얄코펜하겐’이다. 1775년 줄리안 마리 여왕의 후원으로 세워진 ‘덴마크 왕립 자기 공장’에서 출발해 당시 초벌과 재벌 과정의 고온을 견디는 코발트블루 안료를 개발하며 덴마크의 문화유산이 됐다. 역사와 전통, 장인정신을 중시하며 세계 최고 도자기 브랜드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 왕실도자기에 새바람이 감지된 건 지난해 9월. 버버리, 지방시, 브리오니, 톰포드 등 럭셔리 패션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재스퍼 닐슨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하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향한 진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30일, 한국로얄코펜하겐 창립 30주년을 맞아 방한한 재스퍼 닐슨은 “한국은 로얄코펜하겐이 진출한 국가 중 세 번째로 큰 시장”이라며 “브랜드 헤리티지와 수공예 도자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준 한국 소비자에게 감사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을 지속해서 개발할 계획”이라며 “캐주얼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에 로얄코펜하겐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다. 20살 무렵 영국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해 이후 버버리, 지방시, 브리오니, 톰포드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2023년 9월 로얄코펜하겐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Q 지난해 합류했는데, 내로라하는 패션브랜드에서 로얄코펜하겐을 선택한 이유라면.
A 스무 살 때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했고, 운 좋게 여러 럭셔리 패션브랜드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로얄코펜하겐은 자연스러운 스텝이었습니다. 전 아트나 디자인 히스토리에 관심이 많은데, 로얄코펜하겐이 바로 그런 브랜드거든요. 또 전 덴마크 사람이잖아요.(웃음) 제가 자랄 때 늘 곁에 있던 브랜드였고, 파리와 런던에서 생활할 때도 항상 애용했습니다.
Q 덴마크 사람들에게 로얄코펜하겐은 의미가 다른가봅니다.
A 오랫동안 일상에서 사용하는 아이템이에요. 생활의 일부이자 문화유산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브랜드죠.
Q 매일 사용하는 제품은.
A 10년 넘게 쓰고 있는 제품이 있는데, 매일 아침 ‘블루 플레인’ 머그에 커피를 마십니다. 일상에서 찾는 작은 기쁨이죠. ‘블루 풀 레이스’란 제품도 좋아하는데, 화병이에요. 로얄코펜하겐의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로얄코펜하겐이 패션디자이너였던 당신에게 분명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A 첫 미팅 때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그동안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도자기 브랜드에서 이제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시장을 아우르는 브랜드로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고 판단했어요. 가까운 시일 내에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재의 제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Q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책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A 소비자에게 닿는 모든 걸 아우르고 있어요. 디자인팀과 일하며 신제품을 디자인하고, 마케팅팀의 스토리텔링이나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또 수많은 아티스트와도 협업하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CEO와 마케팅팀의 중간쯤 이랄까요.
Q 역사가 긴 브랜드의 숙명은 현대적인 재해석인데, 로얄코펜하겐의 노하우라면.
A 모던한 브랜드로 남기 위해선 변해야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게 제가 할 일이죠. 내년에 250주년이 되는 로얄코펜하겐의 보물창고는 굉장히 긴 아카이브예요. 250년 동안 먹고 마시는 습관은 달라져왔고, 어떻게 새로운 기능을 넣어서 새로운 습관에 맞춰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로얄코펜하겐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MZ고객들의 성향이 궁금한데요.
A 부모세대가 포멀한 분위기의 상차림을 즐겼다면 요즘 젊은 세대는 전형적인 테이블 세팅 대신 나만의 방식을 따라갑니다. 과거엔 티타임 시간이 따로 있었고, 현재는 일상이 됐어요. 찻잔 하나만 있으면 티타임이 되는 시대죠.
Q 그러한 변화는 브랜드 입장에선 위기 아닌가요. 1인 가구나 배달 음식을 즐기는 트렌드도 무시할 수 없는데.
A 이미 세계적인 추세예요. 간단히 배달 음식을 먹는 경우도 늘었고,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 상을 차리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전반적으로 요리하는 시간이 줄고 있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무엇을 어디에 담아 어떻게 먹느냐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질적인 면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물론 식탁을 벗어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캐주얼한 접근법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죠. 그런 이유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Q 로얄코펜하겐이 한국에 진출한 지 30주년이 됐습니다. 한국 고객의 특징은.
A 우선 로얄코펜하겐의 모든 제품이 핸드프린팅으로 완성된다는 걸 높게 평가해주십니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시장이죠. 한국 고객을 위해 ‘코리안 볼(Korean Bowl)’이란 한식기를 개발할 만큼 중요한 시장입니다.
Q 한국의 도자기도 역사와 전통이 깊은데,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면.
A 한국의 도자기 제품에 대한 브랜딩은 잘 모르지만 로얄코펜하겐은 250년간 지속된 동일한 패턴과 품질이 브랜딩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덴마크 왕실의 든든한 후원이 브랜드 정착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무엇보다 과거의 역사를 존경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와 인정이 힘이 됐습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로얄코펜하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