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고소장을 작성하고 판결을 내리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두 손으로 직접 돈을 세고 이자를 계산하던 금융이 IT 기술을 만나 핀테크(FinTech) 서비스로 발전한 것처럼 법률 서비스도 ‘리걸테크(LegalTech·법률+IT)’란 신조어를 만들며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이 분야의 유니콘 기업이 9곳(2019년 기준 시장조사기관 트랙슨 집계)이나 된다.
막대한 투자에 몸집을 키운 해외 리걸테크 기업 중 일부는 이미 국내 시장에도 명함을 내밀었다. 로앤컴퍼니가 운영하고 있는 ‘로톡(LawTalk)’은 이들과 겨루고 있는 국내 1위 법률 서비스 플랫폼이다. ‘법률 고민 처음부터 로톡하자’란 문구 아래 서비스 이용자와 변호사를 연결해준다. 그러니까 플랫폼에 등록된 변호사의 활동 연혁, 전문 분야, 승소사례 등을 제공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변호사를 골라 상담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전화 상담, 플랫폼을 통한 짧은 영상 상담 혹은 사무실을 방문한 면담 상담까지 세분화된 항목을 갖췄다.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한 로톡은 그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2019년 140억원, 2021년 230억원 규모의 시리즈 B·C 투자를 유치했고, 같은 해 약 1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선정한 ‘예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이 되기도 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여러 개다. 그중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의 갈등은 7년째 계속되고 있다. 현행 변호사법에 따르면 비(非)변호사가 변호사를 중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로톡이 이 부분에 대한 법을 어겼다는 게 변협의 주장이다.
반면 로톡은 중개·알선 수수료가 아니라 순수 광고비만 받고 서비스하기 때문에 법률 브로커로 볼 수 없단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은 현재 변협의 관련 변호사 징계로 이어진 상황.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공동창업자)는 “오히려 이러한 이슈로 인지도가 높아졌다”며 “수사기관에서 이미 합법이라 판단한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과연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첫 장에는 어떠한 기록이 남게 될까. 정 부대표는 “규제 혁신을 위해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정부가 협회나 단체의 그림자규제(비명시적인 변칙 규제)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가장 큰 관심사라면.
▷ 지금보다 더 성장하는 것이죠. 2022년 변협(대한변호사협회)과의 이슈로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로톡 서비스를 인지한 분들도 많아졌고 직접 서비스 페이지에 방문하는 분들도 늘었습니다. 현재는 서비스 개선과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어요. 또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되도록 편하게 법률 전문가를 만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여름 집중호우나 태풍 피해를 입은 분들께 법률 상담 쿠폰을 지원했고 최근엔 사람인, KT와 제휴해 소상공인을 위한 법률 지원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아, 법률 AI 기술연구와 개발도 빼놓을 수 없는데, 변호사들의 업무효율과 생산성을 높여주는 솔루션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로앤컴퍼니는 법률과 AI의 접목에 진심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저희는 기술이 법률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하면 수백, 수천만 건의 판결문 데이터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고, 분석까지 마칠 수 있어요. 변호사의 시간당 사건 처리 업무 생산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죠. 일례로 현재 빅케이스에선 약 330만 건의 판례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도화된 판결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국내 기업 중 보유 판례 수가 가장 많습니다. 과거에는 경험이나 제한된 판결문만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AI 기술을 접목하면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판결문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변호사 입장에선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셈이죠.
▶ 흔히 법은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없다고들 하던데요. 그건 빅데이터로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한데, 리걸테크 분야에서 AI의 역할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 겁니까.
▷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리걸테크 산업 발전이 더딘 편인데, 해외에선 AI 기술을 활용해 법률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하는 서비스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변호사들도 이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판결문 판례 검색 서비스만 봐도 수백만 건 중 유사한 판결문을 찾아 분석하려면 시간 싸움일 수밖에 없는데, AI 기술을 활용하면 정확도도 높이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요. 특히 판결문은 법률문제에 대한 다양한 사실관계, 각기 다른 주장, 법원의 법리 판단과 결론 같은 수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고, 판사가 정제된 표현과 법령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한 문서이기 때문에 응용 서비스 개발 활용에도 유리합니다. AI 기술은 결국 변호사의 업무를 도와 법률 서비스 시장 규모를 키울 겁니다.
▶ 2022년 로톡의 성과가 궁금한데요.
▷ 무엇보다 로톡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요. 아무래도 변협과의 이슈가 알려지다보니 자연스레 로톡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2022년엔 연간 방문자수가 2300만명을 돌파했고, 하반기 온라인 광고 매출이 전년 대비 1.96배 늘었습니다.
▶ 2014년에 로톡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벌써 9년째 접어들었는데요. 그동안 체감한 국내 법률 서비스 시장의 변화라면.
▷ 사실 로톡을 출시할 때만 해도 리걸테크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생소했어요. 로톡을 비롯해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법률 서비스 시장에 IT 기술이 도입되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게 됐죠.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변호사도 많거든요.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분들이나 정치권에서도 리걸테크가 시대의 흐름이라 여기는 분들이 늘고 있어서 시장은 더 커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 현재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는 몇 분이나 됩니까. 변협의 징계 이후 변화가 있는 겁니까.
▷ 로톡에 가입한 회원 변호사 수는 2000여 명입니다. 2021년 4000명 돌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광고 규정으로 1700여 명까지 줄었다가 헌법재판소가 광고 규정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많은 분들이 다시 돌아왔어요. 지금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변협이 일부 로톡 이용 변호사의 징계를 의결했는데, 변호사 회원들이 이에 대해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했어요.
▶ 2012년 창업한 로앤컴퍼니는 2021년 230억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C를 유치했습니다. 누적 투자액이 400억원을 넘어섰는데요. 스타트업 하시기 어떠십니까.
▷ 쉽진 않습니다.(웃음) 새로운 변화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창업해 벌써 만 10년을 넘겼는데,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들이 계속되고 있어요. 법률 서비스 시장은 유독 다른 산업군에 비해 IT 기술 도입이 더딘데,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고충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해외 리걸테크 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그냥 머물러 있으면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이 국내 법률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에요.
▶ 최근 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스타트업도 투자보다 매출이 우선이라고들 합니다.
▷ 아무래도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안정성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 가능성보다는 현재 이뤄내고 있는 성과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로앤컴퍼니는 창립 이래로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2022년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출 상승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 투자자가 원하는 점이 달라졌다고도 하던데요.
▷ 투자 시장의 혹한기라고 하던데, 투자사의 펀드 결성이 과거보다 어려워진 게 사실이죠. 자연스레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란 말도 나왔어요. 다시 말해 투자하고 싶은 좋은 회사를 찾는다는 투자자들의 목표는 동일하지만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철저한 비용 관리 아래에서 성장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 흔히 스타트업의 목표는 주식 시장 상장이나 매각이라고들 합니다. 로앤컴퍼니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 저와 김본환 대표가 처음 창업했을 때 생각했던 게 ‘법률 서비스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였습니다. 단순히 사업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주위에 참 많은 변호사들이 말리기도 했는데, 어렵다는 걸 알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상장은… 자금 확보의 일환으로 고려해볼 순 있겠지만 그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목표를 매각이나 상장에 두기보단 법률 서비스 대중화와 선진화, 이를 통한 리걸테크 선도 기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정부의 지원 정책 등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정부에서도 규제 혁신을 위해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규제로 어려움 겪는 게 사실인데, 저희처럼 협회나 단체가 만든 규정으로 합법적인 서비스에 대한 가입 자체를 금지하고 이용자들을 징계하는 ‘그림자 규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해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스타트업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 창업은 위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건 단지 돈을 벌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예요. 힘든 과정을 겪은 후 만들어낼 가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부딪쳐봐야죠.
He is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산업공학과 금융공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12년 김본환 대표와 로앤컴퍼니를 설립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