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중고거래 시장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올랐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굳이 사지 않는 미니멀라이프와 친환경 기조가 맞물리며 중고품 거래 수요가 크게 늘었다. 국내 시장에선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성장세가 도드라진다. 지역 커뮤니티가 아닌 전국구 거래로 패션 카테고리에 집중한 번개장터는 2019년 1조원이던 연간 거래액이 지난해 2조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패션 카테고리 거래액만 1조원에 이른다. 서울 성수동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Y173에서 만난 최재화 대표는 “스트레스 없는 중고거래에 집중하고 있다”며 “번개장터는 모든 분야에 관심이 높은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를 위한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2020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합류한 후 번개장터를 국내 대표 패션 중고 플랫폼으로 안착시킨 최 대표는 지난해 6월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다. 그는 “내년엔 해외 시장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1985년생.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MBA)에서 수학했다. 베인앤컴퍼니, AB-인베브, 구글코리아를 거쳐 2020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번개장터에 합류했다. 2021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22년 6월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A 대표가 된 지 이제 1년 반 정도 지났는데, 사실 올해가 온전히 사계절을 보낸 첫해거든요.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온전한 사계절의 성과는 어떠한지 궁금한데요.
A 공식 발표 전이라 구체적인 숫자를 밝힐 순 없는데, 두 자릿수 성장은 지속하고 있습니다. 가장 신경 썼던 부문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중고거래 플랫폼 기업으로서 수익 모델을 찾고 재무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 또 하나는 문화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중고거래를 당연한 문화, 일상의 트렌드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다분히 젊은 층을 겨냥한 전략처럼 들립니다.
A 번개장터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10년 가까이 애용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광고나 마케팅 활동이 없어도 이미 잘 쓰고 계신 분들인데, MZ세대 중에서도 저연령층이죠. MZ세대 내에서도 중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요. 최근 고려대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번개장터 앱이 있는 분은 손을 들어보라 했더니 다들 이미 쓰고 있더군요. 반면 예전에 40대 이상이 참여했던 강연에선 같은 질문에 안 써봤다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전자는 중고거래가 당연한 일상이고 후자는 큰마음 먹고 한번 해볼까 싶은 일인 거죠. 번개장터의 문화와 브랜드를 기반으로 중고거래 문화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플리마켓 등을 통해 직접 고객과 소통한다고 들었습니다.
A 문화를 만드는 일환 중에 플리마켓이 있는데, 일종의 축제라고 할까요. 지난번에는 새벽부터 와서 기다렸던 친구들도 있었어요.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참여하는 데 팬미팅 같은 분위기도 있고,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는, 그러니까 놀러온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 행사죠.
Q 그런 점들이 ‘당근’과의 차별점일까요.
A 제가 4년간 번개장터에 재직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당근이 경쟁사냐”는 것인데요. 일단 중고거래를 활성화시켰다는 측면에서 너무 좋은 동지이자 큰형 같은 느낌이죠. 아무래도 저희보다 트래픽이나 사용 연령층이 넓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있고, 서로 보완재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옷을 사러 가는 곳, 취미활동을 하러 가는 곳, 일상용품을 사러 가는 곳이 다 다르잖아요. 중고거래도 플랫폼들의 장점과 역할이 제각각인데, 당근이 지역 중심 거래라면 번개장터는 옷과 패션 관련 상품이 많이 거래됩니다.
Q 특별히 패션에 집중하는 이유라면.
A 백화점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옷이거든요. 하지만 백화점에는 모든 제품이 다 있습니다. 패션을 즐기는 분들 중엔 맥시멀리스트가 많으세요. 갖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이죠.
Q 중고거래는 갖고 있는 걸 비우기 위한 방편 아닌가요.
A 그런 분들도 있고, 소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측면도 있어요. 꼭 갖고 싶은 걸 새걸로만 채우지 않는 건데, 그건 경제적 혹은 환경적인 고려일 수 있는 것이죠. 패션을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들은 그 중심에서 중고물품의 가치를 찾아주는 소비를 하고 있어요. 번개장터는 실제 사용자들의 거래를 좀 더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패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Q 앱 화면에 브랜드명이 표기돼 있던데, 광고의 일환입니까.
A 저희 앱은 두 가지 형태의 광고가 있는데 빨리 팔고자하는 판매자분들의 광고와 번개장터에서 원하는 상품이 없을 때 네이버나 쿠팡에서 찾을 수 있게 연결해주는 외부광고가 있어요. 브랜드별 카테고리는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예요. 실제로 브랜드 제품 거래가 많습니다. 중고거래는 브랜드 가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거든요. 패션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인지 중고거래가 일상이 된 세대는 비싼 옷을 사는 데 크게 부담을 갖지 않아요. 감가상각이 덜 되고 잔존 가치가 높아 되팔 때 제값을 받을 수 있거든요. 비싸게 사고 비싸게 팔기 때문에 지출이 그리 크지 않은 거죠. AI를 통해 개인화 추천도 진행되죠.
Q 데이터 처리가 만만치 않을 텐데.
A 전체 인원의 약 50%가 개발인력이에요.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고 나면 연관된 콘텐츠가 계속 올라오잖아요. 번개장터도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는 재고가 단 하나뿐인 상품이 매일 10만 개씩 등록되는 플랫폼이에요. 한 달이면 300만 개의 상품이 등록되는데 검색도 중요하지만 추천과 탐색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Q 특히 중고명품 거래가 활발한데, 가품에 대한 대책은.
A 지난해 말에 ‘번개케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정품 검수는 물론 세척과 폴리싱(광택) 같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중고거래 토털케어 서비스’예요. 번개장터 전문 감정사가 다양한 브랜드 상품을 검수하고 감정해 안전성을 높였습니다. 성수동에 정품검수센터도 운영 중이죠.
Q 번개케어는 100% 믿을 수 있는 겁니까.
A 판매자가 공개한 컨디션에서 저희가 발견하지 못한 결함이 발견됐을 땐 보상하고 있습니다. ‘번개페이’도 이용률이 높은 서비스예요. 구매자가 물품 수령 후 구매를 확정할 수 있는 에스크로 결제 시스템인데, 쉽게 말해 일종의 안심결제죠. 모르는 분에게 실명 계좌를 보내는 게 사실 부담스러운 일이잖아요. 일반적인 거래는 번개페이를 이용하고, 단가가 높은 제품은 번개케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두 서비스 모두 재사용률이 70~80%에 육박합니다.
Q 편하게 사고 보상도 받는다 하니 쿠팡이 떠오르는데요.
A 쿠팡에서 물품을 구매하거나 반품할 때 와우 회원이면 모든 과정을 고민 없이 쉽게 진행할 수 있잖아요. 저희도 중고거래에 있어 쿠팡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관련된 스트레스를 제로로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쿠팡의 서비스를 지향한다?
A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단, 그만큼 스트레스 없는 서비스를 지향하는 거죠.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자주 사는 상품은 잊어버릴 만하면 자동으로 알려주는. 그런데 중고거래는 어렵고 귀찮아서 입문 자체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일단 팔려면 상품 소개를 써야 하고 구매하려면 채팅으로 시작하잖아요. 번개장터에선 안전결제가 가능해서 구매자가 결제 버튼을 누른 후 판매자가 수락하면 바로 거래가 성사돼요. 그 외에 주고받아야 하는 배송지 등의 정보는 이미 시스템에 정리돼 있어서 채팅 없이 배송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Q 이미 중고거래는 글로벌 트렌드의 한 축이 됐습니다. 눈여겨보는 글로벌 플랫폼이라면.
A 글로벌 시장에는 이미 잘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좋은 것만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저희도 자랑할 게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고단가 중고물품에 대한 토털케어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번개장터가 유일합니다. 또 하나는 ‘스타굿즈’예요. 아이돌 덕질이라고들 하는데, 뒤늦게 입덕하면 과거 앨범을 구할 길이 없거든요. 예를 들어 5년 전 콘서트에서 팔았던 응원봉이 갖고 싶다? 번개장터에 있습니다.(웃음) 스타굿즈는 이미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카테고리예요. K팝 종주국이잖아요. 해외에 알려진 K패션 브랜드들도 하나둘 늘고 있어서 현재 해외 시장에서의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Q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테스트인가요.
A 네. 해외 진출에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 직접 진출해서 해외 가입자를 유치하는 방식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고거래는 사기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본인 인증을 한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그런 이유로 현재로선 해외 이용자들이 번개장터를 이용할 순 없어요. 국내 판매자들의 중고물품을 구매하려는 해외 이용자들을 위해 대행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해외직구대행 서비스가 있듯이 저희 파트너사들이 대행사 역할을 하는 형식이죠. 현재 DAU(일간 활성 이용자 수)가 2만 명 수준인데, 내년에는 이 분야에도 드라이브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Q 대표이사 취임 4개월 후 강승현 공동대표가 취임했습니다. 공동대표 체제를 갖춘 이유는.
A 일단 강 대표님은 번개장터 이전부터 같이 일했던 업계 동료 같은 분이에요. ‘주주와 피투자사의 동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철학을 가진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에 계신데, 이 사모펀드는 저희 대주주이기도 합니다. CFO가 없는 번개장터에서 재무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있어요.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갖추고 발전할 수 있는 구조라고 판단했습니다.
Q 흑자전환 시기나 기업공개(IPO) 등 장기적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A 흑자전환은 내후년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업공개는 투자자분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기업이 자체 흑자전환하고 혁신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까지 마련된다면 더없이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혁신을 위한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면 한 번 더 펀딩을 받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