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은 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한다. 처음 나선 일터는 동대문 새벽시장. 제일 빨리 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에 사입삼촌을 따라다니며 시장을 익혔다. 과일 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 쌓인 경험이 총 12번. 그러니까 12번 창업하며 사회의 단맛, 쓴맛, 매운맛을 경험했다. 스스로 연쇄창업자라 칭한 이는 윤형준 캐플릭스 대표. 그가 2015년 설립한 캐플릭스는 ‘제주패스’란 이름이 친숙한 단기 렌터카 공유 플랫폼이다.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반의 렌터카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전사적 자원관리)로 실시간 예약을 선도한 윤 대표는 현재 항공, 숙박, 트립, 카페패스, 맛집까지 서비스를 확대했고, 전국 단위 렌터카 서비스 ‘모자이카’도 운영 중이다. 그런가 하면 2023년 초 해외 진출을 선언한 캐플릭스는 그 첫 시작점으로 일본을 택한다. 그동안 아날로그 방식의 서비스에 의존하던 일본 렌터카 시장에서 디지털화된 캐플릭스의 실시간 예약 시스템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윤형준 대표는 “일본의 단기 렌터카 시장은 한국보다 15배나 규모가 크다”며 “3년 내 일본 렌터카 시장점유율 30% 달성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1975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12번의 창업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2015년 캐플릭스 창업 이후 SaaS 기반의 렌터카 ERP 솔루션으로 실시간 예약 서비스를 선도하고 있다. 2023년 초 일본에 진출했다. 이후 미국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A 2023년이 캐플릭스의 글로벌 사업 원년이에요. 국내 사업 외에도 해외 사업장을 챙기는 일이 요즘 가장 바쁜 일과가 됐습니다. 특히 일본에서의 성과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서 한 달에 반은 일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Q 제주패스의 일본 진출이 업계 화제였는데요. 제2의 도약이란 말이 나올 만큼 성장세가 탄탄하다고 들었습니다.
A 일본은 한국과 문화적으로 유사하면서도 다가가기 어려운, 가깝고도 먼 이웃이죠. 일본 시장은 아직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기반 산업이 강해 저희 같은 디지털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침투하기가 용이하다고 판단했어요. 2023년에는 약 20여 개의 현지 렌터카사와 계약했습니다. 이들이 저희 ERP를 사용하고 있어요. 지역적으로는 오키나와, 규슈, 홋카이도 등 일본의 핵심 관광지 3곳에 론칭했고, 이와 관련한 ERP 거래액이 약 40억원입니다. 2024년에는 좀 더 비약적인 성과를 이룰 것 같은데, ERP 거래액 1000억원이 예상되고 있어요. 본격적인 규모 확장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일본의 단기 렌터카 시장은 약 15조원 규모예요. 한국의 15배죠. 한국에서 성공한 우리 솔루션으로 일본 렌터카 시장의 디지털화를 성공시킨다면 성과나 규모가 훨씬 커질 겁니다.
Q 2015년 창업 후 초기 상황이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A 어떤 분야든 초기 창업 시장은 힘들죠. 저희도 뼈를 깎는 고통을 경험했습니다.(웃음) 무엇보다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던 국내의 렌터카 시장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부딪쳤어요. 그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SaaS 기반의 렌터카 ERP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A 당시 항공과 숙박 분야는 각각 산업별 ERP가 운영되고 있었어요. 디지털화가 이미 진전된 상황이었죠. 그러니까 고객들이 스카이스캐너, 카약, 부킹닷컴, 아고다 같은 다양한 OTA(Online Travel Agency·온라인여행사)를 통해 항공과 숙박을 예약하게 되는데, 이들 OTA에 남은 비행기 좌석이나 비어 있는 호텔방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게 ERP의 역할이에요. 하지만 렌터카 분야는 이런 솔루션이 전무했습니다. 실시간 예약이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중복예약(오버부킹)으로 예약한 차가 아닌 다른 차를 받거나 소형차를 원했는데 중형밖에 없어서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거든요. 바로 그 페인포인트(Pain Point)에 집중해 ERP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Q 캐플릭스의 ERP가 대기업과 다른 점이라면.
A 대기업의 ERP는 자체 차량 관리를 위한 PMS(Property Management Solution·자산관리시스템) 기능에 머물러 있어요. 저희는 PMS기능 외에 서비스 제공업체 간에 거래를 가능하게 해주는 GDS(Global Distribution Solution) 기능을 추가해 렌터카 회사들의 판매 확장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희 ERP를 쓰고 있는 업체들의 예약 가능한 차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죠. 이외에도 AI 기반의 무인 키오스크 차량 인수 플랫폼이나 무인 카스캐너를 통한 차량 반납 플랫폼 등 무인 렌터카 스토어를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Q 관리자 없이 차를 빌리고 반납한다? 생소한 설정인데요.
A 초고령화 시대잖아요. 렌터카를 운영하는 현장에서도 막상 일할 사람이 없어 가동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요. 저희 ERP를 기반으로 무인 키오스크를 통한 렌터카 인수, 무인 카스캐너를 통한 렌터카 반납, 렌터카 통제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도에선 무인 키오스크를 이용한 렌터카 인수가 진행되고 있어요. 2024년 3월경에 제주패스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무인 카스캐너를 통한 렌터카 반납 시스템을 론칭할 계획입니다.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시스템인데, 이를 통해 중소렌터카 회사들의 디지털 전환을 극대화할 예정입니다.
Q 창업 9년 차, 이제 중견 스타트업인데요. 현재 성과는 어떻습니까.
A 서비스를 론칭한 2016년 첫해 ERP 거래액이 약 30억원이었는데, 2022년 거래액이 약 3000억원, 매출은 750억원으로 성장했습니다. ERP 기준 제주·내륙 렌터카 차량 인벤토리는 약 4만5000대, B2C 플랫폼인 ‘제주패스’의 회원 수가 약 300만 명에 달합니다. 2023년의 여행 트렌드가 해외여행이어서 국내 수치는 전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반면 해외에서의 성과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Q 괌과 하와이 등 미국에서의 서비스도 예고했는데요.
A 미국은 연간 100조원이 넘는 거대한 렌터카 시장입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적인 차이도 커서 침투가 쉽지 않은 시장이죠. 우선 일본에서 안착한 후 미국 렌터카 시장의 디지털 전환에 나설 계획입니다.
Q 캐플릭스는 제주도에 거점을 둔 스타트업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할 것 같습니다.
A 제주도는 국내 1위 관광지이자 여행객들의 렌터카 사용률 전국 1위 지역이에요. 제주지역 1위 렌터카 플랫폼이 국내 1위를 할 수 있는 곳이죠.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단점은 출장이 많습니다. 어느 곳을 가도 비행기를 타야해서 몸이 고되다는 게.(웃음)
Q 현재 시리즈B 투자를 완료했다고 들었습니다.
A 현재까지 총 460억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되고 시장이 불황이라 사실 스타트업이 투자받기가 좀 더 어려운 시기인데, 반대로 더 단단하게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Q 창업 초와 비교하면 근무환경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A 처음엔 2명이 닻을 올렸는데 2022년에 100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국내에 제주, 서울, 대전 등 전국에 사무소가 있었는데,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현재는 국내에 50여 명, 일본에 40여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에는 오키나와, 도쿄, 후쿠오카, 홋카이도 등 4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요. 일본 전역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Q 캐플릭스에서 근무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합니까.
A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연구하고 끝까지 해결하는 집요함이 중요하죠. 하나의 이벤트에 매몰돼 나무만 바라보지 말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숲을 바라보는 시야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Q 목표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A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검증한 렌터카 ERP를 들고 2023년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단기적으론 3년 내에 일본 시장점유율 30%, 거래액 5조원, 매출액 2000억원 달성이 목표예요. 일본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것도 그중 하납니다. 장기적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는 겁니다. 미국과 유럽은 아직도 렌터카 ERP가 존재하지 않거든요. 5년 내 시장점유율 10%, 거래액 10조원 달성을 목표로 뛰고 있습니다.
Q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A 창업은 매력도 있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죠. 끝까지 버텨야 이길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다고 포기하지 말고 정진하세요. 길이 보일 겁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캐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